신문잡지 기고

공공기관도 후진화를 추진하나 <한겨레 08. 09. 11>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15

 

<한겨레 08. 09. 11>

 

공공기관도 후진화를 추진하나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기관들의 통폐합, 기능조정, 민영화를 중심으로 한 내용이다. 다만 촛불에 덴 때문인지 보수세력이 보기엔 아직은 찔끔찔끔 감질 나는 방안에 그치고 있다. 아마도 방송, 네티즌, 시민단체를 제압한 다음에 정말로 화끈한(?) 모습을 보여줄 모양이다.

 

  우리나라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에도 선진화를 위해 개혁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음은 분명하다. 정권에 코드를 맞춘 검찰과 감사원이 한국방송(KBS)에 덮어씌운 배임혐의처럼 억지스런 사례도 있지만, 심심찮게 불거지는 공공기관의 비효율과 비리를 마냥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점을 터트리면서 이명박정권은 보수언론과 합작으로 공공기관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신이 내린 직장’ 운운하는 담론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혈세를 이렇게 낭비하다니” 하는 국민의 분노를 이용해 벌이는 공공기관 선진화의 추진행태에 대해선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첫째로 동기가 수상쩍다. 통폐합이나 기능조정의 경우를 보면 쇠고기협상처럼 뭔가 보여주려는 데 급급해 하는 듯싶다. 수백 개 기관의 미래를 윗분의 지시에 쫓겨 후다닥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라를 선진화하려면 오히려 확충해야 할 복지관련 공공기관이 있는데도 축소일변도다.

 

  한편, 민영화의 경우엔 부자들 세금 줄여주는 데 따른 재정수입 부족을 메우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자기편 챙기려면 나라살림 축내도 되는 걸까. 나아가 혁신적 투자 대신에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독점적 공공사업에 눈독 들이는 재벌의 요구에 순응하고, 일시적 달러조달을 위해 공기업지분을 외국에 헐값매각하려 한다.

 

  둘째로 지배구조 개악의 위험성이 크다. 본디 공공기관의 비효율과 비리는 지배구조의 문제다. 일부 공공기관의 불공정한 과다 보수도 같은 성격의 사안이다. 이런 문제를 개혁하려면 사장에 대한 임면과 견제 체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어떻게 했는가.

 

  그들은 법적 임기를 무시하고 전리품 나누듯이 사장을 갈아치웠다. 이렇게 마구잡이 낙하산 인사가 판치는 곳에 선진적 지배구조는 기대난망이다. 또 임기를 1년으로 단축함으로써 정권에 대한 눈치 보기만 횡행할 것이다. 소비자의 지배구조 참여라든가 공공성을 제고하는 경영평가방식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셋째로 종합적 사고를 결여하고 있다. 현재 우리 상황에선 민영화가 공공기관의 비리와 비효율을 척결하는 묘수가 아님을 정권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주요 인수주체가 될 재벌기업 역시 총수에 의한 비리와 비효율의 온상이 아닌가. 과다 보수 문제도 공적 독점을 사적 독점으로 바꾸는 민영화로는 온존되기 십상이다.

 

  결국 공공기관 선진화와 재벌개혁은 불가분의 관계인데, 이 정권은 규제완화란 이름 하에 재벌체제를 과거로 되돌리고 있다. 또한 외국자본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인지 인천공항의 사례처럼 경영선진화와 무관하게 국부유출로 이어질 공산이 큰 민영화를 함부로 추진한다.

 

  사실 이명박정권은 선진화를 구호로 내걸고 등장했으나 도리어 시대를 역주행하고 있다. 백골단 부활, 남북한 긴장조성, 재벌개혁 허물기, 시민운동 탄압의 행태를 보라. 공공기관 역시 후진화의 길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공공기관 선진화의 핵심인 ‘민주적 견제와 공정한 시장경쟁’의 발전을 정부가 도리어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화란 말만 알았지 그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치다. 또다시 촛불로 밝혀줘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