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신자유주의 타령을 넘어 <한겨레> 2008. 7. 17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11

 

한겨레> 2008. 7. 17

 

신자유주의 타령을 넘어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이명박 정권의 본색은 이제 꽤 드러났다. 그런데 진보인사 중엔 현 정권의 경제노선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라고 주장했으며, 이명박 정권은 보다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정권이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방식은 언어사용과 현실인식에서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로 신자유주의란 말은 국민을 소외시키는 용어다. 대중들은 이게 뭔지 잘 모르며 기껏해야 뭔가 나쁜 거라고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에게도 신자유주의란 말은 생소하다. 심지어 신자유주의를 입에 달고 다니는 교수조차 그 뜻을 곡해하기도 한다. 개발독재의 전형인 운하사업을 신자유주의로 지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을 소외시키는 용어를 마법주문처럼 사용한 결과 진보세력 자신이 국민에게서 소외당한다.

 

  물론 대중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라도 써야 할 때가 있다. 갖가지 금융용어들이 그렇다. 하지만 정권의 성격규정처럼 대중을 결집시킬 힘이 되어야 할 용어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무분별한’ 민영화․대외개방․규제완화 같은 것은 ‘시장만능주의’로 일컫는 게 감이 훨씬 빨리 온다. 황금만능주의처럼 OO만능주의란 뭔가의 절대시라는 걸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대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난 대선을 돌이켜보자.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격초점은 BBK사건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뭐가 뭔지 알기 힘든 그런 이슈보다 수백억 원 이상의 재산가가 수백만 원을 안 내려고 자식을 위장취업시킨 ‘치사한’ 행태가 대중적 충격이 훨씬 컸다. 한나라당 선거핵심도 위장취업 사건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슈가 집약된 게 단어며, 그 정치적 효과를 우습게보면 대중을 획득할 수 없다.

 

  둘째로 구미의 신자유주의론은 우리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인 영국의 대처나 미국의 레이건 시대를 보자. 거기선 구자유주의적 시장질서 정립과 복지주의의 강화를 거친 다음 그 복지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신자유주의 즉 시장만능주의가 등장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압축적으로 발전해온 한국에선 이 모든 단계가 중첩된다.

 

  한국의 지난 10년은 시장만능주의라는 단색으로 칠할 수 없다. 개발독재의 유산 위에 구자유주의, 복지주의, 시장만능주의가 각축을 벌인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정권은 구자유주의와 복지주의를 약화하며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일부 진보파는 구미의 진보파를 잘못 모방하고 있다. 구미에선 시장의 과도한 확대인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는데, 한국에선 시장의 정상적 발전인 구자유주의까지 싸잡아 비판하기 일쑤인 것이다.

 

  시장은 자원배분의 효율적 수단이다. 다만 시장을 만능시해선 안되며 시장과 민주주의가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엔 재벌체제나 대기업 정규직 같은 과소시장 영역과 영세자영업이나 비정규직 같은 과잉시장 영역이 병존한다. 이를 바로잡아야 바람직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이런 과제는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단순하게 환원되는 게 아니다.

 

  재벌개혁의 출발점은 재벌기업과 재벌총수의 분별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선진화에는 시장발전과 시장만능주의의 분별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한국고유의 상황을 간과하는 신자유주의 타령에서 개혁진보세력은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역사를 이끌고 갈 수 있다. 촛불정국에서 신자유주의 운운이 먹혀든 적이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