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파산위기의 ‘경제 살리기’ (2008/ 6/ 18) 한겨레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07

 

파산위기의 ‘경제 살리기’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이명박정권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그리 된 결정적 요인의 하나는 ‘경제 살리기’ 공약의 신뢰상실이다. 원래 ‘죽은’ 경제가 아니었으므로 경제 살리기라는 공약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서민살림을 개선시키겠다는 표현의 과장법 정도로 이해해 주자. 그런데 지난 100일을 보내면서 그 공약의 싹수가 노랗다고 국민이 느끼게 된 것이다.

 

  먼저 ‘고소영’ ‘강부자’ ‘올드 보이’ 인사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특권층과 부동산투기꾼,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뒤쳐진 한물간 인물로 청와대와 내각을 채운 것이다. 게다가 자리다툼 때문에 금융전문가를 공정거래위원장에 앉히고 공정거래전문가를 금융통화위원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과학적 분석에 근거해야 할 운하사업을 목사님께 맡겼다. 부패, 시대착오, 무능이 이명박식 코드인 셈이다.

 

  경제철학은 어떤가. 이명박정권은 실용주의를 내세운다. 실용주의가 이념에 억매이지 않겠다는 실사구시의 자세라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실제론 대북관계에서 냉전이념의 덫에서 허우적거리는 반실용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 선진화를 지향한다면서 성장만능주의를 기조로 한다. 성장만 하면 자동적으로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분배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졸부는 신사가 될 수 없으며 우리 사회에선 성장 속에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현 정권은 비즈니스프렌들리(친기업)를 부르짖지만, 사실은 반시장적 반기업적 총수프렌들리에 빠져 있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분담과 관련해선 시장만능주의와 개발독재 사이를 갈팡질팡한다.

 

  인사스타일과 경제철학이 이런 형편이니 경제정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유가 폭등 같은 외적 요인을 감안해도 요렇게 엉망일 줄 누가 예상했을까. 거시경제면에선 환율인상을 부추겨 물가상승을 부채질한다. 규제완화를 추진하다 물가단속을 들먹거린다. ‘가진 사람들’을 위해 세율을 낮추고 그에 따른 세입부족은 무분별한 민영화로 메우려 한다. 운하에 대한 집착엔 질릴 지경이다. 기업정책에선 재벌개혁을 후퇴시키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해선 내 몰라 한다. 지지율폭락에 깜짝 놀라 유가 환급 등 서민대책을 내놨지만 1년에 6~24만 원 보태준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대외경제정책에선 남북한 경제협력은 외면하고 미국과 굴욕적인 쇠고기협상을 체결했다.

 

  요컨대 인사스타일, 경제철학, 경제정책에서 드러난 정권의 모습에 국민들이 속았다고 한숨짓게 된 셈이다. 물론 이렇게 보수파의 정체가 밝혀진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그러나 보수파에게도 역사적 사명이 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축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여기서 진보파가 ‘민주주의의 고도화’에 더 치중한다면, 보수파는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 같은 ‘시장경제의 고도화’에 더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이 그런 기대에 부응할 전망은 어둡다. 한국의 보수파는 수구파로 불러야 할까보다.

 

  진보파는 이명박정권의 추락에 생기를 되찾고 있다. 대선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난 듯싶다. 그러나 현 정권의 위기를 마냥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선 국민이 괴롭다. 그리고 진보파가 상대편 실수만 기다리고 자기실력을 향상시키지 않아선 곤란하다. 그러다간 나중에 정권을 잡더라도 비슷한 위기에 처한다. 한편으로 현 정권을 규탄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론 대안제시로 정권이 과오를 바로잡게끔 애써야 한다. 선진화란 진보파와 보수파 모두가 업그레이드되어 서로 간에 생산적 경쟁구조가 자리잡는 것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