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대타협 <한겨레> 2008. 8. 7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13

 

<한겨레> 2008. 8. 7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대타협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들의 단식이 50일을 넘어섰다. 노조를 결성했다고 해고당해 1,000일 이상 싸워오면서 펼치고 있는 극한적 저항의 모습이다. 둘러보면 이런 장기투쟁은 이랜드, 코스콤, 케이티엑스, 시간강사 등 도처에서 눈에 띈다. 아이엠에프사태 이후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그를 둘러싼 제반 문제가 근래 노사갈등의 주요 형태로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경제 최대현안인 양극화를 초래한 결정적 요인의 하나도 비정규직 문제다.

어느 조직에서나 핵심인력과 주변인력은 나뉘게 마련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도 그런 구분의 일종이다. 그런데 양자를 나누는 기준과 그 사이의 차별이 비합리적인 게 우리사회다. 정규직 진입에 업무능력보다 빽, 운, 뇌물이 작용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 정도며 고용이 훨씬 불안하다. 대기업근로자와 중소기업근로자 사이도 마찬가지 모순을 안고 있지만, 같은 사업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의 경우엔 견디기가 참으로 힘들다.

 

  이런 비합리성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은 당연한 현상이다. 노무현정부의 비정규직보호법 제정도 그런 흐름에 따른 것이다. 그 결과 일부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도 확대됐다. 하지만 이랜드처럼 회사가 직접 고용하던 비정규직을 용역 같은 간접고용으로 돌리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간접고용에 관한 규정을 정비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시정을 용이하게 하는 보완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회사가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차별하는 동기 자체를 제거하는 게 근원적 해결책이다. 그 동기는 첫째가 인건비 절감이다. 그런데 햇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연공급을 직무와 숙련도에 의해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진정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가능하며, 비합리적 차별을 통한 인건비 절감은 곤란해진다. 사실 정보화와 글로벌화로 인해 개별기업 고유의 숙련 축적을 장려하려는 연공급의 의미는 약화됐다. 그리고 연공급은 나이 들수록 생활비가 늘어나는 사정을 고려한 제도인데, 직무숙련급에선 교육과 의료 등에 대한 충실한 사회보장으로 그 문제에 대처하면 된다.

 

  둘째로 회사는 원활한 고용조정을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한다. 한국의 고용은 평균적으론 유연한 편이지만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은 경직적이다. 때문에 대기업은 경영형편에 따른 고용조정을 비정규직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유연성을 두루 공평하게 적용하면 비정규직의 남용이 사라진다. 다만 이러려면 실업보험과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아울러 대기업과 그곳을 그만 둔 노동자가 일할 중소기업 사이의 근로조건 격차를 줄여야 한다. 대기업과 부유층에서 세금을 더 거둬 사회보장 즉 일종의 간접임금을 키우는 게 그런 길이다. 덴마크가 모범을 보이고 유럽연합이 권장하는 유연안정성(노동의 유연성과 생활의 안정성)이 바로 이거다.

 

  하지만 재계와 대기업 정규직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긴 안목의 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임금과 고용을 합리화하면 기업경쟁력이 향상되며, 일시적 노동특권을 양보하고 연대의 정신을 살리면 노동대중의 삶이 장기적으로 안정된다. 물론 비정규직 보호법을 개악하고 세금을 낮추는 식으로 시대를 역주행하려는 이명박정권에게 이런 바람직한 선진화정책은 기대난망이다. 그렇다면 진보파가 앞장서야 한다. 다시금 진보파가 대안을 내세우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