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시장경제의 두 얼굴 <한겨레 2008/ 10/ 5>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16

 

시장경제의 두 얼굴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세계경제가 격랑에 휘말리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을 비롯한 대형 금융기관들이 줄초상이 나고, 그 영향은 각국으로 파급되고 있다. 주가폭락과 경기침체는 일반적이어서, 초고속성장을 구가하던 중국과 인도마저 성장률 저하를 피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위기가 언제 수습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이었던 그린스펀 말대로 1세기에 한번 있을 만한 최악의 사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곧바로 시장경제나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사망을 선고하는 것도 ‘오버’하는 일이다. 실업률이 미국서 25%까지 치솟았던 1930년대 대공황도 극복해 온 게 시장경제다. 게다가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의 경제조절 기능도 꽤 강화되었다. 덕분에 불황이 때때로 나타나긴 했으나 그 진폭을 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식이 아닌 다른 나라들, 이를테면 스웨덴과 일본도 1990년대에 금융위기를 맞았음을 잊지 말자.

 

  본디 시장경제는 효율성과 불안정성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물물교환이 화폐경제로 발전하면 거래의 효율성이 증대된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라는 경제의 불안정성도 동시에 생겨난다. 화폐보유자가 상품구매에 나서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려는 투기라는 불안정요소도 시장경제와 불가분이다. 이번 금융위기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융자)와 그 파생상품으로 서민주택소유가 활성화된 반면 그에 따른 위험성이 과소평가된 탓이다.

 

  시장의 효율성과 불안정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한쪽만 취할 수 없다. 자유경쟁과 분배불평등이라는 시장의 또 다른 모순도 마찬가지다. 이런 모순들을 없앨 수는 없지만 조절할 수는 있는 게 자본주의국가다. 1원1표의 시장경제 원리를 1인1표의 민주주의 원리로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 조화를 잘 이루지 못하고 시장만능주의가 우세하면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나 분배악화를 초래하기 쉽고, 그 반대의 국가만능주의는 북한처럼 효율성과 자유를 결딴낸다.

 

  세상만사는 대립물의 갈등과 조화 속에서 발전한다는 이른바 변증법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셈이다. 실물과 금융의 관계도 다를 바 없다. 미국에선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실물에 비해 과잉 성장한 금융이 문제를 야기했다. 그러나 반대로 금융기관은 “맑을 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올 때 빼앗는 곳”이므로 억압하는 게 상책이라는 주장 또한 곤란하다. 금융도 금융 나름이라 악성사채업은 엄단해야 하지만, 하층민에게 새로운 금융기회를 제공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같은 존재는 장려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돌파하는 동시에 선진화의 길로도 나아가야 한다. 특히 외환유동성 부족이나 국내 부동산과 건설업에서 유래할지 모르는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해결의 기본원칙은 분명하다. 곧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시장의 불안정과 불평등을 조절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정권은 어찌 하고 있는가. 나름대로 애는 쓰고 있겠으나 원칙에 비춰보면 어이없는 일이 적지 않다. 재벌개혁을 후퇴시킴으로써 기업 간 불공정경쟁을 조장하려 하며, 정규직-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자 사이의 불공정경쟁 문제 해결엔 관심이 없다. 환율에 대한 갈팡질팡 정책과 부자를 위한 감세로 시장의 불안정과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다. 경제가 요동치는 속에 서민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시장경제의 역사는 때때로 진흙탕을 뒹굴기도 하는 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