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잃어버릴 10년과 개혁진보세력 <한겨레 2008/ 12/ 4>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19

 

잃어버릴 10년과 개혁진보세력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나라가 어렵다. 여기엔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외적 조건 탓이 크다. 하지만 이명박정권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도 분명하다. 외환관리나 부실처리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라. 게다가 어려울 때일수록 공평한 고통분담이 중요한데 오히려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 같은 자기편 챙기기를 우선한다. 온 세상이 불난리인데 불장난하듯이 재벌규제를 허물고 무분별한 개방을 서두르기도 한다. 이러다간 우리경제가 선진화는커녕 경기회복도 더딜 게 뻔하다.

 

  문제는 경제만이 아니다.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에 스며들던 온기를 이명박정권은 싸늘하고 위험한 기운으로 바꿔버렸다. 또한 이승만과 박정희를 복권시킨다고 역사교과서 소동을 일으키며 교육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런가하면 환경적 대재앙인 운하추진에 꼼수를 쓰고, 백골단을 부활시키며, 누리꾼과 방송을 옥죄고 있다. 우리사회가 전면적으로 퇴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정권 5년만 꾹 참으면 되나. 안타깝게도 남북한 민중의 ‘고난의 행군’은 더 길어질 것 같다. 우선 다음 대선도 한나라당 내부 게임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 기백도 인물도 없는 불임정당 상태기 때문이다. 선거 때 갑자기 나타난 신인에 기댈 수 없음도 지난 대선서 확인됐다. 최근 발족한 반한나라당 연합전선도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다. 우리 진보정당들은 미국의 랄프 네이더처럼 자신을 앞세우는 데만 급급한 실정이다. 얼마 안 되는 자기네끼리도 갈라진 집단이다.

 

  정당 이외의 세력 역시 지금은 지리멸렬한 모습이다. 노조를 보라. 한국노총은 이명박정권과 짝짜꿍이 된 바 있다. 민주노총은 기득권에 얽매인 대기업노조의 입김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시민단체도 몇몇 타락한 행태로 인해 도덕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또 대학생 대부분은 취업준비에 바빠 사회문제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다. 요컨대 이들 세력은 수구화 저지에 동참은 하더라도 힘 있게 주도할 형편은 아닌 것이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10년은 나라가 결딴난 게 아니라 수구세력의 헤게모니가 흠집난 시기일 뿐이다. 남북한 민중의 삶은 나빠진 부분도 있고 좋아진 부분도 있다. 그런데 앞으로 남북한 민중에겐 정말로 ‘잃어버릴 10년’이 기다리고 있는 듯싶다. 답답하다. 물론 얻을 게 전혀 없지는 않다. 국민들이 수구세력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그걸로 체념하기엔 희생이 너무 크지 않은가.

 

  암담한 전망 속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개혁진보세력이 비전, 감동, 실력을 갖추도록 환골탈태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할 일이 엄청나고 이에 관해선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외국이론에서 찾기 힘든 한국 고유의 상황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여전히 신자유주의처럼 대중이나 한국현실과 유리된 용어가 남발되고 있고, 넘쳐나는 영세자영업자 문제 등은 정책대안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하루빨리 이를 극복해야 한다.

 

  아울러 정보화시대의 한국적 특징에도 주목해야 한다. 노조나 대학생이 주도하지 않은 대중모임인 촛불, 수구신문의 지배 틀을 잠식하는 인터넷, 대중과 소통하는 새로운 지식인상인 미네르바가 그런 것이다. 다만 촛불엔 열기를 담아낼 그릇의 결여, 인터넷에선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 잡음, 미네르바에겐 논증 없는 거친 단정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정보화시대 방식과 기존의 산업화시대 방식을 결합해야 한다. 그래야 잃어버릴 10년을 막든지, 아니면 적어도 그 기간의 희생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