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시장과 국가, 양과 질 <한겨레 2009/ 1/ 7>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20

 

시장과 국가, 양과 질

 

김기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세계 금융위기로 시장만능주의가 몰락했다. 시장만능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조차 정책당국과 학자들로부터 버림받은 처지다. 물론 시장만능주의라 하더라도 모든 걸 시장에 맡겼던 건 아니고 국가도 나름대로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시장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국가역할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던 게 문제였던 셈이다.

 

  이제 많은 나라에서 시장과 국가의 제자리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경제위기라는 당면한 시장실패 상황에선 국가가 걸머진 짐이 갑자기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은행을 부분 국유화한다든가 부실기업에 돈을 퍼붓는다든가 하는 사회주의(?) 정책이 자본주의 리더인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위기수습 후에도 시장과 국가의 상대적 비중은 위기 이전과는 같지 않으리라.

 

  돌이켜보면 자본주의역사에서 시장과 국가의 위상은 계속 변해왔다. 국가가 자본주의를 적극 육성하던 중상주의를 거쳐 19세기 영국에선 자유시장 방임주의가 우세했지만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국가의 역할이 크게 제고되었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로 다시 시장만능주의가 득세하다 이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시계추가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모양과 비슷하다.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나라별로도 시장과 국가의 상대적 지위는 다르다. 미국이 시장의 자유경쟁을 더 강조한다면 북유럽은 국가를 통한 민주적 연대를 더 강조한다. 북유럽에선 미국에 비해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내고 그 대신 국가로부터 커다란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원래 선진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두 축의 조합방식은 이렇게 나라마다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경기순환 상의 과제와 더불어 선진국으로의 도약이라는 체제적 과제를 안고 있다. 다만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시장과 국가의 양적 비중의 차이가 존재하므로 정치적 노선투쟁이 전개되기 마련이다. 우파라면 시장을, 좌파라면 국가를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시장과 국가의 황금분할이 정답으로 주어져 있는 게 아니므로 좌우파의 대립은 불가피하고 그것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후진국인 우리에게선 시장과 국가의 양에 못잖게 질이 중요하다. 시장에선 얼마나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국가는 얼마나 민주적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가 바로 질의 문제다. 선진화란 그 질을 높이는 일이다. 물론 부시 치하의 미국처럼 시장질서가 흐트러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진국의 전반적 수준은 후진국과는 격이 다르다.

 

  결국 현재 한국은 경제위기의 극복, 시장과 국가 각각의 질을 높이는 선진화, 시장과 국가의 양적 비중을 정하는 선진화 유형선택이라는 세 개의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과제도 만만찮은데 삼중의 과제와 씨름하고 있으니 사회가 시끄러운 것도 당연하다. 정치적 리더십이란 이런 난관을 돌파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위기타개능력도 신통찮은 이명박정권은 재벌개혁을 후퇴시키고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 시장과 국가의 질을 떨어트리는 ‘후진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거기다 부자 감세로 시장만능주의를 보탠다. 이리 가다 보면 장차 통일한반도는 북유럽식도 미국식도 아닌 요상한 꼴이 될 듯싶다. 연고주의가 강하고 자영업 비중이 높고 남북 지역격차가 큰 이탈리아적 특징, 사회보장과 노조가 취약한 미국적 특징, 그리고 부패한 재벌이 나라를 주무르는 한국적 특징이 결합된 모습이 아닐까. 이를 막아낼 정치적 리더십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