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갈림길에 선 이재용전무 <한겨레 2009. 2.26>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26

 

 

갈림길에 선 이재용전무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삼성의 이재용전무가 이혼했다. 한국인구 천 명당 이혼건수가 1980년의 0.6에서 2007년의 2.5로 급증하기는 했으나 재벌가문끼리의 결혼이 파탄난 경우는 찾기 힘들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다 행복할 리 없지만 이혼으로 잃는 게 많았기 때문이리라. 그런 점에서 이전무의 이혼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혼사유가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재벌가의 아내도 이제는 남편이 불성실하다든가 할 때 그냥 참지는 않게 된 셈이다.

 

  근래의 이혼율 증가는 결혼이라는 장기계약이 점차 단기계약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의 고용 유연화처럼 남녀관계도 유연화하는 것이다. 다만 고용 유연화는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할 경우 노동자의 삶을 불안케 하는 마이너스 측면이 강한 데 반해, 남녀관계의 유연화는 여성의 지위향상이라는 플러스 측면이 강하다. 이전무 부인도 갈라져 살 자신이 있어 이혼을 요구했으리라.

 

  물론 이혼은 고통도 수반한다. 자녀와 관련해선 특히 그렇다. 게다가 삼성의 다음 총수로 내정된 이전무에겐 이미지 타격이 심각하다. e삼성 등 예전에 이전무가 독자적으로 벌인 여러 사업이 실패하면서 그의 경영능력이 의심스러워진 마당에, “이전무는 예의바르고 성실하다”고 삼성에서 퍼트린 소문도 ‘뻥’이 되어버린 셈이다.  공적인 경영능력에도 사적인 가정생활에도 문제가 있다면 과연 한국 최대그룹을 이끌고 갈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건희 삼성총수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동갑내기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 고민에 못지않으리라. 하지만 북한의 세습독재체제가 지속 불가능하듯이 세습독재경영은 그룹을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재벌총수의 자식은 절대로 최고경영자가 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경영능력이 있을 경우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경영능력의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므로, 사실상 국민의 재산인 거대그룹의 경영을 자식이라 해서 무조건 이어받아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천만 달러만 주고 회사엔 관여하지 않게 한 빌 게이츠 같은 행동을 지금 와서 이건희총수에게 기대하진 않는다. 이미 그룹지배권 대부분을 넘겼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무의 행동방식에 다소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 않나 싶다. 본디 삼성이 한국 제1로 발전한 이유는 황제경영체제이긴 해도 다른 재벌보다 총수의 경영간섭이 상대적으로 덜 무분별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삼성’이란 게 바로 그거다. 이런 장점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

 

  이전무가 그룹을 지배는 하되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으면 된다. 본인은 제왕학을 공부했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엉터리이기 십상이다. 삼성고문으로 일했던 일본인은 그룹행사에서 계열사 사장들이 이전무 앞에서 비굴하게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속에서 어떻게 치열한 기업경영을 배울 수 있겠는가. 계열사들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그를 통괄하는 실질적 지주회사인 에버랜드 인사에 이전무가 약간 관여하는 정도면 좋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이전무의 그룹지배권은 불법적으로 획득한 것이다. 그런 원죄에서 벗어나려면 이전무가 거듭나야 한다. 그러려면 할 일이 많지만 우선 옛날식의 그룹경영이나 가정생활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선진국의 유서 깊은 그룹에서 창업주 후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둘러보길 권하고 싶다. 그래서 이전무는 자신도 행복하고 그룹도 선진화하는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탐욕 속에서 모두를 힘들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