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개혁좌파와 개혁우파의 합작을 <한겨레 신문 2009. 3. 26>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27

 

 

개혁좌파와 개혁우파의 합작을

 

김 기 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나라가 어렵다.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민주주의가 후퇴했으며, 남북한 관계도 험악해지고 있다. 대통령 한번 잘못 뽑으니 만사가 엉망인 셈이다. 국민 다수가 선택한 길이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역사란 게 잘 닦인 고속도로를 질주하지 않는 줄은 알지만 자칫 시궁창에 처박히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수구정권의 실체를 대중이 깨닫는 기회가 주어진 걸로 자위하기엔 시대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도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지금 이대로라면 5년이 아니라 그 이상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며 조만간 역사를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놔야 한다. 이러려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개혁진보세력이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고 지리멸렬해진 자신을 추스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수구세력의 손아귀에서 나라를 구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비전이란 뭘까. 그것은 우리의 시대적 과제 곧 개혁좌파와 개혁우파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분단의 상처가 깊은 한국사회에선 ‘좌파=괴물빨갱이’라는 왜곡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좌파가 민주주의, 분배, 평등, 사회연대를 강조하는 반면 우파는 시장경쟁, 성장, 자유,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좌파와 우파는 근대사회의 두 기둥을 하나씩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좌파든 우파든 개혁파라면 극단적이지 않으면서 자기가치 실현을 위해 분투한다.

 

  우리 사회엔 박연차 리스트에서 보듯이 정경유착이 온존되어 있고, 장자연 리스트에서 보듯이 시장에서의 대등한 인격관계가 미확립 상태다. 또한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근로자(및 비정규직) 사이엔 철벽이 가로막혀 시장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를 바로잡는 건 공정한 시장을 추구하는 개혁우파의 과제다. 다른 한편 이명박식 독재에 저항하며, 사회안전망 곧 복지를 확충하고, 악화된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개혁좌파의 몫이다.

 

  개혁우파의 과제와 개혁좌파의 과제는 상호배제적이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다. 정경유착을 타파하고 시장에서의 대등한 인격관계를 수립하려면 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한다. 근로자 사이의 부당한 차별을 해소하려면 노동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이 발전해야 한다. 또한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에서 보듯이 복지가 충실해야 노동의 유연화가 쉬워진다. 이처럼 과거 개발독재체제로부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고도화한 선진사회로 나아가려면 개혁우파와 개혁좌파의 합작이 절실한 것이다.

 

  이는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항일투쟁을 위해 합작한 경우와 마찬가지다. 다만 일제를 몰아낸 후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결사투쟁한 것과 달리 개혁좌파와 개혁우파는 오늘날 선진국에서처럼 선의의 경쟁체제를 유지한다. 극우나 극좌가 아닌 그들은 상대편의 존재를 인정하며 오직 무게중심만 다르기 때문이다.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의 잡탕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인권을 무시하는 극우파나 시대착오적 북한체제를 숭배한다든가 시장경쟁을 무조건 배척하는 극좌파가 설칠수록 선진화는 멀어지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 정치구도는 어떤가. 여권엔 극우파에 가까운 쪽이 지배적이고 일부 개혁우파는 여기에 눌려 맥을 못 춘다. 민주당은 개혁우파와 개혁좌파가 뒤섞였으나 기백이 없고 인물난도 겹쳐 지지부진하다. 개혁좌파와 일부 극좌파로 구성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무능한데다 극좌 이미지가 씌워져 전망이 어둡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개혁좌파와 개혁우파가 힘을 합치면서 국민의 지지를 회복해 가야 한다. 다가오는 각종 선거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