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법학과 인권연극을 보고 (방송대 학보 2009. 10. 19)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31

 

법학과 인권연극을 보고

 

김기원 (경제학과 교수)

 

 

  지난 9월 29일 본교 법학과 학생들의 인권 연극 “진실을 외쳐라”를 관람했다. 대학로라는 연극동네에서 생활한 지 오래 됐으나 서울 사람이 남산타워 안 가보듯 연극 관람은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연극 관람석에 앉는 게 좀 어색하기도 했고, 또 아마추어인 학생들이 연기를 잘 못하면 보는 나 자신이 괜히 민망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건 기우였다. 적어도 대학생 때 본 프로들의 연극보다 더 빨리 몰입이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연기한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한 덕분이리라. 그리고 각국 인권운동가들의 삶이라는 주제 자체가 주는 무게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의 수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가자들의 열성이었다. 듣기로는 한 달 가량 하루 2시간씩 연습했다고 한다. 일반대학생들도 쉽지 않을 텐데 대부분 직장인인 우리 학생들에게 이런 게 가능하리라곤 믿기 어려웠다. 게다가 곽노현 법학과 학과장 자신도 장준하 역을 맡아 같이 뒹굴며 연습했으니 그가 새삼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보통 바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내다니.

 

  이런 심정은 본인만이 아닌 듯 법학과 행사에 다른 과 교수들도 여럿 참석했다. 물론 중어중문학과의 중국예술공연, 경제학과의 학술심포지엄 등 각 학과 나름으로 전국 행사를 매년 개최한다. 그런데 이번 법학과 연극은 서울지역 학생회만의 힘으로, 또 첫 공연 때는 법학과 동문회의 지원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했다.

 

  본교는 원격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서 일반대학과는 달리 학생들 행사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선 학생과 교수가 호흡을 같이 하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다만 행사를 위한 행사보다는 인권법 강의와도 관련이 깊은 이번 법학과 인권연극처럼 수업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실제 연기자로 참가한 법학과 학생들은 인권문제에 대해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관람한 교수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논평을 주고받은 뒤풀이 자리도 재미있었다. 참가자들의 연기에 감탄하기도 하고, 연극이 저개발국을 너무 깔보는 서구 중심주의 시각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고, 해당 인권운동가들의 실제사진 같은 걸 보여준다면 더 좋겠다는 등 제안도 나왔다. 인권 같은 여러 학과에 공통적인 주제에 대해 교수들이 담소를 나누는 게 괜찮지 않은가.

 

  관객 중에는 곽노현교수가 특별히 초청한 국가인권위원회, 경기도 교육청 관련 인사들이 있었다. 앞으로 초중등 학교에서도 인권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도인 것 같았다. 출연자 숫자와 시간을 줄이는 ‘보급판’을 제작해 볼 만한 일이고 그걸 우리 학교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사실 인권운동가가 필요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모두가 인권의식을 갖고 있고, 또 억울하게 인권을 탄압받는 일이 없어지면 특별히 인권운동가가 설 자리가 없다. 우리사회는 전태일이 분신하던 시대는 넘어섰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김제동이 쫓rusk는 상황은 우리에게도 인권문제가 여전히 현재형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북녘의 이웃동포들에겐 생존권이라는 기본인권의 보장도 불안하다. 전 세계의 인권문제를 다룬 법학과 연극이 오늘날 한반도의 인권상황도 다시 음미해 볼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음 공연엔 다른 분들도 한번 참관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