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 국민적 기업의 싹을 살려야 합니다
I.들어가는 말
II.기아사태의 원인
III.기아사태의 전개
IV.기아와 국민적 기업의 맹아
V.정부의 역할
VI.근로자와 노조의 과제
VII.맺음말
1. 들어가는 말
기아그룹의 경영위기와 관련된 뉴스는 7월 부도유예 조치 이후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기아 해법도 많은 사람이 내놓았습니다. 자체 종업원이 5만 5,000이고 협력업체의 근로자까지 합치면 60만이 넘는 거대그룹인 탓에 기아의 움직임이 국민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삼성의 기아인수 공작을 비롯한 재벌간의 각축전이라든가 기아의 소유.경영상의 특수성에 따른 문제 등으로 여타 그룹의 경우와는 달리 국민들은 기아사태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아사태의 해결책은 크게 시장 만능론과 정부지원 필요론으로 나누어집니다. 전자는 얼룩말이 사자에 잡아 먹히더라도 그건 얼룩말의 잘못이므로 정글의 법칙에 내맡기는게 자본주의의 논리에 들어맞는다는 주장입니다. 후자는 기아의 국민경제적 중요성 또는 기아의 특수성에 주목하여 정부가 개입하여 기아를 회생시키자는 입장입니다. 저는 후자의 견해를 취하고 있고 특히 기아의 특수성에 유의하는 편입니다. '국민적 기업 맹아론'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흔히들 기아를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게 과연 정확한 접근인지 의문입니다. 옛날 조선방직이나 충주비료를 처리할 때처럼 생산설비를 해체하여 다른 용도로 팔아치우고 노동자도 다 쫓아낼 것을 고려에 넣는다면 물론 그런 식으로 논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기아자동차의 할인 현금판매가 성황리에 끝난 것을 보면 최악의 경우라도 공장이 해체되리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는 것같습니다. 자동차판매엔 애프터 서비스가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기아특수강 등 일부 계열사 이외에는 기아 공장들은 대부분 정상가동되고 있습니다. 다른 자동차공장들에선 추석연휴가 5일 이상인 데 반해 기아자동차는 3일만 쉴 정도입니다.
정부나 은행 역시 기아 공장문을 닫게 하려는 계획은 없는 듯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차가 기아의 프라이드만 같다면 자동차 정비소는 굶어 죽기 십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아의 기술력은 인정받고 있읍니다. 또 <표 1>의 자동차 5사 경영실적을 보면 기아는 그런 대로 굴러가는 회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아를 지원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는 아닙니다.
< 표 1 > 자동차 업체별 경영실적
자료 : 한국자동차공업협회, {1997 한국의 자동차산업}, p. 16.
참고 : 대수의 단위는 대임.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생사여부가 아니라 사는 방식입니다. 즉 누구를 희생시키며, 소유.경영 구조를 어떻게 개편할까입니다. 정부.채권은행과 기아측의 의견이 달라지는 부분도 바로 여기입니다. 나아가 이 문제는 경영위기에 봉착한 기업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기업의 바람직한 구조란 어떤 것이지에 연결됩니다. 이하에서는 먼저 기아 사태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고 기아 사태와 관련된 쟁점을 검토한 다음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II. 기아사태의 원인
기아가 경영위기를 맞이하게 된 원인은 첫째 과다한 차입에 있습니다. 96년 말 기아의 자기자본 비율은 16%로 미국.일본.대만 등은 물론 우리 30대 그룹 평균인 18%보다도 낮습니다. 그러나 한보(13%), 삼미(3%), 진로(3%)와 비교하면 기아그룹의 자기자본 비율은 양호하며 30대 그룹 중 16위입니다. 따라서 기아의 과다한 차입은 경영위기의 구조적 원인임에는 틀림없으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둘째로 보다 중요한 직접적 요인으로서 기아특수강에 대한 무리한 투자를 들 수 있습니다. 1조원 이상을 투자하여 생산시설을 19만톤에서 72만톤으로 늘렸으나 삼미특수강 등의 동반 투자로 과잉생산 상태가 초래되었습니다. 수요예측과 업체간 조정이 잘못된 셈입니다. 수요가 앞으로 확대될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의 금융문제를 안이하게 생각한 듯합니다. 그리고 무리한 투자는 자동차의 경우에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 물론 이는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이 야기한 면이 크므로 삼성과 정부의 책임도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기아 자신의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겠지요.
셋째로 삼성의 기아인수 공작이 야기한 효과입니다. 삼성은 93년 기아를 인수하려 한 이후 계속해서 기아를 흔들어 왔고 특히 금년에는 삼성보고서 파문이후 그 공작이 더 심해진 듯합니다. 이는 기아에 대한 음해로 경영을 혼란시켰으며 금융면에서는 삼성의 자매 그룹회사인 한솔종금의 자금회수 등으로 기아의 자금압박을 가속화시켜 결국 기아를 부도로 내몰았다고 하는 지적이 많습니다.
넷째로 이상과 같은 사태를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기아 경영구조의 문제입니다. 후술하겠지만 전문경영인 체제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데 실패한 셈입니다. 80년대 초반 이른바 봉고신화를 통해 기아를 재건한 후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걸쳐 그룹 규모가 급성장하면서 경영체제가 허술해진 것입니다.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의사결정 구조의 혼란이라든가, 소문으로 흘러나오는 임원들의 비리도 이에 따른 것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는 다른 대부분의 우리 나라 기업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반 제도와 관행이 불합리한 우리 나라의 경우엔 애시당초 전문경영인체제가 성장 발전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이런 유의 문제까지 겹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III. 기아사태의 전개
7월 15일 기아에 부도유예 협정이 적용된 이후 기아사태는 국민경제에 커다란 주름을 짓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의 혼란이 가중되었으며 기아와 그 협력업체 종사자 60만 및 그 가족의 삶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기아와 관련된 지역경제도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정부는 겉으로는 채권은행단과 해당 기업간에 해결할 문제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처리 방향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 방향이 기아를 제3자 즉 삼성에게 인수시키고자 하는 것임은 조금만 주의깊게 관찰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부도유예기업과는 달리 김선홍회장의 사표에 유달리 집착한다든가 수출어음조차 할인해 주지 않는 비정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태도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삼성 비서실의 기아인수 보고서에서도 드러난 바이지요. 삼성측이나 정부측이나 모두 삼성인수설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격이 아닐까요.
하지만 모든 게 정부나 삼성측의 각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같지는 않습니다. 시민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여론이 기아살리기에 동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현대 및 대우도 삼성의 인수 저지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정치권도 정당별로 차별성은 있지만 삼성의 무지막지한 기아인수에 동조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리하여 정부와 은행측은 기아를 법정관리나 은행관리로 바꾼 뒤 차기 정권 하에서 삼성에 넘기는 방안을 모색중인 것같습니다.
또 기아측에 자금지원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목조르기를 강화하지만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기아 협력업체에 대해선 다소 숨통을 터주는 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정부는 최근에 기아자동차는 정상가동시키고 다른 계열사는 그룹에서 분리 매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기아를 살려주는 듯한 데 사실은 기아의 자력 재건안과는 크게 다릅니다. 왜냐하면 단지 공장 가동을 허락할 뿐이고 사실은 기아의 소유구조를 바꾸어 제3자에게 인수시킬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회사측은 자구노력으로서 계열사 축소, 자산매각, 인력감축, 임금의 절반 이상 반납을 시행해 가고 있습니다. 이 중 자산매각은 7-8월 중 목표 19건(1,829억) 가운데 10건(1,006억)의 매각계약을 맺고 대금은 177억을 수령하였다고 합니다. 인력감축은 8,835명의 목표로 하는 데 8월 29일까지 4,322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임원진도 대폭 교체 축소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산이 계열분리되고 기아특수강이 공동경영에 들어가는 등 계열사 축소도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조측은 노조측대로 1,000억원 모금운동(1조합원 1,000만원 대출, 차량할부금의 일시금 전환 등), 적립된 노조 복지기금의 회사 제공, 상여금.휴가비.월차수당 반납 등을 시행하였습니다. 1,000만원 빌린다고 부부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휴일특근도 마다하지 않는 등 생산성향상에 힘을 쏟아 일부 근로자로부터는 노동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 아니냐는 불만도 있는 형편입니다.
또 노조는 정부.은행의 기아 죽이기 및 3자 인수 추진에 항의하는 운동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기아의 노조뿐만 아니라 자동차 연맹과 민주노총 집행부도 적극 참여하고 있고 나아가 협력업체 노조까지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협력업체 노조 중에는 민주노총 소속뿐만 아니라 한국노총 소속도 있는데 이들 모두가 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야 어찌되든 내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일치단결하여 일터를 지키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셈입니다. 그 노력이 지나친 것으로 보이는지 노동자가 본분을 망각하고 회사에 말려들었다는 비판까지 일각에서 제기될 정도입니다.
IV. 기아와 국민적 기업의 싹
기아가 경영위기에 처하자 시민단체를 비롯하여 일반시민, 문화계인사들까지 발벗고 나서서 기아를 지원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즘은 이러한 지원열기가 다소 사글어든 감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 기업사에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지원의 밑바닥에는 기아는 여타 재벌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뭔가 다른 점은 소유가 분산되어 있고 전문화된 그룹이라는 점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재벌의 독재체제와 문어발 경영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기아는 하나의 희망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모 여당 국회의원은 "기아 같은 회사가 죽으면 한국 사회에 희망이 없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슬로건이 시내 플래카드에 보이는 "국민기업 기아를 살리자"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선 기아의 소유구조가 분산되어 있다고 하지만 외세라는 최대 주주가 엄연히 존재하며 또 소유분산 여부는 노동자나 국민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기아의 소유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아자동차가 기아그룹의 모기업이고 기아자동차의 주식은 포드가 9.4%, 마쯔다가 7.5%, 이토츄가 2.0%, 김상문 일가가 1.1%, 기아차 임직원이 14.2%, 경영발전위원회 기금이 4.3%, 협력사 및 관계사가 8.7%, 기산 등 협력사가 8.7%으로 이 기아 우호세력의 합계가 47.2%입니다. 반면 삼성, 현대 산하의 기관투자가 및 소액주주가 나머지를 갖고 있습니다.
금년 들어 삼성, 현대 등의 주직매집 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므로 많은 변동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임직원 및 경발위 기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외국기업의 지분은 의결권을 제약받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목적으로 한 것이므로, 이들이 기아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이러한 소유구조로 볼 때 기아는 특정인이 소유.경영을 지배하는 회사가 아니고 그 점에서 재벌과 분명히 다릅니다.
다음으로 소유분산이 의미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부(富)와 지배력을 총수 1인이 독점하는 것과 다수가 공유하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라면 소유분산은 당연히 거기에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구와 일본의 역사를 보더라도 기업주식은 계속해서 분산되어 왔고, 이에 동반하여 근로자를 비롯한 국민의 생활도 향상되었습니다.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이든 자본주의는 똑같이 다 악이다"라는 식으로 사고하지 않는 한 소유분산의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편 기아의 전문경영인체제에 대해 사실상 총수의 1인 독주체제이므로 무의미하며 기아도 여타 재벌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물론 기아의 경영이 민주화되고 투명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총수의 1인 독재체제라는 표현은 약간 지나칩니다. Owner(소유주) 체제가 아니어서 기아의 총수는 여타 재벌 총수만큼의 독재 권력은 행사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경영이 혼란스러웠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아에 대해선 재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잘못임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신문에 흔히 30대 그룹이 함께 다루어지고 그것을 뭉뚱그려 재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빚어진 것인데, 기아측으로 볼 땐 억울하게 도매금으로 넘어간 셈입니다. 재벌의 개념은 일본이나 한국 학계에서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어쨌든 개인 또는 가족의 소유.통제라는 요소는 반드시 포함됩니다.
따라서 기아는 재벌이 아니라 그냥 대규모 집단일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재벌이 아닌 기아의 존립 그 자체가 재벌구조 개혁의 압력근거로 작용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재벌들은 기아를 백안시하였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기아의 총수는 전경련 내에서도 성골, 진골 하면서 차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벌측(및 그 대변인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이번 사태를 재벌구조 정당화의 증거로 이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기아의 경영진을 지나치게 동정한 느낌이 들긴 합니다. 기아의 경영진 역시 우리 사회의 상층부이고 더구나 이번 사태의 중요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얼핏 사소하게 보이지만 재벌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은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편 국민기업이라는 개념은 교과서에 없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민중이라는 개념이 나왔을 때 그것 역시 교과서에 없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개념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다만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국민기업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것은 사실입니다. 재벌 구조에 질린 국민들이 바람직한 기업상으로 막연하게 표현한 것이 국민기업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국민적 기업(저는 국민기업이라고 하면 국민의 소유라는 점이 강조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국민적 기업이라는 말을 더 선호합니다만 이는 어째도 좋습니다)의 개념을 체계화해 봅시다.
제 생각엔 바람직한 기업이란 소유와 경영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관련 당사자(주주, 근로자, 금융기관, 거래기업, 소비자, 지역주민)에게 골고루 이익을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특정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 관련 당사자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기업입니다. 이를 국민적 기업이라고 정의한다면 물론 기아는 아직 국민적 기업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아는 타 기업에 비해 국민적 기업의 성격이 훨씬 강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럴 때 그 국민적 기업의 '싹'이 보잘 것 없다고 하여 짓밟히는 것을 방관해야 할 지 아니면 비료를 주고 북돋아서 키워야 할 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위에서 정의한 국민적 기업으로의 길은 사실 험난하고 과연 달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화라는 것을 거시적 차원의 민주화와 미시적 차원의 민주화의 결합으로 볼 때, 국민적 기업의 육성은 바로 미시적 민주화의 핵심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물론 모든 기업을 국민적 기업으로 만들 수 있으려면 엄청난 세월과 노력이 소요되겠습니다만, 한걸음 한걸음씩 보다 더 많은 기업을 국민적 기업에 가깝게 옮겨가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감이 잘 오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일본의 戰前 재벌과 戰後 기업집단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국민적 기업에 가까이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본주의 하에서도 더 합리화되고 더 민주적으로 된 셈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과거에 비해 기업의 소유가 분산되고 총수독재가 완화된 것은 그러한 발전의 한 양상입니다. 그리고 현재 기아는 그러한 발전의 선두에 서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역사발전은 일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기아에 존재하는 국민적 기업의 싹이 꺽일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선 이 미미한 싹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놓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국민적 기업의 문제와 관련된 전문경영인체제 문제를 살펴 봅시다. 우선 분명한 것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만사형통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범양전용선에서 소유주를 몰아낸 후의 전문경영인체제가 비극으로 끝났음은 기억에 새롭습니다. 게다가 공기업도 전문경영인체제라고 하는 데 그 비효율성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엄격히 따지자면 이들은 사이비 전문경영인체제입니다. 범양전용선의 경우는 고용 사장이 능력으로 경영권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소유주의 약점을 잡아 그를 쫓아냈으며, 공기업의 사장은 낙하산 인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아는 이와는 물론 크게 다릅니다. 80년대 초 경영위기를 맞아 봉고신화를 창출한 인물이 전문경영인으로 등장하였으며 더구나 종업원이 대주주이기 때문입니다(이른바 '종업원지주제가 가미된 전문경영인체제'). 전문경영인체제의 장점은 유능한 인물이 경영을 지휘할 수 있고 경영진과 종업원의 일체감이 강화될 수 있으며, 나아가 종업원의 주인의식을 통해 근로의욕이 진작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전문경영인체제엔 단점도 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거나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오르는 것, 즉 무책임.무질서 경영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우리 나라처럼 기업하려면 정치권 뇌물 등 온갖 준조세를 바쳐야 하는 경우엔 대응력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또 그에 잘 대응하려고 비자금을 조성하다 보면 비리가 싹트고 내부질서가 흐트러지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합니다. 기아의 경우 초반기에는 전자의 장점이 크게 작용하다가 근자엔 단점이 더 부각된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문경영인체제가 Owner체제보다 원리적으로 비효율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나라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기업들은 대체로 Owner체제로부터 전문경영인체제로 이행해 가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예를 보더라도 일본의 本田 역시 本田宗一郞이 창립했지만 지금은 전문경영인체제로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선진국에선 전문경영인체제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뇌물을 바치지 않아도 되며 경영이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금융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토양은 전문경영인체제가 발전하기엔 상당히 척박합니다. 그러한 척박한 토양에서나마 안간 힘을 다해 기아라는 국민적 기업의 싹이 터온 셈입니다. 이 때 토양이 척박하므로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아예 밭을 갈아엎을 궁리를 할 것인가, 아니면 비료를 주고 싹을 키우고 토질을 아울러 개량하면서 그 씨앗이 널리 퍼지도록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안되면 밭을 갈아 엎을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전문경영인체제에 관한 이야기가 꽤 길어졌습니다만 어쨌든 현재의 기아총수는 근년에 들어 전문경영인체제의 장점은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단점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여기다 과다한 차입경영과 무리한 투자라는 경영상의 과오를 범하였으므로 최고경영진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만 무작정 물러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특히 3자인수 저지라는 과제가 걸려 있으므로 일정 기간 사태를 수습한 후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벌의 경우 총수가 판단력이 흐려지더라고 계속해서 총수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고 또 무능한 2세라도 단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유.경영권을 이양받습니다. 이 결과 우리 나라의 많은 재벌들이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정회장의 대통령 출마로 빚어진 현대의 경영애로 사태라든가 최근 2세 총수하의 재벌들이 줄초상나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줍니다. 요컨대 재벌체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최고경영진의 안정적 재생산이 원천적으로 곤란한 체제입니다. 이에 반해 적절한 시기에 유능한 후계자에게 리더 자리가 양도되는 것이 전문경영인체제의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현 최고경영진은 후계체제 육성에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다고 보여지는데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전문경영인체제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울러 전문경영인체제의 단점인 무책임.무질서 경영의 위험성을 방지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바로 국민적 기업으로의 길이며 책임과 질서에 바탕을 둔 경영민주화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게 쉽지는 않지만 우선 선진국처럼 적절한 이사회제도 및 감사제도 등을 발전시켜 나가면 책임경영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전문경영인체제=무책임경영은 아니며 전문경영인체제로의 발전이 세계적 대세입니다.
덧붙여서 기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삼성재벌을 검토해 봅시다. 삼성의 자동차 진출은 경제적 합리성에 기초한 판단의 결과라고 보기 힘듭니다. 아래 <표 2>에 보면 삼성자동차 투자의 비효율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삼성자동차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선 기술도입료의 부담이 대단히 큽니다. 초기 기술료가 약 500억원이고 매출액에 따른 기술료도 연간 200억원 이상(8만대x1.5%)입니다. 포드와 기술제휴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자체적으로 모델을 개발할 수준에까지 도달한 기아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또 삼성과 닛산의 협력관계도 불투명하여 98년 3월 생산차종 외 후속차종에 대한 협상도 난항이라고 합니다. 부산 공장의 지반침하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투자를 삼성이 했는지 참으로 기이한 노릇입니다.
< 표 2 > 자동차 3사의 투자 비교
자료 : {조선일보}, 1996. 12. 26.
이러한 비효율적인 투자는 무엇보다도 재벌체제의 문제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삼성총수의 자동차 취미가 작용하였음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벌2세 콤플렉스입니다. "창업자에 비하면 2세는 실적도 없고 카리스마도 떨어진다. 2세는 구심력을 유지하기 위하여도 창업자인 부친이 할 수 없었던 신규사업을 일으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하는 초조감에 시달린다"는 日本經濟新聞의 지적(97년 8월 23일자 '海外記者리포트-서울')이 삼성의 경우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는 느낌입니다. 부모 잘 만나 총수됐다는 소리 듣기 싫을 것이고, 따라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무리수를 두기 십상입니다.
총수가 하겠다고 결정하면 아무리 밑의 사람들이 합리적인 인물이라 하더라도 총수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억지로라도 개발할 수밖에 없는 재벌체제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셈입니다. 더구나 이는 삼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한국 자동차산업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기아의 위기 역시 그 한 표현입니다. 그런 삼성이 이제 기아를 인수하겠다고 공작하는 것은 아무리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기업의 기본윤리를 짓밟는 작태입니다. 더구나 삼성의 기아 인수는 국민적 기업의 싹을 도려내는 일이고 나아가 혼란을 가중시킬 공산이 큽니다. 제가 생각컨대 삼성은 이제라도 자동차에서 손을 떼고 삼성자동차에 들어갈 돈이 기아쪽으로 가도록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어렵겠지요. 굳이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버티면 자기네들 말대로 해외에서 공장을 돌리게 하고(이는 여론무마를 위한 술책이 아닌가 의심됩니다만), 국내에선 기술력도 구비했고 국민적 기업의 싹도 갖춘 기아를 발전시키는게 경제성과 민주성의 양 측면에서 다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V. 정부의 역할
먼저 기아사태에 관한 정부책임자인 강 부총리의 자격문제부터 짚어 보겠습니다. 과연 강 부총리가 기아사태를 조정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는 삼성자동차의 부산 유치를 위해 열심히 로비를 한 장본인입니다. 기아사태와 관련하여 정부는 "시장원리대로 기아문제를 해결하겠다"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풀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는데, 사실 바로 그가 삼성자동차의 진입이라는 경제문제를 부산시민을 이용한 정치논리에 의해 풀었던 것입니다.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 과정에서 그가 삼성으로부터 톡톡한 대가를 받았을 것임은 삼척동자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가 삼성자동차와 관련된 기아사태를 처리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재판에 비유하자면 그는 재판부로부터 배제되어야 마땅한 기피대상입니다. 행정부의 경우엔 이런 절차가 없으므로 그는 불신임당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경제정책에서도 별 수완을 보이는 것같지 않고, 또 일반 근로자와는 달리 벌어놓은 것도 적지 않을테니까 그만 정리해고시키면 어떨까요.
그런데 정부엔 강 부총리만이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삼성이 온갖 로비에 의해 자동차 진입을 관철시킨 후, 통산산업부의 직원 8명이 삼성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너무나 노골적인 재벌-정부 유착이 아닙니까. 더구나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삼성으로 와서 대정부 로비를 맡고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또 현직에 있는 정부관리들인들 어디 믿을 수 있겠습니까. 로비의 귀재 삼성에게 이미 상당 부분 포섭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니까 이를 바탕으로 삼성은 기아를 삼키려고 "정부와의 공고한 공조체제를 구축해 나갈 계획"(삼성비서실의 기아인수 관련 보고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면 이제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관한 원칙의 문제를 논의해 보겠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개별 기업의 잘못에 국민이 부담을 질 수 없으므로 정부가 지원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사실 이때까지 정부의 여러 조치(조세감면 규제법, 한국은행 특별융자 등)는 국민들의 부담 하에 일부에게 혜택을 준 성격이 강하므로 이런 우려에 이해가 가지 않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부의 지원을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우리의 경우 "도대체 시장은 자유롭지 못한데 어디서 시장원리를 작동시킨다는 말인가"라는 {조선일보}의 지적(97년 9월 5일자 변용식 칼럼)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이 아니라 거대 기업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완전경쟁시장의 경우엔 시장에 내맡기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정부의 개입은 필수불가결입니다. 그 때문에 자유시장을 지상명제로 한다는 미국에서도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던 것입니다.
물론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개입과 규제를 철폐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자삼간 태우는 격입니다. 문제는 올바른 개입과 규제입니다. 지금 현 정부는 기아사태에 개입하지 않는 척 하면서 사실은 기아를 제3자(특히 삼성)에게 인수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런 겉다르고 속다른 개입을 그만두고 제대로 된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풀지 말자는 주장도 따지고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입니다. 원래 정치의 주요 기능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인데 어찌 경제와 정치를 분리시킬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과제는 더러운 정치구조(및 정치논리)가 경제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그 핵심은 부패정권과 천민재벌의 불륜관계를 단절시키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재벌을 죽이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재벌을 국민적 기업으로 거듭나게 해서 올바른 정부-기업 관계가 형성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개혁으로 나아가려면 바로 기아에 내재한 국민적 기업의 싹을 살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기아의 경영위기에는 정부의 산업정책적 과오도 작용하였습니다. 각계각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삼성의 자동차 진입을 허가함으로써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입니다. 또 어차피 기아의 공장들을 고철로 팔아치울 형편이 아니라면 기아가 정상가동하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가령 정부가 기아를 지원않고 파산시킨 다음 제3자에게 인수시킨다 하더라도 그 제3자에게 역시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제3자에게 지원하느니보다 기아에게 지원을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기아 지원거부와 제3자 인수에 따른 혼란의 부담까지 가중되어 현재의 기아 지원보다도 더 큰 국민부담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경영위기에 빠진 기업을 무조건 지원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장은 위기에 처했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제성이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철저한 자구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경영진에 대한 문책도 필수적입니다. 이제까지 우리 정부는 도산 위기에 빠진 대기업에 대해 총수의 책임을 묻지도 않고 뇌물받고 지원한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특혜시비가 일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방만한 외형확대 경영을 부채질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기아의 경우에도 최고경영진의 책임은 물어야 합니다. 다만 기아는 총수 1인의 소유.경영 체제가 아니므로 최고경영진이 사태를 수습할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 차이를 망각하고 무조건 사표를 받으려는 것은 3자인수 절차를 밟으려는 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법정관리나 은행관리로 몰고 가려는 것도 국민적 기업의 싹을 죽이고 결국 삼성과 같은 재벌에 특혜를 제공하려는 수순의 중간단계로 여겨집니다.
정부의 지원과 관련하여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일각에선 기아와 같은 대기업에만 정부가 지원하면 중소기업은 억울해서 어쩌냐고 합니다. 그러나 기아를 지원하는 것은 동시에 17,600여개나 되는 기아의 하청 중소업체에 대한 지원입니다. 그 때문에 기아와 협력업체의 경영진은 물론이고 노조까지도 공동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사고의 방향은 중소기업이 지원받지 못하므로 대기업도 지원받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경우 중소기업도 지원받도록 해야 한다는 식이겠지요. '같이 죽자'보다는 '같이 살자'가 낫지 않겠습니까.
VI. 근로자와 노조의 과제
이번 기아의 경영위기에 근로자나 노조의 책임은 없겠습니까.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정치와 경제가 엉망인 데 대해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아사태에는 최고경영진뿐만이 아니라 전사원 및 노조에게도 응분의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최고경영진과 이들 사이에는 그 책임의 종류가 서로 다르며 책임을 지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기아특수강등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최고경영진에 의해 무리하게 집행되는 것을 견제하지 못했던 것은 기아의 의사결정구조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원과 노조 역시 그러한 왜곡된 구조를 시정하지 못한 책임의 일단을 모면할 수는 없습니다. 또 삼성의 자동차 진출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 역시 없지 않습니다. 역부족이었겠지만 역부족인 것 자체가 이미 문제인 것입니다. 급성장 과정에서 초래된 내부의 관리체제 이완을 해결하지 못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경영인체제의 취약점을 보완해 내지 못한 비판을 공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컨대 일반근로자나 노조는 주인의식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이들은 기아의 주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최고경영진처럼 사퇴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위에서 본 기아 경영구조상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나아가 우리 경제를 바로잡는 데 분골쇄신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기아 주인의 일원으로서 주인답게 행동하고 아울러 주인답게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어 온 제반 장치를 개혁해야 합니다.
이는 우선 근로자와 노조가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입니다. 정부측에서도 작년 초반 신노사관계를 구상할 때 내어 놓은 '참여를 통한 협력'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물론 경영에 참여한다고 해서 아무 일에나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해서는 죽도 밥도 안됩니다. 현재 기아 노조가 획득한 경영참여사항으로는 징계위원회 노사동수 구성, 작업중지권, 하도급 용역시 노조의 사전동의, 배치전환시의 합의 등이 있습니다. 이는 물론 기아만이 유별나게 쟁취한 것은 아니고 다수의 노조에서 확보된 권리입니다. 하지만 기아가 그 선두그룹에 포함되어 있음은 분명하고 이것도 국민적 기업의 싹에 속합니다.
여기서 좀더 나아가 경영참여를 실현한다고 할 때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가 문제입니다. 기업의 구성원은 경영진, 관리직, 노조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각각의 역할에는 차이가 납니다. 여기서 물론 경영진 특히 재벌 총수와 같은 1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각자의 분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심각한 혼란을 초래합니다. 따라서 근로자나 노조가 경영에 참여한다면 이는 참여함으로써 검설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야에 한정되어야 합니다.
물론 참여범위를 고정화시키지 않고 교육을 통해 구성원의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점차 유연하게 할 필요는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시급하고 가능한 경영참여 분야의 일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업내 비리를 척결하는 데 공동으로 참여하는 일일 듯싶습니다. 몇 일 전 기아자동차는 윤리헌장을 선포하고 신문고제도를 두기로 했는데, 기업의 감사시스템에 노조가 참여하는 것은 절실하고 명분도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는 경영투명성 증대에도 연결됩니다. 경영발전위원회의 운영을 보다 민주화하는 것도 좋겠지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씩 유연하게 국민적 기업의 싹을 키워갔으면 합니다.
아울러 한가지 보태자면 관리직 중심의 조직(지금 같으면 '회사재건 비상대책위원회')도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는 경영진만의 소유물도 아니고 노조만의 소유물도 아닙니다. 화이트 칼라층도 엄연한 회사의 구성원입니다. 경영진, 노조, 관리직 조직 간에는 이해대립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런 가운데 협조를 통해 회사를 살맛나는 일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게 제대로 발전한다면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보다 더 진전된 기업경영시스템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기아 지원의 대가로 노조의 고용삭감 동의와 단체협약 개정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노조의 무력화를 통해 기아를 먹기 좋게 만들어 3자에게 팔아치우려는 속셈이라는 느낌입니다. 이들은 기아의 노조가 강성이라서 오늘의 기아사태가 초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의 오해이거나 과장입니다. 기아사태의 핵심은 반복하지만 기아특수강 투자의 문제입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노조가 강성이라는 기아자동차의 실태를 아래 표들에서 살펴 봅시다.
< 표 3 > 자동차 3사 통상임금 비교 (97년 5월)
자료 : 자동차 연맹
참고 : 근로자들의 실제 수령액은 통상임금에 상여금, 잔업
수당 등을 합하게 됨.
< 표 4 > 자동차 3사 분규 매출손실 비교 (억원)
자료 : 자동차 공업협회, {1997 한국의 자동차산업} 등 참조
주 : 97년 분규는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한 파업때문이었음
이 표들에서 보건대 기아 근로자가 특별히 많은 임금을 받거나 또 기아노조가 유달리 말썽을 많히 일으켰다고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재벌도 아닌데 감히 다른 재벌 자동차회사에 맞먹으려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조가 강성이라는 것은 바로 기아가 국민적 기업의 싹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노조가 강성인 게 문제가 아니라 애사심의 발휘가 미흡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 빚내서 1,000만원씩 모금하는 열정을 평소에 충분히 발휘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임금은 타회사 못지 않게 받더라도 생산성향상과 품질개선에 좀더 노력했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강성 노조의 그 '강성'의 '표현' 방식에서 서툴렀던 점이 없는지 반성해 볼 여지는 있겠지요.
말하자면 강성노조에 걸맞게 애사심 즉 주인의식도 보다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기아의 현 애사심도 다른 회사보다는 낫지만 척박한 토양에서 국민적 기업의 싹을 키우려면 남다른 주인의식이 필요합니다. 다만 기아의 주인의식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제반 제도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경영참가를 더욱 진전시키는 것이나, 종업원 지주제를 형식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정부, 채권은행이 경영참가를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단체협약 개정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국민적 기업의 싹을 도려내는 일이고 나아가 근로자의 주인의식, 애사심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단체협약 내용의 실질적 행사에서는 유연성의 발휘가 요구되지만 협약 자체를 개악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음으로 고용삭감 문제엔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자구계획상의 인원삭감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특별히 더 삭감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일단 의문입니다. 그리고 근로자에게 일자리는 삶의 터전이므로 이는 가급적 지켜내야 합니다. 따라서 인원이 과잉이라면 노동시간을 단축하든지 임금을 자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용에는 최대한 배려해야 마땅합니다. 석유파동시 일본에서는 임금 자숙과 고용안정을 맞바꾸었읍니다. 기아의 경우도 고용안정을 위해 임금자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기아에선 근로자도 단순한 고용자가 아니라 주인의 일원이므로 임금을 자제하는 대신 앞에서 언급한 기업경영에의 참여폭을 확대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고용삭감을 받아들여야 할 때에는 그 방식이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회사 마음에 안드는 사람, 또는 노조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무조건 짜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규칙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비리에 연루된 사람을 삭감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해고당한 사람에게는 새 일자리 알선에 힘껏 노력해야 합니다. 아울러 비리에 연루된 경우가 아니라면 차후 고용확대시 우선 채용한다든가 하는 방안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다소 엉뚱한 이야기 하나 할까 합니다. 저는 적어도 우리 나라 대기업의 경우 근로자와 노조가 임금인상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면 그것은 좀 곤란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임금인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집착한다면 이는 근로자와 노조도 자본과 마찬가지로 '돈벌이에 혈안이 되는 황금만능주의'의 포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자본이 정해준 같은 틀 속에서 놀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별노조체제 하에서 결국 노조가 자본의 힘 앞에 무력화될 가능성이 농후해집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의 노조가 건강성과 힘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으로 노조가 단지 돈 문제만이 아니라 해고자 복직과 같은 근로자 연대의 문제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조의 본연의 과제는 '삶과 노동의 질 향상'입니다. 이를 위해선 물론 물질적 기초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안전을 비롯한 작업장 환경이나 회사내 종업원 간의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시설마련 및 프로그램 개발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본측이 똑같이 이런 데 신경을 쓴다 해도 그것은 생산성 향상에 일차적으로 초점을 맞춥니다.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난 노조와는 목표가 다른 셈입니다.
그리고 노조가 이런 데 관심을 쏟으면 자연히 회사내 정규직과 용역직의 차별이 축소됩니다. 경영진으로 볼 때도 비용 적게 들고 회사 분위기 좋아지니까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지역으로도 확대 가능합니다. 노조가 지역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환경운동 하면 쓰레기 줍기 따위의 1회성 캠페인 정도로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환경에는 자연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이 모두 포함됩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역을 안락하고 즐겁게 만드는 지속적인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중소업체 근로자와의 연대감도 깊어지고 생활 격차도 완화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운동에는 물론 경영진도 배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놀고 있네'라고 비웃음을 받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근로자와 노조도 모두 자본주의의 황금만능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노력이 성공할 리 없다고 비판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발짝씩 한발짝씩 전진하지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특히 기아처럼 어차피 임금인상이 한동안 어려운 기업에서부터 우선 이런 시도를 발전시켜 보면 어떻겠습니까.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생각한 일본 대기업 노조가 와해되어 버린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 노조의 장기적 발전 전망도 이런 데서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 바로 노조가 중심이 되어 국민적 기업을 만들어 가는 셈입니다.
끝으로 노조가 취해야 할 태도에 관한 다소 희안한 시각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노동계 일각에선 기아가 망하든 말든 그것은 자본의 문제이므로 근로자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별노조 등을 건설하여 교섭력을 강화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견해입니다. 발등에 떨어진 기아사태를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산업별노조 건설로 대응하자는 것은 너무 한가로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 산업별노조가 건설되었다고 만사형통이 아님은 산별노조가 건설되어 있는 유럽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자본과 노동의 이해는 서로 분리.대립되어 있기도 하지만 서로 의존하는 측면도 있는 법입니다. 이 중 어느 한 측면만을 고집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특히 기아와 같이 근로자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극히 미미하지만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선 자본의 문제가 완전히 강건너 불구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노사협의회(또는 종업원조직)에서나 할 일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노사협의회의 한 축을 노조가 형성하고 있는 마당에 노조와 노사협의회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기아가 삼성에 인수될 경우의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현재 삼성이 노조를 약화시킨 후 (즉, 먹기 좋은 상태로) 기아를 인수할 공작을 꾸미고 있음은 주지된 바입니다. 그런데 기아가 삼성에 인수되면 어떻게 될까요. 임금은 당분간 올라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량해고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삼성에 인수될 즈음엔 정부와 은행 등의 폭압에 의해 노조가 비실비실하고 있기 십상이고 이러한 노조는 곧 삼성에 의해 와해될 것입니다. 그리고 노조가 살아 있더라도 삼성에 인수되면 노조의 경영참여등 활발한 활동은 불가능해질 공산이 큽니다.
기아 근로자들은 현재 형식적이긴 해도 주인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삼성에의 인수는 근로자를 주인의 지위로부터 단순한 품팔이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이럴진데 어찌 기아 근로자들이 회사 일을 남의 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산업별 노조도 건설해야 하고 노조의 단결력도 강화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주인의식을 살려 기업의 재생과 개혁에도 앞장서야 합니다. 국민적 기업의 싹을 살려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하고 효율성과 민주성을 동시에 증진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근로자의 권리와 의무요, 나아가 근로자가 중심이 되어 기업과 국민경제를 개혁하는 길입니다.
염려삼아 한 가지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기아 근로자들이 회사 살리기에 열심이다 보면 노사협조주의에 빠지는게 아닌가 걱정되는 바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석유파동이라는 위기를 맞이하여 노사협조주의의 바람이 불고 노조의 힘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저는 노사협조를 무조건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노사협조'주의'에는 반대합니다. 노사협조'주의'는 노사협조를 절대시하기 때문입니다. '노'의 이해는 일차적으로 '노동과 삶의 질 향상'이며 '사'의 이해는 '경쟁에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한 이윤추구'입니다. 따라서 양자의 이해는 분리.대립되는 측면이 있고 양자간의 긴장관계는 필요합니다. 만약 '노'의 이해가 '사'의 이해에 완전히 편입되어 버리면 노동과 삶이 파괴되기 십상이니까요.
쉽게 개인택시 운전수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양자의 기능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데 '노'의 이해가 지나치면 밥벌이가 곤란하고 '사'의 이해가 지나치면 과로사합니다. 기아와 같은 기업에서 보자면 경영진이 기본적으로 '사'의 기능을 대행하며 노조가 '노'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역할 분담이 꼭 필요합니다. 다만 현재와 같은 위기 국면은 상호의존의 측면이 더 부각되는 정세일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노조가 자신의 독자성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올바른 노선이란 이처럼 '써커스 줄타기'가 아닐까요.
VII. 맺음말 ― 기아재건의 방향
** 우선 기아재건의 기본 원칙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기아재건은 기아에 내재한 국민적 기업의 싹―소유분산과 종업원지주제, 업종전문화, 전문경영인체제, 근로자의 '참여를 통한 협력' 장치―을 살리고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2) 따라서 정부와 은행은 법정관리나 은행관리를 통한 제3자 인수획책 의도를 즉각 중단하고 기아의 자체 재건을 적극 지원하여야 합니다.
3) 기아의 내부 구성원은 이번 위기를 새로운 도약과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최고 경영진은 위기에 책임을 지고 일정 기간 사태를 수습한 후 유능한 새 경영진에게 자리를 양도하여야 합니다. 노조는 강성이면서도 애사심을 발휘하는 노조로 발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 사원들은 주인의식을 강화하여 민주성과 효율성의 동시 증진에 노력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사회 및 감사 조직을 개혁해야 합니다.
4) 기아의 올바른 재건은 국민경제 개혁의 시금석이므로 시민운동 세력, 노동운동 세력 등 각계 각층은 기아가 국민적 기업으로 발전하도록 힘을 합칩시다. (지금 당장 완전한 국민적 기업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 구체적인 기아 정상화 방안
이상과 같은 기본원칙 하에서 우선 당장 필요한 것은 정부, 은행의 지원조치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지원해야 될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다만 기아재건에 정부가 적극적 의지를 가지기만 하면 이에 대해선 정부, 은행과 기아측이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읍니다. 그룹 구조의 재편(분리매각) 문제도 계열사 간의 연관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진행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방안으로는
1)위기 주범인 기아특수강의 공동경영 또는 공기업화
2)부동산 매각 지원
3)금융기관 부채의 출자 전환
4)신주발행 요건의 완화에 의한 자금조달 지원
5)정부 보증하의 채권발행 및 대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한은특융도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특별히 과격한 조치도 아니고 크라이슬러 자동차 위기시에 적용되었던 것도 많습니다. 요컨대 정부, 은행이 수출어음도 할인해 주지 않는 따위의 터무니없는 행태를 그만두고 기아재건에 나선다면 큰 무리없이 시행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법정관리나 은행관리를 단행하고 3자인수를 추진할 경우에도 어차피 정부.은행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거기다 이 때 빚어질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혼란까지 감안하면 재건 지원 부담이 훨씬 적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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