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재벌의 사회적 책임과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발전 방향(1997.5) - 발표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4:37

 

재벌의 사회적 책임과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발전 방향 - 금속연맹 발표문


I. 머리말

 

  먼저 몇 가지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재벌에 관해서도 그렇고 특히 현대그룹에 관해서는 이제 막 조사를 시작한 참이라 본 발표주제를 감당할 형편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짐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무식한 자의 용기로써 제가 발표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뭔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한다거나 단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저 여기 모이신 각계 각층 인사들의 활발한 토론 자리에 구색을 맞추거나 나아가 약간의 토론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 관한 제 자신의 체계적인 정리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할 계획이므로 이 자리에 참석하신 전문 연구자, 일선 활동가들의 좋은 논의가 저의 불완전한 발표를 대신해 주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발표주제는 사실 따로따로 다루어져야 할 두 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을 한꺼번에 다룬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한 감이 듭니다만 주최측의 사정도 있는 것 같아 별로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노사관계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현대그룹과 같은 한국의 재벌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임 중의 하나라는 주최측의 생각이 주제 선정의 밑바탕에 있는 깔려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어쨌든 저로서는 두 부분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고 그래서 재벌문제와 현대그룹 노사관계 문제에 대해 내키는 대로 두서없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 재벌 문제는 핫 이슈로 부각되었고 왠만한 사람이면 다 한두 마디쯤 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많이 건드리는 데 비해서는 그렇게 깊이 있게 연구가 진척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연구가 상당히 축적된 것은 틀림없습니다. 가장 최근의 대표적인 것들로는 {사상}(96년 봄호)에서의 재벌 관련 특집과 96년 산업조직학회 연례대회 논문들이 있고 민주노총에서 지난 4월에 개최한 토론회의 여러 논문들도 있습니다. 이런 연구들에서 한국 재벌의 실태, 문제점, 개혁방향 등에 대해서는 이미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많이 다루어 놓았습니다. 거기에다 제가 현재로서 특별히 가감할 내용은 없으므로 관심이 있으신 분은 그 글들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재벌과 관련하여 좀더 근원적인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해 볼까 합니다.


  다음으로 현대그룹의 노사관계에 관한 것입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최근 매우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94년 使側에서 노동연구원 등에 의뢰한 조사인 {현대그룹 노사관계 합리화방안 연구}, 94년 민교협이 노조측의 요청을 받아 수행한 {현대그룹 노사관계 진단 연구보고서}, 95년 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현대중공업노조와 공동으로 진행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정책수립을 위한 연구보고서}, 95년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현대중공업 使側의 용역으로 수행한 {현대중공업에서의 협조적 노사관계의 정착 방안}이 그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使側과 노조측이 연구 경쟁을 벌인 셈입니다.


  발주처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조점이나 입장의 차이가 나타나고는 있습니다만 이 연구들은 적어도 실증적인 면에서는 매우 밀도높은 수준작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민교협과 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보고서는 분량도 두툼해서 조사범위가 넓고 참고할 사항도 많습니다. 다만 이들은 현대중공업(현대정공, 현대자동차)을 중심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것들만으로 현대그룹의 노사관계를 포괄적으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 이 연구들을 정리하고 다른 한편으로 여타 계열사의 노사관계까지 가급적 종합하여 현대그룹의 노사관계를 살펴볼까 합니다. 그러나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제 조사를 막 시작한 단계이므로 체계적인 분석보다는 출발단계에서 갖고 있는 느낌을 피력하는 정도에 머무를 생각입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에 대해서는 다른 분이 발표하게 되어 있으므로 언급을 가급적 삼가하려고 합니다.

 
  한편 이 자리는 使側이나 勞側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성토하는 場이라기보다는 각계 인사들이 나와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場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사관계의 발전을 위해 각자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현재 使側과 勞側 간에는 입장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런 차이를 의도적으로 감추는 기만적인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상호대립과 상호의존을 명백히 한 바탕에서 지금 시점에서 양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탐구해 보자는 것입니다. 절충적 또는 양비론적으로 보이는 이런 관점은 이 자리의 성격, 저의 현재 연구 수준에 기인한 바 크지만 사실 진리는 어느 쪽으로도 떨어져서는 안되는 서커스 외줄타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II. 재벌에 관하여

 

1. '재벌 죽이기'가 아닌 '재벌 거듭나게 하기'


  먼저 재벌에 관한 기본 시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작년부터 우리 경제의 수출 및 성장 추세가 둔화하고 이에 한보의 정경유착 비리, 삼미.진로의 방만한 경영과 부도위기가 터지자 재벌 개혁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재벌이 재계뿐만 아니라 정계.언론계.학계를 거의 평정한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적어도 언론계.학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찬미의 목소리보다는 더 큰 것 같습니다. 재벌의 이데올로그 집단인 전경련과 자유기업센터도 요즘은 다소 방어적 입장에 치중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경기변동에 따라 재벌평가가 덩달아 변동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불안과 불만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경기변동에는 구조적 요인과 순환적 요인이 복합되어 있기 때문에 순환적 요인의 변화에 의해 경기는 어렵잖게 다시 좋아질 수 있습니다. 물론 구조적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만 그것이 곧바로 경기에 반영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경기가 되살아나면 재벌평가는 또 뒤바뀌겠지요. 경기가 좋지 않았던 92,3년 무렵에 재벌 비판 논의가 무성했던 것을 상기해 보십시오.


  말하자면 경기악화의 책임을 재벌 또는 노동자 누구에게 지우는가 하는 공방전이 벌어져 온 셈입니다. 우리의 정치구조가 낙후된 원인이 지도층과 일반국민 모두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지도층의 책임을 먼저 물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경제의 문제는 경제의 지도층인 재벌에게 먼저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재벌 논의가 경기에 좌우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칫하면 재벌을 비판 개혁하기 위해 경기가 나빠지기를 바라고 경기가 좋아지면 오히려 불안해 하는 이상한 심리상태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마치 재벌이 萬惡의 화신인 것처럼 파악하는 것에도 불만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동의 시대에는 특정 측면만을 선정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제는 과학적인 논리가 요청되는 시점에 들어섰습니다. 따라서 재벌의 실체를 가급적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우나 고우나 재벌은 우리 경제의 주역이고 그동안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습니다.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이상비대화되어 많은 문제를 배태했지만 어쨌든 우리 경제성장에 한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재벌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관계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GNP, 고용에서 차지하는 재벌의 비중 따위를 새삼스럽게 들먹거리지는 않겠습니다.


  게다가 재벌 만악론 또는 '재벌죽이기'론은 재벌 기업에 근무하는 종업원에게도 문제를 초래할 것입니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재벌을 때려 부숴야 된다"고 한다면 그 종업원은 의식분열 상태에 빠지거나 아니면 그런 주장에 무관심해야 할 것입니다. 재벌의 노동자는 재벌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재벌의 중요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使側으로부터 지독한 일을 당하면 회사를 박살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노예의식의 발로로 주인의식이 결여된 소치입니다. 주인에 속한다면 파괴적이 아니라 건설적인 자세를 취하겠지요.  민주노총등에서 사회개혁투쟁의 일환으로 재벌개혁을 내세울 때에도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따지고 보면 재벌기업은 총수 1인이 멋대로 할 수 있는 사유물이 아닙니다. 구멍가게나 소기업이라면 사장의 자본.노동 투하가 압도적이라서 그 사장의 전유물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거대 재벌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재벌기업은 총수의 자본에다가 수많은 노동자의 노동이 결합되어 비로소 이루어진 사회적 산물입니다. 경제이론 중에는 자본을 투자한 사장은 그 자본을 상실할 위험을 안고 있고 노동자는 회사가 잘못 되면 딴 직장을 찾으면 그만이니까 서로의 위험부담이 판이하다, 따라서 사장이 멋대로 해도 된다 라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도 있습니다. 이 이론을 수긍한다 하더라도 우리 재벌에 투자된 자본은 총수의 것보다는 금융기관으로부터 꾼 것 즉 국민의 투자분이 압도적입니다. 또한 재벌에 고용된 노동도 기업특수적인 성격이 점점 강해져서 이제는 가벼운 중이 아니라 무거운 절이 되었습니다.


  한보.삼미.진로가 부도나더라도 공장문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수단을 써서 공장을 계속 돌리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재벌이 일개인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이 걸려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총수 1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고 근로자의 것이기도 한 재벌을 죽일 것이 아니라 '잘' 살려야 될 것입니다. 물론 문제는, 후술하겠지만, 사실 총수 1인의 전유물이 아닌 재벌이 마치 총수 1인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데 있습니다만.


  그러므로 재벌 비판이 재벌을 작살내는 '재벌 죽이기'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되겠지요. 물론 많은 재벌 비판론자들이 재벌을 작살내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런 식으로 받아 들여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또 이 점에 대해 재벌 개혁론자들은 보다 분명하게 입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재벌의 모순구조를 파악하여 재벌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해소하는 '재벌 거듭나게 하기'이겠지요.


  물론 재벌의 장점과 단점은 묘하게 뒤엉켜 있어서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해소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고 제 자신 이 문제에 대해서 헤메고 있는 형편이라 상세히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글의 전개를 위해 '재벌 거듭나게 하기'의 기본 방향만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재벌개혁의 방향은 '재벌의 국민적 기업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삼성 50년사'에서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해서 쓴 용어이기도 하고 삼성맨들을 교육시킬 때도 자주 부각시키는 것같습니다. 현대의 정주영회장도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쓰는 문맥인데 "국민기업이니까 비판도 하지마라라, 돈도 마음대로 빌려다오, 규제도 확 풀어다오"라는 식이라면 곤란하겠지요. 그렇다면 진정한 국민적 기업화란 무엇인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재벌의 진정한 국민적 기업화'란 재벌에 존재하는 국민적 기업의 측면에 걸맞게 비국민적 기업의 측면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이는 국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재벌의 대내적 민주화와 대외적 민주화라는 양 측면을 합친 것입니다. 대내적 민주화란 소유와 경영의 민주화를 의미하며 대외적 민주화란 국민경제에 대한 재벌의 독재체제 해소를 의미합니다. 다만 이런 민주성 원리는 독재자 또는 기득권자의 저항뿐만이 아니라 효율성과도 긴장관계에 있어서 생각대로 쉽게 진척시킬 수는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에 대해선 좀 있다가 약간 보충하겠습니다. 공기업 민영화나 은행소유구조 개편 문제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풀어 설명해 놓아도 동어반복같기도 하고 막연한 느낌도 들 것입니다만 여기서는 이 정도로 '재벌 거듭나게 하기'를 정의해 두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2. 재벌체제는 결국 소멸한다 !

 

  앞에서 '재벌 죽이기'는 곤란하다고 해 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주장은 현재와 같은 '재벌체제'가 장차는 바뀌어 새로운 기업체제로 발전한다는 것이므로 재벌이 죽는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역사발전의 대세가 재벌체제의 소멸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정론이라고 비판받을 각오를 하고 한번 던져보고자 하는 명제입니다.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경우에도, 대세는 그렇지 않은데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 주장에는 힘이 별로 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이란 역사의 발전속도를 조절하거나 주어진 선택가능한 대안 중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역사의 방향 자체를 뒤바꿀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재벌 개혁은 대세이고 그것은 결국 시간문제라는 이야기인데 약간 의외로 생각되겠지만 재벌옹호론자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총수 1인의 독재문제를 재벌의 폐해로 인정하면서 이는 상속세등의 방법으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시간의 문제라는 점은 똑같지만, 재벌옹호론자가 시간문제이므로 저절로 해결될 것이고 굳이 빨리 해결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식이라면 제 생각은 시간 문제이므로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하루라도 빨리 역사발전을 앞당기고 그런 과정상의 희생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재벌은 갈수록 비대해지는데 재벌체제가 소멸하다니 웬말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물은 본시 생성-발전-소멸의 과정을 밟기 마련이라는 원론으로선 이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없겠지요. 이에 대해 바르게 대답하려면 먼저 재벌체제 소멸의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재벌은 단순한 대기업집단은 아닙니다. 일본에 대기업집단이 존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기업집단은 쉽게 소멸한다고 예측할 수는 없겠습니다. 재벌은 총수와 그 가족이 경영권을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집단의 특수형태이고 재벌체제란 이러한 재벌들이 경제를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경제체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재벌체제의 소멸이란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집단은 존속한다 하더라도 그 대기업집단의 소유.경영 구조는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중견 재벌기업들은 여전히 존재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현재 재벌집단의 영향력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재벌체제 소멸의 근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다른 나라의 예를 보겠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검토해 보면 자본주의는 가족(개인) 자본주의로부터 출발하지만 기업이 대규모화함에 따라 점차 가족(개인)의 영향력은 감소되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대기업에서는 전문경영자를 비롯한 기업구성원 전원이 각 수준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체제가 형성되고 소유는 분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진국 어디를 보더라도 재벌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후진국에선 재벌체제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재벌체제는 해소되어 감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선진국에서도 소유경영자가 대기업을 장악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경제를 지배하는 세력이 되어 있지는 못합니다.


  이웃 일본의 예에서도 2차 대전 이전에는 재벌체제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전후 이러한 체제는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일본의 대기업집단에서는 샐러리맨 출신들이 최고경영자의 지위에 있고 대기업집단내의 기업들간에는 느슨한 연결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뿐입니다. 일본의 재벌해체에 대해 국내 일부의 논자들은 그것이 미점령군 치하라는 특수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한국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의 재벌체제 소멸이 전후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전부터 이미 준비되어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보는 바와 같은 재벌에 대한 비판과 재벌에서의 소유경영 체제의 변모가 1930년대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정치권력의 격변이 없는 상황에서는 일본과 같은 급격한 방식의 재벌체제 소멸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 완만한 재벌체제 소멸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어떤 형식으로든 재벌체제의 소멸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치에 있어서 왕조체제가 공화정체제로 변모한 것이 역사의 대세이듯이 경제에 있어서 재벌체제가 소멸하는 것도 역사의 대세라고 생각됩니다. 현명한 哲人王의 지배가 때로 더 효율적일 수도 있듯이 재벌체제가 효율을 발휘한 시대가 있지만 이는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이 역사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주장에 대해, 과거의 역사를 일반화하여 한국의 장래에 억지로 적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재벌체제 소멸의 논리를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정보화시대의 도래로 재벌체제의 소멸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 소멸의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습니다만 선진국에선 정보화시대 이전에 이미 재벌체제가 소멸하였으므로 보다 근본적인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재벌체제 소멸의 근거로서는 대규모 자금동원의 필요성과 경영관리의 복잡화를 드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증권시장보다는 주로 은행을 통해 자금을 동원했으므로 재벌체제 유지가 가능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은행을 장악한 정부가 재벌의 경영에 간섭하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재벌 총수의 독재도 사실은 다소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후진국 예컨대 파나마나 자이레의 독재정권이 대미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자기 자금 이외의 돈을 끌어쓸 필요성은 총수 1인체제를 약화시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그렇게 돈을 많이 끌어 모은 기업의 세력은 커지겠습니다. 그리고 경영관리의 복잡화와 관련하여 총수의 장기집권과 세습체제의 비능률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철인왕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 철인왕이 노망이 든 채로 계속해서 집권하고 있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니며 더구나 철인왕의 아들이 반드시 철인일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왕조체제엔 일종의 안전장치로서 易性혁명도 있었고 그 체제 자체도 영원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재벌의 창업주는 경영능력(상당 부분 정권과의 로비능력도 포함하여)이 우수하여 재벌을 일구었다고 보여지지만 그 능력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창업주가 판단력이 희미해져서 기업을 망치는 판단을 내려도 어쩔 수 없는 재벌체제는 따라서 극히 위험한 체제인 것입니다. 한보의 정회장이 정치권에 마구 돈을 뿌리고 되지도 않게 철강사업을 벌인 일이라든가 현대의 정회장이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하여 한국 최대의 재벌을 키우긴 했지만 늙으막에 정치판에 나서서 기업 발전을 크게 저해한 일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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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구나 재벌 2세나 3세가 세습적으로 경영권을 이어받는 현 재벌체제는 위험하기 그지 없습니다. 2, 3세가 창업주와는 달리 전혀 검증받지 않은 채로 전권을 장악하게 되는 재벌체제가 결코 안정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우수한 인재도 없지는 않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재벌체제는 우수한 경영지도자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일본의 재벌에서는 그래서 혈연보다는 家를 더 중시하여 우수한 자식(또는 사위, 양자)에게 기업을 맡겼고 전문경영자의 지위도 더 강력했지만 결국 이 재벌체제가 해체되고 말았는데 혈연을 더 중시하고 전문경영자의 지위도 약한 우리의 재벌체제가 안정을 누릴 턱이 없습니다. 2, 3세로 넘어가서 망한 기업이 적지 않음은 우리가 눈에 쉽게 접하는 현실입니다. 중소기업도 그러한데 복잡한 대그룹 경영을 2,3세가 잘 해내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입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총수 1인이 아니라 조직이 재벌을 움직이게 하든가 아니면 우수한 지도자가 안정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경우든 현재의 재벌체제가 소멸해가는 방향입니다. 실제 최근 들어 삼미가 망하고 쌍용이 흔들흔들하는 것들도 모두 2세 총수의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 것이고 2세로 전환해 가고 있는 정상 재벌들의 경우도 매우 불안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바로 재벌체제의 소멸을 시대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단시일내에 재벌체제가 소멸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대세라는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재벌체제의 소멸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밟을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일텐데 이에 대해선 섣불리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적 특수성도 작용할 터이고 재벌체제의 소멸을 둘러싼 주체적 실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므로 그에 따라 양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다만 재벌 총수 1인의 전횡체제가 사라지면 재벌 계열사간의 관계도 약화될 것은 분명하고 과도하게 다각화한 선단식 경영도 변모하게 되리란 예측은 가능합니다. 재벌체제 소멸의 구체적 경로가 어쨌든 우리들은 재벌이 진정한 국민적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재벌체제 소멸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총수 1인의 전횡체제도 약간씩 완화되어 권한이 부분적으로 하부에 위양되고 있고 상장기업수의 증대에 따른 소유분산도 진행중입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아직 맹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질적인 변화를 초래할 단계에까지는 와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촉진되도록 정치적 법적 제도적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무능한 소유자라도 경영권에 집착하는 것은 비자금 조성과 같이 경영권을 통해 발생하는 어두운 이익 때문이기도 한데 이런 어두운 이익이 발생할 소지를 제거하는 것도 그 개혁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3. 기업의 모순과 재벌의 사회적 책임

 

  머리말에서 언급한 현대그룹에 관한 연구 중 가장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현대중공업에서의 협조적 노사관계의 정착방안}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정책수립을 위한 보고서}입니다. 사실 인식에서는 별 차이가 없지만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는 기업내 자본과 노동의 모순 중 어떤 측면을 더 강조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의 보고서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상호의존 측면을 강조하고 있고 후자에서는 양자의 상호대립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양 측면의 모순 속에서 노조가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기업에서 자본과 노동은 공동운명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이 망하면 그 기업구성원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하고 기업이 발전하면 구성원 모두에게 혜택이 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특히 87년 이전과 달리 근년에 와선 적어도 재벌기업의 경우엔 해고도 함부로 할 수 없고 성장의 과실도 적당히 나누어 주어야 하며, 또 기업문화 전략의 대대적인 전개를 통해 노동자의 가족까지 포섭해 들어오고 있으므로 그 공동운명체적 성격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강해졌습니다.

 
  이런 현상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노조의 입지는 크게 좁아진 듯합니다. 더구나 대우조선이나 현대중공업에서 보듯이 현장 관리자의 권한이 강화됨으로써 노조의 현장 기반도 무력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강성이었던 일부 노조에서 기업의 생산성향상에 협력하자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도 간부의 어용화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물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과 노동 사이에는 상호대립의 측면이 존재하고 노조가 할 역할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선 기업의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분배할 것인가를 둘러싼 대립이 존속하고 있으며 생산면에서도 노동강도와 작업환경을 어떻게 조정하거나 개선할 것인가를 둘러싼 대립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업내 의사결정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는 이른바 효율성과 민주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 중에는 쉽게 타협할 수 있는 것(논리적 설득이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힘의 관계가 작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업 성과의 분배에서 보자면 이는 두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업 성과를 크게 투자와 소비로 나누는 차원과 소비를 구성원간에 나누는 차원입니다. 여기서  투자와 소비의 선택은 시야의 문제입니다. 투자를 해서 장래에 더 많이 소비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 당장 더 소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자본의 속성을은 축적(투자)을 추구하고 노동의 속성은 소비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이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 논리적 설득과 타협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투자도 결국은 소비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전체 소비몫을 구성원 사이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는 힘의 관계입니다. 회장, 사장, 임원,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간의 소득 격차를 얼마나 축소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협력적 노사관계인 일본의 사례를 생각해 봅시다(후술하듯이 일본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재계의 거물이 18평 짜리 아파트에 살며 전철로 출근하고(다소 예외적인 인물이긴 합니다만 예외가 탄생되는 분위기를 생각합시다), 회사간부가 일반 노동자와 별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일본사회에서는 적어도 소비몫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노조에서는 우선 이런 것을 목표로 노력해야 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되더라도 능력과 업적에 다른 분배의 문제는 남습니다. 근년에 재벌기업에서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노조와 대립을 보이고 있는 신인사제도는 바로 이 부분을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신인사제도까지 가지 않더라도 반생산회의등을 통한 반별 경쟁은 노동자간의 연대를 약화시키고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있음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입니다. 반별 경쟁에서 나아가 개인별 경쟁이 치열해지면 노조의 단결이란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경쟁은 과연 나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능력 있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수재임용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능력 없고 나태한 교수를 탈락시킨다는 명분하에서 도입된 교수재임용제는 사실상 적지 않은 경우 능력 있고 열심이지만 과거엔 정부에 비판적인 교수, 요즘엔 재단에 바른 말 하는 교수를 탈락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즉 평가 방식이 엉터리가 되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수사회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기업에서도 능력.업적 평가라는 미명하에 유능하지만 친노조적인 노동자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겠지요. 일본의 유명한 전자업체 노무관리 지침에 보면 문제 노동자 색출요령으로서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동료애도 잘 발휘하는 노동자를 조심할 것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전교조 교사 색출 요령과 비슷합니다.


  만약에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서라면 경쟁 원리의 도입은 어떨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 생각엔 이 부분은 사실 자본의 이윤추구 원리와 노동의 인간다운 삶 추구 원리가 근본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부분입니다. 이는 노동 강화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과로사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개인 택시 운전수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 운전수는 한 몸에 자본가와 노동자를 겸하고 있는데 자신 속에 있는 자본가의 논리는 당장 돈이 눈앞에 보이니까 한 시간이라도 더 운전대를 잡도록 강요합니다. 반면에 노동자의 논리는 건강도 지키고 문화생활도 하면서 삶의 여유를 찾도록 요구합니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면 과로사하든지 굶어죽든지 할 것이므로 두 논리의 대립 지점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노조는 이 노동의 논리를 대표하는 조직이므로 경쟁원리의 도입에 적절히 방어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적절하게'가 어려운 부분인데 지나치게 거부하면 기업이 도산할 염려가 있고 그 반대로 지나치게 수용하면 삶이 황폐해 집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노조의 정신상태가 자본의 논리 일색으로 되어 과로사등 제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우리 노조가 반드시 항상 싸움닭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이상 생산성의 논리와 경쟁의 논리를 무조건 배척해서는 곤란합니다. 예컨대 공정한 평가제도가 확립된다면 선의의 경쟁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분배 및 그와 관련된 경쟁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꽤 길어졌습니다만 요컨대 노조는 한편으로 기업구성원 계층간의 격차를 축소하도록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노동의 논리를 견지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업 구성원간의 격차 해소와 관련하여 좀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구성원간에 있어서 소득면의 양적 차이를 축소하는 데서 나아가 구성원간의 질적 차이를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업 구성원간에 이해 대립이 발생할 소지를 원천적으로 줄여보자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단순화시키면 모두가 자본가이고 모두가 노동자이도록 하면 됩니다. 누구 말마따나 소유, 경영, 노동의 일치입니다.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붕괴해 버린 공산주의를 되살리자는 이야기인가 하고 화를 내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실제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에서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소유면에서의 스톡 옵션제나 종업원 지주제라든가 이윤의 공동분배는 모두가 자본가적 성격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의사결정에 있어서 상층부의 공동결정(독일의 공동결정제)이나 작업장에서의 노동자참가(일본)는 노동자와 경영자의 질적 차별이 완화되었음을 으미합니다. 일본 대기업집단에서처럼 소유자가 아닌 샐러리맨 출신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도 기업 구성원간의 계급적 차별이 희미해 졌음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협조적 노사관계가 성립된 기초는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소유, 경영, 노동의 완전한 일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진국에선 기업 구성원 간의 질적 차별이 사라져가는 방향에  있음은 분명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위에서 본 변화들은 미미하지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의 발전을 추구하는 使側과 勞側이라면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라고 하면 펄펄 뛰는 인사들도 많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미 실시중인 것입니다. 앞의 기업측 보고서 {현대중공업에서의 협조적 노사관계의 정착 방안}에서도 '참여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고 그 구체적인 안으로서 작업장 차원의 자율적 작업팀으로부터 시작하여 장기 정책 및 전략적 의사결정 영역에까지 노동자가 참여하는 전면적 파트너쉽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노개위의 기본 방침도 참여와 협력이었습니다. 노동자를 배제하면서 어떻게 진정한 협력과 발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업내 의사결정의 모든 영역에서 당장 노동자도 참여하여 투표방식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자의 이해와 직접 관련이 큰 부분이나 노동자(또는 그 대변자)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의사 결정의 독재성은 지식과 정보의 독점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기업 구성원의 지식 향상과 정보 공유가 발전할수록 의사결정의 민주성은 확대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소외감도 줄어들고 그들은 기업의 적극적인 동반자로 부상하는 것입니다.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는 바로 이런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기업 차원에서 이른바 효율성과 민주성의 모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민주화가 무조건 곧바로 효율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효율성이 허용해주는 범위내에서 우선 민주성을 극대화합시다. 민주성의 위치 변화는 효율성을 변화시키고 또 그 효율성이 허용해 주는 범위도 변화시킵니다. 말장난같습니다만 구조적 제약과 주체적 실천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편 정보 특히 기업의 회계정보가 제대로 공개되려면 기업이 탈세나 비자금조성 등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러면 정경유착 및 기업내 부패구조를 먼저 청산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역시 벅찬 과제입니다만 사실 이런 점에서도 기업내 개혁은 사회개혁과 맞물리는 것입니다.


  또 기업구성원간의 작업조건의 차이도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누구는 에어콘 잘 나오는 방에서 편하게 앉아 있다가 저녁이면 접대입네 하고 1,000만원 짜리 술판도 벌리고 누구는 폭서와 혹한 속에서 소음, 가스, 분진이 자욱한 배밑바닥 용접이나 해야 한다면 위화감이 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힘든 작업을 외주로 처리하기도 합니다만 이게 근원적인 해결은 아니겠지요. '인간을 위한 기술'이 요청되는 대목으로 쉽지는 않습니다만 노사 어느 쪽도 반대할 명분이 없으므로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마땅히 使側이 해야 할 일이지만 막말로 정 안되면 임금을 좀 덜 받더라도 작업조건 개선에 힘을 더 쏟겠다는 자세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현대중공업에선 15명 정도가 사망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삶터, 일터가 아니라 죽음터와 같은 셈입니다. 인간의 이성이 건재하다면 이런 상태가 계속될 수는 없겠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 기업내 구성원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면 勞와 使가 죽자 사자 싸울 일이 없습니다. 다만 그렇더라도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영자층과 노동의 인간화를 추구하는 노조의 긴장관계는 존재하지만 이는 인간이 황폐화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기업이 존립 발전하기 위한 일종의 역할 분담인 셈입니다. 그리고 재벌기업의 경우 기업내 구성원이 똘똘 뭉치면 그들끼리는 좋지만 중소기업과의 차별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이 부분은 정치의 개입(과 산별로의 노조조직 개편?)이 필요한 부분인데 여기서는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使側과 노조가 함께 해야 일은 기업 구성원간의 양적 차이 축소 및 질적 차별 해소를 통한 대립의 해소이고 동시에 양자는 일정한 긴장 관계(이윤 추구 對 노동의 인간화)를 유지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뭐든지 긴장 속에서 발전하니까요.


  잔뜩 횡설수설했습니다만 정작 발표제목으로 주어진 재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선 별로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은 할 이야기는 한 셈입니다. 우선 기업인 이상 품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노동력에게 일터를 제공하며 지역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일반론적인 과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재벌은 단지 하나의 기업인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진정한 국민적 기업으로 전환되는 것이 요청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재벌의 사회적 책임은 바로 이러한 거듭나기를 수행하는 데 있습니다. 그 거듭나기가 대내적 민주화와 대외적 민주화임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습니다. 이렇게 변신이 이루어지면 노사관계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추가하자면 재벌의 대내적 민주화 과정은 동시에 노동자를 민주적 정치시민으로도 발전시킨다는 점입니다. 재벌민주화는 곧 정치민주화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III. 현대그룹의 노사관계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제 막 조사를 시작했을 뿐이므로 여기서는 그저 몇 가지 느낀 인상을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틀리게 알고 있거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을텐데 나중에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1.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전개과정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역사에 대해서는 우선 이수원씨의 {현대그룹 노동운동, 그 격동의 역사}(1994)가 제일 상세하므로 이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1974년 9월의 현대중공업(그 당시는 현대조선소임) 시위사건부터 1993년의 현총련 공동임투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기록을 전하고 있읍니다. 다만 1976년에 현대건설의 중동 현장에서도 대규모 쟁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빠져 있고 1987년 이후 울산 이외 지역의 노사관계 변화에 대한 기록도 빠져 있음을 지적해 두고자 합니다.

 
  1987년 이후 1995년에 이르기까지 현대그룹의 노동쟁의 실태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1989년을 고비로 쟁의가 하향추세였다가 1993년 김영삼 정부 수립 이후 현총련 연대 투쟁으로 다시 한번 폭발한 후 사업장은 전반적으로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1995년 이후엔 현대그룹 노동쟁의의 중심축이었던 현대중공업이 조용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의 노사관계 전반의 변화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1989년을 고비로 쟁의 건수는 급격히 줄어 들고 있습니다. 1996년 말, 1997년 초에 대대적인 총파업이 전개되긴 했으나 이는 노동법 날치기와 관련된 것으로 사업장 중심의 파업과는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표> 현대그룹의 노동쟁의 실태


  이렇게 파업이 줄어든 데는 1987년 이후 임금등 노동자의 근로조건도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고 노무관리 방식도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통제로부터 탈피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도 근로조건이나 노무관리에는 많은 문제가 남아 있고 노사간의 역학관계도 불안정합니다. 그 때문에 노동법 파동이 일어났고 이 새 노동법하에서 노사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도 알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아직도 우리의 노사관계는 불안정한 과도기에 있는 셈입니다.


  현대그룹의 노사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그룹 계열사의 임금은 1987년 이후 크게 상승하였고 주택관련 지원, 학자금 지원, 문화관을 비롯한 복지시설 확충 등 다방면의 복지혜택이 주어졌습니다. 두발 단속과 같은 인격적인 모독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명찰을 달리 하고 식당, 세면장을 달리 쓰게 했던 것과 같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에 대한 신분상의 차별 조치도 완화되었습니다.  전 종업원을 대상으로 한 화합교육도 강화되었고 노동자 가족과 지역주민에게 각종 문화행사가 베풀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내 CATV나 경영설명회를 통해 노동자에게 회사의 정보도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비, 주택비 등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은 여전히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호봉제의 미확립, 월급제의 미실시, 승진 전망의 부재 등 블루칼라에 대한 차별은 엄존하고 있습니다. 계열사별로 차이는 있습니다만 잦은 산재사고에서 보듯이 열악한 작업 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곳도 없지 않습니다. 노동 강도의 강화에 대한 불만도 표출되고 있으며 회사의 얼굴인 정문경비가 군대 헌병을 연상시키는 곳도 없지 않습니다. 회사의 정보 공유도 극히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이상과 같은 배경하에서 최근에는 쟁의 건수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현대그룹 노사 대립의 장면은 심심잖게 매스콤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의 노사관계와 관련하여 머리말에서 언급한 여러 연구가 이루어졌던 것이겠지요. 1995년 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해는 무쟁의로 끝난 해였음에도 말끝마다 노사관계 문제 때문에 아무 것도 안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경영개선도 생산합리화도 다 노사관계가 걸림돌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현대그룹 하면 노사문제 사업장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현대 계열사가 다 골치 아프고 시끄러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현대 계열사 중 노조가 미결성된 곳도 13개 이상이며 노조가 조직된 곳에도 현총련 가입 사업장은 19개(이 중 현대중공업 노조는 1996년 금속연맹으로 상급단체 변경)이고 그 나머지 5개는 현총련에 가입되지 않은 이른바 온건 노조입니다. 또 현총련에 가입되었다고 다 강성은 아닙니다.

 

2. 현대그룹 노동쟁의의 원인


  우선 말씀드려야 할 것은 노동쟁의의 원인을 밝힌다고 하면 마치 노동쟁의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종기가 곪아터졌으면 수술해야 하듯이 때로는 발전을 위한 싸움도 필요하겠습니다. 물론 싸움을 위한 싸움은 문제입니다만, 어쨌든 여기서는 쟁의가 일어난 원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4개의 연구보고서를 정리하고 거기다 제나름의 인상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使側 연구인 {현대중공업에서의 ...}(이하 {使側A}라고 약칭) 에서 지적하고 있는 쟁의 원인을 살펴 봅시다. 이는 물론 현대중공업에 국한된 연구이므로 현대그룹 전체에 대해서 일반화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노사대립이 첨예한 사업장에는 적용시킬 수 있을 것같습니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원인은 첫째로 '과거의 부담'입니다. 다만 과거의 부담이 무엇인지 언급이 없으므로 조금 부연해 봅시다. 여기에는 1987년 이전의 강압적인 노무관리의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현대의 총수는 노동자들 보는 앞에서도 간부들을 조인트 깠다고 알려져 있으므로(심지어 다 큰 아들들도 팼다고 하므로) 회사의 노무관리 분위기는 뻔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조 창립 초창기에 식칼테러등 使側이 저지른 폭력은 회사분위기를 살기등등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노동자의 가슴속에는 피맺힌 한이 자리잡은 것입니다. 거꾸로 최고 경영자층에서도 몸서리처지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1987년 이전에는 앞에서 숨도 제대로 못쉬던 말단 노동자들이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 맞먹자고 대들었으므로 기가 막힐 것입니다. 물리적인 위협을 느낀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량이 아주 크지 않은 다음에야 이런 체험을 갖고 노동자와 마음을 트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使側A}가 지적하고 있는 다른 원인으로 노사 모두 원칙보다 감정적 판단에 따른 행동이 많다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원인에 기인하는 바 크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使側A}는 노조의 기업내 위상과 역할에 대해 使側이 뚜렷한 입장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을 쟁의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저 전술적으로 대응할 뿐 전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부연 설명해 보겠습니다. 使側은 삼성그룹처럼 유령노조등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하여 노조설립을 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노조를 협조적 파트너로 육성하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왕좌왕했다는 느낌입니다. 원래 현대그룹의 문화란 것이 임기응변과 현장에는 강하지만 사전준비와 기획에는 뒤떨어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노사관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굳이 전략이 있다면 노조를 배제하거나 무시하려는 전략이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셋째로 {使側A}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현장관리층 또는 중간관리층의 문제입니다. 산재사고 처리의 경우에 드러나는 것처럼 현장관리자들이 장기적인 노사관계의 안정보다 보신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현대의 중간관리층은 취약합니다. 현대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현대의 중간관리층은 회사에 대한 애착이 떨어지는 것같습니다. 또 최근 들어 맣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들에 대한 교육도 불충분하므로 자질도 떨어집니다. {使側A}는 회사의 홍보가 때로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원색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담당자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현대그룹 모 회사의 홍보담당 간부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은 저 앞에서 "무식한 작자들을 먹여 살려주고 있는데 그 고마움도 모른다"고 마구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자기네 술자리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현대 관리층의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물론 이 경우는 다소 예외적일 테고 계열사 간부 중에는 "근로자가 살아야 회사도 살고 회사가 살아야 근로자도 산다. 노조위원장은 참으로 하기 힘든 일이다"는 식으로 홍보상의 정답(?)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네째로 노사관계의 안정화 수단이 임금과 기업복지에 집중되고 종업원의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입니다. 현대는 옛날부터 먹는 것은 푸지게 먹인다는 것을 자랑해 왔는데 이런 식의 대응은 다른 재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략만으론 이제는 불충분합니다. '참여와 협조'의 도출 장치 즉 노동자의 주인의식을 북돋을 수 있는 메카니즘이 없으면 괜히 돈만 많이 들고 노사관계나 회사의 질적인 성장은 기대하기 힘든 것같습니다. 이 밖에 {使側A}는 경영정보의 문제, 법외 노동단체의 문제, 노조의 대표성.자율성.전문성 결여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중 마지막 문제는 위원장 목숨이 파리목숨이라 평균 6개월밖에 안되었던 것이 큰 원인이겠지요.

 

  다음으로 使側이 발주한 {현대그룹 노사관계 합리화 방안 연구}(이하 {使側B}로 약칭)의 진단을 살펴 봅시다. 이 연구는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현대정공도 분석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使側A}보다는 좀더 일반화된 연구인 셈입니다. 여기서는 쟁의의 1) 구조적 원인으로서 ①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의 노사관계가 전국적 노사관계의 대리인적 역할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 ② 대상 3사가 모두 작업강도가 높은 철을 다루는 업종이라는 점 ③ 울산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④ 재야 노동운동권의 개입과 그 영향력이 뿌리깊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2) 노사갈등 및 불신이 누적되어 온 배경으로선 ①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노무관리와 ② 격렬한 대형 노사분규의 경험을 지적합니다. 나아가 3) 노사관계 대응조직의 문제점과 비효율적 교섭관행으로서  ① 소유자 중심의 경영구조와 그룹 차원의 취약한 종합조정 기능과 ② 취약한 중간 관리체제 및 ③ '힘겨루기'와 '눈치보기'의 비효율적인 교섭관행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중 {使側A}에서도 지적된 바 있거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부연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특기할 것은 우선 전국적 노사관계의 대리인적 역할의 부분입니다.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국내 최대의 기업들로서 여기서의 단체협상은 전국적 노사관계의 선도적 성격(pattern-setter)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표선수 싸움(일대 일 승부)이 현대 계열사에서 전개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노와 사의 협상에는 외부의 하중이 몹시 걸리게 마련입니다. 단체협상기가 되면 그 진전상황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또 정부의 각 기관들이 압력을 행사하니 운신의 폭이 제약을 받습니다.


  이러한 제약은 노측보다는 使側이 더 컸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민주노총 계열의 핵심 사업장인 탓에 勞側도 전국적 이슈와 관련하여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오랫 동안 그랬고 금년 초 노동법파동과 관련해서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노동계 쪽에서 보자면 그동안 영웅적 투쟁을 전개해 온 현중 노조원들이 최근 들어 이젠 지쳤다 하는 피로감도 드러내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다음으로 {使側B}는 "소유주의 영향력이 인사, 재정권을 통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경영구조하에서 각사 경영진들은 노사관계의 핵심현안을 자율적으로 해결함에 있어서 소신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해 왔다. 소유주에 집중된 의사결정 구조는 각사별 단체교섭을 불안정하게 하며 현총련과 같은 그룹 차원의 노조연합체를 활성화시키게 되었다"고 흥미있는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使側의 발주물임에도 使側의 아픈 부분을 과감히 찌르고 있는 셈입니다.


  일반론적으로 말해 소유경영체제보다는 전문경영체제(특히 전문경영진이 밑에서 올라간 토박이인 경우)에서 노사관계가 협조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영진은 노동자의 처지를 잘 알고 있으며 또 같은 샐러리맨이므로 노동자와의 이질감이 적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예가 그것을 잘 말해 줍니다. 그런데 현대그룹의 골치 아픈 사업장의 경우는 소유경영체제냐 전문경영체제냐 하는 차원 이전의 문제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책임경영 체제가 미확립되어 받아줄 것은 받아주고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하는 원칙이 없었던 것입니다. 소유자가 확실히 틀어 쥔 것도 아니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이 확실히 위양된 것도 아닌, 즉 죽도 밥도 아닌 경우 문제가 더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편 노조측 발주물인 {현대그룹 노사관계 진단 연구보고서}(이하 勞側A)에서도 쟁의발생의 근본원인을 인사노무관리, 노동자의 노동실태와 생활실태, 집단적 노사관계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너무 많아 간단히 요약하기로 하겠습니다. 1) 인사노무관리 면에서는 ①제도적 장치의 미비와 미성숙으로 인한 자의적이고 비일관성을 띤 인사노무관리가 이루어져 왔다는 점 ②인사노무관리제도의 신분차별적 성격 ③기업이 마치 총수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됨에 따른 가부장적 온정주의에 기초한 인사노무관리 관행 ④비인간적, 강압적, 비민주적 성격의 인사노무관리 관행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 노동실태와 생활실태 면에서는 ①합리화전략에 의한 과밀노동 ②비인간적이고 열악한 작업환경 ③물가가 비싸고 환경오염이 심하고 가족과 분리된 생활환경을 문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집단적 노사관계 면에선 ①해고자 복직과 직권조인 문제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은 노조의 불인정 ②최고경영층의 전근대적 노사관계관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정공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전술했듯이 계열사 전체에 일반화할 수는 없고 지나치게 노조 편향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사제도, 작업환경의 문제점은 구체적 내용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使側도 인정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상의 연구들에 제가 한 두가지 추가하고 싶은 것은 현대그룹의 성장과정이 노사관계에 미친 영향입니다. 현대가 건설업, 조선업 등 작업이 거친 업종을 주축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거칠고 투박한 노무관리가 자리잡았다는 점은 다른 연구도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더구나 건설업계에서도 현대의 突貫공사 즉 밀어붙이기는 유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건설업의 고용 특성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건설업이란 공사를 수주하면 노무자를 끌어 모아 공사를 하고 그 공사가 끝나면 불필요한 인력은 해고합니다. 따라서 경영진과 노무자 사이에 장기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운명공동체 의식이 싹트지 않는 것이지요. 현대에 교육훈련이 취약했던 것도 바로 이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또 건설업은 공사 한번 잘못 수주하면 회사 전체가 기우뚱거릴 수도 있는 업종입니다. 현대도 50년대에 고령교 공사로 회사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현대는 국내의 독점적 시장이 확보되어 있는 소비재를 중심으로 커 온 것이 아니라 경쟁이 치열한 해외 건설 및 중공업제품 수출로 커 왔기 때문에 수익 구조가 항상 불안하였고 이는 노동자에 대해 여유 있는 태도를 취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최고경영진들 중 상당수가 현대건설 출신이므로 이러한 건설업 풍토가 대립적인 노사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3.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특징과 관련하여

 

  앞의 쟁의 원인 분석에서 이미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주요 특징을 이야기한 셈입니다만 여기서 논란이 될만한 한두 가지 특징을 추가하겠습니다. {勞側A}에서는 "그룹 차원의 노무관리 방침이 계열사 노무관리를 규정지움으로써 계열사내 노사의 대립을 전계열사 차원의 대립으로 확대시킨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엔 이것은 사실을 오인 또는 과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문제는 현대라는 재벌의 구조와 관련되는 것인데 아직 단정적인 결론을 내릴 만큼 연구를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우리 나라 재벌들 사이에는 상당한 구조상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엔 비서실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의 노무관리 방침이 확고하게 서 있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임금인상률, 제반 복지는 물론이고 노조설립 저지 대책 같은 것도 그룹 차원에서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열사별로 노사관계가 부분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는 使側의 차이가 아니라 勞側의 세력 차이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반면에  현대그룹에서는 정주영씨가 일선을 진두지휘했을 때는 모르지만 2세로의 경영권 이양이 진행되면서부터는 일사분란한 노무관리 대책도 없고 계열사별 차이도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업종별 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앞에서 현대 계열사에는 강성노조, 온건노조, 무노조의 3 종류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업종의 차이에 기인합니다. 여성근로자 중심인 현대전자나 화이트칼라 중심인 현대증권의 노조가 격렬한 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겠습니다. 그리고 석유화학이나 정유업종에선 생산직도 컴퓨터앞에서 작업을 하는 등 화이트칼라.블루칼라의 차이가 크게 해소되어 있고 공정 자체가 파업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노사대립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현대석유화학에선 최근 이른바 어용노조 대신에 현총련에도 가입하겠다고 한 이른바 민주노조가 등장하였지만 그 행동의 범위는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와는 크게 다릅니다.


  물론 업종의 차이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계열사인 금강기획에서는 노조가 설립되었다가 근년에 자진 해산한 바 있습니다. 화이트칼라 업종이니까 그런 면도 있지만 이 업종의 다른 회사에서는 강성노조가 존속하고 있는 곳도 있다고 하므로 업종 차이만이 아니라 경영진의 전략, 노조의 활동방식 등이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화이트칼라인 해상화재에서 30일 가까이나 파업을 했던 경우도 마찬가지 실례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업종 차이 즉 노동과정의 차이는 결정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계열사에서 임금인상률을 협상할 때에도 1차적인 것은 동종업계의 실태입니다. 다만 울산에 집중된 계열사끼리는 상호 참고를 하겠지요.


  이와 관련하여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의 역할을 검토해봅시다. 어느 재벌이나 종기실 또는 비서실의 내막은 비밀스럽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현총련에선 그룹 총수 - 종기실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의 노무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룹과 현총련이 집단 교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의 {사측B}가 지적했듯이 현대그룹의 종합조정기능은 취약한 것같습니다. 삼성에 비교하자면 현대의 계열사 경영은 꽤 자율적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세 형제들간에 상당 정도 영역 분할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설업이란 것이 현장의 임기응변이 중요하므로 그런 자율적 전통은 현대의 특징인 것같습니다. 임금인상률에 있어서도 화이트칼라의 경우엔 종기실이 그룹 차원에서 관여하지만 블루칼라의 경우엔 종기실의 개입 정도는 약하다는 느낌입니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의 경우 단체협상의 과정을 종기실에 알리고 의논이야 하겠지만 종기실의 지시대로 움직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계열사의 자율경영이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타 그룹에 비교한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그룹 운영위원회, 사장단 회의, 종기실 등을 통해 계열사간의 조정, 정보교환은 이루어지고 있고 근년에 들어 종기실의 기능은 다소 강화되어 가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특히 울산에 위치한 계열사의 경영관리자끼리는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使側이 단체협상 초기에 제출하는 단체협약안 같은 데에서는 비교적 통일된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따라서 현총련의 존재 의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使側간의 협조.조정처럼 勞側간에도 협조.조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단체협상권을 가져야 하는가 어떤가는 어려운 문제이지만(使側이 계속 거부하여 사실 실현된 적도 없습니다), 적어도 회장.사장단과 현총련 간부(비현총련 소속도 포함)의 정기적 협의회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使側 대표단과 勞側 대표단이 만나 경영상황과 노동상황을 이야기하는 대화의 자리가 나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협조적 파트너십 형성을 위해 使側에게도 좋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만약 2세 상속과정에서 그룹이 분할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요.

 

4.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발전 방향


  최근 들어 쟁의가 크게 줄어들었으므로 使側에서 볼 때는 현재 기조로 가면 된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노동관계법이 개정되었으므로 노조의 힘은 점차 약해질 것이고 문제는 자연 소멸할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현대중공업만 하더라도 노동자의 생활 및 의식변화와 이른바 신경영전략의 성과로 노조가 무력화되고 쟁의가 사그러 들었다고 합니다({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정책수립을 위한 연구보고서} 참고). 하지만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적 요소가 이러한 변화와 관계없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 이는 회사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물이고 회사 구성원의 삶을 고달프게 할 것입니다.


  어느 한편이 다른 한편을 거꾸러뜨림으로써 평화를 찾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가 일정한 긴장관계는 갖는다 하더라도 상대편을 존중하면서 건설적으로 밝은 일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앞의 쟁의 원인 분석에서 사실상 이미 발전 방향은 나온 셈입니다만 마찬가지로 현대그룹 연구서들을 통해 정리해 봅시다.


  먼저 {使側A}에서는 대립적 노사관계로부터 합리적 노사관계를 거쳐 협조적 노사관계를 지향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 우선 노사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조치로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집단적 노사관계 면에서는 노사 합의사항 철저 준수, 使側의 보다 포용적 자세 견지, 노조를 무력화하고 길들인다기보다는 노사간의 공감대를 확보케 하는 대등한 주체로 육성할 것, 공동교섭은 거부하더라도 합의안의 조합원 총회 회부는 인정할 것 등입니다. 그리고 2)개별적 노사관계 면에서는 노동자의 숙련형성을 비롯한 교육 강화, 종업원 의식 개혁, 현장 감독자의 위상 강화, 산재 예방입니다.


  한편 신뢰구축과 더불어 노동자의 참여와 협력을 위해 자율적인 팀 작업으로부터 시작해서 경영의 각 의사결정 단계에 대응하는 근로자 참여시스템(부서별 공동위원회->부서별 종업원 참여그룹->경영.노동위원회 등)을 확립해 갈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使側A}의 이러한 방향 제시는 종업원 의식 개혁, 현장감독자 위상 강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勞側 연구와 견해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매우 건설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참여시스템의 구조화는 勞側에서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잘만 하면 일본과 독일의 노동자 참여제도를 종합 발전시킬 수 있는 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使側B}가 제시하고 있는 주요 발전방향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강성이든 온건이든 노조집행부를 있는 그대로 일관되게 존중해 주는 자세를 취한다. ②최상층부의 자발적 결단으로부터 시작하여 使側이 먼저 변화의 조치를 취한다. ③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에 대한 주식공개를 추진하여 국민 다수가 소유하는 기업으로 변한다는 인식을 심는다. ④기업내에서 근로자에 대한 생명존중, 차별불식, 능력개발 등에 더 맣은 비중을 둘 것이라는 경영철학과 행동계획을 세운다. ⑤회사는 근로자에게 지극한 정성과 따뜻한 배려의 대책을 마련하고 다양한 종업원 참여제도를 개발한다. ⑥해고자 복직에 대해 전향적으로 고려하고 대립적 노사관계 시대의 使側 책임자를 교체한다. ⑦조합간부 및 조합원 모두에게 투명하게 경영실적을 공개하고 기업경영과 노사관계에 관련된 현안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각종 기구를 설치 운영한다. ⑧종업원들의 자본참여에 대한 동기부여로서 경영수익의 일부를 투자자금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⑨블루칼라.화이트칼라의 차별제거를 위해 차별표식을 제거하고 직제와 직명을 개편하며 생산직에서도 이사로의 승진기회를 보장하며 월급제로의 이행을 고려한다. ⑩현총련의 합법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룹 차원에서 협의할 수 있는 대화의 통로를 연다.
이상의 제안은 구구절절히 옳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사측 발주의 연구이지만 勞側에도 충분히 수용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제안 중 일부는 사실 使側이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勞側A}의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①소유.경영 구조를 민주화한다. 이를 위해 재벌을 국민기업화하고 경영체제를 전문화.분권화.민주화하면 노동조합의 참여를 제도화한다. ②작업조직을 민주적으로 재편한다. 즉 단순반복적인 반숙련, 비숙련 작업으로부터 높은 노동생활의 질을 갖는 작업으로 전환하며 현장내에서 노동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③인사노무관리제도를 개선한다. 즉 직급체계, 고용관리, 교육 훈련을개선한다. ④삶의 질을 높이는 임금 및 복지제도를 실시하고 산업안전보건을 강화한다. ⑤회사의 노동조합 대응방식을 개혁하고 교섭제도를 합리화하며 작업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애착과 자부심을 존중한다. ⑥노조는 산별지향, 노동자참여제도의 도입, 사회개혁운동 참여등 활동의 지평을 확대한다. ⑦집행부 부서활동을 강화하고 대의원.소위원 활동 지원을 강화하며 일반조합원의 의견수렴 기능을 확대한다.


  이상 현대그룹 노사관계 발전 방향에 대한 세 연구보고서의 입장을 살펴 보았습니다. 제 자신 여기다 이렇다 하게 보탤 만한 것은 없으나 다만 최고경영진 및 노사관계 담당간부들에 대한 특별교육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경영진 중에서도 이런 성질의 교육에 참가해 본 분들의 태도는 상당히 유연하며 노사관계도 원만하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노조와 협의하여 결정한 강사를 불러 노조간부와 같이 교육을 받으면 더 좋겠습니다. 경영간부들의 라인 타기(현장 작업)이 실시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컨대 현대중공업의 최고경영진도 가끔씩 배안의 용접일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이야기이지만 현대중공업의 정몽준 회장의 경우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차라리 현장에 와서 노동자들과 어울리면서 기업에 전념하는 게 국가에 더 기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우 김우중회장의 경우 대우조선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호흡을 같히 하고 여기 참석하신 강성노조위원장을 비서로 채용하는 등 노동자와 같이 하는 제스춰를 보임으로써 노동쟁의를 막았습니다. 현대 분들이 들으면 부실기업이나 특혜로 인수했고 제대로 된 흑자기업도 없는 대우를 감히 국가경제 성장의 견인차인 현대와 비교하다니 하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김우중 회장의 제스춰는 정말은 교활하고 기만적인 술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와의 일체감을 총수가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제스춰만이 아니라 실질적 내용도 그렇다면 더 좋겠습니다만)은 현대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정몽준 회장도 정치에 뜻이 있다면 기업은 전문경영인에게 확실히 일임하는 게 낫겠지요. 죽도 밥도 아닌 자세라면 기업이 죽도 밥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그룹 노사관계 발전방향에 대한 저의 기본적인 사고는 II장 3절에서 이미 밝힌 대로입니다. 재벌의 진정한 국민적 기업화가 이루어지고 기업의 대내적 대외적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면 노사관계는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적했듯이 효율성과 민주성의 복잡한 관계를 감안하여 조급해 하지 않고 한 걸음 한걸음씩 나아가면 될 것입니다. 또 使側과 勞側은 한편에서 기업구성원간의 일체화를 추구하되 다른 한편에서 일정한 긴장관계는 견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일과 삶의 균형이 유지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