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삼성재벌의 신노사관계를 위하여(1996.2) - 한겨레21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4:33

삼성재벌의 신노사관계를 위하여

 

  본인은 삼성의 노사관계 이야기만 나오면 속된 말로 열이 받쳐서 견디기 힘들다. 그렇다고 삼성에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욕을 퍼붓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삼성이 겨우 요정도밖에 되지 않는가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다. 사실 삼성은 많은 기업중의 그저 하나의 기업인 것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고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만큼 우리 사회의 발전과 삼성의 발전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삼성은 한편에서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여 첨단기술을 발전시키고 각종 경영혁신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무노조경영으로 특징지워지는 전근대적 관행들을 답습하여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신재벌정책, 신노사관계구상의 성패여부는 삼성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가 바로 그 가늠이 되는 셈이다.


 

  돌이켜보건대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 이후 우리의 노사관계는 격변하였다. 과거에는 노동자들이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면서 저임금하에서 신음해왔으나 이제는 어용노조가 민주화된다든가 노조가 신설된다든가 함으로써 노동자의 제반 권리가 신장되고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꽤 임금인상도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빈발하는 산업재해 문제나 열악한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상태이며 특히 한국전력이나 한국합섬의 노동자분신사건에서 보듯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거나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작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삼성은, OECD의 지적에 따라 우리 정부도 폐기를 검토하고 있는 대표적 문제조항을 악용하여 노조설립을 저지해 왔으니, 한국경제성장의 견인차인 삼성이 동시에 낙후된 노사관계의 온존에도 앞장서 온 셈이다.

 

  물론 삼성에서도 1987년 이후 여러 사업장에서 노조설립을 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전개되었고 삼성중공업 같은 곳에선 공장이나 관청을 점거하는 등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른 재벌들이 이 시기 근로자의 요구를 상당정도 수용하여 노조설립을 용인하고 경우에 따라선 심각한 진통을 수반하면서 새로운 선진적인 노사관계로 나아가고 있는 데 반해 재벌중 유독 삼성만은 총수의 유시와 교시를 받들어 갖은 잔꾀를 다 짜내어 노조설립을 한사코 저지해 왔던 것이다.

 

  그러한 잔꾀의 대표적인 예가, 한 사업장에는 노조를 하나밖에 둘 수 없다는 복수노조금지조항을 악용하여 노동자들이 관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기 직전에 회사측이 다른 직원 명의로 신고서를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범삼성계열의 제일합섬에서 회사측과 공무원이 야합하여 근로자들의 노조설립신고서 제출에 1분 앞선 시각으로 회사측 서류를 접수처리했던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설립된 회사측노조는 전혀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단지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저지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서류상의 노조 즉 유령노조인 것이다. 삼성의 이러한 유령노조 이야기를 들은 어느 외국인 학자는 만화같은 일이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웃음거리이고 필자에게는 창피거리일 따름이었지만, 당사자인 근로자들로서는 얼마나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현실이겠는가. 본인이 조사해 본 바로는 노조대신 노사협의회가 조직되어 있는 삼성의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이 노사협의회의 운영에도 노동자의 자율적 민주적 의견개진을 저지하려는 여러가지 계략과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민주화가 정치면에서뿐만이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역사의 대세라고 할 때 적어도 삼성의 노사관계정책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민주가 밥먹여 주는가, 정치적 민주화면 충분하지 경제는 돈버는 게 장땡 아닌가, 국제경쟁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따위의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는 원래 따로 노는 게 아니고 정치민주화의 실질 내용을 경제민주화가 채워주는 것이다. 또 1987년 이후 임금이 상승하고 노동권이 신장되었는데도 경제가 거덜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들이 그에 대응하여 기술개발에 더 힘을 쏟고 산업구조도 고도화시키고 있음을 볼 때 국제경쟁력운운도 경제의 역동성을 무시한 피상적인 논리임을 알 수 있다. 재벌구조와 노사관계를 개혁하자는 최근 정부 일각의 움직임도 경제민주화를 통해 경제구조를 선진화시키고 경쟁력을 한 차원 높이자는 발상인 것이다.

 

  이러한 민주화와 경쟁력의 관련성을 전제로 삼성의 발전과정을 검토해 보면 경쟁력 즉 효율성면에선 나름대로 자랑할 만한 성과가 나타나 있다. 특히 근래의 반도체호황은 삼성의 발언권을 크게 강화시켰고 여러 경영혁신과 더불어 삼성으로 하여금 타기업들에게 우리를 따르라는 식으로 행동케 하고 정치권을 우습게 보게까지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유령노조체제등의 비민주적 경영을 유지하면서도 경쟁력면에선 한국의 톱클라스에 서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효율성면에서 삼성의 경영방식은 성공을 거두어 온 셈인데 문제는 앞으로이다.

 

  실제 삼성의 경우, 노조가 있는 기업의 노동자가 누리는 물질적 혜택에 뒤떨어지지 않는 처우를 보장해줌으로써 노조설립요구를 봉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점차 근로자들은 단순히 금전적인 주장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주체의 일원으로서 정당하게 대우받기를 원하는 경영참가운동등을 제기하고 있고 이는 이미 선진국에선 광범하게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몇 푼의 돈으로 노동자들을 구워삶는 삼성의 무노조경영체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또한 기업경쟁력면에서도 현재와 같은 삼성의 방식으로는 질적인 도약이 곤란하지 않을까싶다. 삼성의 경영은 우수한 대졸 엘리트를 대거 흡수하여 철저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성장해 온, 화이트칼라 및 엔지니어 중심의 체제였다. 현장의 블루칼라는 다만 통제와 회유의 대상인 기업의 객체로 취급되었을 따름이었다. 외국기술을 수입 복사하는 학습의 단계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기업으로 진입하려면 덩치만 크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제품기술과 제조기술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현장근로자의 창발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유령노조와 같은 얄팍한 술수의 경영으로 이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필자는 노조결성운동과 관련해 해직된 몇몇 삼성근로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뜻밖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쫓아낸 기업에 대해 거품을 품고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객관적인 사실을 담담하게 진술하였고 삼성의 이런저런 장점을 이야기해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들은 아직도 삼성을 사랑하고 있었다. 반대로 현직 삼성근로자에게 몇 가지 회사사정을 물어본 일도 있는데 회사의 기밀사항이 아닌데도 겁을 먹고 쭈뼛쭈뼛하였다. 도대체 기업을 사랑하는 노동자를 끌어안지 못하고 일하는 근로자를 주눅들게 만들어서 어디까지 커갈 수 있겠는가. 삼성의 무노조경영을 홍보한 책자를 보면 무노조경영의 장점으로서 최고경영층의 정서적 욕구의 만족을 들고 있는데, 총수 1인의 정서를 위해 다수 근로자의 정서를 억압할 때 그 기업의 장기적 전망이 밝을 수 있을 것인가.

 

  PCS사업과 관련하여 삼성은 해당기업을 국민기업화하겠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기업을 설립하려면 먼저 유령노조와 같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기업을 이끌고가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마누라빼고 다 바꾸자고 신경영을 외치면서 정작 중요한 근로자에 대한 인식이 구태의연하다면 삼척동자도 비웃을 것이다. 밉든 곱든 삼성은 무시할 수 없는 수퍼파워이고 거듭 강조하듯이 삼성이 진정한 의미에서 잘 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잘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삼성의 자발적인 기업민주화선언이나 아니면각계각층의 힘에 의한 삼성민주화운동이 절실한 시대적 과제로 부상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