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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재벌개혁의 결산과 반성 (참여사회 2002년 1월호) - 참여사회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27

 

DJ재벌개혁의 결산과 반성 (참여사회 2002년 1월호)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엔 누굴 찍어야 하나. 지난번 대선에서 필자는 김대중후보 쪽에 투표하였다. 필자 주위엔 경상도출신이 많아 선거가 있던 해에는 피 튀기는 싸움은 아니더라도 침 튀기는 말싸움 자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요즘 그들로부터 필자는 또 공박을 받는다. 요 모양 요 꼴 만들려고 찍었냐고.

 

  그렇다고 필자가 그때의 투표행위에 대해 후회하는 건 아니다. 현실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악(次惡)의 선택이다. DJ는 적어도 한나라당 후보보다는 진보적이었다. 그리고 훨씬 더 진보적인 후보도 있었지만 어차피 당선가능성이 없고, 민중세력에 대한 지지가 반드시 투표행위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필자는 1987년 대선에서 끝까지 단일화하지 않은 DJ에 대해 이미 그 한계는 깨닫고 있었다. 군사정권을 물리친다는 대의를 위해선 더 진보적인 쪽이 양보를 해야 마땅한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DJ는 YS와 같은 속물정치인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나라당 후보에 비교한 차악으로서의 DJ는 적어도 남북한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호남인들의 응어리도 조금은 풀어줄 수 있을 것이므로 그것만으로도 찍어줄 가치가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DJ는 당선되자마자 재벌총수들을 불러모아놓고는 재벌개혁을 일갈하지 않는가. 노사정위원회도 만들어서 서민층에 다가가는 모습마저 나타내지 않는가. 그래서 원래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나 파장에 이른 DJ정책, 특히 필자가 주로 관심을 쏟은 재벌개혁의 대차대조표는 과연 어떤가. 한마디로 역시나이고 허망하기 짝이 없다.

 

  재벌개혁과 관련해서 한 일이라곤 기껏 IMF의 요구에 밀려 취한 몇 가지 조치뿐이다. 그 중 소수주주권과 회계투명성의 강화는 그나마 확실하게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이다. 반면에 계열사보증 해소와 부채비율축소도 단행되었지만 계열사출자 증대로 그 효과는 반감되었다. 부실계열사정리는 엄밀한 의미의 개혁에 포함시키기도 힘든 당연한 조치지만 그것마저 어정쩡한 미봉책으로 끝났다. 그리고 2001년 들어선 출자총액 제한과 금융계열사의결권 제한을 사실상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이 부분에선 IMF사태 이전보다 오히려 더 뒷걸음질치고 있다.

 

  물론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고 주식시장의 평가가 날카로워졌다는 정부나 재계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뜨거운 맛을 봤으므로 이제 좀 조심은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히 정부가 개혁이랍시고 내세울 만한 내용이 아니다. 시장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게다가 급변하는 우리 사회에선 건망증이 국민병이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재벌체제의 고질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도지기 십상이다.

 

  주식시장에서 비중이 급증한 외국자본도 총수의 무능과 부패를 견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삼성총수 3세로의 봉건적 경영세습이 착착 진행됨은 물론이고, 그의 위신을 지킨답시고 허위날조가 자행되는 모습을 보라. 또 현대자동차에선 시장에서 높게 평가받던 전문경영인을 총수가 단칼에 목 치지 않는가. LG총수가 자기 주식을 계열사에 비싸게 인수시킨 작태는 또 무엇인가.

 

  요컨대 재벌의 황제경영과 선단문어발경영은 다소 약화되기는 했으나 본질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 투명성·책임성·전문성을 갖춘 선진대기업으로의 환골탈태를 위해선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었다. 재벌내부의 순위는 어지럽게 바뀌었다. 하지만 국민경제에 대한 재벌의 독재나 재벌과 정계·관계·언론계·학계·법조계의 불륜관계 역시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으며, 삼성의 지배력만 더 두드러졌다. 「재계 개혁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정부는 결코 흐지부지하지 않을 것」이며(1998년 2월 재벌총수와의 간담회),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1999년 8.15 경축사) 맹세는 역시 한낱 정치인의 空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상대적으로 다소 개혁적이었지만 역시 속물 정치인인 DJ에게 지나치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대통령이 비록 개혁적이라 할지라도 그 주변인물들이 반드시 개혁적이었는가. 퇴임 후 계열사사장 자리 하나 받아먹으려는 장관을 비롯한 구태의연한 관료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대통령 당선에서부터 국회운영에 이르기까지 원조 보수인 자민련과 연대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지 않았던가.

 

  지역감정에 사로잡힌 많은 국민들의 반DJ 정서는 또 어떠한가. 시민운동세력이 몸부림쳐본들 정책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와 국회가 마이동풍이 된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빤하지 않은가. 이에 반해 재계는 물론이고 수구언론과 같은 기득권세력은 얼마나 집요하고 또 얼마나 철저한가.

 

  이렇게 본다면 DJ 재벌개혁의 한계는 곧 국민적 역량의 한계이다. 애당초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었고, 이나마 IMF가 뒷받침했기 망정이었던 셈이라고도 느껴진다. IMF정책 중에는 과도한 개방과 금융긴축 등 문제점도 있지만, 재벌개혁 부분에선 힘입은 바도 없지 않은 것이다. 이때까지 정권들이 새롭게 등장하면 재계를 군기 잡는답시고 잠시 재벌개혁의 제스처를 취하다 말았는데 반해 DJ정부는 2년 남짓이나 이 문제를 붙잡고 있었던 것 자체가 가상하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아쉽고 한심한 구석은 있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반성해야 앞으로 새로운 정부든 시민운동이든 재벌개혁을 올바로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개혁주체의 자세이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물들이 개혁주체라면 그들 스스로 솔선수범해야 한다. 1998년 여름 한겨레신문 좌담에서 필자는 대통령이 자택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실업대책기금에 내놔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주위 사람들은 웃었지만 소수파가 그 정도의 실천도 못한다면 기득권세력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감동을 주는 솔선수범은커녕 옷 로비니 무슨 게이트니 하는 판이었으니 어찌 개혁이 되겠는가.

 

  둘째로 개혁전술에 문제가 있었다. 적을 최소화하고 아군을 최대화하는 원칙에 따르자면 재벌개혁의 적은 총수체제로 한정시켜야 하였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의 재벌해체과정을 보아도 그렇고, 재벌개혁의 핵심이 소유·지배구조 개혁에 있다는 점에서도 정부는 개혁역량을 여기에 집중시켜야 하였다. 그런데 몇 명 안 되는 재벌「총수」와 씨름하기보다는 거대한 재벌「기업」과 씨름하는데 힘을 다 써버렸다. 총수들과는 희희낙락하면서 빅딜이니 뭐니 하는 것을 재벌개혁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정부가 주력해야 할 일과 시장에 맡겨도 될 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던 셈이다.

 

  셋째로 개혁의 타이밍문제이다. 강력한 정부라면 이야기가 다를지 모르지만 소수파정권은 적절한 타이밍에 급소를 공략해야 한다. 언론개혁도 마찬가지인데 IMF사태 직후 몇 개월 동안 재벌체제의 정치사회적 헤게모니가 가장 약해졌을 때 총수체제를 혁파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걸 질질 끌었으니 갈수록 정부의 힘은 약해지고 재벌체제의 헤게모니는 점차 되살아났던 것이다.

 

  넷째로 개혁정신의 문제이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개혁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재벌개혁은 「재벌 죽이기」나 「재벌 혼내주기」가 아니라 「재벌 거듭나게 하기」이다. 그래서 재벌기업을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고 재벌총수에 대해서조차 사실은 그들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준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DJ정권은 재벌기업과 재벌총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괜히 미워했다가 알고 보니 괜찮더라 하고 나자빠진 셈이다.

 

  재벌개혁은 이제 기동전이 아니라 진지전 양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지리한 싸움이 얼마나 계속될지 모른다. 하지만 재벌체제의 역사적 시효는 끝났다. 생성-발전-소멸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물론 재벌체제의 소멸이 역사의 필연적 추세라 할지라도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과 희생은 주체적 인간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 우리 모두의 땀과 지혜가 결과를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