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경제의 복고풍은 위험하다 (2001/5/17) - 시사저널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23

 

경제의 복고풍은 위험하다

 

  요즘 복고풍이 유행이다. 흘러간 노래들을 묶은 음반이 인기를 끌어 지하철 안에서도 판매 중이다. 영화 '친구'의 대히트에도 지나간 고교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현대인에게 이렇게 가끔씩 옛날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런 아름다운 복고풍과 더불어 끔찍한 복고풍도 유행하고 있다. 의원 꿔주기와 같은 정상배적 작태나 쉰 냄새 풀풀 나는 3당 정책연합이 바로 그렇다. 야당도 별로 다르지 않아 보수주류 궐기론 등을 통해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판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고 치더라도 경제의 복고풍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다.

 

  IMF사태 이후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사라지고 대마가사(大馬可死)의 시장경제가 자리잡는가 싶었다. 그러나 현대사태에 이르자 정부는 갈팡질팡 어쩔 줄 모르더니 무조건 살린다는 방침을 세워 버렸다. 경제관료들이 서툰 개혁의 몸놀림을 아예 그만두고 익숙한 개발독재 패러다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물론 현대건설이나 현대전자와 같은 기간산업부문 처리는 대단히 신중해야 하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에만 내맡길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기본원칙은 지켜야 한다. 자산 부채에 대한 엄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회생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총수 등에게 부실 책임을 철저히 추궁해야 하며, 지원하더라도 정상적이고 투명한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독 밑이 빠졌는지 어떤지도 제대로 안 따지고 작년부터 퍼부은 지원이나, 부실경영과 분식회계에 책임 있는 총수가 앓던 이 빼듯이 현대건설을 내던지고 다른 계열사를 손쉽게 장악하도록 방치한 일이나, 회사채 신속인수 같은 요상한 제도들을 동원한 것 모두 무원칙의 극치를 나타낸 행태였다.

 

  개발독재 패러다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참여와 협력에 기초한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목표는 언제부턴가 실종되고 대통령은 걸핏하면 노동자 경영참여를 강하게 부정하였다. 이런 강경 분위기가 마침내 일내고 만 것이 4월 10일의 대우자동차 폭력 진압사건이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론 친노동자적이라던 정권에서 이게 무슨 꼴인가.

정부의 '뒤로 돌아 갓' 타령에 뒤질세라 재계의 복고풍 또한 가관이다. 정부의 재벌개혁을 포기시켰으니 이제 성가신 시민단체만 손보면 내 세상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투명성, 책임성, 전문성을 확립하여 재벌기업을 선진 대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참여연대의 재벌개혁운동에 대해 시대착오적 비방과 중상을 본격화한 것이다.

 

  우선 이들은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발전시키자는 재벌개혁 운동을 사회주의로 몰려 하고 있다. 이런 짓거리는 극우세력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이니 웃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을 날조하는 범죄행위까지 태연히 저지르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예컨대 전경련 산하인 자유기업원에선 변동의 '변' 자도 꺼낸 적이 없는 참여연대가 변동환율제를 반대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필자가 '불법 변칙적' 상속을 비판했더니 상속 자체를 매도하는 것처럼 모략하기도 했다.

 

  이처럼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나 총수 비위 맞추는 데 골몰한 재계단체의 한심한 복고풍은 그렇다 치자. 더 기막힌 문제는 노동계도 복고풍에 전염되어 5공 시대처럼 정권타도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정권을 타도하면 한나라당이 노동계를 도와줄 것인가. 아무리 적의 적은 내 편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무슨 주문처럼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고 있는 데에도 사실은 자본주의 타도를 내걸었던 복고풍 요소가 깔려 있다.

 

  모름지기 역사는 일직선적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개혁이 있으면 일시적 퇴행도 있기 마련이다. 그 퇴행의 시기가 되도록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