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대우차 부활과 관련된 몇 가지 명제 2 (2001/5/9) - 인천공청회 발표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21

 

대우차 부활과 관련된 몇 가지 명제 2

(2001. 5. 9 인천 공청회)

김 기 원(방송대 교수, 경제학)


 

1. 정부와 채권단에게는 양동전술이 필요하다.

 

  정부와 채권단은 하루빨리 대우차를 GM에 팔아 넘김으로써 골치 덩어리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워크아웃 이후 계속 빚만 늘어가고, 노동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독자생존(또는 공기업화)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런 정부 채권단의 입장은 이해 가는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냉철하게 판단해서 대우차를 청산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대우차를 살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GM에만 목을 매지는 말고 동시에 독자생존의 길도 모색해야 합니다. 즉 적당히 죽지 않을 만큼만 지원해서 결국 서서히 죽게 만들지 말고, 회생전망이 있다면 확실하게 지원해서 투자와 판매활동이 회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채권단 돈은 결국 국민 돈이니까 함부로 지원해서는 안 되고, 경영혁신과 내부단결을 요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전제하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경영혁신과 내부단결을 토대로 제대로 된 투자활동이 확보될 때, 매각하더라도 좋은 조건에 매각할 수 있고 매각이 무산되더라도 대우차가 생존 발전하여 채권단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특히 GM 인수가 불투명하고, 분할 매각과 같은 나쁜 조건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선 이런 양동 전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2. 해외매각의 조건을 둘러싼 협상과 투쟁의 문제

 

  해외매각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경영혁신과 내부단결을 저해하는 해외매각반대 투쟁은 오류입니다. 예컨대 GM 매각 반대 결사대를 미국에 파견하여 미국 내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대우차의 미국수출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하는 식의 해외매각반대 투쟁을 한다면 이는 본말을 전도한 투쟁입니다.

 

  그러나 해외매각의 조건을 둘러싼 협상과 투쟁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5월 7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대로 GM이 군산공장과 대우자판만 인수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현 상황에서는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매각에 반대하고 보다 나은 조건을 요구하는 협상과 투쟁은 합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방식에선 뱀과 같은 지혜와 버들가지 같은 유연성이 필요하겠지요.

이렇게 해외매각을 결사 반대하는 입장과 해외매각 조건을 따지는 입장을 분별하지 못하면 대우차는 현재의 가사상태에서 무덤 속에 파묻히는 길로 갈 것입니다. (분별 1: 해외매각 반대투쟁과 해외매각 조건투쟁의 분별)


3. 쓸데없이 자꾸 적을 늘리지 말자

 

  경영혁신과 단결을 위해선 쓸데없는 적 만들기를 중단해야 합니다. 대우차가 도산하고 경영이 정상화되지 않는 것은 시장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큰 적은 시장입니다. 그런데 시장경제란 하나의 시스템이고 이는 보이지 않는 적이고 싸우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정부 노조 등 경제주체들이 헤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적이 잘 보이지 않는 싸움이므로 사람들은 억지로 뭔가 보이는 적을 만들어 내려 고 애씁니다. 김우중씨가 도산에는 결정적인 책임이 있지만 경영정상화를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나 채권단이 무능하여 적극적인 경영정상화를 추진하지 못하긴 했지만, 후술하듯이 그렇다고 대우를 망치자고 작심한 것도 아닙니다.

 

  노조도 과도한 해외매각 반대투쟁과 경영정상화에 대한 비협조의 책임이 있긴 하지만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엉뚱하게 정부 채권단이 노조를 적으로 생각하고, 노조는 정부를 적으로 생각하여 모든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기 바쁜 상황은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정부 채권단 경영진 노조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때까지의 대우차 처리에서나 대우차 해고자 폭력진압에서와 같은 적대적 관계가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듭 강조하듯이 시장이 적이므로 정부 채권단 경영진 사무직 생산직이 모두 머리와 가슴을 맞대야 합니다. 다만 아마도 더 절박한 대우내부가 앞장서서 이런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려고 노력해야 정부 채권단도 마지못해 따라 오겠지요. (분별 2 : 적대적 투쟁과 비적대적 투쟁의 분별)


4. 정부의 해외매각 신앙론

 

  정부 채권단과 노조의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선 물론 정부 채권단 쪽에서 벼랑에서 떨어진 해고자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노조 쪽에서도 음모론적 발상에 기초하여 정부 채권단을 몰아붙여서는 곤란합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우차 해외매각에 환장해서 GM에 매각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 정부의 정책엔 해외매각 지상주의적 요소가 강하고 이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종속국이기는 하지만 식민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분별 3 : 종속국과 식민지의 분별). 그래서 정부는 내국자본이나 지역경제와 밀접히 관련된 자동차 처리에서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그렇게 음모론적으로, 또 해외매각 광신도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컨대 기아차의 경우 원래 포드는 아시아자동차를 떼 내고 기아차만 인수하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시아자동차가 브라질과 맺은 계약(자동차공장 건설 약속 하에 관세혜택을 받고 수출했음)이 대단히 골치 아픈 내용이라서(그 공장건설은 전망이 없는 것이었음), 포드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지역경제를 고려해야 했고 그 때문에 포드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드가 결국 실격이 된 것입니다. 해외매각을 위한 광신도라면(우리가 식민지라면) 정부가 지역경제 따위 고려할 필요 있었겠습니까.

대우차와 관련해서도 일관되게 정부는 해외매각에만 몰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비밀과 관련된 내용이라서 자세히 쓰지는 않겠습니다만, 국내 일부업체들과 의사타진이 있었는데 그 업체들 쪽에서 다 포기하였습니다. 정부가 그 업체들을 포기시켰다는 것은 내막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컨대 정부는 해외매각 신앙도 있었지만 대우차와 관련해선 그뿐만이 아니라 마땅한 국내 인수업체도 없고, 공기업화에 대해선 성공가능성과 여론의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해외매각에 나선 것입니다. 공기업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해외매각신앙 때문이 아니라 정부 나름의 상식적 판단에 의거한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정부와 어떻게 협상하고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하는 지혜로운 전술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본인이 친정부 인사라는 공격이 더 강해지겠지요. 과거 정부에 대해 비판하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비판하던 것과 똑같은 태도를 요즘은 거꾸로 노동계 및 진보진영 일각에서 갖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분별 4 ; 정부 인식론과 정부 변호론의 분별)


5. 사실을 왜곡해서는 곤란하다.

 

  전술한 인신공격 따위는 그냥 넘어갑시다. 사람들이 몰리면 악만 남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해외매각 반대론에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입니다(분별 5 : 진실과 선동의 분별).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1) [국민의 70%가 해외매각에 반대한다] : 여론조사방법도 문제이지만 국민이 대우차 처리라는 어려운 문제에 어떻게 제대로 답을 내리겠습니까. 미적분 문제를 초등학생들의 다수결로 답을 정하자는 이야기가 아닐까요.(국민의 상식을 가지고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우기면 할 말이 없습니다.) 만약에 대우차의 자산 부채 실태가 알려진 지금 국민 여론조사로 대우차 청산이 다수의견으로 나오면 청산할까요.

 

2) [학계 의견에서 공기업화가 다수이다] : 그 학계라는 게 어떤 학계이며, 또 어떻게 조사했을까요. 혹시 수천, 수만 명되는 학계에서 몇 백 명 서명 받은 걸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3) [정리해고의 절감효과보다 노조 자구안의 절감효과가 더 크다] : 정리해고의 절감효과(623억)보다 노조 자구안의 절감효과(1825억)가 더 크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매년 계속적으로 절약된 금액과 1회성 절약금액을 단순 비교한 오류로 보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과연 조합원이 1인당 800만원씩 부담할 의사가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아에선 이렇게 협상안으로 내놓은 게 아니라 기아살리기 차원에서 아예 1인당 1,000만원씩 내놓았습니다. 따라서 대우차 노조에선 실행의지도 별로 없으면서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단순한 투쟁전술로 이런 자구안을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드는 바입니다.

 

4) [대우차의 부실심화는 정부 채권단의 악선전 때문이다] : 정부 채권단에게 경영혁신을 추진하지 않은 과오는 있습니다만, 부실심화의 주요 원인을 정부 채권단에게 떠넘기는 책임회피 전술은 곤란합니다. 기업이 워크아웃과 부도에 들어가면 기업질서와 생산 판매기반이 흔들리므로 경영이 날로 악화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입니다. 특별히 누구 탓 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미 대우는 워크아웃 이전에 수조원의 적자를 누적시켜 온 부실한 회사이므로 경영이 근본적으로 혁신되지 않는 한 부실이 어떻게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정부의 악선전 영향은 대우노조의 김우중 체포조가 끼친 영향과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경영혁신을 추진하지 않는 책임은 정부 채권단과 경영진 사무직 노조 모두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악선전 영향을 뻥튀기해서는 곤란하겠지요.


6. 내부단결을 위한 첨언

 

  이 부분은 이미 여러 기회에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정리해고자 처리 문제와 관련해서만 한 마디 첨언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정리해고자를 복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은 노조 측에서 인식하되(노조운동으로 인한 해고자 복직문제와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생산이 회복되는 수준에 따라 복귀시키는 계획을 경영진 노조가 협의하여 수립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야 해고자도 분명한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걸 전제로 내부가 일치단결할 수 있습니다.

 
7.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자

 

  최악의 시나리오들에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겠지요

 

1) GM이 군산공장과 대우자판만 인수한다고 했을 때 : 제가 공장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아마 이 경우엔 노조뿐만 아니라 경영진 사무직 전체의 반대에 부딪쳐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앞으로 대우차의 상황이 자꾸 더 나빠지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2) 1)에 의해서건 다른 이유에 의해서건 GM이 인수포기를 선언하고 그에 따라 만약에라도 판매가 급감할 때 : 현재는 GM의 인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내외 판매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꼭 그럴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GM의 인수 포기로 국내외 판매가 무너지는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제발 그럴 때에도 남의 탓하는 일은 그만 두고)

 

3) 더 나쁜 상황으로서, GM이 포기하고 법원이 청산을 결정할 때(또는 GM의 군산공장이나 창원공장 인수를 위해 법원이 청산을 결정할 경우)

이런 최악의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만의 하나라도 법원이 청산결정을 내리면 이건 참으로 대처하기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정부와 또 달라서 법원의 결정에 저항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항소절차 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어떤 사태에서도 중요한 것은 내부가 단결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물론 정부 채권단은 모두에서 서술한 양동전술에 따라 내부의 경영혁신과 단결을 전제로 적극적인 지원을 고려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