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대우차 해결과 관련된 몇 가지 명제(2001/4/6) - 인천시민단체공청회발표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19

 

대우차 해결과 관련된 몇 가지 명제

 

2001. 4. 6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1. 부상병 치료를 잘 해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대는 무엇보다 부상병 치료를 잘 하는 군대입니다. 부상병 치료를 잘 해줘야 안심하고 열심히 싸우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장과의 싸움(또는 자본과의 싸움)에서 부상당한 실업자를 잘 처리하는 나라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 부상병 처리는 우선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선진국 중 유럽에선 충실한 사회보장제도로써, 그리고 미국에선 새 일자리 찾기의 용이성으로 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IMF사태 이후 사회보장제도의 강화로 과거에 비해선 상당히 나아졌으나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따라서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대우차에서 희망센터를 운영하고, 이종대 회장이 호소편지를 보낸 것도 그 일환이겠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실직자의 일자리 알선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천시와 같은 지역자치단체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직자를 다시 공장에 불러들이는 것입니다만 이에 대해선 나중에 언급하겠습니다.

 

2. 페스트는 기도를 통해 치료되지 않는다.

 

  중세 유럽에선 페스트가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잘 몰랐던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병에서 나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군데 모임으로써 오히려 병을 더 전염시키고 피해도 컸습니다.

 

  대우차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우차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접근한다면 문제는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을 통해 정리해고자를 다시 공장에 불러들이려 하는 움직임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데모를 통해 김대중정권을 퇴진시키고 노동자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민중정권을 수립할 수 있다면, 정리해고조치도 무효화시킬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고 실제 투쟁을 지도하는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혹시 정부가 정권퇴진투쟁에 겁을 먹고 양보해서 정리해고를 취소시키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으나 현실성이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의 총파업만큼 강력한 투쟁이 전개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대우차문제만 놓고 그런 투쟁이 전개될 리 만무하고, 설사 전개된다 하더라도 의사만큼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양보할 턱이 없습니다.

 

  요컨대 정리해고자의 복귀는 투쟁을 통해서라기보다 현대차에서처럼 경영정상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3. ‘회사가 망했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IMF사태 이후 대기업이 망하는 일이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주 옛날에 대기업이 망한 일이 없지는 않았으나 1980년대 이후 노조가 있는 대공장이 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따라서 종업원과 지역사람들은 황당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망했다 하더라도 1999년 8월 워크아웃 이후엔 그런 대로 월급도 나왔으므로 체감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작년 하반기부터 월급이 밀리고 부도가 나고 정리해고가 강행되면서 비로소 ‘회사가 망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시장경제에선 회사가 망하면 그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청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사장은 보통 알거지가 되고(물론 돈을 빼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업원들도 제 갈길 찾아 나서게 됩니다. IMF사태 이후 발생한 많은 실업자들도 이런 운명을 겪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경우엔 대기업에선 국가(또는 국가가 소유한 은행)가 떠맡는 경우도 있고 이 때문에 대우차의 여러 해법이 등장한 것이지요. 그러나 국가 등이 떠맡는 경우엔 그럴만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청산해도 할 말 없는 것이 시장경제입니다.

 

  대우차 종업원들은 묵묵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데 무슨 날벼락이냐고 말합니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아무 죄도 없는 게 아닙니다. 엉터리 경영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거나 다른 회사에 뒤지지 않은 품질과 디자인과 가격을 만들어내지 못한 죄가 종업원에게도 전혀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큰 죄는 직장을 잘 못 선택한 죄입니다. 이는 도덕적인 죄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선 엄청난 죄이고 회사가 망하면 그 값을 치러야 하는 죄입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골치 아픈 제도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자본주의를 쓰러트릴 수 없는 만큼 여기에 어느 정도 적응해야 합니다.

 

4. 현대-기아와 대우차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현대에서도 정리해고 파동이 있었고 기아도 부도가 났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경영상태에 큰 이상이 없었으며, 기아는 부도 후 금융권의 신규자금 지원 없이 버텨 나갔습니다. 이 두 회사와는 달리 대우는 워크아웃 이후 돈 먹는 하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정부(결국 국민)에게 잘 보이지 못 하면 국물도 없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대우차 노조는 마치 정부로부터 당연히 받을 돈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정부가 대우차 종업원을 계속 지원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대우차 종업원도 국민의 일원이니까 그저 국민의 사회보장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를 상대로 심하게 싸우는 것은 지하철에서 거지들이 승객에게 한 푼 적선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돈 내놓으라고 고함치는 것과 그다지 다른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망한 대우차가 정부-채권단에게서 돈을 요구하려면 장래의 비전을 보이고 설득을 해야지 투쟁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약간의 전술적 투쟁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르지만, 정부-채권단을 적으로 돌려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5. 망한 회사의 최우선 목표는 ‘회사 살리기’이다.

 

  따라서 회사가 망했을 경우의 종업원 특히 노조의 대응방식은 회사가 그런 대로 돌아갈 경우와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회사가 망했다는 것은 수익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고,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청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철처럼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없으면 많은 국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존속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우차의 경우 대우차가 없더라도 현대차가 있으니까 계속 존속시켜야 할 당위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물론 대우차를 바로 죽이면 지역경제의 피해 등이 있으니까 당장 죽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수익을 낼 전망이 희박하다면 서서히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부산의 신발공단도 사라진 셈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떠맡든(GM이든 정부든) 떠맡아서 잘 될 것 같은 희망이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망하기 전에 이윤을 내는 회사에선 그 이윤의 분배를 둘러싸고 노사대립이 있을 수 있지만 망한 회사에서는 다릅니다. 이윤을 가져갈 주체가 없기 때문에 ‘使’(자본가)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경영진과 사무기술직과 생산직 사이의 역할 분담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회생하지 못하고 결국 쓰러지는 회사에선 과거의 타성에 젖어 경영진은 ‘사’의 행태를 지속하고 노조는 ‘노’의 행태만 고집합니다. 사실 모두가 ‘노’고 모두가 ‘사’임을 자각할 때에만 망한 회사는 부활합니다. 크라이슬러나 기아차 말고도 매스컴에 등장하는 회생의 예들을 보십시오. 적어도 회생할 때까지는 공평한 고통분담 속에 노사구별이 별로 없습니다.

 

6. 해외매각반대 투쟁은 일차적으로 현대차 살리기이다.

 

  대우차 해외매각 반대투쟁은 우선 확실하게 현대차를 위한 투쟁입니다. 만약에 포드나 GM이 대우차를 인수하여 국내시장을 잠식하면 현대차가 위태로워집니다. 특히 현대차는 지금은 잘 나가고 있지만 정몽구의 경영세습 이후 많은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고 이런 상황에서 GM등의 대우차 인수는 현대차에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차가 잘만 한다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처럼 대우가 비실비실한 상황에서 현대가 독주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요. 현대차에게 제일 좋은 것은 GM도 인수하지 않고 정부도 돈을 제대로 대주지 않으면서 대우차가 망해가는 것입니다.

 

  대우차 해외매각 반대 글을 신문에 썼던 재계간부는 현대차 쪽에 아주 가까웠던 사람이라는(MK의 왕자의 난과도 관련 있었음)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그밖에도 현대차를 위한 해외매각 반대투쟁의 증거가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만 굳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대우차가 망하는 것과 현대차가 망하는 것 중에서 한국자동차산업과 한국경제를 위해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동안 발언을 삼갔습니다. 그러나 현대차가 위태롭지 않도록 대우차를 망하게 한다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일이고, 대우차를 발전시키면서 현대차가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7. GM의 인수는 대우차를 망친다고 일방적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대우차 GM매각 반대의 논거는 하청생산기지화와 중도철수 가능성, 경직적 노사관계입니다. 거기다가 요즘엔 부평공장 폐쇄 건도 걸려 있습니다. 부평공장 문제는 뒤에 다루기로 하고 다른 문제를 살펴봅시다.

 

  첫째 하청기지화 가능성입니다. 제대로 기술개발 능력을 키우지 않고 해외거점도 위축시킬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적어도 현대차처럼 독자적으로 풀 라인으로 발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전에 GM이 대우차와 합작했을 때와 같이 기술을 이전하지 않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대우차를 인수한다면 합작 당시와는 달리 소형차 생산기지로 키울 생각으로 대우를 인수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선 최소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맡게 설계나 디자인을 변경시킬 정도의 기술개발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우차가 스스로 개발한 기술은 아니더라도 고급기술이 들어와 대우차를 발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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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로 중도 철수 가능성입니다. 영국의 로버 예를 들어 이런 위험성을 많이 지적합니다. 그러나 영국의 외국자본 자동차공장 중엔 철수하지 않는 곳도 많이 있고, GM의 해외공장 중 오래 계속되고 있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도철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것을 과장해서는 곤란합니다. 대우차를 인수해서 경영을 혁신하고 한국에 적응을 잘 하면 계속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가겠지요. 이런 식의 경영철수는 외국기업이나 한국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셋째로 대립적 노사관계의 문제입니다. 현재 GM은 확실히 포드보다는 노사관계가 나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공장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전근대적인 노사관계보다는 근대적인 노사관계이므로 될 것은 되고 안될 것은 안 되는 분명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전에는 얼렁뚱땅 넘어가던 노사관계가 달라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노조도 뭔가 달라지긴 달라져야 것입니다. 하지만 노조도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요구할 것은 확실히 요구한다는 분명한 자세를 취하면 반드시 대립적인 관계가 일상화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와 같이 GM인수는 여러 가지 위험성을 안고는 있습니다만 이야기되는 만큼의 위험은 아니고, 또 중요한 것은 GM인수의 위험성을 GM이 인수 안 할 때의 위험성과 비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후자의 위험성은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한편 대우차 노동자들이 왜 해외매각 반대투쟁에 나섰던가를 따져봅시다. 제 생각엔 기본적으로는 현재 상태를 지키려는 의도였다고 보여집니다. GM이 들어와서 뭔가 변화를 추구하면 고용이 불안정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런 우려는 지금은 GM이 인수도 안 하고 독자생존도 어려워져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선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8. 정부가 해외매각 신앙을 갖고 있다면 해외매각반대 투쟁도 해외매각반대 신앙에 사로잡혀 있다.

 

  해외매각 반대투쟁을 부추기는 입장에서는 정부가 해외매각 신앙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정부는 IMF사태 이후 지나치게 외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것을 신앙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기아차 매각의 경우엔 정부가 포드에게 주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삼성에게 갈 뻔하다가 현대가 인수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우차의 경우엔 국내에서 누군가 인수할 기업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할 수 없이 외국에 넘기려고 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이것을 해외매각 신앙이라고 한다면 제 생각엔 해외매각 반대투쟁자들은 이보다 더 중증의 해외매각반대 신앙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포드가 GM보다 낫기는 하지만 포드는 괜찮은데 GM은 절대 안 된다는 논리도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 해외매각 반대 투쟁자들은 포드인수를 지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외매각 반대신앙의 신도 중에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앙을 빙자해 현대차의 이익을 도모하는 무리가 전혀 없지 않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 정부의 과오는 해외매각 신앙에 사로잡혀 있던 점이라기보다는 해외매각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해외매각이면 만사오케이라고 구조개혁을 전혀 추진하지 않았던 점입니다. 해외매각반대 신앙의 오류도 해외매각 반대한다고 필요 이상으로 경영진이나 정부와 마찰을 빚었고, 해외매각반대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구조개혁도 하지 않았던 점입니다.

 

9. GM이 인수 안 할 때에 대비해야 한다.

대우차는 GM이 인수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GM이 인수 안 할 것 같아서 문제입니다. 포드로부터 버림받고 GM으로부터도 버림받아 처량한 신세가 되기 십상입니다. GM매각반대 투쟁이 아니라 GM인수 운동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GM매각 반대투쟁을 할 게 아니라 GM이 인수 안 하더라도 살 수 있는 궁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GM이 인수하지 않더라도 살 정도의 자세를 갖추어 놓으면, GM이 인수하기도 쉽고 인수해서 쉽게 철수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부가 똘똘 뭉치고 경영을 혁신하고 좋은 차를 만드는데 우선 노력해야지 장단점을 잘 알 수도 없는 해외매각에 대한 반대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 일입니다. 

 

10. GM이 인수 안 할 때에 어떻게 대비하는가 - 공기업화 문제.

 

  내부가 똘똘 뭉치고 경영을 혁신하고 좋은 차를 만드는 데 노력하는 길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채권단이 신차 개발자금을 줄 지 모릅니다. 이런 일은 하지 않고 돈 내놓으라고 고함을 친들 돈을 내놓을 리 만무합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뻔히 떼일 돈을 제공해서 나중에 자신들의 목이 날라 갈 판에 누가 내놓겠습니까. IMF사태 이후 은행원들의 30% 이상이 정리해고 당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십시오.

 

  물론 내부가 똘똘 뭉쳐본들 채권단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을 가능성은 큽니다. 그러나 그래야 적어도 일말의 희망은 있고, 또 돈을 못 받더라도 살아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채권단이 노조의 경영혁신안대로 확대경영을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채권단의 어느 바보가 대우차의 뭘 믿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대우차는 현대, 기아보다 뒤떨어진 회사라는 점을 자각합시다.

 

  노동계 등에선 GM인수의 대안으로 공기업화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공기업화는 대안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경우의 방안으로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찔끔찔끔 당장 죽지 않을 정도의 자금만 지원한 현재상태가 공기업이고 이게 별 신통한 대안이 아님은 다 알고 있습니다. 노동계 등이 주장하는 공기업화는 현재상태가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돈을 화끈하게 제공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계속 강조했듯이 내부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정부로서도 명분이 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고함지르기에 앞서서 해야 할 일부터 확실히 해 놓아야 합니다. 물론 내부혁신이 이루어지더라도 정부가 화끈하게 돈을 제공하리라는 보장은 그다지 크지는 않습니다.

 

11. 왜 대우차에게는 현대식으로 지원 안 하는가.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등 정몽헌씨 계열사에 정부는 막대한 돈을 퍼부었습니다. 이게 옳은 일인가 어떤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대우차에게도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여부만 따져 봅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똘똘 뭉치고 경영혁신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을 키운 만큼의 시공력을 갖춘 우리 나라 최고의 건설회사입니다. 대우차는 거의 항상 꼴찌였고 흑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대건설 등은 대북사업과 관련이 있고 정치권과의 유착도 클지 모릅니다.

 

  대우차는 지금 정치권과 거래를 할 주체도 없습니다. 현대계열사 지원에도 말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무슨 논거로 대우차를 적극 지원하겠습니까. 똘똘 뭉치고 경영혁신을 앞장서서 하면 그나마 적극 지원을 할 명분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도 가능성은 많아야 50%일 것입니다. 데모한다고 돈주지 않습니다. 현대도 데모해서 돈 받은 게 아닙니다. 사회보장 차원의 소극지원 정도는 하겠지요. 그러나 그 정도 소극지원으로선 결국 죽음의 길입니다.

 

12. GM과는 무엇을 협상해야 하는가

 

  우선 경영진과 사무기술직, 노조가 힘을 합쳐 노사관계를 안정시킨 다음에 GM과의 협상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물론 고용, R&D발전, 부평공장 문제 등이겠지요. 이에 대해서 최대의 요구를 반영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매각 가격문제는 대우차 측이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일반 국민이 문제제기해야 할 부분입니다. 헐값 매각을 통해 손해보는 것은 채권단 즉 국민이지 대우차 구성원이 아닙니다.

 

  GM이 헐값으로 사면 살수록 대우차에 대한 투자자금의 여유가 커지고 이는 대우차 구성원에게는 직접적으로 이득입니다. 국민을 위해 투쟁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제 코부터 닦으십시오. 그러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국민을 위해 투쟁하십시오. 이런 식의 국민을 위한 목소리로써 채권단 지원 확대를 기대하는 것도 안이한 생각입니다.

 

13. 부평공장 폐쇄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는 솔직히 제대로 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막연한 생각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우선 이 상태가 계속되면 인위적인 폐쇄가 아니라 저절로 제일 먼저 부평공장이 문을 닫을 것 같습니다. 부평공장 가동률이 현재 30%를 밑도는데 이게 20%, 10%로 점점 떨어져 가면 그게 바로 공장폐쇄입니다. 그러니까 부평공장 폐쇄반대 데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장가동률을 높일 수 있도록 경영혁신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GM이 부평공장 폐쇄를 인수조건으로 내걸 때입니다. 이 때엔 물론 일단 반대를 해보고 그게 안 되면 5-10년 정도의 장기적 공장이전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자신 없음). 어쨌든 우선 중요한 것은 경영혁신이라는 점입니다.

 

14. 똘똘 뭉치려면

 

  우선 노조상급단체가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투쟁을 통해 정리해고를 철회시킬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하는 투쟁은 적어도 대우차 문제에선 투쟁을 위한 투쟁입니다. (물론 이런 투쟁을 통해 정부가 다른 사업장에서 구조조정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는 있겠지요. 그러나 이는 정부의 반동을 불러올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돈 내놓으라고 억지쓰면 돈 내놓을 것으로 착각하는 운동도 중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금속연맹이나 민주노총과 대우차 노조가 회사와의 협상에 들어가서 노사관계를 정상화시키고 경영진·사무기술직·노조가 머리와 가슴을 맞대야 합니다. 인천지역인사나 정치인들도 여기에 한 몫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해고자들에 대한 뒷수습을 될 수 있는 대로 깔끔하게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리콜 조항도 삽입하도록 요구해야겠지요.

 

  경영진도 대오각성해야겠지요. 빨리 경찰력을 철수시키고 구성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당에 가서 48시간 정도 침식을 같이 하면서 아픈 마음들을 달래주려는 정도의 자세도 필요합니다.

  똘똘 뭉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2년 전부터 이 이야기를 했는데 전혀 진전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대우차를 절망공장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여기에 변화가 없다면 대우차는 정말로 절망에서 죽음으로 갈 것입니다.

 

  자금력과 기술력에서 뒤떨어진 대우차가 적어도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이 되려면 GM을 통해 자금과 우수한 기술을 도입하든가 아니면 노사가 똘똘 뭉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대우차 내부구성원은 무기력과 체념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를 위해선 경영진, 사무기술직, 노조의 근본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합니다. 외부에 크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내부가 잘 해야 그나마 외부도 약간의 도움이 됩니다.

 

 

대우차 부활을 위하여 (한겨레신문 2001. 3. 27)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대우차는 절망공장이다. 가동률은 부도이후 더욱 떨어져 부평공장의 경우 30%를 밑돌고 있고, GM으로의 매각전망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이런 가운데 수천 명의 전경이 공장에 진을 쳐서 군사정권시의 암울했던 대학캠퍼스를 방불케 한다. 반면에 정리해고당한 근로자 중 일부는 산곡성당에서 일부는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묘수풀이는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여기서는 기본원칙을 점검해 보자.

 

  첫째로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우차는 망한 회사이고 워크아웃 이후 금융권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해 왔다. 이런 회사가 살아나려면 다른 회사에 못지 않게 좋은 품질의 차를 싸게 만들어서 수익을 남기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구조개혁을 해야 하고 인원조정도 그 불가피한 일환이었던 셈이다. 물론 무급순환휴직 등 보다 원만한 해결책을 무시해버린 정부·채권단·경영진에게 문제는 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정권퇴진투쟁으로 원상회복시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대차에서 보듯이 경영정상화를 통해서만 쫓겨난 종업원들이 다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 김우중씨도 당연히 체포해야 하지만 체포한들 대우차경영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회계분식한 22조는 주로 적자은폐나 뇌물공여와 관련된 것이고, 그렇지 않고 빼돌린 돈이 있더라도 채권단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둘째로 대우차 내부가 뭉쳐야 산다. 대우차 밖의 사람들은 대우차 내부사람들만큼 절실하지 않다. 정부는 현재 대우차를 책임지고 챙기는 곳도 희미하고, 채권단은 대우차가 어찌됐든 돈을 회수하는 데에만 관심 쏟는다. 상급노조단체들도 대우차투쟁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투쟁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이상으로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대우차에 삶 전체를 내맡기고 있는 경영진, 사무기술직, 생산직이 똘똘 뭉치지 않으면 싹수가 노랗다. 쌓인 옛 감정은 빨리 떨치고 머리와 가슴을 맞대야 한다.

 

  원래 노사관계는 상호대립과 상호의존의 양면성을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주요 측면이 달라진다. 망했고 총수도 도망간 대우차와 같은 경우엔 상호의존의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관성에 젖어서 과거 식의 노사갈등을 계속해선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연봉 1달러로 크라이슬러 재건을 지휘한 아이아코카처럼 고통을 함께 하는 단합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아차재생에도 기아차내부 구성원의 주인의식과 단결이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잊지 말자. 깨진 쪽박으로는 동냥도 받을 수 없다.

 

  셋째로 찬밥 더운밥 지나치게 따지지 말자. 해외매각보다 독자발전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더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리하게 뻗대다간 쪽박마저 놓친다. 지상명제는 경영정상화이고 나머지는 다 수단이다. 따라서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죽기를 원하는 것은 민주화투쟁 때의 일이다. 시장과의 싸움에선 뱀과 같은 지혜와 버들가지와 같은 유연성이 필요하다.

 

  해외매각과 독자생존 어느 쪽을 모색하더라도 대우차에겐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다. 오늘의 상황을 초래한 부실한 리더십, 뒤떨어진 기술수준, 비생산적인 노사관계를 환골탈태시키지 않으면 빨리 죽든 천천히 죽든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공기업화도 국민 돈을 무작정 쏟아 붓는 식이라면 성사될 턱이 없다. 찬밥 더운밥 따지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밥값을 마련하는 일 즉 피나는 구조개혁이다.

 

  요컨대 냉철한 현실인식, 대동단결, 지혜와 유연성이 대우차 회생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이게 갖춰지도록 대우차내부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노력해야 한다. 외국자본 눈치 살피느라 노동자들에게 본때를 보이라고 경영진을 압박하는 정부·채권단이나, 투쟁을 위한 투쟁을 부추기고 억지만 부리면 다 될 듯이 무책임하게 지도하는 노동계일각은 대오각성해야 마땅하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대우차를 죽음의 전형이 아니라 부활의 모범으로 바꾸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