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대우차 부활을 위하여 (2001. 3. 27 한겨레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17

 

(2001. 3. 27 한겨레신문)

대우차 부활을 위하여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대우차는 절망공장이다. 가동률이 부도이후 더욱 떨어져 부평공장의 경우 30%를 밑돌고 있고, GM으로의 매각전망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이런 가운데 수천 명의 전경이 공장에 진을 쳐서 군사정권 때의 암울했던 대학캠퍼스를 방불케 한다. 반면에 정리해고당한 근로자 중 일부는 성당에서 일부는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세세한 묘수풀이는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여기서는 기본원칙을 점검해 보자.

 

  첫째로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우차는 망한 회사이고 워크아웃 이후 금융권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해 왔다. 이런 회사가 살아나려면 다른 회사에 못지 않게 좋은 품질의 차를 싸게 만들어서 수익을 남기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구조개혁을 해야 하고 고용조정도 그 불가피한 일환이었던 셈이다. 물론 무급순환휴직 등 보다 원만한 해결책을 무시해버린 정부 채권단 경영진에게 문제는 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정권퇴진투쟁으로 원상회복시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대차에서 보듯이 경영정상화를 통해서만 쫓겨난 종업원들이 다시 회사에 들어올 수 있다. 김우중씨도 당연히 체포해야 하지만 체포한들 대우차경영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회계분식한 23조는 주로 적자은폐나 뇌물공여와 관련된 것이고, 그렇지 않고 빼돌린 돈이 있더라도 채권단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둘째로 대우차 내부가 뭉쳐야 산다. 대우차 외부사람들은 대우차 내부사람들만큼 절실하지 않다. 정부엔 현재 대우차를 책임지고 챙기는 곳도 희미하고, 채권단은 대우차가 어찌됐든 돈을 회수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다. 상급노조단체들도 대우차투쟁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투쟁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이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대우차에 삶 전체를 내맡기고 있는 경영진, 사무기술직, 생산직이 똘똘 뭉치지 않으면 싹수가 노랗다. 쌓인 옛 감정은 빨리 떨치고 머리와 가슴을 맞대야 한다.

 

  원래 노사관계는 상호대립과 상호의존의 양면성을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주요 측면이 달라진다. 망했고 총수도 도망간 대우차와 같은 경우엔 상호의존의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관성에 젖어서 과거 식의 노사갈등을 계속해선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연봉 1달러로 크라이슬러 재건을 지휘한 아이아코카처럼 고통을 함께 하는 단합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아차재생에도 기아차내부 구성원의 주인의식과 단결이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잊지 말자. 깨진 쪽박으로는 동냥도 받을 수 없다.

셋째로 찬밥 더운밥 지나치게 가리지 말자. 해외매각보다 독자발전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더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리하게 뻗대다간 쪽박마저 놓친다. 지상명제는 경영정상화이고 나머지는 다 수단이다. 따라서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죽기를 원하는 것은 민주화투쟁 때의 일이다. 시장과의 싸움에선 뱀과 같은 지혜와 버들가지와 같은 유연성이 필요하다.

해외매각과 독자생존 어느 쪽을 모색하더라도 대우차에겐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다. 오늘의 상황을 초래한 부실한 리더십, 뒤떨어진 기술수준, 비생산적인 노사관계를 환골탈태시키지 않으면 빨리 죽든 천천히 죽든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공기업화도 국민 돈을 무작정 퍼붓는 식이라면 성사될 턱이 없다. 찬밥 더운밥 따지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밥값을 마련하는 일 즉 피나는 구조개혁이다.

요컨대 냉철한 현실인식, 대동단결, 지혜와 유연성이 대우차 회생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이게 갖춰지도록 대우차내부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애써야 한다. 외국자본 눈치 살피느라 노동자들에게 본때를 보이라고 경영진을 압박하는 정부 채권단이나, 투쟁을 위한 투쟁을 부추기고 억지만 부리면 다 될 듯이 무책임하게 지도하는 노동계일각은 대오각성해야 마땅하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대우차를 죽음의 전형이 아니라 부활의 모범으로 바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