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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5.10 추억의 글-- 동독과 북한: FKK, 교회, 고문

동숭동지킴이 2018. 5. 10. 08:54

<동독과 북한: FKK, 교회, 고문>


어제 독일어를 공부하다 재미 있는 사실을 발견해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선 첨부된 사진을 보시고, 아니 윤창중이 미국에서 스캔들(외교 참사?)을 일으키더니, 이 양반도 정신이 나갔나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진은 독일의 유명한 FKK(Freikörperkultur: 번역하자면 '자유로운 몸의 문화') 사진입니다. 다시 말해 해변에서 남녀가 누드 상태로 즐기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 서독과 동독 어느 지역에서 이런 FKK가 발달되었을까요. 아마도 많은 분들은 당연히 '서독'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자유가 넘치는 서독에서만 이런 광경이 벌어질 수 있지, 독재체제인 동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답은 '동독'입니다. 서독에서는 남녀 혼탕사우나는 있었지만 해변의 누드 문화는 없었습니다. 반면에 동독에서는 이런 FKK가 1982년에 공식적으로 40군데였고, 통일되기 직전인 1988년에는 60군데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요. 저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 동독은 사실 우리가 공산주의 체제라고 하면 갖는 통념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건 사물이나 사회를 선입견으로 바라보는 것의 위험성을 잘 드러냅니다.

우선 동독에서는 북한과 달리 교회가 상당한 활동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Leipzich의 니콜라이 교회에서 동독 체제를 무너뜨리는 반정부시위가 시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 '타인의 삶(Das Leben des Anders)'을 보고 제가 놀랐던 것은 반정부 인사에 대해 육체적 고문을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주인공이 마약을 하고 있는 사실로 앞으로 배우경력이 망쳐질 수 있다는 걸로 협박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문의 부재는 제가 동독 지역의 슈타지(국정원 같은 곳) 박물관을 방문해서도 확인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는 고문이 만연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근태씨에 대한 고문이지요. 그리고 미군은 아직도 이라크나 관타나모에서 고문을 자행하고 있지요.(다만 미국은 자국민에 대해선 고문을 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 점만을 보면 동독은 1987년 이전의 한국이나 미국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였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말하자면 동독은 서독에 비해 생산력이 낙후되고 자유가 억압된 사회였지만, 한국이나 미국보다 뭐 그렇게 크게 뒤떨어진 사회는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었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 여러 문제가 존재했지만, 그래도 총체적으로 보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북한의 수준(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이 서독이나 동독에 비해 너무나 떨어진 상황에서 갑자기 북한체제가 무너져 통일 되면 어찌될까요. 경직적인 대북자세를 취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수구파나 박통정권는 이런 점을 깊이 고민햇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FKK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를 더 보태겠습니다. 독일이 통일되자 서독측에서는 이런 동독의 FKK를 보고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이걸 폐쇄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제도를 서독식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던 동독인들의 반발로 그대로 유지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독일 Ostsee의 해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해서 서독의 교통신호등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판명된 동독의 교통신호등과 더불어 FKK는 통일 이후 동독이 지켜낸 자랑스런(?) 유산인 셈입니다. 허허허.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바다, 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