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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22 추억의 글: ‘개성공단 살리기 국민대행진’은 어떨까요

동숭동지킴이 2018. 5. 22. 07:42

<‘개성공단 살리기 국민대행진’은 어떨까요>

오늘 북한의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최초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박통의 한중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간에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최룡해의 중국방문과 한중정상회담을 계기로 뭔가 돌파구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한미동맹관계 재확인 이외엔 남북관계와 관련해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한미정상회담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최룡해의 중국 방문만큼 비중 있는 행사는 아니지만, 서울에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국회 한반도 평화포럼과 사단법인 한반도 평화포럼의 공동주최로 “위기의 남북관계, 출로는 어디인가”라는 제목의 공개토론회가 열렸던 것입니다.

방청석에 있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말대로, 토론회는 내용이 알찼고 형식도 좋았습니다. 섭외한 패널들이 상당히 충실하게 자기주장을 피력했고, 또 사회를 보신 백낙청 선생님의 진행솜씨도 남달랐습니다.

토론회는 먼저 개성공단 정상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동옥 사장의 ‘개성공단 현황보고’부터 시작했습니다. 북한인 5만4천명과 한국인 8백여명이 일하던 개성공단의 123개 업체는 지금 빈사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개성공단 업체의 문제는 한국의 협력업체 5천여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개성공단의 폐쇄는 휴전선에서 물러나 있던 북한군대를 다시 개성쪽으로 배치시킴으로써 안보 위협도 증대시킨다고 했습니다. 공장이 막사로 변할 게 아닌가 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건 이미 언론에서도 나온 이야기입니다만,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북한은 이미 5월 3일에 완제품과 금형을 가져가기 위한 한국업체 방북을 허용하겠다고 한국정부 측에 전했는데, 정부가 이런 사실을 한국업체들에게 숨겼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업체들의 생존을 위해선 거래선의 확보가 중요한데 공장가동이 중단된지 44일째인 현재 20%가량의 거래선은 떨어져 나갔고, 앞으로 열흘 내에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업체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다만 비록 공장을 돌리지는 못하더라도 완제품과 금형을 가져오면 당분간 거래선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성공단 업체들은 내일 방북하겠다고 신청했는데, 북한 정부가 아니라 우리 정부가 불허했다고 합니다. 불허 이유로는 “신변 보호”를 들었는데, 개성공단 업체들은 이때까지 한번도 ‘신변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 정부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 사람들을 데리고 일하다보니 한국업체 사장들도 ‘종북’이 되었다고 극우파들은 비난할지 모르겠네요. 허허허.

유 사장의 간절한 발표가 있고 나선, 백낙청선생님의 사회 하에 본격적인 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특정 인사가 발제를 하는 게 아니라 패널 3명이 백선생님이 던진 주제에 대해 각각 발언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패널로는 새누리당의 길정우 의원, 연세대의 문정인 교수, 민주당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참석했습니다. 나중에 기회를 보아 패널들의 이야기 및 그와 관련된 제 생각을 소상하게 블로그에 올릴까 합니다. 다만 오늘은 우선 토론회에서 나온 중요하거나 재미있는 내용 몇 가지를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길의원은 말하자면 합리적인 보수파인데, 이 정권의 인수위 시절에 북한 당국자와의 접촉을 시도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박통을 옹호하면서도 할 말은 했습니다. 그가 말한 것 중에 재미있는(?) 것 몇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최근에 자기보고 당에서 통일위원장을 맡으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당론을 따라야 하므로 못 맡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당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가를 잘 나타내는 대목이지요.

그리고 “현금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국회에 기대할 것은 없다”라고 강하게 단언했습니다. 여당 의원이 이렇게 말하는 형편이니, 지금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또 길의원은 개성공단 없체들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국내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너무 점잖게 가만 있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꼭 머리띠를 매라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지만, 사실상 여당의원이 업체들을 선동(?)한 셈입니다. 이렇게 말해서 괜히 괜찮은 여당 의원 하나 작살내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허허허.

문정인 교수의 발표는 약간 학구적이라서 특별히 재미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북한과 미국이 서로 약속을 어겨온 것은 “자기가 하면 hedging(만일에의 대비), 남이 하면 cheating(기만)”이라고 한다는 말이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정동영장관은 장관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재미있는 일화들을 소개했습니다. 우선 박통의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니 북한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인사는 박통 혼자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길의원까지 과거의 “관성, 타성,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 인물들이 박통을 둘러싸고 있는 셈입니다. 이건 MB 정부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마찬가지, 아니 어쩌면 북한 김정은의 조급성으로 인해 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지 모르는 판국인 것이지요.

그리고 정장관은 2005년 9.19 선언이 24시간만에 사실상 무효화된 경위를 소개했습니다. 9.19 선언은 북한이 비핵화로 나아가는 대신에 남북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한 6자 공동선언이었습니다.

이 선언은 2차대전 이후 최고의 외교문서라고 문교수가 극찬했고, 길의원도 그런 평가에 대체로 동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언 직후 미국 재무부에서 북한의 돈세탁 혐의를 공표하면서 마카오에 있는 Banco Delta Asi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니 9.19 선언은 말하자면 종이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정장관은 그 경위를 작년 대선 과정에서 확인했다고 합니다. 9.19 선언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Christopher Hill이 작년 대선 기간 중에 문재인 후보와 면담하는 자리에 정장관이 동석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왜 그렇게 된 것인가 하고 물으니 힐이 말하기를 “당시 미국엔 2개의 정부가 있었다. 라이스 국무장관 쪽 line과 딕 체이니 부통령 쪽 line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재무부에서 그런 조치를 취할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즉 미국의 온건파 쪽이 만들어낸 9.19 선언을 강경파가 깽판 놓은 것이지요. 이런 걸 겪고 나선 북한이 미국을 신뢰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북한도 몰래 우라늄을 농축하는 등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지만,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클린턴 정부 때의 북미합의를 부시 정권이 깔아뭉개버린 것도 북한을 기만한 셈이었지요.

그리고 정장관은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한국인들이 “쑥을 뜯어먹고 연명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전형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개성공단 주위에는 쑥이 많았고 가끔씩 쑥을 뜯기도 했었고, 이번엔 공장가동이 중단된 상황이라 할 일이 없어서 쑥을 뜯기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엉터리 보도가 박통에게 전달되어 북한에게 “내일 오전까지 답하라”는 식으로 사실상 대화할 생각이 없음을 나타낸 게 아닌가 정장관은 우려했습니다.

다음으로 세 패널 모두가 가칭 ‘개성공단 부활 범국민운동’에 동조했습니다. 앞서 유사장이 사안의 긴급성을 호소한 판국이므로 하루 빨리 개성공단 업체들이 중심이 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범국민운동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박통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나아가 필요하면 개성공단까지의 국민대행진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남북관계가 나쁘다고 개성공단을 건드린 북한 측에 원천적인 과오가 있지만, 그 이후 박통의 대처 역시 옹졸한 상황이므로 당사자인 업체와 남북평화를 갈망하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할 때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게 잘 되면 남북한 당국이 엉망으로 만든 남북관계를 시민들이 나서서 바로잡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박통 주위 인물들로 볼 때 그 성공 가능성이 크지는 않습니다만,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