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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7 추억의 글: <김근태 시대의 초심을 돌이켜보며 :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읽고서>

동숭동지킴이 2018. 2. 7. 14:50

<김근태 시대의 초심을 돌이켜보며 :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읽고서>


오늘 저녁에 고 김근태씨의 이야기를 방현석씨가 소설 형식으로 정리한 책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읽었습니다.

신문을 통해 책이 나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오늘까지는 읽지 못했던 책이었습니다. 그동안 책을 붙잡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제가 요즘 독일어 공부에 집중하느라 다른 걸 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운동권이었던 일부 진보파들의 요즘 행태에 불만을 느껴 진보파들의 옛날 이야기를 다시 읽는 데 큰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다시 돌이켜보는 게 너무나 끔직했던 악몽을 되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를 가진 50대 후반 이후가 박근혜 후보를 찍었겠습니다만, 압축적 고도성장의 그 시대는 동시에 어둡고 끔찍한 군사독재시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문학과 교수인 친구부부가 너무도 강력히 추천하고, 심지어 책을 빌려주기까지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읽고 말았습니다. 그 부부는 이 책의 문학적 글솜씨를 들먹이면서까지 강권을 했던 것입니다.

읽고 보니 역시 읽어볼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적 글솜씨를 제가 운운할 형편은 아니지만 쉽게 읽혀졌습니다. 그리고 저도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독재정권에 의해 육체적 - 정신적으로 끔찍하게 망가진 분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제가 감히 그 시대의 아픔을 여기서 다시 언급하기는 뭣하고, 다만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 몇 군데만 소개하겠습니다.


* 김근태씨의 은사이고 저의 은사이시기도 한 변형윤 선생님이 김근태씨를 비롯한 소위 운동권 학생들에 대해 많은 배려를 하신 것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좀더 상세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변선생님이 겪어야 했던 고민을 겪지 않으면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저를 비롯한 요즘 교수들과 대조가 되었습니다. 물론 요즘 학생들도 당시 학생들과는 다르지요.

요즘 교수들이 당시 교수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생(?)하는 것처럼(특히 젊은 교수들의 경우 업적 평가 따위로), 요즘 학생들로 당시 학생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취업문제 따위로) 고민하고 있는 셈이지요.


* 종로서적(지금은 사라졌습니다만)의 장하구 회장과 공안과의 공병우선생도 김근태씨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도 약간 놀라웠습니다.


*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에 대한 언급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분은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해 이명박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과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서 어떤 연유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 비밀(?)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김근태 선배에게 오염(?)된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교수는 책에서 비슷한 이름으로 언급됩니다.) 하하하.

물론 이런 에피소드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내용이 책에는 많이 있습니다. 특히 박정희-전두환 시대 운동권의 정신이나 태도에서 지금은 벗어나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만, 거꾸로 그때의 초심을 돌이켜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소말리아처럼 계파 다툼에 몰두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민주당의 경우를 봅시다. 그들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데, 그런 진지한 고민을 하려면 박정희-전두환 시대 때 그들이 가졌던 초심으로 상당히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자리 하려는 권력의지 또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크게 작용한 때문에 학생-노동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겐 그런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초심이 아니었던 분들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덧붙여 박근혜 시대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한번 돌이켜 보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시대가 물론 아버지 시대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 시대의 유산인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빌려보시든 사서 보시든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책 소개를 늘어놓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