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공기업개혁의 올바른 방향은 (2000/12/21) -시사저널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11

 

공기업개혁의 올바른 방향은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혹시 전력대란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던 조마조마한 사태가 다소 싱겁게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한전 노사합의 이후 이면계약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다른 공기업에서의 몇 가지 편법사례가 드러남으로써 공기업 때리기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그 동안 재벌 때리기에 불편해 하던 재계 역시 맞불 작전의 의미가 있는 공기업 때리기에 한몫 거들고 있다.

 

  물론 공기업은 환골탈태되어야 한다. 공기업의 부패와 비효율이 하루빨리 척결되어야 선진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도 IMF사태 이후 인원감축과 민영화를 두 축으로 하는 공기업개혁을 추진하였다. 공기업에서 19%의 인원을 줄였으며, 국정교과서 등 4개 사의 매각을 완료하고 포철과 한전의 DR발행 등 여타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도 일정에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공기업병에 대한 정부의 이런 처방전에는 짚어보아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인원감축은 IMF사태 이후의 어려운 상황에서 '같이 살자'가 아니라 '같이 죽자'는 차원에서 전개된 감이 든다. 즉 한쪽으론 실업자를 공공부문 근로를 통해 흡수하면서 다른 쪽으론 실업자를 공공부문에서 만들어내는 모순을 저질렀던 것이다. 또 정부가 전시행정 차원에서 기계적인 인원감축을 지시함으로써 담배인삼공사처럼 편법적인 인원조정을 초래한 경우도 있다. 공기업에서 불필요한 인원은 줄여야 마땅하지만, 그것은 기업실정을 감안해야 하고 또 전직가능성을 고려하여 주로 호황 시에 실행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의 민영화정책은 철학 없는 민영화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마치 민영화만 실시하면 공기업병을 단숨에 해결할 듯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원자력발전소의 누출사고와 영국 철도의 안전 문제가 민영화로 인한 극단적인 수익성 추구와 관련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타국의 비싼 공공요금과 캘리포니아의 전력요금 급등에서 보듯이 공기업 민영화가 오히려 고비용 사회를 초래할 수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원래 공기업문제와 관련해선 효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공성보다 효율성이 더 중요해진 기업의 경우에는 민영화가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공기업 형태를 유지하면서 경영혁신을 도모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사고에는 이런 구분의식이 희박하며 그저 외국에서 한다니까 덩달아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제 누구에게 민영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려도 부족하다. 선진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외국자본에 넘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또 재벌개혁이 극히 부진한 시점에서 재벌에게 넘겨도 괜찮은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선진적인 소유-지배-경영 구조를 창출하는 모범사례를 만들 때만 유의미하며, 아울러 시장의 경쟁구조를 제대로 구축해야 사적 독과점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

 

  한편 공공성을 중시하여 공기업상태를 유지하는 경우엔 무엇보다 공기업의 인사와 경영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압력을 배제하는 게 절실하다. 공기업이 정치자금줄이나 논공행상 자리인 형편에서 개혁은 공염불이다. 또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긴 했으나 그 사장추천위원회의 위원을 정부가 선임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 조치로는 진전이 있을 수 없다. 사외이사의 선임에서 시민단체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추천권을 부여하는 등 획기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책임전문경영을 확보해야 한다. 이리하여 경영진의 선임과 교체, 책임과 권한, 보상과 처벌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노사관계 역시 투명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대통령도 공공부문에 다시 팔을 걷어붙인 모양이다. 이번에야말로 말이 아닌 분명한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인원감축과 민영화에 대한 우상숭배가 아니라 효율성과 공공성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