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DJ정부는 신자유주의인가 (2000/11/22) - 한겨레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10

 

DJ정부는 신자유주의인가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신자유주의가 하나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논란이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한국에도 본격 상륙한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또 노동계는 얼마 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를 내걸고 한바탕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예전엔 대통령을 괴롭히던 것이 빨간 색깔이었는데 요즈음엔 신자유주의라는 색깔이 추가된 셈이다. 금석지감이 아니 들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도 혹시 전과 마찬가지로 색깔을 잘못 칠하는 건 아닐까. 또 정부가 표명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이 다소 생경한 신자유주의는 도대체 어떻게 연관되는가.

 

  1970년대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효율성의 시장원리를 만능시하는 사상과 정책이다. 이는 자본의 이윤추구를 제약하는 민주성의 논리에 대항하려는 것이고, 특히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그 힘이 강화되었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흥기의 구자유주의와 다른 점은 신자유주의는 서구의 강력한 노조와 복지정책에 대한 자본의 반격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에는 분명히 신자유주의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갑자기 강력해진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증대시키는 정책으로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를 실시하였다. 외환 및 자본 자유화도 신자유주의 색채가 짙다. 이런 사안들은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아이엠에프가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정책을 이런 신자유주의라는 보자기로 덮어버리면 비어져 나오는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복지체제가 극도로 미비한 우리에게 복지정책에 대한 반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도한 복지가 아니라 과소한 복지가 문제였다. 그래서 이와 관련하여 고용보험 등 사회안정망을 강화하는 사회민주주의 정책이 시행된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도 마찬가지 성격이다.

 

  또한 한국사회에는 재벌의 왕조적 독재체제와 정경불륜이라는 전근대성을 비롯하여 사회 각 부문에 전근대적 비효율이 존재한다.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저해하는 경영 불투명성도 심각하다. 이것들은 모두 압축적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이때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었다. 따라서 이들을 혁파하는 구자유주의적 개혁도 필요해진 셈이다.

 

  이상의 신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구자유주의라는 세 요소가 다 김대중정부 정책이 지향하는 바였다. 하지만 물론 그 주관적 의도가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정책을 입안하는 정당과 관료 그 자체가 개혁대상인 구태의연한 존재였고 개혁세력도 뭉치지 못했다. 게다가 위기관리에 급급하면서 빅딜과 같은 개발독재적 정책도 답습하였다.

 

  이리하여 결국 정부정책은 세 가지 요소를 불완전하게 지향하면서 동시에 과거로부터 개발독재라는 한 가지 요소를 계승함으로써 네 요소로 구성되게 되었다. 물론 이 중 어느 요소가 지배적이냐 하는 현학적인 논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파악된 지배적인 요소만으로는 김대중정부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이해할 수 없다.

 

  또 우리 삶을 한발이라도 진전시키려는 실천적 입장에서는 부정적 요소를 최대한 억제하고 긍정적 요소를 최대한 발전시키는 일이 지배적 요소의 확정보다 훨씬 중요하다. 즉 구자유주의적 재벌개혁을 재벌구조의 발전적 해체로까지 이끌어가고, 복지지향적 사회민주주의를 강화하며, 정리해고제나 대외개방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장치를 구축하고, 개발독재의 부정적 유산을 시급히 청산해야 한다.

 

  최근 정부의 개혁성은 맛이 갔으며 위기관리마저 갈팡질팡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개혁을 포기할 수는 없으며, 우리 모두 안간힘을 써 봐야 한다. 그러려면 김대중정부 정책의 다중성을 인식하는 유연한 전술이 필요하다. 외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분별하게 수입하는 자세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비판을 맹목적으로 수입하는 경직적인 자세로는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