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경제불안의 근본적 치료 (2000/10/12) - 시사저널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09

 

경제불안의 근본적 치료

김 기 원(방송대 교수, 경제학)


 

  반도체가격 하락, 유가급등, 대우차매각 실패로 허둥지둥하던 정부가 작심하고 2단계 금융 기업 구조조정계획을 내놓았다. 40조 원의 공적 자금을 새로 조성하여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를 청소하고 회생가능기업과 불가능기업을 분별하겠다고 한다. 이로써 제2의 경제위기를 잠재우고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런데 마구 퍼붓는 공적 자금에 대해 국민은 봉인가 하는 어이없는 마음과 더불어, 다른 한편 과연 이번 조치로 안심해도 되는가하는 불안을 떨칠 수 없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IMF 증후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물론 이런 심리적 요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우리 경제구조의 불안정성과 정부의 취약한 위기극복 능력이라는 문제가 깔려 있다.

 

  우선 재벌 내부적으론 총수의 왕조적 독재가 자리잡고 있고, 재벌 외부적으로는 재벌이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재벌의 이중적 독재체제라는 모순이 불안을 초래한다. 예컨대 정주영씨가 오락가락 하거나 반도체시황이 나빠지면 국민경제 전체가 비틀거리는 것이다. 게다가 IMF사태 이후 대외적인 빗장마저 활짝 풀어버려, 외국자본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용의 안정성도 이젠 옛 말이다.

 

  이런 불안정한 구조하에서 정부의 행태 역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 동안 위기의식의 국민적 공유와 IMF의 교시로 그나마 끌고 가던 정부가 요즘은 어쩔 줄 몰라하는 듯하다. 개혁완수 일정은 이미 몇 차례나 어겼다. 국제거래의 ABC도 무시한 대우차 처리과정도 그렇고, 증시부양책이랍시고 즉흥적인 대책들을 쏟아놓는 모습은 참담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사실 자본주의경제와 주식시장은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제상황이 나빠졌다고 혼비백산할 것까지는 없다. 경제상황 악화는 자본과 노동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징후이고, 이 때 잘 대응하면 경제가 호전됨은 물론, 새로운 발전된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국가 부도위기의 형태를 띠기는 했지만 IMF사태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자본과 노동의 재편 개혁 과정은 어정쩡한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 IMF졸업을 선언한 입의 침도 채 마르기 전에 2단계 구조조정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실제로 1단계를 마무리짓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2단계라기보다는 부실한 1단계를 보완하려는 1′단계이다.

 

  이제 다시 구조조정을 선언한 이상, 단순한 부실 떨어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불안을 원천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낙후된 재벌 금융구조를 안정적인 선진구조로 환골탈태시켜야 하며, 정부는 개혁성과 추진력과 비전을 갖추도록 거듭나야 한다. 여기에 국민대중의 결집된 힘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노동계와의 관계재정립도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려면 '부실책임과 부담능력에 상응한 고통분담'이라는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 그래서 노동계를 구조조정의 걸림돌이나 억울한 피해자가 아닌 개혁의 동반세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개혁은 대통령과 장관의 언론플레이가 아니다. 이런 식의 언론플레이 때문에 국민들이 개혁식상증과 개혁피로증에 걸려 있다. 어지럽고 화려한 말보다 명확한 비전을 갖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강시기업들을 단호히 정리하고, 부실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고, 재벌 금융기관의 소유지배구조를 뜯어고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IMF사태가 끝난 듯싶은데 다시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대지진 뒤의 자그마한 여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맹장염 우습게 보다가 복막염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리고 대우그룹 처리의 실수로 2단계 구조조정이 필요해진 것처럼, 앞으로 예컨대 현대와 관련해 또다시 3단계 작업을 해야 한다면 그게 무슨 꼴이겠는가. 이번 개혁에서야말로 흐지부지하지 않고 정말 제대로 한번 해볼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