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삼성의 거듭남을 위하여 (2001/1/9) - 한겨레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12

 

삼성의 거듭남을 위하여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kwkim@mail.knou.ac.kr)


 

  삼성이 잘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작년 순이익만도 6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5대재벌 중 대우가 쓰러졌으며 현대도 정몽헌씨 계열사들은 비틀거리고 있고 엘지에선 이리저리 일이 꼬이는 판에 삼성이나마 버티고 있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다른 재벌에 비해 아이엠에프사태 이후 구조조정에 더 적극적이었고, 경영시스템이 원래 더 나았던 덕분이리라.

 

  그러나 지킬박사가 아닌 하이드씨와 같은 삼성의 어두운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아이엠에프사태로 많은 국민이 고통받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이건희 회장이 자식들에게 불법 변칙 증여를 계속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런 생산활동에도 종사한 바 없는 이재용씨가, 내야 할 세금의 1000분의 1이 될까말까한 16억원만 내고 수조원의 재산을 챙겼다. 이렇게 국민재산을 횡령한 행위는 시민단체의 민사소송과 형사고발에 직면해 있고, 삼성의 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아마도 삼성측은 상처는 곧 아물고 실리는 영원하다고 생각하거나 작년 7월 대통령과 이회장의 회동으로 만사 오케이라고 안심하고 있지 않나 모르겠다. 하지만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른다. 국세청 앞의 1인시위와 삼성본관 앞의 20미터 간격시위를 우습게 보지 말자. 도덕법정의 심판은 물론이고, 앞으로 현실법정의 심판을 받을 날이 올지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삼성측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그리해서 원죄를 씻고 아울러 삼성의 다른 악습도 척결하여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삼성총수 일가가 그간의 불법 변칙 행위에 대해 정식으로 국민 앞에 사과하고, 가능한 한 모두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즉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에 대한 총수일가의 직간접적 주식취득을 무효화하거나, 아니면 그로 인한 부당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삼성SDS 건을 비롯한 다른 사안의 해법도 마찬가지다.

둘째, 삼성자동차 부채는 삼성측의 처음 약속대로 이회장의 사재로 말끔히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별도로 삼성생명 상장에선 정부 원안대로 계약자 몫을 주식으로 나눠주든지 아니면 그 해당액을 기존주주가 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 그러면 삼성생명의 계약자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회사도 크게 성장한다. 요컨대 총수가 조금만 양보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셋째, 이건희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삼성을 선진국에서와 같은 책임전문경영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자동차사업의 실패로 5조원 이상을 날렸고 영상사업, 항공기 등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았음에도 삼성이 버티고 있는 것은 이회장이 다른 재벌총수보다는 상대적으로 계열사경영에 덜 간섭했기 때문이다. 그런 교훈을 살려 이제 경영에서는 완전히 손떼고 대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의 권한행사에 만족해야 한다.

 

  넷째, 이재용씨도 함부로 경영에 나서서는 안 된다. 경영능력의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2,3세 세습경영의 폐해는 아이엠에프사태 한번으로 족하다. 삼성은 이회장 일가의 호주머니속 장난감이 아니라 엄연한 국민재산이다. 이재용씨를 다른 사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시켜 그 능력을 검증하지 않을 바에는 경영일선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게 옳다.

 

  다섯째, 노동자납치와 유령노조와 같은 잔꾀로 노조설립을 저지하는 전근대적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이런 낙후된 노사관계는 종업원의 창발성을 끌어낼 수 없으며,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2002년부터는 유지되기도 어렵다. 한편 송자씨나 헌법재판소장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은 정계 관계 언론계 학계 법조계와의 불륜관계 역시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

 

  이상의 과제 중 삼성측이 어느 만큼 해결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해결정도에 따라 법정에서 정상이 참작되고 나아가 삼성의 선진화정도도 달라질 것이다. 음습한 과거를 떨치고 삼성과 나라를 진정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총수 일가와 가신들의 결단을 기대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