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현대처리는 정공법으로 < 2001. 2. 9 일자 한국일보 >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14

 

< 2001. 2. 9 일자 한국일보 >

현대 처리는 정공법으로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양태가 점입가경이다. 은행들 팔 비틀어 기존대출의 만기연장을 강요하더니 목까지 졸라서 산업은행 중심의 회사채인수제도를 수용케 했다. 나아가 신규대출도 떠맡겼고, 신용정보회사들의 협조(?)를 구해 현대계열사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상향조정시켰다.

 

  그 동안 현대대책에서 갈팡질팡하더니 아예 구태의연한 개발독재 방식으로 회귀 셈이다. 다만 원래 그런 패러다임이 몸에 밴 현 경제팀에겐 이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갈팡질팡도 덜해지고 적어도 일관성만은 갖춤으로써 경제를 다소 안정시킨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그 약발이 얼마나 갈 것인가. 이런 식의 처방은 IMF사태로 파탄이 증명된 시스템이다. 현 정권은 현대와 공동운명체가 되기로 작심했는지 모르지만 부실을 더 키운 대우나 정권과 더불어 몰락한 한보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있는가.

 

  물론 비정상상태인 금융시장에 모든 걸 내맡기기는 어렵다. 또 현대계열사들은 기간사업체라 위기시의 파급효과가 만만찮고 민족적 과제인 대북사업의 주역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우사태만으로도 허덕대는 판에 현대마저 쓰러졌을 때 정부가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든다. 하지만 편법은 편법을 확대재생산하고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이월일 뿐이다. 이제라도 정공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현대건설 등의 자산 부채 실태부터 정밀 실사해야 한다. 현대건설의 경우라면 공사미수금 중 얼마가 회수불능인지, 분식회계는 얼마정도인지 밝히고 국내외 사업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수박겉핥기 조사가 아니라 대우의 재판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생가능 여부를 단호하게 판단해야 한다.

 

  둘째, 만약 회생가능하다면 부채의 출자전환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땐 정몽헌씨와 그 가신들의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약속한 사재출연을 이행시킴은 물론 경영일선에서 퇴진시켜야 한다. 자문역 이상은 곤란하다. 기업을 잘 알고 틀어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정몽헌씨 등을 그대로 둔다면 김우중씨는 왜 퇴진시켰는가. 경영의 근본적인 수술은 새 인물로 시작해야 하는 법이다.

 

  셋째, 대북지원은 더 이상 현대에게만 짐지우지 말아야 한다. 현대가 피멍들어 결국 나중에 국민 돈으로 메우는 다단계 절차를 밟지 말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 정부와 시민단체가 직접 본격적으로 대북지원에 나서야 한다. 또 현대건설이 보유했던 현대상선 주식을 현대엘리베이터에게 매각한 것은 원인무효화해서 현대건설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넷째, 정부가 현대처리에서와 같은 편법을 쓰지 않게끔 금융권을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강시기업들을 확실히 관속에 집어넣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추가공적자금 재조성도 각오해야 한다. 이런 것 미뤄둔 채 경제개혁을 완료하겠다고 하니 어이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