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정부는 최근 예산조기집행 등 몇 가지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이는 주가가 바닥을 기며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제2의 경제위기가 우려되던 상황에서 정부가 뭔가를 보여주려는 고육책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정책 덕분인지 연초부터 적어도 주가는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경제가 정말로 나아진다면 다행이리라.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찜찜한 부분이 적지 않다.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제한적 경기조절정책이라고 강변하는 말장난부터가 우선 수상쩍다. 시장경제에선 정부가 경기부양책과 경기진정책을 시의적절하게 구사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 정책을 옹색하게 변명하는 데엔 부끄러운 진실이 있기 때문이 아니가 싶다.
정부가 숨기려는 부끄러운 진실이란 바로 구조개혁의 포기 중단이다. 수술을 중단하고 영양제나 마약으로 환자의 얼굴빛이라도 좋게 하면서 연명시키려는 심산이다. 그리해서 수술을 다른 의사 즉 다음 정권에게 떠넘기거나 아니면 환자의 엔도르핀이 갑자기 분출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꿈꾸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말로는 구조조정을 포기한 게 아니라 경제의 체력을 회복시킨 후에 다시 구조조정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반기 이후부터는 아마도 대선정국이 시작될텐데 어떻게 고통스런 구조조정을 재개한단 말인가. 또 정부는 이제부턴 상시적 자율적 구조조정에 맡긴다는 식으로도 이야기한다. 올 2월로 4대 구조조정을 완료한다고 약속했으므로 말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정말 2월이 되면 4대 구조조정의 기본목표라도 달성되는가. 소가 웃을 일이다. 작년 연말까지 마무리짓기로 했던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실상을 보라. 피라미 같은 부실기업 몇 개 정리하고 은행들을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하기로 한 것 외에 이뤄진 게 뭐 있는가. 원래 경제의 구조개혁이란 상시적이고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부실한 재벌과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소유-지배-경영 구조를 선진화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작업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멈춰 버렸다.
그 동안 정부는 구조조정에서 갈팡질팡하더니만 최근 들어서는 아예 개혁전선에서 총퇴각하여 익숙한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탈세 및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중단하고, 은행들 팔 비틀어 불량 회사채를 인수케 하며, 은행의 소유제한을 완화하는 등 일련의 조치는 역시 제 버릇 개 못 준 구태의연한 행태가 아닌가.
물론 경기부양책은 필요할 수 있고 이것이 구조개혁과 원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하지도 않다. 문제는 정부가 후자를 사실상 포기해버린 점이다. 지금의 경제불안과 경제불황은 기본적으로 정부리더십에 대한 불신과 고통분담이 공평치 않음에 대한 불만과 구조개혁의 부진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 5불(不)을 혁파하는 근원적인 수술 대신에 대증요법만을 처방하려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결국 그 '효과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를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아마 '제한적' 경기조절정책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이 정부에 더 이상의 개혁 기대는 접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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