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파(低派)가 좌파(左派)다 : 교황은 좌파다>
오늘자 경향신문에 조국교수가 아래에 첨부한 칼럼을 썼습니다.
그 중 재미 있는 내용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좌파(左派)도 우파(右派)도 아닌 저파(低派)라고 규정한 부분입니다. 역시 기지가 번득이는 조국 교수다운 발상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이해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좌파가 바로 저파이기 때문입니다. 좌파(진보파)는 사회경제적 약자의 이익을 상대적으로 우선하고, 우파(보수파)는 사회경제적 강자의 이익을 상대적으로 우선하는 것입니다.
교황은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규제받지 않은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이며, 불평등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경제적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건 바로 좌파(진보파)의 성격을 가장 잘 대표하는 말씀입니다.
원래 종교의 가르침에는 모성(母性)적 좌파의 성격이 많습니다. 모성이란 대체로 못난 자식이 안타까운 마음이 강하지요. 반대로 부성(父性)은 대체로 잘난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강하고 이게 우파쪽입니다. (음양陰陽의 이론으로 설명하면, 음은 좌파이고 양은 우파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황의 말씀대로 종교란 원래 사회경제적 약자를 품어주고, 사회가 지나치게 물질만능에 흐르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기득권화한 오늘날의 종교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문제인 것이지요.
교황을 좌파로 규정하는 건 결코 교황을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교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고, 또한 좌파의 영광입니다. 한국의 좌파들이 이런 교황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서 문제이지, 좌파가 결코 악마이거나 북한정권에 무조건 동조하는 '빨갱이"는 아닌 것입니다.
이게 서구에서도 통용되는 좌파(진보파)의 개념입니다. 한국전쟁과 남북한대치로 인해, 한국사회에선 좌파라고 하면 바로 북한정권을 지지하는 '빨갱이'로 오해되어 왔습니다. 아마 지금도 지하철에 붙어있을 국정원 홍보물에서는 '좌익사범'을 신고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파도 스스로 좌파라는 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형편과 비슷하지요. 그래서 좌파들은 가급적 진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보라는 말은 어감도 좋기 때문에, 당분간 좌파는 좌파 대신 진보파라는 말을 쓰는 게 전술적으로 좋겠지요. (거꾸로 그 때문에 수구보수언론들은 되도록 좌파라는 용어를 즐깁니다.) 하지만 교황의 말씀을 계기로, 좌파라는 용어의 의미를 바로잡고 그 명예를 회복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세상을 좌파만이 일방적으로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간 과거 소련-동유럽 체제처럼 망가집니다. 세상이 종교의 윤리만으로 움직여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소금만 먹고 살 수는 없고 밥이나 빵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람직한 사회가 되려면, 사회경제적 약자를 우선하는 좌파의 논리와 사회경제적 강자를 우선하는 우파의 논리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이런 좌우파 사이의 균형이 잘 잡힌 경우가 독일이나 북유럽인 것이지요.
한국에선 우파가 좌파에 비해 지나치게 힘이 강한 불균형사태이고, 또 좌파든 우파든 합리적이지 못한 점 즉 개혁(상식)적인 성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게 문제입니다.
사실 좌파가 저파가 아니라면, 좌파는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까요. 별로 마땅한 정의를 찾아내기 힘듭니다. 한국에선 개념정의가 불분명하게 쓰이는 일이 많습니다. 종북, 재벌 등이 바로 그런 사례에 해당하고 좌파, 우파, 중도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관해 제 책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마지막 장에서 X축, Y축을 그려가며 일정 정도 설명을 했습니다.(남북한 관계까지 포함하면 Z축도 들어감.) 하지만 제가 피케티 같은 유명인이 아닌 탓인지, 제 글의 설득력이 부족해서인지, 또는 일단 자기 생각이 굳은 분들은 다른 사람의 새로운 발상을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는 습성 때문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아직 그다지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하하.
진보, 보수, 중도, 개혁, 수구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관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번 논의를 좀더 진전시켜 블로그에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걸인과 그 대책 문제를 예로 해서 설명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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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밥과 법] ‘저파(低派)’ 프란치스코가 남긴 과제
조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8월 20일자
가히 ‘프란치스코 현상’이라 할 만하다. ‘파파 프란치스코’의 말씀과 행보, 눈빛과 손동작 하나하나가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육화(肉化)된 신앙의 진면목 앞에 종교를 넘어 거의 모든 시민은 감동을 받았다.
“국민소득 3만달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엄청난 위세를 뽐내는 건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며, 최고급 명품과 명차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활개치고 있지만, 그 뒷면에서는 가난, 불안, 소외, 억압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한국적 현상이자 세계적 현상을 교황은 직설화법으로 비판했다.
교황은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고 축원했고, “막대한 부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를 경고했다. 그리고 낮은 자세로 사회·경제적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껴안았다. 그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저파(低派)’였다.
힘과 돈을 가진 자들 중 교황의 이런 발언에 마음 불편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속으로 “종교인이 왜 정치발언이야!”, “남미 출신이라 ‘해방신학’에 물들었구먼!”이라며 툴툴거린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반공권위주의 체제가 종료한 지 오래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황 정도의 발언을 한 사람은 여전히 ‘좌경용공’으로 낙인찍히고 공격받는다. 언제부터인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노선 외에는 모두 ‘종북좌빨’이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정부, 기업, 언론 등도 모두 교황 방문을 환영했지만, 그의 비전과 제안은 외면했다. 아니 정반대로 움직였다. 교황은 취임 후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이며 불평등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경제적 문제”임을 계속 강조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선언했다. 이후 정부는 ‘경제 살리기’의 명분 아래 부동산 및 서비스업 규제 완화, 의료시장 영리화 등을 추진하고 있고, 보수언론은 이에 동조하고 있다. 그 뒤에서 기업은 미소 짓고 있다.
대선 시기 써먹었던 ‘경제 민주화’ 깃발은 쓰레기통에 들어간 지 오래다. 박 대통령은 ‘율리아나’라는 가톨릭 세례명을 갖고 있지만, 그의 정치적 신념과 행동은 ‘프란치스코’의 정반대 편에 있다.
한편 교황은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라”고 강론했지만, 우리나라 유력 일간지가 교황 방한을 축하하며 뽑았던 기사 제목은 “돈이 도네요… 고마워요, 프란치스코”였다. 또한 교황은 “무한경쟁 사조에 맞서라”라고 강조했지만, 정부와 기업의 최상부는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제도와 문화를 찬미하고 있다.
교황은 세월호 유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피해자, 밀양 송전탑 건설지역 주민 등을 만나 위로했지만, 정부는 줄곧 이들을 배제하거나 억압해왔다.
‘파파 프란치스코’는 짧은 시간 내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추한 민낯을 드러냈고, 이윤과 욕망의 노예가 된 우리에게 맹성(猛省)의 기회를 주었다. 그의 언행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며 깊고 넓은 파급력을 가질 것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필자도 ‘프란치스코주의자’는 되고 싶다.
그러나 그가 던진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역시 이 땅에 사는 우리다. ‘파파 프란치스코’를 찬미한다고 그가 지적한 대한민국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가 선택한 ‘쏘울’을 탄다고 바로 우리의 ‘영혼’이 정화되지 않는 것처럼. 또한 교황이 지적한 문제는 단지 신심(信心)과 기도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세속의 정치, 법,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의식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세상의 모순과 부딪치며 끈질기게 노력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교황 자신이 “공동선을 위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이기적”이라며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중립을 지켜야 하니 세월호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음을 기억하자.
‘파파 프란치스코’를 칭송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뜻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실천이 없으면 ‘체 게바라’라는 기표(記標)가 그랬던 것처럼, ‘파파 프란치스코’는 ‘혁명성’이 사라진 또 다른 ‘문화상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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