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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28 추억의 글: 불신 관계가 주는 사회적 비용들 : 동경대 교수의 치한 사건을 보며

동숭동지킴이 2017. 7. 28. 08:06

<불신 관계가 주는 사회적 비용들 : 동경대 교수의 치한 사건을 보며>

조금 전 집에서 <일본경제신문>을 읽다가 약간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동경대 교수가 항소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은 내용입니다. 지하철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건드렸다고해서 1심에서 벌금 40만엔을 선고받았으나,항소심에서 피해여성 증언의 신뢰성이 약하다고 해서 무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죄선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유죄를 선고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지 실제로 반드시 무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 교수가 무죄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하는 사건입니다.

...

첫째로, 동경대 교수의 지위가 한국의 서울대 교수보다는 많이 낮다는 것입니다. 아니 거꾸로 보면 한국의 교수 지위가 지나치게 높은 셈이지요. 아마도 한국이라면, 서울대 교수의 말을 믿지 그 피해(?) 여성의 말을 1심에서도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서울대 교수들 중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동경대 교수들 중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비중보다는 훨씬 낮지 않을까 싶습니다. 20년 전 동경대교수가 직접 복사기에서 논문을 복사하던 일을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요즘 일본을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장인 사회의 전통이 존재하고 따라서 각자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윤리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반면에 각자 분야에서 제대로 일하는 풍토가 되어 있지 않으니 (압축적 불균등 근대화, 식민지 경험 탓 ?), 일반적 신뢰가 높은 교수라는 지위 특히 서울대 교수가 과도하게 대우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둘째로, 동경대 교수가 무죄라면 그는 억울하게 그 동안 시달렸던 셈입니다. 사건이 3년 전이었으니, 3년 동안 연구를 제대로 했을지도 의문입니다. 동경의 지하철은 서울 이상으로 혼잡하기 때문에 승객들이 꽉 붙어 있고, 따라서 엉덩이를 스친 것을 윤창중처럼 일부러 잡은 것으로 오해받았을 수 있습니다.(윤창중은 그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만.) 지나친 수도권 인구집중이 이런 현상을 만든 것이지요.

10년 전쯤에 역시 동경대교수로부터 자신은 지하철을 탈 때,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은 책을 든다고 했습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손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이럴 필요가 없었는데, 일본사회가 각박해지면서 불신이 강화된 탓이라고 했습니다. 불신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인 셈입니다.

저도 이분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출근시간은 가급적 지하철이 붐비는 시간을 피하고, 붐빌 때는 여성을 멀리하려고 (?) 합니다. 하하하.

어쨌든 이런 게 불신이 만들어낸 사회적 비용입니다. 갱들이 마약을 거래할 때에는 서로가 불신하지 않기 때문에 총잡이를 데리고 가는 등 거래 시에 많은 '거래비용'이 듭니다.

갱들의 거래가 아닌 데도 남북한 관계나 북미 관계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많은 비용이 듭니다. 문정인 교수가 말했듯이 "자기가 하면 hedging, 남이 하면 cheating"인 불신관계가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는 면이 있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GH가 신뢰관계를 구축하자고 한 것은 일단 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개성공단과 관련해서도 남한측이 신뢰관계를 깨트린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기숙사를 지어주기로 한 약속, 공단을 2000만평으로 확대하기로 한 이전 정부의 약속들을 MB 정부가 들어서면서 깡그리 짓뭉개버린 것이지요.

지난 번에 말씀드렸듯이, 이런 가운데 북한측이 개성공단 노동자를 철수시키는 무리수를 저지르자 "요거 잘 걸렸다"는 식으로 북한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GH 정권이 나선 것입니다. 그러니 GH의 신뢰 프로세스가 "북한 무릎꿇리기"에 지나지 않은 것이지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