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국부유출 논란의 허와 실(월간중앙 2000년 5월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00

국부유출 논란의 허와 실(월간중앙 2000년 5월호)

                         김 기 원(방송대 교수, 경제학)

 

  그 동안의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뜨거운 쟁점 중의 하나가 외국인투자에 따른 국부유출 문제였다. 물론 이것은 별안간 불쑥 등장한 논란은 아니고, IMF사태 이후 간헐적으로 제기된 바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선거를 맞이해 집중적으로 부각된 셈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한 한나라당 측은 정략적 의도로 인해 문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으며, 정부.여당 역시 진지한 고민의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선거도 끝났으니 외국인투자와 관련된 우리 상황을 차분하게 재점검하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야 할 때이다.

 

  정부의 정책기조

 

  외국인투자에의 대응방식을 둘러싸고 일어난 논란에서 쉽게 연상되는 것은 조선왕조 말기의 상황이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의 문호개방 요구이건 오늘날 글로벌화의 급진전이건 기본적으로 비슷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역사의 가르침에 따르면 대원군 식의 쇄국정책도 잘못되었고 이완용 식의 매국정책도 옳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는 좋게 평가한다면 이때까지 김옥균 식의 정책을 추진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수구봉건 질서를 개혁하기 위해 외국의 힘이라도 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김옥균 세력의 고민이 현 정권에서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옥균 식 노선은 친일매국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적지 않았다. 현 정부 역시 점점 그런 경향성을 강화시킴으로써 커다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즉 정부의 정책기조는 한 마디로 외국인투자 至上主義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IMF사태 이후 정부는 외국인투자 유치에 온 힘을 기울였고, 그러다 보니 마침내 외국인투자를 신격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IMF위기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을 맞았으니 혼비백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은 차려야 한다.
  외국인투자에는 정부가 강조하는 긍정적인 효과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효과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두 효과의 크기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는 국가의 내적 조건과 외국인투자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이 두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체적.선별적으로 외국인투자를 도입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투자를 무조건 배격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입장은 자본운동의 범세계성을 무시하는 단순한 정서적 민족주의 또는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계의 도입에 반대했던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과 마찬가지로 실천적으로도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대세와 외국인투자의 긍정적 효과를 무시하는 외국인투자 배격론도 틀렸지만, 그 반대의 편향 즉 정부가 나아가고 있는 외국인투자 지상주의에 대해서 역시 잘한다고 박수만 치고 있을 수는 없다. 무릇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절대시하는 태도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외국인투자 유치 논리의 맹점
 
  정부의 홍보책자({외국인투자, 국부유출이 아니라 국부창출의 길입니다}, 재경부.산자부)에 따르면 외국인투자를 통해선 원리금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외자를 조달하며, 생산을 증대시키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첨단기술과 선진경영기법을 배우며, 투명한 기업경영을 뿌리내리게 하고,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1석5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좋을씨고 좋을씨고인 셈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외국인투자의 역기능에 대해선 나중에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정부측 주장의 논리적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하자. 자본축적이 부진한 후진국이 급속하게 성장하려면 외국자본을 도입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외국자본은 크게 무상원조.차관.외국인투자로 구분되며 무상원조를 바랄 수 없는 처지라면 차관과 외국인투자(외국인직접투자+외국인증권투자) 사이의 선택이 불가피하다.
  이 때 외국인투자가 차관보다 원리금 부담 면에서 우월하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정부의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외국인투자와 차관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그 동안 외국인투자가 주로 기존기업의 인수에 치중되었고 신규사업인 경우에도 대규모 투자는 별로 없었던 반면, 대규모 신규투자와 신산업에의 진출은 차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외국인기업은 고위험 사업을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외국인투자 중 사업체를 처분해야 유출이 가능한 외국인직접투자와는 달리 외국인증권투자는 언제라도 쉽게 손털고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증권투자는 외환위기를 초래할 위험성이 차관보다 오히려 더 큰 것이다.
  한편 외국인직접투자는 정부 선전대로 생산과 고용을 증대시키는 등 경제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다. 최근에 급성장하고 있는 아세안이나 중국을 보더라도 이 사실은 분명하며, 이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외자유치경쟁에 발벗

고 나서고 있다. 또한 선진적인 외자의 도입에 의해 전근대적인 기업구조의 개혁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선진경영을 목격함으로 인한 학습효과도 없지 않을 것이며, 외국인 주식투자자의 요구에 의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강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GDP에 대한 누적 외국인 직접투자의 비중이 싱가포르 82%, 미국 8%, 영국 22%, 말레이지아 38%, 중국 24%인데 반해 우리의 경우 7.8%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도 외국인직접투자를 더욱 확대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참고로 세계 전체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GDP 세계합계의 10% 남짓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외국인직접투자와 경제발전이 단순한 정비례관계에 있지는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나라에 미처 외국인직접투자가 제대로 들어오기도 전인 1960-1970년대부터 이미 외국인직접투자를 상당히 유치했던 필리핀이나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지금은 우리보다 더 못사는 처지다. 그 반면에 외국인직접투자의 비중이 극히 미미해서 GDP의 1%도 채 안 되는 일본은 세계 최정상의 선진국이다. 따라서 7.8%라는 양적 수치 자체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내적 조건과 투자의 질이다.
  다만 양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우리 나라에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의 절대적 비중은 아직 세계 평균에 못 미치지만 최근의 증가속도는 엄청나다. 연평균 외국인직접투자액이 1962-1986년에는 1.5억 달러였으나 1987-1993년엔 10억 달러로 급증하였고, 1994-1995년에 이르면 16.3억 달러이고 1996년 32억 달러, 1997년 70억 달러, 1998년 89억 달러, 1999년 155억 달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제지.종묘업에선 외자기업의 시장점유율이 70%를 넘어섰고, 금융.자동차부품.위스키.요업 등에서도 외자가 대거 밀려들었다.

  이런 추세라면 얼마 안 가서 외국인직접투자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지금과 크게 달라진다. 이는 현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증권투자가 미치는 영향력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IMF사태 이후 외국인 증권보유가 두 배로 늘어나 전체 상장주식의 20%를 넘어서면서 외국인이 주식시장을 떡 주무르듯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만약에 이런 식으로 외국인직접투자가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외국인증권투자든 외국인직접투자든 양적 규모의 증대 자체가 곧바로 대재앙을 불러들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단기간에 이렇게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커져가고 있는 외국인투자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너무나 안이하다는 점이다. 남들 따라 금융시장을 갑자기 개방했다가 IMF사태를 맞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역시 덩달아서 외국인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모습이다. 한 마디로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국부유출론의 허점

 

  한편 이런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쪽은 흔히들 이른바 국부유출론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헐값매각에 따른 국부유출 주장을 살펴보자. 물론 내국기업을 외국자본에 매각하면 일단은 외국의 국부가 유입되지 우리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외국자본이 매입과정에서 부당하게 이득을 보았고, 그 이득이 장차 빠져나간다는 점을 문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이자.
  이 논리는 한나라당이 선거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멋모르고 OECD에 덜컥 가입하여 IMF위기를 재촉하였고, 대선 무렵에는 김대중후보의 IMF재협상 주장을 비난하면서 IMF에의 맹목적 굴종을 선도했던 정당이므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셈이다. 그러나 과거의 허물만 가지고 현재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일방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한나라당이라고 해서 대오각성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따라서 문제 제기자가 누군가와는 별도로 헐값매각 문제는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헐값매각이 제값을 못 받은 경우라고 할 때, 이 제값을 어떻게 판정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왕에 들어간 투자금액을 그대로 제값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삼성자동차처럼 4조원 이상을 쏟아 부었지만 계속해서 적자만 내는 기업을 1조원도 안쳐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제일은행에 7조원 가량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그것은 부실채권을 처리하는데 쓰여졌으므로, 뉴브리지로부터 받은 5천억 원이 헐값인지 어떤지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기업의 가치는 투자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예상수입에 의거해서 평가된다. 따라서 미래의 예상수입을 나름대로 계산한 구매자 측과 매각자 측이 시장에서 거래한 가격이 바로 제값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헐값매각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다만 거대 기업의 거래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이 아니다. 삼성자동차나 대우자동차에서 보듯이 願買者가

몇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쌍방간의 협상을 위한 인프라(infrastructure)와 분위기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협상 인프라와 관련해서는 우리 기업회계의 신뢰성 결여가 매각협상에 크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러니까 헐값매각이 이루어졌다면 그 일차적인 책임은 기업 측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정부의 구조조정 독려라는 협상 분위기는 우리 기업 측에 불리한 환경이었으므로, 이와 관련해서 정부에 일단의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구조조정을 독려하지 않았으면 이 정도도 진척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재벌은 왕조적 독재체제 하에서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정부가 수수방관하였다면 대부분의 재벌은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더 큰 재앙을 불러왔을 공산이 크다. 끝까지 억지를 쓴 대우가 그 단적인 예이다.
  다만 정부가 재벌의 왕조적 독재체제를 혁파하는 일을 먼저 추진했다면 기업의 합리적 의사결정이 용이해져서 외부에서 구조조정을 독려할 필요성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정부 재벌정책 추진 상의 과오는 존재한다. 그리고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영국의 보더폰이 독일의 만네스만을 인수하려 할 때 슈뢰더 총리가 제동을 건다든가 해서 매각가격이 두 배 가까이로 올라간 사실과 비교한다면, 우리 정부의 전술적 미숙성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헐값매각에 따른 국부유출 문제는 한나라당이 떠드는 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 개중에는 헐값매각이 이루어진 경우도 적지 않겠지만, 외환위기 상황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고 재벌들 스스로 잘 팔았다고 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문제는 몇 푼 더 받느냐 덜 받느냐가 아니라 이렇게 진출한 외국기업이 우리 국민경제에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따라서 헐값매각을 근거로 삼는 국부유출론은 과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투자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한편 헐값매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국부유출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외자가 국내사업을 통해 이윤을 벌어 가는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이다. 외자가 후진국경제를 수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자는 자선사업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므로 돈벌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특별히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외국인기업은 이윤을 현지에서 재투자하기보다는 본국으로 가져가 버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국자본도 요즘은 해외투자에 열심이니까 우리 나라에 재투자하지 않는 점에선 오십보 백보인 셈이다. 그리고 이윤유출이라는 역기능은 외국인투자의 순기능과 종합적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역기능만 고려하여 국부유출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다음으로 포항제철이나 삼성전자 등의 외국인지분을 거론하면서 알토란같은 우리 기업이 외국에 넘어갔다는 주장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포항제철의 외국인지분은 50% 미만이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지분이 50%를 약간 상회하지만, 그 지분을 경영권장악을 노리는 어떤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나 기관투자가들이 그 소유주체이고, 이들의 목표는 경영권장악이 아니라 자본이득.배당이득의 실현이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외국인지분이 50%를 상회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특정 외국인집단이 의결권을 위임받아 적대적 M&A에 나서는 일이 형식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때엔 외국인에게서만이 아니라 내국인에게서도 의결권을 위임받을 수 있으므로 외국인지분이 50%를 초과했느냐 어떠냐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지배주주의 지분이 얼마 안 되는 외국에서도 적대적 M&A란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삼성도 바보는 아니므로 여러 가지 대비책을 마련해두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지분비율만 갖고서 삼성전자나 포항제철이 외국에 넘어갔다고 하는 주장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물론 삼성전자나 포항제철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주식시장을 갖고 놀면서 커다란 차익을 챙겨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업지배권을 확실히 굳히려는 SK텔레콤 측에 타이거펀드가 자신의 지분을 비싼 값에 팔아 넘긴 것과 같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는 기업이 외국에 넘어갔느니 어쩌니 하는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주체적.선별적 자세의 필요성

 

  그렇다면 외국인투자의 진정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외국인투자가 야기할 수 있는 주요한 역기능이란 경제주권의 침해, 국내자본의 위축, 성장잠재력의 잠식, 정치주권의 훼손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투자는 주체적.선별적으로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경제주권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적 세계정부가 수립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국민국가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엄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외국인투자는 어디까지나 이런 국민국가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외국인투자에 대해서 경제주권 즉 정책적 자율성이 필요한 이유는 우선 다음과 같다. 즉 노동.환경.안보.문화와 같이 시장논리에만 맡겨둘 수 없는 삶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한데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려고 이런 정책적 자율성을 포기한다면 이는 간도 쓸개도 모두 내주는 꼴이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캐나다정부와 U.S. 에틸 사이에 일어난 분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나다 정부는 U.S. 에틸의 제품을 공해물질로 규정하여 수입을 금지시킨 바 있었다. 그러자 이 회사는 그 조치가 NAFTA협정에 위배된다고 소송을 제기했고, 캐나다정부는 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물어줄 수밖에 없었다. 즉 캐나다정부는 환경주권을 상실케 된 셈인데, 이런 상황은 직접투자의 경우엔 더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시장은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파괴적.환경파괴적인 폭력성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적절한 국가 통제가 요청되는 것이며, 캐나다의 사례처럼 외국인투자에 의해 이런 국가기능이 무력화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나라가 방위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를 제한하고 아직껏 스크린 쿼터제를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여러 차례의 세계적 외환위기에서 보았듯이 글로벌화 특히 국제

금융의 글로벌화는 지극히 불안정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통제할 세계정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패권국 미국이나 그의 영향하에 있는 IMF 역시 그다지 신뢰할 수 없다. 외국인투자의 유출입에 대한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등 주체적 자세를 견지해야 할 필요성은 바로 이런 상황에 연유하는 것이다.
  한편 후진국자본은 선진국자본에 비해 열세이고 일정한 보호를 필요로 한다. 대기업에 비해 열세인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 고유업종을 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체급이 다른 자본들을 형식적으로 동등한 조건하에서 싸우게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처사이다.
  우리의 경우도 반도체.조선.철강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아직 선진국자본에 비해 열세이다. 그러므로 내국자본이 붕괴되지 않도록 외국인투자를 선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언제까지고 내국자본을 온실 속에 보호할 수는 없고, 적당히 경쟁하면서 실력을 길러갈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여태까지는 한편으론 내국시장을 보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수출시장을 통해 내국자본의 경쟁력을 키워온 셈이다. 하지만 앞으론 내국시장에서 외국자본의 경쟁도 허용해가되 그 속도와 방식에서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금융부문의 외국인투자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관치금융으로 인해 낙후된 상태에서 금융부문의 내국자본이 외국자본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물론 금융부문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외국인투자의 규모는 그렇게 치명적이라고 판단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개방추세대로 나아간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전술한 정책적 자율성과도 관련되는 문제로서 금융은 국민경제의 혈액에 해당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금융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해서도 안되지만 그 주요 부분들이 외국자본의 수중에 들어가서도 곤란한 것이다. 그리 되면 금융정책의 수행이 크게 제약받는다. 관치금융의 폐해를 시정한답시고 금융정책마저 포기하는 것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마저 내버리는 일이다.
  게다가 아직 우리에게는 금융적 수단 등을 통한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물론 1960-1970년대 식의 산업정책을 지속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첨단산업의 육성이나 사양산업의 처리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산업정책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 존재한다. 외국인투자 유치한답시고 꼭 필요한 산업정책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또 과거에 비해 자본의 국적성이 많이 희석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국적기업이 무국적기업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네슬레처럼 생산의 90% 이상이 스위스 밖에서 이루어지는 다국적 기업도 장기전략 수립과 핵심적인 연구.개발은 모국 스위스에서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외국인투자기업의 의사결정에는 아직도 자국에 대한 고려가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
  요컨대 다국적기업에서도 성장의 엔진은 여전히 모국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어떤 사업을 내국자본이 수행하는 경우와 외국자본이 수행하는 경우는 미래의 발전방향이 달라진다. 즉 외국인투자에 의해 우리의 성장잠재력이 저해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을 외국자본에 맡겨온 중남미.아세안의 경우와 주로 내국 자본의 손으로 밀고 나간 우리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쉽게 파악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려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끝으로 정치적 악영향도 외국인투자를 주체적.선별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중남미에서 미국의 다국적기업 예컨대 ITT나 United Fruits Co.가 군사쿠데타를 지원한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부 일각에서는 외국인기업이 들어오면 오히려 우리의 안전보장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사실 이는 공화당정권 때도 나온 이야기로서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중남미의 예에서 보듯이 그 반대로 악영향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중남미만큼의 정치적 후진국은 아니지만, 외국인투자가 우리의 정치적 독자성을 침해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정부의 비주체적.맹목적 대응

 

  이처럼 외국인투자는 순기능만이 아니라 역기능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주체적.선별적 수용이 필요한데도 정부의 대응은 그렇지 못하였다. 외자유치에서 정부의 비주체적.맹목적 자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IMF사태 이후이다. 우선 정부는 1998년에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제정하여 외국인투자에 조세와 공장부지 면에서 커다란 특혜를 제공하였다.
  과거에는 고도기술 수반사업과 수출자유지역 입주업체에 국한하여 이런 종류의 특혜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이 법에 의해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거나 1,0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외국기업에 대해선 무조건 법인세.소득세를 7년간 면제해주고 그 후 3년간은 50%만 징수하며, 토지 등 국유재산은 무상으로 임대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미 전체 외국인직접투자 중 여기에 해당되는 투자가 30%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재계가 자주 불만을 터뜨리는 내국인 역차별의 대표사례이다.
  또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정부는 정리해고제를 도입하였다. 이는 노동계도 어쨌든 합의한 사항이고 불가피성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계기로 외국인투자를 위해선 노동자를 희생시켜도 좋다는 정책기조로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예컨대 만도기계의 파업진압은 법원이 부적절한 조치로 판정한 사안인데, 당시 모 장관은 일본에서 외자를 유치한답시고 만도기계 파업을 박살내었으니 안심하라고 역설하고 다녔던 것이다.
  외국인의 요구에 의한 순수지주회사 허용도 정책자율성 침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이다. 재벌체제가 존속하는 한에선 순수지주회사는 장차 심각한 폐해를 야기시킬 것이 우려되는 제도이다. 그런데도 한국 실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말만 듣고 정부고위층이 그 허용을 지시했던 것이다. 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그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순수지주회사와 구조조정이 무관하다는 것은 명백하게 드러난 바 있다.
  한편 MAI(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 다자간 투자협정)나 한미.한일 투자협정 추진도 마찬가지로 비주체적이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MAI 협상을 중단했는데 우리는 그 때까지 멋모르고 따라갔던 것이다. 국내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시킨 적도 없었다.
  그리고 MAI가 벽에 부딪치자 MAI보다 더 불리할 수 있는 양자간 협상인 한미.한일 투자협정 체결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 협정들을 통해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을 동등하게 대우하게 되면 예컨대 스크린 쿼터제도 유지하기 힘들다. 그리고 당장 대우자동차를 해외에 매각할 때 고용.기술개발.부품업체육성과 관련된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곤란해지거나 무효로 된다. 과연 이런 협정들을 맺지 않으면 외국인투자 유치에 무슨 큰 지장이 초래되는지를 진지하게 따져 봤는지 의심스럽다.
  외국인투자 중 그 움직임이 불안정한 증권투자에 대해서도 IMF사태 이후 빗장을 활짝 열어제쳤다. 정부는 650억 달러의 외국인 증권보유분 중 이른바 헤지펀드에 속하는 자금은 10억 달러 정도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선 헤지펀드가 아니라도 증권투자 자금은 얼마든지 재빨리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VDR(가변예치의무제)이나 자본거래허가제와 같은 안전장치(safeguard)를 발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기는 했다. 그러나 선진국도 국제금융자본의 급격한 이동에 의해 심대한 타격을 받는 판에 이런 정도의 준비만으로 안심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미 수습할 수 없는 단계에 가서야 안전장치를 발동하려고 허둥대지 않을지 걱정인 것이다.

 

  올바른 외자수용을 위하여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올바른 대처는 대원군 방식도 이완용 방식도 아니었다. 명치유신 무렵의 일본식으로 주체적으로 외세에 접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었다. 김옥균세력도 외세에 일방적으로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선 동학세력과 같은 국민대중과 힘을 합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날 글로벌화에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의 외국인투자 숭배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는가. 아직 그렇지는 않다. 그러니까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고 있고, 외국인이 경영권을 인수한 공기업의 예는 하나도 없다고 애써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자 중 외국인증권투자보다 외국인직접투자를 선호한다고 내세우기까지 한다. 주체성.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은 셈이다.
  그러나 현재의 기조가 강화되어 비주체적.맹목적 외자수용 즉 외국인투자 지상주의가 판을 칠 위험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부의 정책기조를 '주체적.선별적 외자수용' 쪽으로 명시적으로 전환케 해야 한다. 노동.환경.문화.안보 영역에 대한 정책적 자율성이 외국인투자에 의해 훼손되도록 해서는 안 되며, 산업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 두어야 한다.
  아울러 한미.한일 투자협정의 의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또 외국인투자에 대한 부당한 특혜는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 외자유치는 부당한 특혜를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당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기업경영.법률제도.정부행정을 투명하게 하고 정보통신 인프라를 발전시키고 노사관계를 생산적으로 구축하는 길이 올바른 외자유치 방안인 것이다.
  그리고 증권투자보다 직접투자를 선호한다면 그 선호를 현실화시키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며, 또한 마찬가지로 직접투자에 대해서도 선별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선별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올바른 기본입장을 갖고 사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다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지금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를 일정에 올려놓고 있다. 물론 모든 공기업을 현 상태로 유지해서는 안되겠지만, 아직은 주요 기간 산업을 재벌이나 외국자본에 넘겨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선 민영화를 해야 할지에 신중해야 할 뿐 아니라, 꼭 민영화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새로운 민영화모델의 창출이 필요한 것이다. 지나치게 빗장 푼 부분을 재정비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엎질러진 물이라고 포기하지 말자.
  외국인투자는 악마도 천사도 아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수용반대는 곤란하다. 그러나 외국인투자의 포로가 되어서도 안 된다. 불안정한 글로벌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주체성과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