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금권정치의 양성화인가(2000. 2) - 경향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4:59

금권정치의 양성화인가


  재계 5단체가 정치활동을 선언하였다. 의정평가위를 구성해 평가결과를 회원사들에게 알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일단 평가대상을 노동분야의 의정에 국한하고 평가결과도 언론에는 공표 않기로 하였다. 회원사는 무역협회와 대한상의가 각각 8만, 기협중앙회가 1만6천, 경총이 4천, 전경련이 440 정도이므로 회원사 공지에만 그친다면 그 영향은 별것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계는 머리 수보다는 돈으로 힘쓰는 조직이고, 또 내친 걸음에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 물론 우리 사회엔 엄연히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시민단체만이 의정평가의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재계와 대척점에 있는 노조도 낙선운동에 나서지 않는가. DDR이나 정치참여는 누구에게나 자유이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재계는 그 동안 정치활동을 멀리하고 본연의 경제활동에만 충실하다가 이번에 갑자기 정치판에 나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재계, 특히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재벌들은 정치자금과 뇌물을 매개로 정치권과 정부를 주물럭거리지 않았는가. 간혹 삐꺽거리기는 했지만 이게 바로 정경유착 아니 정경불륜이고, IMF사태의 한 원인이었다.


  그러면 지금 왜 새삼스레 정치활동을 공식 선언한 것일까. 개혁이니 뭐니 하면서 떠드는 현정권을 겁주기 위해서일까. 이때까지 자신들이 독점해 온 정치활동에 시민단체와 노조가 끼어 들자 분기탱천한 탓일까. 시민단체가 개발하여 상한가를 치고 있는 낙천.낙선운동 방식에서 한 수 배운 것일까.


  어찌됐든 재계의 정치활동 공식화는 잘만 하면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다. 사실 정치활동이란 그 이미지만큼 나쁜 일은 아니다.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비시장적(非市場的) 주요장치가 바로 정치인 것이다. 문제는 정치 그 자체라기보다 특정세력이 정치를 독점해서 음습하게 일을 처리해 온 점이다.


  우리 사회도 이런 독점적 음성적 정치로부터 민주적 양성적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재계의 정치활동 양성화도 이에 기여할 수 있다. 다만 그러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로 재계는 기존의 음성적 정치활동을 하루빨리 중단해야 한다. 특혜에 의존할 생각을 버림은 물론이고, 정치권의 부당한 자금요구에 대해선 시민단체.노조와의 연대도 시도해볼 만하다. 이리하지 않고 재계가 음성적 정치활동도 계속하면서 양성적 정치활동까지 벌이면, 그것은 선진 정치가 아니라 막가파식 정치를 낳는다. 


  둘째로 정치권을 제대로 비판하려면 재계 자체의 철저한 거듭나기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재벌에 총수의 왕조적 독재체제가 자리잡고 있고 그 재벌이 재계를 좌지우지하는 상태에서, 어찌 재계가 정계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전근대적인 보스중심.지역주의 정치구조를 선진적인 당원중심.정책지향 정치구조를 만들어내는 일과, 전근대적인 재벌지배체제를 선진적인 책임전문경영체제하의 기업간 균형경제로 탈바꿈시키는 일은 닭과 달걀의 관계이다.


  셋째로 재계의 정치참여는 민주주의원리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돈의 원리인 '1원1표' 논리가 작동하는 시장은 사람의 원리인 '1인1표' 논리가 작동하는 정치와 상호긴장 속에서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재계가 돈으로 시장도 통제하고 나아가 정치마저 1원1표 논리로 지배해 버린다면 금권정치가 민주주의를 몰아내게 된다. 그렇다고 물론 재계의 의견표명이나 양성적인 자금제공까지 금지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재계는 어차피 머리수로는 불리한 만큼 돈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합법적으로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일반주주와 종업원의 이해가 걸린 회사 돈이 아니라, 기업주 개인 돈으로 충당해야 마땅하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재계의 정치선언은 코미디인 동시에 비극이다. 2000년대에 필요한 것은 음습한 정치에 노골적인 정치까지 아우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재계 정치활동의 단순한 양적 확대이고, 금권정치의 양성화일 뿐이다. 재계의 정치활동은 오히려 질적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즉 재계는 스스로 거듭나고, 음성적 정치활동을 청산하며, 민주체제의 일원으로 제몫만큼만 발언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