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IMF사태는 끝났는가(1999. 11) - 경향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4:57

 

IMF사태는 끝났는가

 

  재벌위기↔금융위기↔외환위기의 악순환으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2년이 흘렀다. 그 동안 IMF자금에 의한 응급수혈, 저금리의 확장정책, 기업들의 살빼기가 진전되면서 우리 경제는 이제 기력을 꽤 되찾은 듯싶다. 생산과 수출이 IMF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고, 실업률도 4%대로 내려 왔으며, 주가는 1,000포인트 근방으로 치솟았다.


  자 이제 우리는 IMF탈출 축하연을 벌여도 좋은가. 당치 않은 일이다. 아직도 많은 실업자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지 않은가. 비정규직으로의 전락 등 악화된 근무조건에 대한 불만과, 확대된 빈부격차에 대한 위화감도 달래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게다가 IMF사태 이전으로 복귀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또다시 IMF로 질주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외환보유고가 650억 달러를 넘어섰고 경상수지 흑자도 지속되고 있으므로 곧바로 IMF사태가 재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12년 간격으로 연거푸 외환위기를 맞았던 멕시코의 악몽을 쉽게 떨칠 수는 없다. 문제는 치욕스런 IMF 신탁통치를 다시는 안 받아도 될 만큼 한국경제의 체질이 튼실해 졌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이다. 과감한 폐쇄조치와 감독체계의 강화로 그나마 호평을 받던 금융개혁조차 땜질식 투신사 처리로 맛이 가지 않았는가. 재벌개혁도 소유지배구조의 철저한 개혁에 이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날 모양이다. 외국자본에 대한 빗장은 활짝 풀었는데 그에 따른 안전장치는 미심쩍기 짝이 없다. 지금의 경기회복도 시장변동이 심한 반도체 의존도가 30-40%나 되는 불안한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에 대한 정략적 고려와 여야의 아수라장 정치로 인해 개혁은 중단·실종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면에서까지 IMF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지금이라도 정신차려 개혁의 고삐를 다잡아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IMF사태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IMF사태를 넘어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2년 동안의 개혁타령에 피로감이나 식상감도 느낄 만하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폐해를 씻어내려면 이 정도는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를 바로잡는 구조개혁이 미래의 청사진과 뚜렷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외환위기 방지에 급급해 하는 초라한 모습에서 벗어나 신명나게 2000년대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려면 할 일은 태산같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기업·금융기관·근로자 등 경제주체들간의 새로운 관계구축이다. 우선 정부는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실행하고, 말아야 할 일에서는 깨끗이 손떼야 한다. 재벌의 왕조적 독재체제를 선진적인 책임전문경영체제로 전환시키는 작업은 분명히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는 재벌총수의 뜻에 배치되는 개혁이므로 재벌의 자율에 맡겨 둘 수 없다. 또 미래지향적인 산업정책과 사회경제적 약자의 보호는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 반면에 기업의 개별행위에 대해선 규칙을 제정하고 위배행위를 철저히 단속하는 심판관의 역할로 족할 것이다.


  한편 개발독재 시대 정부가 수행해 왔던 기업에 대한 감시·견제 기능을 이제는 금융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자율책임경영체제를 발전시킴과 동시에, 하루빨리 주요 제2금융권에 대한 재벌의 지배를 종식시켜야 한다. IMF사태에서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근로자들의 의욕 재창출은 초미의 과제이다. 왜곡된 분배관계를 시정하고, 소유·경영에의 노동자참여를 토대로 생산적 노사협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IMF사태는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철저한 반성 없이는 미래의 거듭남도 있을 수 없다. 근원적 개혁 없는 임시미봉책의 효과도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IMF사태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온갖 수구적 작태들이 난무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새 출발해야 한다. 중도 포기한 개혁들을 시급히 매듭짓고, 2000년대를 향해 국민의 에너지를 결집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 IMF사태를 진정으로 극복하고 선진경제로의 도약에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