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고유의 글

이태리를 보며 한국을 생각한다 (2)

동숭동지킴이 2013. 2. 11. 16:54

이태리를 보며 한국을 생각한다 (2)

 

지난 글에 이어 이번부터는 이태리에 관해 본격적으로 다뤄볼까 합니다. 물론 그런다 하더라도 무슨 전문적인 분석은 아닙니다. 그저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이태리의 이런저런 측면을 건드려 보는 것이지요. 먼저 이태리가 우리와 다른 주요 부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이태리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있기는 하지만 실권이 별로 없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제와는 크게 다른 것이지요. 그에 따라 정치사정도 우리와 다른 면이 많습니다.

 

저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선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나은 면이 있다고 블로그 글에서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정책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준비된 정치리더를 양성할 수 있고,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갈등 같은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원내각제 국가라고 모두 정치가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태리나 일본의 경우 정치가 효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자랑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태리든 일본이든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있고, 담대한 개혁이 쉽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전체 투표의 5% 미만을 득표한 경우엔 의석을 배분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한 것도 이런 문제를 방지하게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언급하겠습니다만, 이태리에서는 정치 스캔들이 심심찮게 터져 나옵니다. 얼마 전까지 수상을 지냈고 지금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베를루스코니(S. Berlusconi)를 보십시오. 성매매여성들을 불러서 파티를 벌이는가 하면, 미성년자(루비라는 이름의 여성) 성매매 혐의로 재판까지 받고 있는 인물이 나라의 지도자라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왼쪽이 루비, 오른쪽이 베를루스코니)

 

요컨대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우월하다 하더라도, 달랑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꾼다고 정치의 주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이태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북의 귤이 강남에서는 탱자가 된다는 말도 이런 사정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둘째로, 이태리에는 마피아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조직이 존재합니다. 원래 마피아는 시칠리아의 조폭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였습니다만, 지금은 이태리의 조폭 나아가 미국의 이태리출신 조폭(영화 ‘대부’를 상기하실 것)까지 포괄하는 보통명사로 발전했습니다. 현재 이태리에는 크게 4개의 마피아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조폭이 존재하고 영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국회의원으로까지 성장했던 김두한도 원래 일제 강점기의 조폭이었고, 해방 직후엔 군정청의 비호 아래 좌익을 때려잡는(함부로 죽이기까지 한) 유명한 조폭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 인물로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김태촌이나 조양은이 매스컴을 탄 적이 있지요. 조직으로는 호남의 서방파나 양은이파, 부산의 칠성파나 21세기파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조폭은 이태리의 마피아에 비하면 세계 조폭계에 감히 명함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중소기업과 재벌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조폭 같은 것은 무조건 커지는 게 좋은 게 아니니까, 이 점에서는 한국 상황이 더 양호하지요.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이태리에서 마피아의 거래액이 GDP의 15%에 이르고 이탈리아 기업 5개 중 1개가 마피아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가·법조계 등 사회 각계 지도층에까지 마피아의 영향력이 행사되어 왔습니다.

 

사회를 함부로 주무르고 오염시킨다는 점에서 마피아는 어째 우리나라 재벌 같은 면이 있습니다. (물론 한국 재벌의 생산적 기여는 마피아와는 크게 다르니, 그건 논외로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우리 재벌인 한화의 김승연 회장의 경우를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자기 아들이 술집에서 시비 끝에 얻어맞았다고 마치 조폭처럼(실제로 조폭을 끌고 갔다는 설도 있음) 우르르 술집에 쳐들어가 주먹을 날렸으니 그게 그거이지요.

 

미국의 케네디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시카고 마피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만, 이태리는 그 정도가 훨씬 심각했습니다. 이태리 총리를 7차례나 역임한 안드레오티(G. Andreotti)는 유권자 표몰이를 대가로 마피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심지어 마피아의 일원으로 간주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안드레오티가 마피아 보스에 입맞춤하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조폭이 검사와 술자리를 같이 했다든가, 일부 정치인과 관계를 맺은 일은 있습니다만, 이태리의 마피아와 같은 식으로 ‘국가 내의 또 다른 국가’인 경우는 없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 잘 서술해 놓고 있듯이,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국가형태는 일상적으로 내전이 벌어지는 소말리아 같은 경우입니다. 국가의 기본기능인 법질서 확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태리는 소말리아처럼 엉망진창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피아가 활개를 친다는 점에서 다른 선진국 특히 유럽의 바람직한 선진국과는 크게 다릅니다. 사실 저도 이태리를 여행할 때 마피아를 비롯한 범죄가 겁나서 남부 지역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여행의 안정성이 의심스러운 국가가 어디 바람직한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태리가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은 나중에 다룰 남북문제(그냥 남부문제라고도 함)가 그 주요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북문제란 한 마디로 이태리의 남쪽은 못살고 북쪽은 잘 산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상영된 영화 '시네마 천국'. 이태리의 남부 문제가 언급되고 있음)

 

거기다가 마피아의 탄생지인 시칠리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방인의 점령과 착취 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공권력 즉 국가를 신임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배경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조폭 문제가 마피아와 같은 규모로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만약 조만간에 갑작스럽게 남북한 통일이 이뤄지면 북한과 남한의 커다란 격차로 인해 조폭 문제가 훨씬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걸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다룬 작품이 <국가의 사생활>(2009)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지요.

 

셋째로, 한국과 달리 이태리에서는 재벌이 경제 나아가 사회를 주무르고 있지는 않습니다. 피아트, 베네통 같은 대기업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한국의 주요산업을 지네발처럼 촉수를 뻗쳐 장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베를루스코니도 우리와 같은 재벌 총수가 아니라 미디어그룹의 총수일 뿐입니다.

 

대신에 이태리에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큽니다. 최신 통계는 아니고 2000년 무렵에 제조업체의 평균 종업원 규모는 7인 이하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사장인 나라>(2005)라는 이태리 사람이 쓴 책이 있을 정도입니다.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이태리 베네치아 무라노 섬의 유리공예 장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이태리 패션 산업에서도 중소기업의 역할은 큽니다. 가구도 유명해서 재벌의 고위임원이었던 제 지인은 수천만 원짜리 이태리제 소파를 집에 들여놓았던 바 있습니다.

 

이런 이태리의 장인적 중소기업에 주목한 Piore와 Sabel이라는 학자들은 <The Second Industrial Divide: Possibilities for Prosperity>(1984)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기존의 대량생산체제를 대체할 유연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 시대의 모습을 이태리의 Prato, Biella나 프랑스의 Oyonnax 같은 지역에서의 장인생산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태리 중소기업엔 항상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점도 있습니다(이에 대해선 다음 번 글에서 다룸). 그리고 Piore와 Sabel이 주목했던 이태리 북부지역에서 장인생산(craft production)은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지금 그 지역엔 저임금을 이용한 중국인들의 착취공장(sweatshop)이 이태리인들의 공장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넷째로, 이태리의 고용과 사회보장 사정도 우리와 다릅니다.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현재 한국은 11%인데 반해 이태리는 20%인 초고령사회입니다. OECD 국가 중에선 그 비중이 25%인 일본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노인 비중이 높아지면 경제성장이 어려워지지요.

 

2010년 현재 실업률은 한국이 3%대인데 반해, 이태리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슷하게 8%대입니다. 다만 청년(15~24세) 실업률은 독일(10%), 덴마크(14%)보다 훨씬 높은 28%입니다. 그래도 청년실업률이 50%가 넘는 그리스, 스페인보다는 사정이 낫습니다. 주당 근로시간은 한국의 46시간보다 작은 38시간이고, 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슷합니다.

 

조세부담률(조세/GDP)은 한국의 19%보다 높은 29%입니다. 국민부담률((조세 + 사회보장부담금)/GDP) 역시 한국의 25%보다 훨씬 높은 43%입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35% 정도인데 반해 이태리의 경우 120%를 넘었습니다.

 

그리스의 국가채무 문제가 유로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만, 그리스는 인구 1,100만 정도의 작은 나라입니다. 만약 인구 6천만 명의 이태리가 국채문제로 위기에 처하면 그리스에 비견되지 않게 ‘유로 경제권’을 뒤흔들 것입니다.

 

통계수치 따위를 나열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좀 따분하겠지만, 이상 이태리와 한국의 차이를 말씀드렸습니다. 원래 경제라는 게 좀 재미가 없는 것이니 양해하십시오. 이밖에도 이태리와 한국 사이에는 교육시스템 등등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만 이쯤 하지요.

 

이제부터 이태리와 한국이 상당히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점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래야 이태리가 한국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 있으니까요. 먼저 어쩌다가 제가 이태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요.

 

한국의 자영업자 문제를 들여다 볼 때였습니다. 그 때 다른 나라는 사정이 어떤가를 보던 중 이태리 수치가 눈에 띄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과 비슷했습니다. 자영자(종업원을 두지 않고 혼자 일하는 경우)가 한국이 19%이고 이태리가 17%였습니다.

 

다른 선진국들과 이태리가 여기서 너무 달랐던 것입니다. 일본 7%, 독일 6%, 프랑스 7%, 덴마크 5%이니까요. 영세자영업자의 높은 비중은 한국경제의 골칫거리인데, G7에 속한다는 이태리도 사정이 크게 낫지 않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이태리도 이렇게 후진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다음으로 와인을 수입해 고급식당을 경영하는 지인에게서 이태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여러 나라 대사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유일하게 이태리 대사만이 자기가 아는 이태리 와인사업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답니다.

 

이쪽에서 와인사업자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면 모르겠지만, 일국의 대사가 점잖지 못하게 사업 커미션을 챙기려는 듯해서 기분이 씁쓸했다고 제 지인은 말했습니다. (‘외교관은 사업가’라고 생각하면 물론 해석은 달라집니다.)

 

연고 경제(crony capitalism)라면 후진국의 특징이고 한국에서 IMF사태가 초래된 하나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이태리도 아직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준 것이지요.

 

또 사소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태리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수의 사회적 지위가 상당히 높은데, 이태리도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선 교수들이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고, 갑자기 장관 등 고위공직자로 발탁되기도 합니다. 월급도 학교마다 차이가 많이 납니다만 일본, 미국, 영국에 비해선 높은 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건 엄밀한 비교는 아닙니다.

 

그리고 교수 월급은 국민소득 수준과 대비한 상대적인 높이를 말하며, 미국 교수의 경우 외부에서 돈을 끌어오지 못하는 인문계 교수와의 비교입니다. 또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약간 바뀌어, 교수들 평균연봉이 현대자동차 생산직보다 수천만 원 정도 작은 것 같으니, 월급 면에서 한국 교수의 상대적 지위가 어쩐지 잘 모르겠네요.

    

나아가 교수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게 반드시 나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아마도 제가 교수라서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하하하) 독일에서도 교수의 지위는 상당히 높아서 빡빡한 관공서 관련 일처리를 할 때도 교수라고 하면 그런 대로 쉽게 풀린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수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은 사회 각 부문에서 스스로 인재를 키워가는 시스템이 발달해 있지 않은 게 주요 요인입니다. 예컨대 정치가를 스스로 키우지 못하니 교수를 갑자기 국회의원으로 발탁하는 것이지요.

 

이런 면은 사회의 낙후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태리 교수 스스로가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자랑했다 하니, 한국과 유사한 낙후성을 온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태리를 여행할 때였습니다. 이태리나 프랑스처럼 외국인이 몰려드는 관광지에선 소매치기 따위 잡범이 많은 것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위스에선 관광객이 많아도 그런 잡범에 대한 경고는 별로 없었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관광은 주로 한 철 장사이고 집시도 적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그 이유를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그런데 이태리의 화장실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변기 뚜껑이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가끔씩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로 잘못(?) 생각했던 이태리에서 변기 뚜껑을 떼 가는 도둑이 있다는 데 황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예전에 화장실 휴지를 사람들이 가져가 버려서 제대로 비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아니 그보다 더 심하다고 해야 할까요.

 

이상 제가 이태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요정도 하고 다음 글에서 이태리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소개할까 합니다. 남부문제, 부패문제, 특수이익집단 문제 등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위의 제 글에서는 윤종태 허유희의 <이탈리아, 이탈리아인>(2001)을 참고한 내용이 몇 부분 있습니다만, 논문이 아니므로 일일이 그 자리에 주석 표시를 하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