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고유의 글

김근태 시대의 초심을 돌이켜보며

동숭동지킴이 2013. 2. 8. 18:26

 

 

(어제 페북에 올린 글을 대폭 보완한 내용입니다.)

 

<김근태 시대의 초심을 돌이켜보며 :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읽고>

 

 

2012년 고문후유증(파킨스씨병 및 뇌정맥혈전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김근태선배의 삶을 방현석씨가 소설 형식으로 정리한 책(2012년 11월 출간)을 읽었습니다. 방씨는 노동현장에 관한 소설을 여러 편 발표한 바 있는 중앙대 교수이고, 이번 책의 제목은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이하 ‘내 이름’)입니다.

 

신문의 소개 등을 통해 책이 나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 동안 읽지 못하다 이제야 손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유명한 분의 삶을 다룬 책을 나오는 대로 재빨리(?) 읽지 않고 몇 달이 흐른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제가 요즘 독일어 공부에 집중하느라 다른 걸 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기억력이 현저하게 쇠퇴해 가는 나이에 새로 어학을 공부하려니 몹시 힘들고, 그래서 가급적 꼭 필요한 책 이외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김근태선배나 그가 살고 투쟁했던 시대에 대해선 저도 직간접적으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므로, 굳이 따로 시간 내어 책으로 읽을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김근태선배의 고문을 다룬 영화 <남영동 1985>도 관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과거 운동권이었던 진보파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의 요즘 행태에 불만을 느껴 진보파들의 회고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상당수는 김문수씨나 김지하씨처럼 변절해서 보수진영으로 넘어갔고, 또다른 이들은 변절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과거의 치열한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1987년의 민주화 이후로 한국사회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문제의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일부 진보파는 아직 1987년 이전의 문제의식(독재 對 민주화)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게 오히려 문제일 정도입니다.

 

(참고로 기우에서 덧붙인다면, 1987년 이전의 문제의식이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재벌의 독재체제 문제, 국가의 부패 문제, 검찰과 국정원의 권력남용 문제 등등 1987년 이전의 문제의식이 아직도 필요한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치열함 자체는 버리기 아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진보세력(야당, 노조 등등)에서는 사고 자체가 무뎌져 조그마한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군사독재 하에서 목숨을 거는 식으로 투쟁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진보파 정치인도 이제는 생활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사정이 이렇게 달라졌으므로, 진보파의 화려한 과거 투쟁경력에도 감동을 느끼기 힘들어졌습니다.

 

‘내 이름’을 읽는 데 시간이 걸린 또 다른 이유는, 그런 책들을 통해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다시 돌이켜보는 게 저로서는 너무나 끔찍했던 악몽을 되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작년 대선에서 50대 후반 이후가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데에는 박정희시대의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도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압축적 고도성장의 그 시대는 동시에 어둡고 끔찍한 군사독재시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내 이름> 읽기를 미루고 있는 판에 국문학과 교수인 친구부부가 너무도 강력히 그 책을 추천했습니다. 심지어 책을 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읽고 말았습니다.

 

그 부부는 오랜 만에 소설을 내놓은 방현석씨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했고, 또 이 책을 통해 70년대 대학을 다녔던 우리 자신들의 과거를 한번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읽고 보니 역시 읽어볼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방씨의 문학적 글솜씨를 제가 운운할 형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술술 읽혀졌습니다. 글의 박진감도 느껴졌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돌이켜보는 게 괴로운 면도 있었지만 사고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글의 내용 중 특히 눈에 띄었던 부분 몇 개를 소개할까 합니다.

 

1)

먼저 그 시대의 고통 중 몰랐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약 20일 사이에 지옥 같은 고문을 당했던 김근태선배가 겪었던 후유증 중의 한 부분입니다.

 

책에 따르면(363쪽),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광화문 횡단보도에서 김선배는 건너편의 경찰을 보고는 비서관의 손을 꼭 잡으면서 “넌 안 무섭니, 난 무서워”라고 말했답니다. 고문 당시에 겪었던 공포가 20년이 지난 그 시점까지도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 책에서 고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너무도 실감나게 잘 묘사하고 있어서, 김선배의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폐인이 된 경우는 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전에 블로그 글(http://blog.daum.net/kkkwkim/181)에서 소개했듯이, 박정희 정권의 2인자급들까지 박정희가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폐인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책을 통해 김근태선배가 후유증으로 갖고 있던 공포를 알게 되니, 그에 대해 예전에 다소 아쉬웠던 부분이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1987년 그가 취했던 비판적지지 노선의 문제점에 대해선 이미 이전에 블로그에서 지적한 바 있습니다. (http://blog.daum.net/kkkwkim/151). 그 오류는 고문 후유증과 연관 짓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고문후유증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사건은 김선배가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2006년 10월 20일의 사건입니다. 그날 그는 개성공단 2주년 기념 행사차 개성에 가서 봉동관이라는 식당(저도 가본 적이 있는 자그마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중국이나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에 들러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북한 식당에서는 종업원들이 식사도 나르지만 틈틈이 가무도 보여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개성 봉동관에서도 종업원들이 노래를 불렀고, 김의장도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몇 차례 권유를 받고서 종업원 및 다른 의원과 함께 무대에 나가서 잠깐 같이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게 한국에 돌아와서 큰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행사 열흘쯤 전인 10월 9일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노정권을 심심찮게 중상모략하던 수구보수언론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아니 북한이 핵실험을 한 위중한 상황에서 북한인들과 어떻게 같이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느냐는 것이었지요. 한나라당은 “김근태의 개성 춤판, 김정일 위무하러 간 것인가”라고 공격했습니다.

 

이때 김선배 측은 수세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우상호 당 대변인이 “식당 직원들의 강권에 차마 거절하지 못해 우발적으로 생긴 일”이라고 변명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요. 저는 당시에 김선배가 제대로 대응했다면 일약 차기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기가 곧 기회였던 것입니다.

 

흔히들 “위기가 기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치인에게 위기가 기회인 이유는 위기 순간엔 국민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홍보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인 것입니다. 이런 기회는 좀체 오지 않습니다. 그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는 인물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당시 국회에서 일하고 있던 후배는 다음과 같이 대응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종업원의 강권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민족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라면 춤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못할 게 없다”하고 당당히 맞서야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100% 동의합니다. 우선 종업원의 강권 어쩌구 하는 구차한 변명은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방식입니다. 정치지도자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은 절대 금기사항입니다.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를 어찌 국민이 믿고 따르겠습니까.

 

변명을 할 걸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나설 때 국민은 여느 정치인과는 다른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수 위의 정치인으로 보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뻔뻔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옳은 경우에라야 당당할 수 잇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화끈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당시 핵위기 상황에선 남북한의 긴밀한 대화가 오히려 더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김의장이 종업원과 같이 노래 부르고 춤 춘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춤도 디스코도 아니고 가볍게 손잡는 정도였습니다. 종업원에게 성희롱을 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우리 진보파는 북한 문제만 나오면 주눅 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눅 들어선 정치지도자로 우뚝 설 수 없습니다. 여러 번 인용했듯이, 노무현은 장인의 좌익경력에 대해 “대통령 되려고 마누라를 버리란 말이냐”고 되받아칠 정도의 기백을 보임으로써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김근태 의장은 당시 그런 기백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되려면 요샛말로 포스(force, 에너지, 氣)가 남달라야 합니다. 당당하고 되받아칠 줄 아는 에너지가 부족한 인물을 어찌 국민들이 지도자로 뽑아주겠습니까. 그러니 김선배는 2002년 당내 경선에서 노무현에게 밀린 것이고, 2007년 대선에서도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김선배가 못내 아쉬웠는데, 책 <내 이름>에서 그 연유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작년의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가 패배한 요인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한 마디로 하자면 박근혜 후보에게 포스가 밀린 셈입니다. 그것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났는데, 단적으로 문후보나 안후보 모두 천함 사태에 대해 “정부 발표를 존중한다” 어쩌구하면서 당당함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서 억울하게 사망한 군인들의 영혼을 달래고, 상당수 국민들에게 남아 있는 의혹도 해소하고, 만약에 북한의 소행이 확실하다면 철저하게 북한에게 따지겠다”고 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국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냐”고 공격하면 “민간인 불법사찰까지 저지른 이명박 정부의 발표를 어떻게 무조건 믿을 수 있는가”라고 반격해야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주한 미국대사 및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그레그씨마저 한국정부가 발표한 ‘북한어뢰 공격설’을 부인했음을 인용하면 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선배의 경우 앞서 인용한 것처럼 고문의 공포가 그렇게 심하게 남아 있는 상태에선 고문 이전의 포스를 그대로 유지하기 힘든 게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김선배에게 여러 차례 가해진 고문에 대한 책의 서술을 보면 인간으로서의 에너지를 박탈당하는 모습이 가슴 아프게 확인됩니다.

 

그리고 김선배가 그렇게 심한 고문을 당하고 그걸 나중에 부인(인재근 의원)이 폭로한 덕분에 김씨 이후에 잡혀 들어간 민주인사들 예컨대 김문수씨(1986년 체포) 등은 고문을 덜 당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종의 살신성인이지요.

 

 

2)

김근태선배의 은사이고 저의 은사이시기도 한 변형윤 선생님이 김근태선배를 비롯한 소위 운동권 학생들에 대해 많은 배려를 하신 것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좀더 상세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변선생님이 겪어야 했던 고민을 겪지 않으면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저를 비롯한 요즘 교수들과 대조가 되었습니다. 물론 요즘 학생들도 당시 학생들과는 다르지요.

 

요즘 교수들이 당시 교수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생(?)하는 것처럼(특히 젊은 교수들의 경우 업적 평가 따위로), 요즘 학생들도 당시 학생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취업문제 따위로) 고민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리고 변선생님은 원로가 되어서까지 젊었을 때의 바른 자세를 꼿꼿이 유지하신 드문 경우입니다. 한국에선 김지하씨처럼 유명인사들이 바람나는(변절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데, 이런 훌륭한 분이 계시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발전해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 책을 보면(172-173쪽), 경제사를 담당했던 송규철 교수가 김씨를 배려해 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송교수는 경제학과의 대표적인 보수 반공주의자로 알려졌다고 책에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송교수라는 분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금합니다. 제가 다닐 때 경제사를 담당했던 분들과 너무 이름이 달라서 누구인지 추측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그 분의 진짜 성함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라도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 책(286-289)에서는 경직적이고 고압적인 일부 운동권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그런 운동권과 송교수 어떤 쪽이 더 바람직한 모습일까요. 저는 인간관계에서 이념도 중요하지만 인간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경험을 꽤 했습니다. 게다가 이념보다 인간성이 덜 바뀝니다. (다만 이런 관점이 지나치면 주사파의 이른바 “품성론”으로 빠집니다. 역시 중요한 건 균형입니다.)

 

 

3)

종로서적(지금은 사라졌습니다만 예전엔 교보문고에 버금가는 큰 책방이었음)의 장하구 회장과 공병우 타자기를 발명한 공안과의 공병우선생도 김근태선배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도 약간 놀라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제 페북 친구인 권모 교수가 “왜 가난뱅이가 보수정치세력을 지지하는가”라는 글을 페에 올렸습니다. 이 질문은 거꾸로 하면 왜 종로서적의 장회장 같은 부자가 진보파를 지원했을까 하는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부자들 중에서 장회장 같은 경우가 예외이듯이, 가난뱅이가 압도적으로 보수 정치세력을 지원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정치학자나 정치평론가들 중에서는 “가난뱅이가 오히려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한다”는 계급배반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별로 확실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이번 대선에서 월 200만 원 이하의 소득자들이 새누리당을 많이 지지했다는 걸 그 근거로 제시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산이 많은 부자들이라도 나이가 들면 은퇴해서 월 소득은 별로 안 됩니다.

 

즉 조사에서 가난뱅이라고 파악된 200만 원 이하 소득자 중에는 중산층 또는 부자 노인들이 많이 포함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조사에 잘 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보수성향이 강한 노인들 때문에 200만원 이하 소득자가 보수성향으로 표출되는 것을 마치 저소득자가 보수성향이라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컨대 서울에서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과 가난뱅이들이 많이 사는 곳의 투표성향을 분석해 보면 어찌될까요. 부자들이 많은 강남3구에서 새누리당 지지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고, 그 반대로 가난뱅이들이 많은 금천구 같은 데선 민주당 표가 많이 나옵니다.

 

물론 금천구 같은 데선 호남인의 비중이 높은 탓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호남인들 중에 가난뱅이의 비중이 높고, 그 결과 거기서 민주당표가 더 많이 나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남인 가난뱅이들 중에도 새누리당의 지지자가 적지 않은 것을 근거로 계급배반설을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지역효과가 계급효과를 능가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영남인 부자와 영남인 가난뱅이의 투표성향을 비교해 양자의 차이가 없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급배반설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자의 투표율이 가난뱅이의 투표율보다는 대체로 높은 걸로 나옵니다. 그건 부자가 계급성에 더 의식적이란 말이지 계급배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게 많은 부자들은 정치변화에 따른 상실의 공포를 갖고 있고, 반면에 가난뱅이들은 정치변화에 따른 획득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크기가

더 크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가난뱅이가 오히려 보수정치세력을 지지한다”는 명제는 아직 ‘참’으로 증명되지 않은 명제입니다. 그리고 종로서적 장회장의 경우처럼 “부자가 진보파일 수 있다”는 건 미국 소로스의 경우에서처럼 얼마든지(그러나 다수파는 아니고) 나타나는 사례입니다.

    

((추가: 2월 9일.

 미국에서도 '저소득층이 오히려 보수정치세력을 지지한다'는 명제를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었습니다. 그 명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통계학자의 분석을 저의 페친인 Hyunho Shin이 어제 페북에서 소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연령과 지역을 통제(그 요인들을 배제)하고 나면, 저소득층일수록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것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면 Hyunho Shin의 담벼락으로 가보시면 되겠습니다. ))

 

4)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에 대한 언급도 흥미로웠습니다.(책에서는 ‘이중구“로 표기됨.) 이 분은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해 이명박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하신 분입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노정권을 지지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과 서로 가깝게 대화를 나눠본 사이가 아니라서 어떤 연유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 교수가 되었고, 베스트셀러 경제학 교과서를 쓰신 주류 중의 주류인 분이 뭘 잘못 드셨을까 (하하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 비밀(?)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김근태 선배에게 오염(?)된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하하! 인간적으로 감동을 준 것이지요. 게다가 김선배는 사회주의혁명론이나 주체사상에 몰두했다기보다는 군사독재를 타도하려는 민주주의 혁명론자라고 해야 할 분이었으니 이교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지요.

5)

물론 이상의 에피소드보들다 훨씬 더 의미 있는 내용이 책에는 많이 있습니다. 특히 박정희-전두환 시대 운동권의 정신이나 태도에서 지금은 벗어나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만, 거꾸로 그때의 초심을 돌이켜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소말리아처럼 계파 다툼에 몰두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민주당의 경우를 봅시다. 그들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데, 그런 진지한 고민을 하려면 박정희-전두환 시대 때 그들이 가졌던 초심으로 상당히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자리 하려는 권력의지 또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크게’ 작용한 때문에 학생-노동-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겐 그런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권력의지 또는 인정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우면 그건 도인의 경지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초심의 주된 부분이 아니었던 분들은 이 책을 통해 한번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덧붙여 박근혜 시대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한번 돌이켜 보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시대가 물론 아버지 시대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 시대의 유산인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빌려보시든 사서 보시든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책 소개를 늘어놓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