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고유의 글

이태리를 보며 한국을 생각한다 (1)

동숭동지킴이 2013. 1. 16. 15:34

이태리를 보며 한국을 생각한다 (1)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태리 이야기 특히 이태리 경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선 후유증으로 심사가 어지러운 판에, 뜬금없이 왜 이태리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실 분들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조만간 유럽에 갈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 유럽 국가들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정리해볼까 해서 우선 이태리부터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유학생들이 많고 우리와 관계가 깊은 미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에 대해선 한국에도 나름대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물론 정말로 깊이 있게 소개되었는가 하면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웨덴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정보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여행안내 차원에서의 정보만 주어져 있는 셈입니다. 옛말에 ‘三人行 必有我師’(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부터도 배울 점, 즉 참고할 점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 중에는 따라야 할 모범(role-model) 국가가 있고, 반대로 피해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 국가도 있습니다.

 

이때까지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스웨덴 등 주로 모범 국가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그리스 등 반면교사 국가들에 대한 관심도 제고되고 있습니다.

 

이태리는 일부 모범국가 면이 없지는 않지만, 반면교사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국가로 생각됩니다. 혹시 한국이 바람직한 선진국가로 발전하지 못하면 이태리처럼 한심스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우리는 이명박정부 5년을 거치고 박근혜정부를 맞이하려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나라를 그런 대로 잘 이끌어간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이명박정부처럼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다면, 한국은 이태리와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선진국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이태리를 한번 점검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MB 정부 하에서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민생경제가 어려워지고, 남북관계가 파탄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다들 잘 아는 사실이라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참고삼아 얼마 전에 눈에 띈 수치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률에 관한 수치로, 일본경제신문에 실린 칼럼(2012년 11월 27일)에서 촉발되어 이리저리 자료를 찾다가 발견했습니다. 다만 그 칼럼은 2008년 이후 변경된 임금 통계 작성기준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서 새롭게 조정된 수치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종업원 10인 이상을 고용한 기업의 노동자 실질임금 상승률은 이명박정부 4년 동안(마지막 해의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이너스(!) 3%였습니다. 반면에 노무현정부 5년 동안엔 해당 수치가 23%였고, IMF 사태를 겪은 김대중정부에선 21%였습니다.

 

그러니 MB 정부 들어와서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한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는 경제적으로 줄곧 상승의 길을 걸어왔는데, MB 정부 들어 퇴보라는 사태를 처음 경험한 것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독재 이후 점점 민주화를 향해 발전해오다가 MB 정부 들어와 미네르바 구속, 언론 탄압 등에서 보듯이 민주화가 역행한 것입니다.

 

최근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라는 책이 번역된 바 있습니다. 거길 보면 발전하던 국가가 퇴보하는 사례가 여럿 소개되고 있습니다. 혹시 MB 정부에서의 경향이 박근혜정부에서도 계속된다면 우리도 그런 사례에 속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퇴보하게 된다면 이태리와 닮아질 부분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태리를 보면서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해서 그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거기서 벗어나갈 방법을 강구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마침 이태리에 관해 <Good Italy, Bad Italy - Why Italy Must Conquer Its Demons to Face The Future>라는 책이 2012년에 출간되었습니다.(아직 한국어 번역본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책 내용을 소개하는 형식을 빌리면서 이태리와 한국 문제를 더듬어 보려고 합니다.

 

● 일단 이태리에 관해서는 시리즈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번 대선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학교를 찾아온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박근혜 후보가 어쩌다 새누리당 색깔로서 빨간 색을 선택했을까 하는 게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새누리당의 빨간 색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제가 블로그에서 예전에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만, 그걸 선택한 계기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혹시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이 도사(아니면 역술가, 아니면 고승)을 만나서 자문을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떨어지고 나서 절치부심하면서 유명한 도사를 만나 어찌하면 박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을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도사가 “빨간 색과 박후보가 궁합이 맞으니 빨간 색을 가까이 하라”라고 조언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결정적 근거가 있냐고요? 없습니다. 그냥 막연한 추측입니다.

 

터무니없는 추측이라고요? 글쎄요. 꼭 터무니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도사 또는 역술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란 게 사업보다도 도박성이 강하고(risky), 따라서 사업가들이 역술가를 잘 찾듯이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해 좀 더 그럴듯한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노태우 대통령과 관련된 루머입니다. 이 루머는 아는 사람은 알 만큼 꽤 퍼져 있는 루머입니다. 제가 이 루머를 들은 것은 20년도 더 지난 일이었습니다. 이는 10원짜리 동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두 개의 십원짜리 동전 뒷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사진 실력이 신통찮아 선명하게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혹시 사진 잘 찍는 분이 새로 찍어 하나 보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추가 1월 21일: 아는 분이 훨씬 잘 나온 사진을 보내주어서 그걸로 교체했습니다.)

 

 

 

 

 

 

왼쪽이 1960년대, 70년대 및 86년 무렵까지 주조된 동전입니다. 오른쪽은 86년 무렵 이후 새롭게 주조된 동전입니다. (요즘엔 크기가 작은 10원짜리 동전이 주조되고 있습니다.) 주조연도가 동전에 표시되어 있으니 수중의 동전을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1986년 이전이든 그 이후든 뒷면에는 모두 다보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86년 이전 동전과 그 이후 동전을 꼼꼼히 보면 미묘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수중에 동전이 있으면 글을 계속 읽어나가기 전에 스스로 한번 찾아보십시오.

 

86년 이전 동전에선 다보탑 밑부분을 양김(김씨 두명, 즉 김영삼과 김대중을 통칭하는 표현)이 떠받치고 있습니다. 잘 안보인다고요? 옆으로 누운 ‘김’입니다. 이제 보이지요. 하하하. 그런데 86년 이후 동전에선 다보탑 구도를 바꾸어버려, 아래가 이제는 더 이상 양 “김” 모습을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86년 이후 동전에선 다보탑 중간(층계 바로 윗부분)에 작은 불상이 들어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어찌해서 불상이 새롭게 들어가게 되었는가와 노태우의 1987년 대통령 당선이 관련돼 있다는 게 루머의 핵심입니다.

 

노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노대통령 또는 그의 최측근이 고승을 만나 비법을 청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고승이 “전 국민이 부처님을 모시도록 하면 노태우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노태우 측이 어찌하면 전 국민이 부처님을 모시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끝에 10원짜리 동전에 불상을 집어넣는 아이디어를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어째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동전 뒷면을 바꾸는 김에 한국정치를 떠받들어 왔던 양김을 동전에서 배제하는 일까지 같이 처리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도 결정적 물증을 제가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대통령이 되려면 유명 고승이나 역술인의 자문까지도 구하는 '열성이 있어야'(절실해야) 된다는 내용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이걸 감안하면 왜 문재인 후보가 패배했는지도 설명이 쉬워집니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100명이 일등공신을 자처하고, 패배하면 100개의 패인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패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후보, 캠프, 당, 지지세력’의 열성 부족이 그 중요한 하나의 요인임은 분명할 것입니다. 즉 열성이 모자라고 또 그 모자란 열성마저 제대로 모아지지도 않았던 게 패배를 초래한 셈이지요.

 

먼저 후보의 경우를 봅시다. 박후보는 (도사의 조언에 따른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당 색깔까지 바꾸는 등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일찍부터 많은 공을 들여왔습니다.

 

이에 반해 천주교 신자인 문후보는 도사의 자문을 구하지 않았을 것임은 물론이고, 도대체 대선 출발이 너무 늦었습니다. 대선 출마의지 자체가 2011년 여름경에 생겨난 것 같으니, 박후보에 비하면 준비가 한참 늦고 모자란 것이지요. 이게 흔히 말하는 권력의지(열성)의 부족 또는 지체를 의미합니다.

 

문후보가 안철수 측의 최후통첩을 통 크게 받아들이거나, 새누리당까지 포괄하는 대통합 내각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승부수 따위를 던지지 못한 것도 문후보 본인의 열성부족에 따른 결과로 보입니다.

 

(추가 1월 18일: 1월 18일자 동아일보의 정대철씨 인터뷰에 따르면 문후보는 안철수측의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려 했는데, 이해찬 의원 등 몇몇이 강하게 반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문후보가 정치에 늦게 입문한 탓에 이해찬의원 등 이른바 정치고수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의 전략통이라는 분들의 실력이 그다지 신뢰하기 힘들다는 게 다시 확인된 셈이기도 합니다. 민주당 경선 때 김두관 캠프에 참여했던 M의원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정대철씨도 문후보의 의원직 사퇴를 주장한 걸 볼 때, 그의 판단력도 별로인 것 같습니다. 동아일보 인터뷰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30117/52376177/1  )

 

문재인 캠프의 문제는 최근 여러 사람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도 한겨레 칼럼에서 지적한 대로, 총참모장(campaign manager)이 없었기 때문에 열성(energy)을 제대로 모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승부수를 던지는 결단도 내리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총참모장을 두지 못한 것은 민주당 내의 고질병적인 계파갈등 때문이었습니다. 계파 갈등 때문에 캠프 내의 권한을 민주적으로(?) 분산시키다보니 총참모장을 두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민주당의 열성 부족 문제입니다. 저는 제 집 근처나 직장 근처에서 민주당 운동원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새누리당 운동원은 여러 번 마주쳤습니다. 원래 새누리당은 조직으로, 민주당은 비림으로 선거를 한다고 하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습니다.

 

저의 지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문후보가 오는 유세 현장에는 민주당원들이 몰려들었는지 모르지만 일상적으로 발로 뛰는 ‘지상전’ 운동에서는 민주당의 열성은 형편없었습니다. 지역구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들은 그저 최소한의 시늉만 내는 운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역시 계파 갈등의 영향이 작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당의 문제를 친노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여러 계파들 중에서는 주류를 형성하는 친노와 486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더 본질적인 문제는 구심력이 작동하지 않는 콩가루집안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법질서라도 나름대로 유지하고 있는 독재국가보다 못한 것이 부족들 사이에 무질서하게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소말리아 같은 나라입니다. 전자가 새누리당이라면 민주당은 후자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민주당 조직원의 자질, 그리고 당과 대중의 엉성한 관계라는 문제가 친노니 어쩌니 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 아름다운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지지세력의 열성이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안철수 지지세력이 제대로 모이지 않은 것이지요. 게다가 문후보를 지지하는 젊은이들만 열성을 보인 게 아니라 중장년층도 카카오톡이나 경로당 조직망을 통해 열성적으로 박후보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지지세력의 선거운동에서도 문후보가 결코 우위에 선 게 아닌 셈이지요.

 

요컨대 문후보 쪽의 열성(요샛말로 포스 force)이 모자라고 모이지 않았던 게 대선의 중요 패인입니다. 이렇게 열성이 중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나라가 퇴보해 이태리처럼 찌질한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열성이 중요하겠지요.

 

오늘은 이쯤 하겠습니다. 혹시 제 글을 읽는 분 중에 이태리에 관해 참고할 자료를 알고 계신 분이 있으면 여기 댓글로라도 소개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