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고유의 글

베네수엘라를 보며 한반도를 생각한다 (1)

동숭동지킴이 2013. 3. 10. 17:23

 

 

베네수엘라를 보며 한반도를 생각한다 (1)

 

 

지난 3월 5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Hugo Chavez)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임 중 세상을 여러모로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인지라 죽은 뒤에도 이런저런 평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도 외국인물 치고는 비교적 지면을 많이 할애해 다뤘습니다. 물론 언론의 성격에 따라 차베스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쪽도 있고, 반대로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쪽도 있습니다. 후자가 소수파입니다.

 

 

차베스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도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상당히 흥미로운 족적을 남겼습니다. 또 그의 행적을 보면서 한반도 사정이나 한반도 정치인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 관해 한 마디 보태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라틴 아메리카 전문가가 아닙니다. 차베스가 죽고 나서 벼락치기 공부로 신문이나 인터넷을 약간 뒤져본 데 불과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제가 하는 주장에 대해 너무 무게를 두지는 마십시오. 그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주기 바랍니다. 그러나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와 한반도를 비교하는 이야기는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제 글의 의의가 없지는 않겠지요.

 

 

우선 차베스를 다루기 전에 라틴 아메리카와 저의 만남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다만 아직 저는 라틴 아메리카 땅을 밟은 적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가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 저같이 약한 체력으로는 엄두가 안 났습니다.

 

 

제가 라틴 아메리카를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학창시절에 우연히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에 관한 책 “Cuba: Anatomy of a Revolution”(1960)을 통해서였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마르크스 경제학자였던 Leo Huberman과 Paul Sweezy가 쓴 책으로 피가 끓고 가슴이 벅차오르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카스트로가 1953년에 Batista 친미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려는 무장봉기를 일으켰다가 체포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재판진술에서 “History will absolve me”(역사가 나를 무죄케 하리라)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대단히 멋있습니다. 그걸 모방한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다 재판받은 인사들 중에 이와 비슷하게 외친 경우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카스트로는 재판에서는 15년을 선고 받았으나 1년 만에 석방됩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인혁당 사건처럼 그냥 반정부 민주인사인 경우에도 사형당했는데(그것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자마자 바로 그 다음 날에), 카스트로는 무장봉기를 했는데도 1년 만에 석방되었으니까요.

 

 

북한에서도 김일성의 정적이었던 박헌영, 이강국 등은 미국간첩이라는 죄목을 씌워서 사형시킵니다. 통일이 되면 진상이 드러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미국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사형당한 사람들 모두가 진짜 간첩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간첩인 경우라 하더라도 꼭 목숨을 빼앗아야 하나요.

 

 

어쨌든 이렇게 한반도에서는 정적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는데, 라틴아메리카는 달랐던 것입니다. 역시 무장봉기를 일으킨 차베스도 2년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요.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로라도 알려주시면.)

 

 

그리고 석방된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건너갔다가 체 게바라 등 동지들을 모아 쿠바로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쳐들어온 80여 명 중에 19명만이 살아남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이 Sierra Maestra 산악정글을 근거지로 해서 나중에 수도 Havana로 진격해 Batista 정권을 쓰러트리는 것이지요.

 

 

19명의 부대가 군사독재정권을 무너트려 가는 장면은 하나의 로망(Roman) 같았습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죽을 고생을 했겠지만, 한줌도 안 되는 세력으로 거대한 독재세력을 무너트리는 것은 우리 같은 제3자에겐 얼마나 멋져 보였겠습니까.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같다고나 할까요.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사들 사이엔 이런 ‘혁명적 로망(꿈, 낭만)’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당시는 자칫하면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로망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때 비해선 세상이 많이 좋아진 요즘은 이런 로망도 어디론지 사라진 셈입니다.

 

 

근래 민주당에서 지저분한 계파 다툼이 지속되고, 진보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 진보신당이 지리멸렬한 데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70~80년대의 로망이 사라진 것도 그 중의 하나의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망, 다시 말해 꿈이 힘을 잃으면 자기나 가까운 패거리의 이익만이 힘을 쓰게 되는 것이지요.

 

 

한편, 이런 혁명적 로망이 극단적으로 나아간 경우가 우리의 주체사상파(주사파)가 아닐까 싶습니다. 쿠바혁명을 일으킨 카스트로에 못지않게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면서 항일투쟁을 벌인 김일성 장군”에게 홀딱 반하는 건 쉽게 나타날 수 있는 경로였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해방 이후 그의 일당독재를 정당화시키는 게 아니듯이, 카스트로의 혁명적 투쟁이 그의 일당독재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걸 거창하게 ‘역사의 변증법’이라 할 수 있을까요.

 

 

카스트로는 10년 정도 통치하다 물러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렇게 못한 데에는 미국 탓도 큽니다.

 

 

카스트로 정권 출범 초부터 미국은 CIA 공작 등으로 그 정권을 쓰러트리는 데 골몰했습니다. 미국에 의한 암살 시도가 8번 정도 있었고,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케네디가 마피아와 손잡고 쿠바를 침공하기까지 했습니다.

 

 

최근 링컨 대통령의 어두운 면도 드러내는 영화 “링컨”이 개봉되었습니다. 역사상 존경받는 인물에겐 어두운 면도 없지 않습니다. 케네디도 마찬가지이지요. 성경에 “의인은 없도다”라고 한 게, 특히 정치인에게는 거의 예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찌 주권국가를 함부로 쓰러트리려 하고 군사적 침공까지 저지르는가요. 참 어이없는 이런 미국의 행태가 바로 제국주의(imperialism)인 것이지요. 쿠바 말고도 과테말라, 파나마 등등 여러 나라에서 미국은 이런 패악을 저질렀습니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도 같은 맥락이지요.

 

이렇게 미국이 카스트로를 압박했으니, 카스트로는 소련과 가까워지고 더욱 체제가 경직적이 되어갔습니다. 그리되니 미국은 카스트로에 더욱 적대적이 되어 악순환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카스트로에 대해 초기에 포용정책을 펼쳤다면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즉 카스트로 독재체제에는 미국의 책임도 일부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미제국주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카스트로가 일당독재 하에서 인민의 자유를 억압한 것을 미국이라는 외부 여건만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지요. 최근 들어 다소 자유화되기는 했습니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컴퓨터로 인터넷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미제국주의가 특히 위세를 떨치는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사정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룰라의 브라질처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으니까 무조건 미국 탓만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카스트로를 자신의 주요 role-model 중의 하나로 삼고, 또 쿠바와 밀접한 정치·경제·사회적 관계를 맺은 게 바로 차베스입니다. 물론 차베스에게는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라는 19세기 독립영웅이라는 더 중요한 모델이 있기는 합니다.

 

 

차베스에 대해선 글 모두에 지적했듯이 평가가 엇갈립니다. 미국의 유명한 체제비판적 감독인 Oliver Stone이 만든 다큐멘터리 South of the Border (유튜브 www.youtube.com 에서 Oliver Stone South of the Border를 치면 1시간 남짓의 이 다큐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에서는 차베스를 아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차베스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베스를 옹호하는 경향이 강한 사이트로서 http://venezuelanalysis.com 도 베네수엘라와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입니다. 각종 뉴스나 의견을 정리해두고 있는 사이트입니다.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차베스를 높게 평가한 최근 글로는 안태환 교수의 “차베스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프레시안>)가 있습니다. 그 글의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307094330

 

 

그리고 새사연이 2007년에 공동집필한 저서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라는 책은 차베스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고찰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차베스를 비판한 최근 글로는 Financial Times의 “To the successor, a poisoned chalice”(2013. 3. 7)와 “What’s left of the Latin left”(2013. 3. 9)가 있습니다.(링크가 잘 안 걸어져서 여기에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

 

 

또 국내언론에서는 조선일보 김태훈 기자의 글과 중앙일보 채인태 기자의 비판적인 평가가 있습니다. 그 링크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08/2013030802117.html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9481

 

 

다만 Financial Times의 글들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는 그 격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균형적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분석 내용도 훨씬 폭넓고 깊이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에서 Chavez나 Venezuela를 치면 가급적 중립을 지키려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기사도 그런 노력을 한 편입니다.

 

 

다만 경향신문은 한겨레보다는 차베스를 강하게 옹호했습니다. 그리고 한겨레는 시위대에 차베스 정부가 발포해서 20명이 사망했다는 근거가 박약한 보도를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에 실린 차베스를 비교적 옹호하는 박구용 교수 칼럼의 링크를 아래에 걸어 놓았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3062137065&code=990303

 

 

이렇게 한 인물의 평가가 국내외적으로 크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저는 가급적 균형적으로 차베스를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균형적으로 파악하는 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

 

 

모든 일을 균형감 잃지 않고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바로 도통(道通)의 경지이지요. 거기에 어찌 감히 범인이 오를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균형감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할 수는 있고, 저도 그런 노력을 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면 정보가 풍부해야 하고, 선입견이나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이런 상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저는 균형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차베스를 평가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언급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우리나라의 대안모델로 여기는 진보파 일각의 견해부터 따져볼까 합니다.

 

 

한국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안태환교수 외에도 새사연, 그리고 성공회대 조희연교수나 김동춘교수 같은 분들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분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차베스가 한 일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우리의 대안모델 또는 지향해야 할 모델로 생각하는 것은, 마치 중국이 지금 고도성장하고 있다고 중국을 우리의 대안모델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류입니다.

 

 

첫째로, 베네수엘라에서는 민주주의 수준이 우리보다 뒤떨어져 있습니다. 물론 쿠바처럼 일당독재를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반대세력이 언론 등을 통해 목청을 높이고는 있습니다. 또한 참여민주주의 형태로서 3만 개 이상의 communal council (지역평의회)이 활동하고 있는 것도, 그 내막을 들여다보기는 해야겠지만 의미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헌법을 고쳐 장기집권을 계속해왔고, 정부가 의회를 우회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들입니다. 어떤 판사가 부패한 은행가를 석방하자 그 판사에 대해 차베스가 “징역 30년감”이라고 TV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 하나의 사례였습니다. 실제 그 판사는 그 판결 이후 곧바로 부패 혐의로 구속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차베스가 좋게 평가한 촘스키까지도 비판했습니다.)

 

 

물론 차베스의 독재는 카스트로에 비하면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 엄연하게 야당이 존재하고, 그들이 선거에서 (국제사회의 감시 하에) 공정하게 차베스와 겨루어서 패배했습니다.

 

 

주요 언론도 차베스 반대세력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5개 상업방송 전부와 10개 전국 주요 일간지 중 9개가 차베스 반대편입니다. 그 중 시스네로스 그룹은 매출이 한국의 조선일보 10배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차베스의 독재는 한국의 유신독재에 비하면 훨씬 민주적입니다. 유신시대엔 언론이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중앙정보부나 보안사의 고문 같은 건 베네수엘라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유신시대엔 박정희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많은 판사들이 옷을 벗었습니다. 중앙정보부의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차베스는 국내외 비판에 직면하자 앞에서 언급된 판사를 석방해서 가택연금 상태로 바꾸었습니다. 유신시대보다 훨씬 나은 편이지요.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수준은 서유럽의 민주주의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져 있습니다. 룰라의 브라질보다도 못하지요. 그러니 이미 1987년 이후 민주화를 경험한 우리의 장래 model로서는 가당치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부를 비판한다고 미네르바를 구속시키는 등 민주주의가 퇴보하기는 했습니다. 박근혜정부 하에서도 대통령의 ‘불통’과 야당 무시가 심각해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가 대안 model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나름의 모델을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굳이 참고로 한다면 북유럽이나 독일·스위스 같은 데서 대안 model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의 경제발전 수준은 우리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는 2011년에 명목상으로 11,000달러이고 구매력기준(PPP)으로는 13,000달러 정도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2012년에 각각이 23,000 달러와 32,000 달러였습니다. 우리가 훨씬 잘 사는 나라이지요.

 

 

차베스 치하에서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30% 정도의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의 빈곤율도 OECD 국가들 중에서는 높은 편(7위)이지만 14% 정도로서 베네수엘라보다는 낮습니다. 그러니 역시 경제면에서도 베네수엘라가 따라야 할 모범은 아닌 것이지요.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치하에서 식량소비가 두 배 정도로 크게 늘었습니다. 그에 따라 영양실조 비율도 1998년의 21%에서 2009년엔 6%로 감소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비해선 높은 편일 것입니다.

 

 

또한 식량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가격통제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명박정부 하에서 생필품 물가를 통제하긴 했습니다만 베네수엘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경제가 모든 게 아니라고요. 맞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모든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셋째로, 다른 면을 봅시다. 베네수엘라 인민들이 제일 심각하게 여기는 게 치안문제라고 합니다.

 

 

베네수엘라의 범죄율, 그 중에서도 살인사건 비율은 세계최고 수준입니다. 수도인 카라카스가 특히 심각하다고 하네요. 이렇게 범죄율이 높은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베네수엘라는 콜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베네수엘라는 중요한 마약 운반통로라고 합니다. 그래서 국제적인 조직범죄가 설치는 상황이라 이게 살인을 유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우익 준군사조직(paramilitary group)의 살인도 만만찮은 것 같습니다.

 

 

만약에 쿠바 식으로 철권통치를 단행하면 이런 범죄는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쿠바보다 민주적인 탓에 베네수엘라가 이런 범죄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적이면서도 치안이 안전한 나라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입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곳은 밀집한 슬럼지역이라고 합니다. 이런 달동네가 널리 존재하는 것 역시 아직 베네수엘라가 우리보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징표입니다.

 

 

요컨대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결코 우리가 지향해야할 바람직한 이상향이 아닙니다. 소련·동구 체제가 무너지고 북한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갈 곳을 잃은 우리의 좌파 일부가 엉뚱하게 대안으로 찾아낸 곳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나 카스트로의 쿠바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무상의료나 무상교육이나 유기농업 같은 면에선 우리보다 진보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모델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무상의료나 무상교육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서유럽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

 

 

다만 적어도 1인당 GDP면에서 이미 선진국 수준에 올라선 한국이 아닌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경우는 다릅니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서 참고할 부분이 상당히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차베스에게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다음 글에서 차베스의 생애를 더듬어가면서 다루겠습니다. 다음 글 역시 가급적 한반도를 염두에 두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