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재벌개혁 논쟁 (한겨레 인터뷰 : 장하준 교수 비판)

동숭동지킴이 2012. 5. 31. 06:50

 

 

(5월 31일자 <한겨레>에 재벌개혁 문제와 관련한 본인의 전화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이야기한 내용의 절반 정도만 기자가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장하준 교수 책에 대해선 지난 4월달에 올린 본인의 블로그 글도 참고하십시오. 장교수가 자료를 자의적으로 왜곡한다는 것은 작년 2월에 본인이 장교수를 비판할 때 지적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작년 2월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참고하십시오.

 

그리고 장교수의 이번 책 <선택>에도 삼성전자의 배당성향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주주자본주의라는 걸 주장하기 위해 배당금과 당기순이익의 관계를 따지지 않고 배당금과 영업이익의 관계를 따졌습니다. 이것 말도 안되는 왜곡입니다. 사실과 이론이 괴리를 보이면 이론이 틀린 게 아닐까 고민해야 하는데, 장교수 등은 사실을 왜곡해석해 이론에 끼어맞춘 것입니다. 이밖에도 책에는 왜곡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나오는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보충하면, 쌍용자동차가 장교수 등의 주장처럼 재벌체제로부터 빠져나왔기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쌍용재벌 안에 있을 때 이미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대우차도 대우재벌 안에 있을 때 도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동차 회사의 도산을 재벌체제냐 아니냐라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교수 등은 모든 주요한 현상을 시장만능주의냐 아니냐, 주주자본주의냐 아니냐 따위의 한두가지 개념으로 멋대로 덮어씌우고 있어서 큰 문제입니다.

 

또 장교수를 수구적 진보파라고 한 것은 재벌개혁과 같은 시장개혁에 딴죽을 걸기 때문입니다. 수구란 개혁의 반대말로 정승일 박사의 말처럼 우파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보-보수를 X축이라 하면 개혁-수구는 Y축에 해당합니다. 이에 관해선 본인 블로그의 "부러진 화살, 좌우파 균형, 합리적 개혁"이라는 글이나 이번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린 본인의 글을 참고하십시오.)

 

[재벌개혁 논쟁]

대표적 재벌개혁론자 김기원 교수
“장하준, 한국재벌 공부가 안돼 있다”

“장하준 교수는 한국 현실, 특히 재벌에 대해 너무나 잘못 알고 있고 공부가 안 돼 있다. 게다가 이념에 사로 잡혀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로 꼽히는 김기원 교수(방송통신대 경제학과)는 30일 전화 인터뷰에서 “장하준 교수 쪽은 재벌개혁에 딴죽을 걸면서 재벌을 활용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그의 사회적 재벌활용론 또는 사회적 대타협론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재벌의 경영권을 안정시켜주고 세금을 많이 내게 해서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게 그쪽(장하준)의 주장이다. 세금을 많이 내라는 데 대해선 재벌들이 콧방귀도 안 뀌니 불가능하다. 경영권 안정이란 이미 현재 재벌총수들의 경영권은 안정화돼 있으므로 결국 세습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건데,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무능력한 재벌 3~4세들이 최고경영자 지위에 올라서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처럼 그룹과 나라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재벌은 일종의 반체제 사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러

 

-장하준 교수는, 재벌개혁론자들이 재벌의 긍정적 기능까지 부정한다고 비판한다.

“왜곡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있다. 과거 재벌은 고도성장의 견인차로서 긍정적 측면이 부정적 측면보다 많았다. 하지만 2~3세로 가면서 재벌총수는 지분이 희석되고 소액주주가 됐다. 그러나 재벌의 힘은 너무나 커졌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종의 반체제 사범이 된 것이다. 이게 재벌체제의 모순이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은 필요조건이고 민주주의적 견제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이걸 시장만능주의니 주주자본주의니 하면서 비판하고 있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김 교수는 “장 교수가 개발시대와 복지시대의 차별성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박정희 개발시대와 오늘날 복지시대의 논리가 다르다. 복지를 강화해야 하고 금융 규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다만 복지를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일 것인가 하는 데 대한 고민이 장 교수에게 없다.

 

우리 사회에 대한 재벌의 부당한 지배력이 확대되고 사회는 오염되고 있다. 정계·관계·학계·법조계·언론계를 모두 주무르고 있는데, 어떻게 복지 강화를 위한 증세가 이뤄질 수 있겠나. 재벌의 부당한 힘이 약화되도록 재벌개혁을 해서 복지 위한 세금을 충당해야 한다.”

 

정·관·학·법조·언론계를 모두
재벌이 주무르고 있는데
어떻게 증세가 이뤄질 수 있겠나

 

-재벌개혁 주장은 곧 재벌을 해체하자는 주장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장 교수 쪽은 있지도 않은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다. 재벌개혁론자들 중 기업집단을 해체시키자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그럼 기업집단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룹 계열사들 사이에서 일정한 자율성과 협력성,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 장 교수는 ‘선단경영’의 효과를 과대하게 보고 있다. 쌍용차가 재벌체제에서 빠져나와서 망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쌍용그룹 안에 있을 때 이미 쌍용차는 어렵게 됐다. 대우차가 재벌체제 안에 있어서 망한 것도 아니다. 재벌체제가 결정적인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이걸 (장 교수는) 한두가지 개념틀로 덮어버린다. 주주자본주의와 시장만능주의는 악이라는 단순논리 때문에, 내가 장 교수를 수구적 진보파라고 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본인 역시 ‘재벌활용론’이라면서 “다만, 재벌을 개혁해서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벌개혁론자들은 재벌의 긍정적인 면은 살리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고자 한다. 성장의 주체라는 면은 살리고 재벌총수의 부패나 무능이라는 부분과 재벌이 사회를 오염시켜서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한다.” 김 교수는 “한국은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자본주의”라며 ‘특경가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강화론’을 주장했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론을 주창했을 뿐 아니라 참여연대소액주주 운동에 동참하는 등 직접 재벌개혁 활동을 벌인 바도 있다. 경남고, 서울대(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983년부터 방송통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장하준과 공저 출간 정승일 위원

장하준과 공저 출간 정승일 위원
“착한 자본주의? 사람들 속이는 것”

정승일 위원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에서 던진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의 맞교환’으로 해석되는 이른바 ‘대타협’이다. 정승일 위원은 30일에 이뤄진 전화 인터뷰에서 ‘오해’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문제를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를 맞바꾸자라는 식으로 단순화해서 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대타협이 당장은 불가능하다. 이건희(삼성전자 회장)와 구본무(엘지그룹 회장)가 미쳤냐? 만약 세금을 (소득의) 75% 내라고 하면 받아들이겠냐? 앞으로 5년, 10년은 재벌과 싸울 수밖에 없다. 대타협에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장하준 교수와 정 위원이 말하는 ‘타협’이란 정확히 말해 “재벌로부터 세금을 더 걷되 가급적 재벌의 소유권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재벌 활용론’이란 것도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정 위원 등은 분명 재벌체제의 효용성을 인정한다. 그는 “쓸데없이 재벌을 깨야 한다는 얘기를 하지 말자”며 “계열사 상호지원은 이건희 회장이 맨 위에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을 계열 분리시켜 다른 회사나 사모펀드에 넘긴다면, 이게 무슨 진보냐”고 덧붙였다.

 

이들은 재벌체제를 긍정하는 대신 재벌가에 세금을 더 많이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재벌개혁의 핵심이라는 입장이다. 정 위원은 “재벌개혁의 핵심은 재벌의 해체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 공공의 산물을 독점하는 재벌가의 ‘불로소득’을 어떻게 회수하냐의 문제”라며 “소유를 재편하는 게 아니라 소득을 재편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미국과 스웨덴 등의 사례를 들어 최고 75%의 소득세율을 물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 위원 등이 재벌개혁론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김상조(한성대 교수)나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의 재벌개혁은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웨덴식 복지국가 만들자는 것
부자들 세금 더 걷되
가급적 소유권은 건드리지 말자

 

-장하준 교수와 당신을 ‘재벌옹호론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편법 상속과 증여가 밝혀졌을 때 우린 이건희 회장을 감옥으로 보냈어야 한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이다. 또 삼성전자엔 반드시 노조를 만들도록 법으로라도 강제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우리도) 재벌개혁을 반대하지 않는다. 찬성한다. 다만 그 방향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옹호하는 것은 대기업 집단이지 재벌 패밀리(가문)가 아니다. 재벌 패밀리 잡겠다고 재벌 해체하려는 것은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것이다.”

 

-재벌개혁론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본인들은 부인하지만 결과적으로 주주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재벌개혁이다. 재벌체제를 넘어선 ‘착한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것은 별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 대신 안철수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을 쓰자는 식의 ‘착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잠깐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대주주를 소액주주로 바꾼다고
재벌의 문제 해결되지 않아
재벌 경영의 장점은 인정해야

 

-당신과 장 교수가 박정희 체제의 옹호론자란 비판도 있다.

“듣기 불편하다. 그건 중상비방이다. 박정희는 파시스트다. 파시스트 같은 사람을 존경하는 게 아니라, 다만 은행 국유화와 정책금융 등의 몇 가지 요소를 옹호할 뿐이다.”

 

그는 ‘선택’ 출간을 계기로 불붙은 논쟁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진보가 어떤 미래비전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이번 논쟁을 4·11 총선 이전에 했어야 한다. 그래야 총선판이 제대로 짜였을 것이다. 대선에서 진다고 해도 이후 진보세력이 희망을 가지려면 대선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정비해나가야 한다.”

 

79학번인 정승일 위원은 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겪기도 했다. 90년대 독일(베를린자유대학 박사)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뒤 돌아와 시민단체인 대안연대 등에서 활동했다. ‘선택’ 출간에 앞서 지난 2005년에도 장하준 교수와 함께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펴낸 바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재반박하는 글을 쓸 때도 수시로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진보 성향의 학계 내부에서 재벌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대립선은 ‘재벌 대타협론’을 주장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고리로 형성돼 있다. 재벌개혁 논쟁에 가담한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인터뷰를 통해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았다. 김 교수는 재별개혁을 주창하는 대표적인 진보 학자로, 장 교수에 대해 “재벌체제 개혁에 딴죽을 거는 수구적 진보파”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정승일 위원은 지난 3월 장 교수와 함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펴내 본격적인 재벌 논쟁에 불을 붙인 인물이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