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한겨레 칼럼)

동숭동지킴이 2012. 3. 22. 09:34

 

(3월 22일자 한겨레에 실린 본인의 칼럼입니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김 기 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4.11 총선에서 맞붙을 후보자 공천이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으나 어쨌든 상대적으로 나은 정당과 후보자를 뽑아 사회 변화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명박정권 시대와 앞으로가 달라야 한다는 점에선 대체로 동의하는 듯하다. 그래서 야당이 MB정권 심판을 외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당 역시 MB정권과 차별화하려 한다. 하지만 지금의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1950년대 야당이 그 구호를 내걸었을 때와는 의미가 다르다. 압축적 고도성장으로 한국은 1인당소득에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2011년 한국의 1인당 GDP는 명목상 2만4천달러지만 구매력으로 따지면 3만2천달러다. 마찬가지 구매력기준으로 미국, 일본, 이탈리아, 뉴질랜드는 각각 4만8천달러, 3만4천달러, 3만달러, 2만7천달러다. 외국을 다녀보면 한국인의 평균 소비수준이 선진국에 별로 뒤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성장만능주의 슬로건의 약발이 떨어진 것도 이에 따른 귀결이다. 대신에 우리 국민들은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라는 3개의 키워드로 요약되는 어려움의 해소를 갈구한다.

 

‘고단함’이란 생산과정의 문제다. 노동력과 재화·서비스의 생산과정에서 한국인의 삶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고단하다. 우선 남보다 우월하게 보이는 노동력을 만들려고 어릴 때부터 지옥 같은 입시경쟁에 시달린다. 부모들도 그 뒷바라지 하느라 살림에 핍박을 받고 가족 간의 즐거움 따위는 뒷전이다. 기러기가족 신세를 감수하는 경우마저 있다. 대학 들어가서도 스펙 쌓고 학점 세탁하기 바쁘다. 재화·서비스를 생산하는 일자리를 잡고서도 고단함은 계속되어,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피 말리는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늙어서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인비율 역시 대단히 높다.

 

‘억울함’이란 1차 분배과정의 문제로서, 시장의 불공평한 분배에 대한 억울함이 사람들을 열 받게 만드는 것이다. 재벌거대기업이 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탈취하는 등 중소기업을 억압하는 불공정한 시장 탓에, 재벌은 비대해지는데 반해 중소기업은 버티기조차 힘들다. 기업 사이의 이런 억울함과 더불어 노동자 사이에도 억울함이 존재한다. 공공부문 및 대기업의 정규직과 중소기업노동자(및 비정규직) 사이에 능력과 무관한 부당한 격차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불안함’이란 2차 분배과정 곧 재분배(복지)의 문제다. 과거 고성장단계에서는 성장 자체가 복지문제를 은폐·완화시켰다. 하지만 중성장 단계로 접어들면서 그에 걸맞은 사회안전망의 미비가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가족이 돌봐주는 복지가 해체되면서 그를 대신할 사회복지가 갖춰지지 않아 노인층의 불안은 OECD 평균의 5배라는 높은 노인자살률로 나타나고 있다. 자녀장래에 대한 불안과 아동복지의 미흡함은 세계최저의 출산율을 야기한다. 구조조정 반대 결사투쟁이 일어나는 데에도 실업수당제도의 미비 같은 불안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한다. 예컨대 억울한 노동자 처지에 빠지지 않고 미래의 불안감을 덜고자 고단하게 공부하는 것이다. 또한 김대중-노무현정부하에서 완화되다 이명박정부하에서 심각해진 분단모순에 따른 불안감도 간과해선 안 된다.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2013년 체제’를 만들려면 이런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을 해소하는 ‘진보, 개혁, 평화’가 필요하다. 그 과제를 짊어지기에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진정성과 역량 면에서 더 적합한지 따져보면서 투표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