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총선 패배와 희망의 싹 (한겨레 칼럼)

동숭동지킴이 2012. 4. 19. 06:26

 

                             총선 패배와 희망의 싹         (<한겨레> 2012년 4월 19일자)

                                                                김기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4·11 총선에서 진보개혁세력이 패배했다. 국민대중을 ‘고단함·억울함·불안함’에서 해방시킬 진보개혁입법의 통과는 기대난망이다. 남한판 ‘고난의 행군’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진보개혁세력 전체의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다만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것까지는 없다. 희망의 싹도 드문드문 드러났기 때문이다.

 

  수도권 승리를 통해 진보개혁세력의 의석수가 18대 국회에 비해 50석 가까이나 늘어난 건 엄청난 도약이다. 진보개혁세력 전체의 득표율은 보수수구세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진보개혁세력에게 불모지였던 부산에서도 40%가량의 안정된 지지율이 유지되었다. 12월 대선은 해볼 만한 형국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진보개혁세력이 승리했더라면 어찌됐을지 한번 따져보자.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승리한 진보개혁세력은 그 후 도대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모두 지리멸렬했던 것이다. 아마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재연됐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난 대로, 진보개혁세력의 지도부가 ‘진정성·비전·전략’을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선 패배는 진보개혁세력이 거듭날 기회를 준 셈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여론 악화에 안이하게 편승해 계파 이익이나 챙기려던 교만한 자세가 쓴맛을 본 것이다. 정치인 개인이나 집단이나 교만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이제 상대방 실수가 아니라 자기 역량으로 겨뤄야 할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야권연대가 승리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이 아님도 분명해졌다. 이번 선거처럼 진보개혁세력의 에너지가 야권연대 달성 자체에 과도하게 쏠리면 자신의 역량 향상에 소홀해진다. 연대 협상의 효율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연대란 서로의 차별성을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는 것이다. 연대 때문에 각자의 정체성이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민주통합당이 지나치게 좌클릭한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좌클릭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소신과 논리 없이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게 진짜 문제였다. 그렇게 중심을 잡지 못하니 공천에서건 정책에서건 갈팡질팡하게 되고, 이런 갈팡질팡 때문에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다.

 

  총선에서 승리했더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를 이런 정체성 혼란 문제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이제는 다들 느끼게 되었다. 예컨대 민주통합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같은 노무현 정권의 유산에 대해,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북한 체제에 대해 더 설득력 있는 입장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게 명확해졌다.

 

  그리고 진보개혁세력이 대선에서 비록 승리하더라도 총선 패배로 인해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제약조건은 진보개혁 의제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 그리해 노무현 정권처럼 무리한 욕심을 낼 가능성이 적어져 오히려 의미있는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브라질의 룰라가 이것저것 많이 해서 인기를 얻은 게 아니다. 빈곤가정 대책이라는 확실한 것 하나로 승부한 셈이다.

 

  1987년 체제는 일거에 독재체제를 민주체제로 변혁시킨 기동전에 의해 수립됐다. 그러나 이른바 2013년 체제 만들기엔 그런 기동전이 아니라 주요 고지를 하나하나 획득해 가는 진지전이 필요하다. 대치세력의 힘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선에서 졌더라도 대선에서 승리하면 2013년 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진정성·비전·전략이 거듭날 수 있다면 총선 패배는 전화위복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