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주주자본주의냐 총수자본주의냐 (한겨레 칼럼)

동숭동지킴이 2012. 6. 14. 05:31

 

 

(<한겨레> 6월 14일자에 실린 칼럼입니다.)

 

 

주주자본주의냐 총수자본주의냐

 

                                                           김 기 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학계가 재벌개혁 논쟁을 벌이고, 재계가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각자 주장을 펼치는 가운데 기본 사고틀이 잘못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주주자본주의론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그는 한국이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주주자본주의로 변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재벌의 총수체제를 개혁하면 재벌이 주주자본주의의 화신인 외국 금융자본에 넘어간다고 한다. 적화통일의 위협으로 박정희 독재체제를 옹호하던 것과 비슷한 논법이다.

 

 재벌개혁이란 총수의 소유권을 무조건 박탈하자는 게 아니다. 총수의 부당한 그룹지배력 부분을 해소하고, 그걸 국민연금 등 한국의 기관투자가를 통해 보완하면 된다. 그러면 재벌을 외국 금융자본에 넘기지 않으면서 개혁을 수행할 수 있다.

 

사실 장 교수의 주주자본주의론은 출발부터 잘못돼 있다. 그는 주주 특히 소액주주가 배당의 극대화 등 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구만 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리해 “기업은 소유주의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장 교수가 원하는 기업체제에선 소유주들이 기업을 소유할 이유가 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경영되는 게 아니니까. 그리해 주주는 모두 기업을 떠나야 마땅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주식시장에 사망선고가 내려진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장 교수는 논리구조에서만이 아니라 사실인식에서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국의 소액주주는 장 교수의 생각만큼 그렇게 힘이 세지 않다. 기껏 시민단체가 소액주주의 지분을 모아 회사 돈 빼돌리는 총수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정도다.

 

기관투자가도 자신과 거래하는 재벌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그 재벌에 대한 발언권을 거의 행사하지 못한다. 보유주식을 매각하는 정도로 대응할 뿐이다. 주주의 압력으로 정리해고가 남발된다는 장 교수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그런 사례 자체가 없으며, 오히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노동자 목이 더 함부로 잘렸다.

 

장 교수는 한국이 주주를 위한 고배당 탓에 투자재원이 모자라 성장동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극소수 예외기업을 제외하곤 배당성향(배당금/당기순이익)은 높지 않다. 1970년대 41%였던 상장기업 배당성향이 2011년엔 25%였던 것이다. 삼성전자의 2011년 배당성향은 6%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사실이 자신의 이론에 부합하지 않자, 장 교수는 배당성향 계산에서 당기순이익 대신에 영업이익을 사용하기도 했다. 자료를 왜곡한 셈이다.

 

한국은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자본주의다. 총수가 주요 의사결정을 독점해 전문경영인이 머슴으로 불리고, 그룹 재산이 총수의 호주머니 장난감 취급을 받는 시스템이다. 근래 소액주주의 소송권이 어쩌다 행사되고는 있다.

 

하지만 그걸 두고 주주자본주의라 부른다면, 1990년대 이후 개선된 재벌 정규직 처우를 근거로 정규직자본주의라 부르는 게 차라리 더 그럴듯하다. 물론 총수의 막강한 권한을 생각할 때, 주주자본주의나 정규직자본주의나 모두 부적절한 개념이다.

 

장 교수처럼 주주의 정당한 권리 찾기를 주주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로 매도하는 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찾기를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총수자본주의를 개혁해 노동자, 주주, 협력업체, 소비자 등 기업 관련자들을 골고루 배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와 아울러 재벌이 정계, 관계, 법조계, 학계, 언론계를 오염시켜 나라를 멋대로 주무르는 체제를 혁파할 때 비로소 경제민주화가 달성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