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고유의 글

방콕을 다녀와서 (1)

동숭동지킴이 2012. 3. 9. 14:03

 

방콕을 다녀와서 (1)

 

김기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번 글 <비례대표 번갈아 하기>에 대해 정당들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신통찮은 블로그 글에 정당들이 반응을 보일 리 없기도 하지만, 다른 요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통합진보당에서 유시민 대표가 비례대표 12번으로 뒤 순번에 등록한 것은 일종의 배수진입니다. 유시민이 당선되기를 바란다면 통합진보당을 적극적으로 많이 찍어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유권자에게 압박(호소)하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앞 순번에 배치된 비례대표들이 2년만 하고 양보할 자세가 되어 있거나 또는 그걸 강제할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민주통합당은 말할 것도 없고 통합진보당에게도 그런 리더십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번엔 <비례대표 번갈아 하기>가 무산되었지만 다음번 선거에선 한번 실현되었으면 합니다. 그리하면 권세를 누리려고 국회의원을 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선 한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가: 3월 17일: 오늘 고종석씨의 한겨레 칼럼에서 확인했는데 진보신당은 본인이 제안한 대로 '비례대표 번갈아 하기'를 결정한 모양입니다. 본인의 글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진보신당이 비례대표로 몇 명이나 당선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 며칠 동안 국제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방콕을 다녀왔습니다.(아래의 국제포럼 사진을 참고하십시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외국여행은 몸은 좀 고단하지만 새로운 문물에 접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특히 외국학자들에게선 뭔가 영감을 얻을 때도 있어서 좋습니다.

 

 

 

 

방콕 행 비행기에 오르니 옆 좌석에 태국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영어는 못했지만 한국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실태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노동자는 이주노동자(migrant worker)라고도 합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단기·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해서 14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인구의 3%에 해당되고, OECD 국가 중에서는 일본, 핀란드, 헝가리와 함께 낮은 편에 속합니다. (일본이 가장 낮습니다.)

 

체류 외국인은 취업자격을 가진 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등으로 구성되고, 취업자격을 가진 외국인노동자는 약 60만 명입니다. 그리고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노동자는 조선족입니다. 조선족을 외국인으로 치부하는 게 좀 이상합니다만, 어쨌든 통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조선족보다는 동남아시아계가 눈에 확 띠는 외국인노동자들입니다(영어 학원에서 일하는 백인들을 제외하고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지하철 특히 4호선을 타면 동남아 노동자들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안산 쪽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휴일에 4호선을 통해 서울 시내로 진출하는 것이지요.

 

비행기에서 만난 태국노동자(편의상 T라고 합시다)도 안산 공장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와서는 김포의 사출 공장에서 일했고, 그러다가 화성의 전기제품 조립공장을 거쳐 안산의 스펀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제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2004년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에 따라 최대 취업가능기간인 4년 10개월(3년 + 연장 1년 10개월)을 채웠다고 합니다. 일단 귀국했다가 6개월이 지나면 다시 한국으로 올 수는 있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태국에서 살 거라고 했습니다.

 

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선 월급을 얼마나 받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안산의 경우 180~250만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엇! 이 정도면 한국 최고의 봉급을 자랑하는 신한금융지주나 현대모비스에 비해선 형편없지만 그래도 그런 대로 괜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숙식도 공짜였다고 합니다. 밥을 회사에서 주는데 일이 없는 일요일엔 밥값을 따로 주었답니다. 한국 젊은이들에 대해 88만원 세대니 뭐니 하는데 왜 그들은 그 2배 이상 받는 일자리로 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갑자기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문은 금방 풀렸습니다. T의 월급엔 잔업수당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8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가 기본 작업시간이고 여기다 매일 보통 3시간 정도 잔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노동법 위반 사업장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일감이 밀릴 때는 밤 12시까지도 일하고, 아침 6시부터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답니다. 아침 작업시간 2시간은 3시간으로 계산해주고, 또 잔업시간 전체에 대해 50%의 할증률을 보태어 200만원 전후의 월급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루 평균 11시간 심지어 열다섯 시간까지 일해야 하니 1950~60년대라면 또 모르지만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로서는 가고 싶은 직장일 리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한국인도 없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전체 20~30명 중 한국인이 10명 정도로 아마도 관리직 또는 숙련근로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습니다. 그 장시간 노동으로 1인당 실질소득이 선진국 수준에 오른 것입니다. 외국인노동자 중에서 T만큼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T의 경우는 한국 장시간 노동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T가 일한 공장의 외국인노동자들은 주로 태국과 캄보디아였다고 합니다. 한국의 외국인노동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쪽은 조선족입니다. 하지만 조선족 여성은 주로 식당에서 일합니다(말이 통하니까요). 술집이나 가정부로도 조선족 여성이 진출하기도 한답니다. 조선족 남성의 경우엔 몇 년 전에 들렸던 연변지역에 붙어 있던 한국 일자리 안내 광고를 근거로 한다면 건설업이 중심업종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완득이>에 나오는 필리핀 여성은 식당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건 그 여성이 한국어에 능통해진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생산 현장에선 동남아쪽 비중이 조선족보다 오히려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노동시간 이야기를 들으니 다소 애처로운 생각이 들어 한국인들이 욕설을 퍼붓지는 않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전엔 외국인노동자들이 우리 땅에 와서 처음 배우는 한국말이 욕지거리라는 보도가 있었을 정도로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T에 따르면 처음 김포공장에선 약간 욕설을 들었고, 두 번째 화성공장 사장은 같이 일하면서 욕을 많이 퍼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 번째 안산공장 사장은 사람이 아주 좋았고 욕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휴일에는 주로 뭘 했느냐고 물으니 태국 친구들과 만나거나 평소에 부족했던 잠을 보충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T는 도대체 여가라고는 즐기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예 같은 삶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해운대도 가 보았고, 스키장(본인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도 놀러가 보았답니다. 게다가 값싼 중고차이기는 하지만 (본인도 갖고 있지 않은!) 차를 몰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한국 체류 5년 사이에 일감이 없을 때 1개월, 2개월씩 두 번 태국에 돌아가서 가족(10세 딸과 처)과 지내기도 했답니다.

 

사정이 과거보다는 상당히 나아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한 셈입니다. 다만 불법체류자에 대해선 그 신분을 약점으로 삼아 사장이 월급도 제대로 안 주고 다른 대우도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어는 처음 입국하기 전에 2주 정도 공부해서 시험을 쳤고, 나중에 공장에서 일하면서 동료 한국인 노동자들에게서 배웠다고 했습니다. 부인, 처 같은 말은 모르고 와이프란 말은 알아듣는 식으로 한국어를 익힌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이리 고생하면서 돈도 나름대로 모았다고 했습니다. 그 돈으로 고향에 가서 보석 가공공장을 꾸릴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의 얼굴은 밝았습니다. 이 정도면 성공 케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1970년대 중동에 가서 돈을 번 한국 노동자들도 비슷했겠지요.

 

외국인 노동자가 모두 이렇지는 않겠지요. 특히 조선족 이주노동자들 중엔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조선족은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많이 돈벌러 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 한국사회에 동화되기가 더 쉬운 조선족에게서 불행한 사례가 더 많다는 건 생각해볼 만한 주제입니다.

 

태국 노동자에 대한 소개가 좀 길어졌습니다. 그 자체가 흥미로웠고, 또한 유럽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이민(및 이주노동자) 문제라든가 장차 남북한 통일이 초래할 상황과의 관련에서도 생각할 부분이 많은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는 블로그 글로든 논문으로든 언제 한번 다시 다뤄볼까 합니다.

 

각설하고 방콕에 도착한 날 저녁엔 간단한 리셉션이 열렸습니다. 거기서 베트남 발표자(편의상 V박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V박사는 베트남 공산당 최고위간부의 자문역이어서 베트남 내의 속사정을 많이 알고 있었는데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베트남은 북한 관리들을 초청해 금융을 비롯한 시장경제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베트남의 개혁 개방을 지원한 스웨덴에 의해 자금을 지원받는다고 합니다. 스웨덴은 자기 나라만 복지국가인 게 아니라 이렇게 다른 나라의 복지를 증대시키는 데도 힘쓰는 참 좋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베트남은 2001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기로 볼 때 2002년에 단행된 북한의 경제개혁조치(7.1 조치)에 베트남과의 이런 프로그램이 영향을 미쳤다고 추측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004년 한국이 베트남에서 탈북자 468명을 전세기로 데려 온 후 2005년부터 중단되었다가 2011년에 재개되었다고 합니다. 2011년 무렵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학습하려 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을 방문한 북한 관리들은 15명 정도로 2011년의 경우 부상(vice minister)급 2명과 통역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 대해 시장경제를 가르치고 공장을 견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V박사가 놀란 것은 북한 관리들을 하노이 식당에서 대접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뚱뚱한 부상들은 그렇지 않았으나 그 밑의 관료들은 각자가 밥을 4인분씩이나 먹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말 속에는 얼마나 배고프게 살아왔을까 하는 뉴앙스가 풍겨 나왔습니다.

 

외국에 파견될 정도의 관료들인데 설마 굶주리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는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하노이에서 폭식을 하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벗>이라는 대북 식량지원 단체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길림성의 조선족 마을에 들어온 탈북여성이 삶은 계란 20알을 앉은 자리에서 모두 해치우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길림성에서건 하노이에서건 안타까운 북한 현실의 단면이 드러난 셈입니다. 하지만 집에선 속 썩이는 천덕꾸러기 동생이라도 밖에서 업신여김을 당하면 유쾌하지는 않은 법입니다.

 

그리고 V박사를 북한이 초청하기도 했는데 거절했다고 합니다. V씨의 지인이 북한에 갔더니 겨울인데도 히터도 작동이 잘 되지 않고 물도 잘 안 나오고 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70에 가까운 노인인데 그런 고생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베트남 고위층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대우그룹이 파산하자 김회장은 베트남에 피신해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나중에 한국 정부에서 압력이 들어와서 김회장이 한국에 돌아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도 베트남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들에겐 김회장이 베트남 고위층과의 연결통로인 것 같습니다.

 

김회장은 한편으론 막대한 부실로 우리 경제를 피멍들게 한 장본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세계를 휘저은 대단한 인물인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구미선진국에선 그의 수법이 별로 통하지 않았으나, 부패한 후진국 정치인들을 다루는 데 즉 이른바 정경유착에는 나름의 수완을 가졌던 셈입니다.

 

언젠가 기회 있으면 김회장이 북한 사업을 어떻게 진행시켰는가를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정도에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방콕 여행에 관한 다음 글에서는 국제포럼에 관한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방콕에서 보고 느낀 걸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