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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모저모 (2) : 이정희의원의 정치적 죽음과 부활

동숭동지킴이 2012. 3. 26. 06:41

 

총선 이모저모 (2) : 이정희 의원의 정치적 죽음과 부활

 

김 기 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이제 4.11 총선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맞추어 총선과 관련된 두 번째 이야기를 펼쳐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이정희의원의 후보직 사퇴 사건입니다. 사퇴와 관련된 이의원의 행보를 평가하면서 이의원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A. 이정희 의원의 정치적 죽음과 부활

 

이정희 의원은 정치적으로 죽음과 삶을 오갔습니다. 지난 3월 20일 보좌관의 여론조사 조작사건이 터지면서 후보직 사퇴를 거부하는 바람에 정치적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3일 만에 사퇴결단을 내리면서 이의원은 상처를 입기는 했으나 생환했습니다.

 

3월 20일 사건이 터지면서 본인은 이의원이 그날 중으로 사퇴결단을 내려주길 바랐습니다. 그리되면 밤 9시 뉴스에서도 조작사건과 사퇴가 동시에 다뤄지고, 다음날 아침의 신문들도 융단폭격을 퍼붓기 곤란해질 터였습니다. 당연히 그 사건이 야권에 주는 타격이 최소화되었겠지요.

 

그래서 본인이 이의원과 친한 사이라면 직접 전화를 걸었을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이의원과 일면식도 없습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지도부에 아는 인물이 있기는 합니다만, 절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한 다리를 건너서 얘기해봐야 별 효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페이스북에라도 사퇴를 권하는 글을 올릴까 어쩔까 하다가 그 생각도 접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압력을 넣어서 사퇴에 이르게 되면, 그건 사퇴의 자기결단이라는 정치적 효과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이의원의 그릇 크기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그릇은 노름판에서 드러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위기상황에서 드러납니다. (따지고 보면 노름판도 작은 위기 상황의 연속입니다.)

 

 

만약에 “이의원이 오늘 중으로 사퇴하면 장차 대선을 바라볼 수 있는 큰 정치인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인에게는 위기가 가끔씩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걸 감동적으로 극복하면 나라의 지도자로 우뚝 섭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처럼 확고한 지역적 기반과 오랜 조직적 기반을 갖고 있던 정치인이라면 또 다릅니다. 하지만 노통처럼 그 둘 다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정치판에 뛰어든 인물에게는 감동을 주지 못하면 성장이 한계에 봉착합니다.

 

노통도 국회의원이나 부산시장에서 떨어질 각오를 하고 사지(死地)인 부산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다른 정치인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대선 과정에선 좌익이었던 장인 문제가 거론되는 위기에 직면하자 “대통령 되려고 마누라를 버리란 말이냐” 하고 되받아치면서 선거에서 중요한 아줌마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물론 노통의 흉내를 내는 것으론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나중에 야권인사가 노통처럼 죽음의 땅 대구에서 출마했지만 아무런 감동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감동은 절대로 모방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창조적 감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창조적 감동의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습니다. 일종의 천운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잡을 수 있는 내공이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이의원에게 천우신조로 그런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그 기회를 살릴 내공이 갖춰졌는지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의원이 왜 사퇴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리는 본인이 읽은 글 중에는 다음 두 글이 제일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들의 논의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사태의 전개를 짚어가면서 이야기를 좀 더 깊고 넓게 풀어가겠습니다.

 

* 산하 “우리들의 논개 이정희”

www.ddanzi.com/blog/archives/75623

* 안종주 “민주진보진영, 최대 위기다”

http://www.pressby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6

 

이의원은 본인의 기대와는 달리 사건이 터진 날 바로 사퇴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녀는 재경선을 제안했습니다. 시중의 유명논객 진중권 교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평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론 재경선 정도로 충분할지 모르지만 정치적 사태는 결코 그 정도로 수습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의원이나 진교수는 상황을 대단히 안이하게 파악한 셈입니다.

 

재경선은 경선 상대자인 김희철이 수용할 때만 의미가 있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김씨는 이미 여론조사 조작 문제가 터지기도 전에 경선결과 불복을 표명한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재경선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의원이 재경선 제안을 김씨에게 미리 타진하지도 않았겠지요.

 

이의원은 재경선을 제안하면서 김씨 진영에서도 비슷한 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살짝 언급했습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니 너무 욕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실제 김씨 진영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왜 나만 비난하는가”라는 식의 항변은 이의원을 김씨 수준으로 떨어트리는 치명적 과오였습니다. 아니 이의원이 경선도 불복하는 김씨와 같은 급입니까. 그건 문재인변호사를 손수조와 같은 급으로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의원이 금배지 하나 다는 걸 좋아하는 그렇고 그런 국회의원이 되려 했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그런데 진보개혁진영에게 이의원의 위상이 그런 급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이의원은 이후 두어 차례 언론 인터뷰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의 이의원은 “당당한 이정희”가 아니라 “구차하게 변명하는” 구태의연한 정치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아! 이정희는 죽었다”라는 느낌이 물결쳐 왔습니다.

 

이래 가지곤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그냥 또 한 명의 국회의원일 뿐이고, 이때까지 보여준 이정희의 정치적 이미지에는 사망선고가 내려진 게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선 끝까지 버티더라도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는 보장도 희박했습니다. 무슨 강한 지역조직을 갖고 있는 게 아닌 이의원은 열정적 운동원을 확보하기 힘들게 되어버립니다. 또한 야권분열도 작용해 새누리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이정희의원은 훌륭한 정치지도자로 커가는 1차 관문에서 나가떨어진 셈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당당함을 잃은 지도자로 전락하고 또한 야권연대를 파탄 낸 장본인이 되어버리는 형편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사태는 또 반전되었습니다. 이의원이 국회의원 후보등록 몇 시간 전에 사퇴 선언을 감행한 것입니다. 역시 한국의 정치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이의원이 문재인후보와 22일 밤에 만나고 난 다음에 아직 정리해야 될 사안들이 있다고 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아 오늘 사퇴할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고 본인이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의원은 사퇴를 미루고 있던 사흘 동안 이의원을 비롯해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는 조중동에 의해 융단폭격 당했습니다. 따라서 이의원 등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습니다.

 

게다가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사퇴하는 모양새가 되어 사퇴의 의미가 상당히 퇴색했습니다. “정치란 타이밍(Timing)의 예술”이란 말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사퇴한 후에 알 게 된 사실과 국민들의 반응을 찬찬히 따져보면서, 이의원을 떠나려던 ‘이정희 영혼’이 다시 돌아왔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이의원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할 만 했고, 또 사퇴 이후 이의원에 대한 진보개혁진영의 환호성 역시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이의원이 훌륭한 정치인으로 나아가는 1차 관문에서 완전 탈락한 건 아니고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진 셈입니다. 아니 어찌 보면 국민적 지도자로 급부상한 측면도 일부 있습니다.

 

사흘 간 융단폭격을 당하면서 이의원의 인지도는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이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정치인에게는 특히, “Bad publicity is better than no publicity."입니다.

 

그래서 강용석씨가 고소고발 전문인으로 전락한 것이지요. 진보개혁진영에서야 이의원을 다 알고 있었지만 일반국민들은 잘 모르는 정치인이던 데서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일약 누구나 다 아는 국민적 정치인으로 올라선 것입니다.

 

또 한편, 사퇴로 이르는 과정에서 이의원은 자신을 옹립한 옛날 민주노동당 당권파로부터의 일정한 독립성을 획득한 것 같습니다. 이의원은 아마도 문재인 후보를 만나고 얼마 안 되어 사퇴를 결심한 것 같은데, 그 사퇴 결심의 표명을 오후 2시 무렵까지 미루었습니다.

 

사퇴를 반대하는 옛날 민노당 당권파나 일반당원들이 반발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적 수완도 보여준 셈입니다. 더욱이 사퇴 결정 과정은 이의원이 당내 여론보다 국민여론을 더 중시하는 국민적 지도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본인에겐 통합진보당 또는 옛 민주노동당의 인맥이 거의 없어서 혹시 틀리게 해석했을 수도 있기는 합니다.)

 

게다가 이의원이 사퇴를 늦춘 데에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의원이 사퇴하면 안산 단원갑 선거구처럼 통합진보당 후보로 단일화된 7개 지역에서 민주당후보들이 줄줄이 경선에 불복하는 도미노현상이 우려되었던 것입니다.

 

실제 이의원은 조작 사건이 불거지고 난 이후 인터뷰에서 “사퇴는 쉽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면서 초기엔 사퇴를 생각했다. 그러나 안산 단원갑 지역 같은 야권연대의 균열 문제가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사퇴를 거부하면서 하는 말이라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의원이 사퇴하면서 곧바로 안산 단원 갑의 민주당후보가 경선결과에 승복하는 등 문제지역들이 일거에 해소되는 걸 보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통합진보당의 이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대표로서의 책임이 작동했고, 또한 자신의 즉각 사퇴가 문제를 확산시켜 야권연대를 오히려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미지 실추를 희생하면서 당대표의 책임성을 실천하려 했고, 나아가 그게 국민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해석해도 크게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은 이의원이 즉각 사퇴하는 게 훨씬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대표의 책임성 문제 때문이라면 사퇴를 미루면서 언론에서 구차하게 변명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건 ‘이정희’답지 않은 일입니다.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되 민주당과 문제지역 해소를 위한 물밑협상을 계속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의원은 이번 사태가 발발하면서 즉각 사퇴했거나, 아니면 사퇴하지 않는다고는 하지 말고 협상을 계속했다면 100점짜리 정치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끝까지 사퇴를 거부하고 선거에 나갔다면 마이너스 100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의원은 미루다가 결국 사퇴는 했으므로 일단 0점이지만, 동시에 문제지역을 해소하면서 야권연대를 오히려 공고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 점까지 감안해 합계 50점을 받았다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의원 사태가 총선에 가져올 효과는 어떤 것일까요. 엊그제 오전 등산에서는 진보개혁적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오후의 결혼식 자리에서 보수적인 인사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를 종합하고 본인 나름의 분석을 보태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의원 사태의 발발로 보수수구층이 결집되는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이의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력이라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경기 동부연합 운운의 조중동 보도는 분단모순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아직도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진보개혁진영도 결집되는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서 잘 나타납니다. 게다가 이의원 사태는 결말이 그리 나쁘지 않은 story를 만들어냈습니다. 정치판에서 서로 싸울 땐 story를 가진 집단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의원 사건에 따른 폭음(暴音)이 민주당 공천과정에서의 여러 잡음을 다 덮어버렸습니다. 나아가 이의원의 사퇴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경선 이후 불거진 잡음마저 쓸어버렸습니다. 이건 진보개혁진영 결집에 대한 긍정적 효과입니다.

 

이렇게 벡터(vector)의 방향이 서로 반대인 두 효과를 합산하면 어찌될까요.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 사태가 발발했을 때 걱정했던 것에 비해선 진보개혁진영의 타격이 크게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은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이의원 개인의 정치적 장래는 어떨까요. 1차 관문에서 불합격하지는 않았다고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합격했다고 단정하기도 힘듭니다. 국민적 정치인으로는 격상되기는 했으나 내상도 만만치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정치인이 이런 식의 1차 관문에서 탈락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의원이 탈락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하기는 합니다. 이의원의 장래 문제 역시 여러분도 한번 예측해 보십시오. 재미삼아 해보는 건데 틀리면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예측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제가 이때까지 이의원을 가끔씩 관찰해 온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본인은 무명인사고 또 이의원의 행사장에 쫓아갈 만큼 열성파는 아닌지라 아직 이의원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의원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이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본인의 지인 중에 고위법관이 있고 그가 이의원의 이름을 언급했던 것입니다. 그는 국가보안법 사건과 관련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의견서를 제출해달라고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견서를 당시 민변 소속이던 이의원이 작성했습니다. 그걸 보고 본인의 지인인 고위법관이 감탄했던 것입니다. 판사들은 엘리트 의식이 아주 센 집단이라 남을 칭찬하는 일이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고위법관이 본인에게 이의원을 거명하면서 논리가 뛰어난 참으로 대단한 변호사라 했던 것입니다.

 

본인은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그 일은 약간 특이해서 머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일이 좀 흘러 이의원이 민노당 국회의원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그녀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당시는 민주노동당의 스타들인 심상정, 노회찬이 탈당해서 진보신당이라는 새 살림을 차린 상태였습니다. 스타가 사라진 민노당은 이제 김빠진 맥주 꼴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물론 민노당의 의석은 절반으로 확 줄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민노당의 스타였던 심상정과 노회찬이 국회의원에서 떨어진 대신, 국회가 돌아가면서 예상 외로 새로운 스타가 떠올랐습니다. 그게 이의원이었습니다. 이의원이 국민적 인기를 끌자 41세에 당대표까지 되었습니다.

 

이의원이 인기를 끌게 된 비결은 뭘까요. 첫째가 진정성이었습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온 몸을 던져 헌신한다고 하는 믿음을 주는 활동이었습니다. 촛불 시위, 용산참사, 희망버스 등등 온갖 갈등 현장에 온 몸을 던졌습니다.

 

희망버스 운동에 대해선 본인이 그 선전구호에 문제가 있고 그런 운동방식으로 우리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의원처럼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지 않는 인물은 진보개혁진영의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어제 인삼에서 빼낸 추출물로 항암 등 면역력증강 효과를 갖는 건강기능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대리점사업을 하는 지인과 등산을 같이 했습니다. 10년 정도 알고 지낸 지인이지만 자기 사업에 대해선 깊게 이야기를 나눈 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자기 상품을 판매하던 대리점이 수십 군데였는데, 제품의 신뢰성 문제가 한때 부각되면서 거의 다 문을 닫았고 자기 대리점만이 살아남아 총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비결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마디로 ‘진정성’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지인은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도 않고 또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이런 정치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업체의 진정성의 대표적 사례로선, 다른 대리점들은 그 제품을 만병통치약처럼 과장 광고했지만 자기네들은 효과가 있는 병과 그렇지 않은 병을 분명히 구분했다고 합니다. 고객이 이런 병에도 듣느냐고 물어올 때 아니면 아니라고 설명했다는 겁니다.

 

또 다른 대리점은 공식적 유효기간이 2개월밖에 남지 않은 제품을 팔면서 3개월치 제품을 팔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자기네들은 그런 경우에 3개월치를 사게 되면 유효기간을 경과하게 된다는 걸 말했다고 합니다.

 

요컨대 단기적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고 고객의 신뢰를 축적해가는 자세를 보인 것입니다. 사업과 정치가 모든 점에서 똑같지는 않습니다만,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장기적으로 성공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마음을 얻는 비결은 바로 진정성이고, 이의원은 그런 점에서 다른 의원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단지 투쟁 현장만 열심히 쫓아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민노당을 제외한 여야의 합의로 재판절차를 간소화시키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의원은 국회연설에서 그 법안이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해 여야합의 법안을 폐기시켰습니다.

 

물론 특정집단의 이익에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서 다른 의원들이 쉽게 양보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의원의 진정성이 통하지 않았다면 여야합의 법안을 철회할 리가 없습니다.

 

또 이번 야권연대 과정에서 민주당은 이의원 지역을 전략공천지역으로 정해 자기후보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제안을 한 걸로 보도되었습니다. 16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공천후보를 아예 내지 않고 진보당에 그냥 양보했는데, 이의원 선거구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의원은 자기 당을 위해 그런 편할 길을 마다했습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경선지역을 늘리는 명분을 얻을 수 있도록, 조직기반도 별로 없으면서 자기 지역에서도 민주당 후보와 경선하겠다고 한 겁니다. 이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마 경선을 치르지 않으면 김희철의 반발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을 수는 있습니다.)

 

진정성 면에서 이의원은 제2의 노무현 또는 여성 노무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두고 봐야 하겠지만 어쩌면 노무현을 능가하는 진정성을 발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째로, 이의원은 상당한 정치적 역량을 보여줬습니다. 2010년의 야권연대를 성사시켜 한나라당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고 그리해 당명을 바꾸게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번 야권연대과정도 이의원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입 발린 소리인지 모르지만, 야권연대협상이 처음에 타결되었을 때 한명숙대표가 그런 취지의 말을 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민주당이 앞으로의 연대를 위해서도 이의원이 국회의원 노릇을 계속할 수 있게끔 무공천 제안까지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보파라 하면 외곬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란 인상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의원이 야권연대를 이끌어낸 협상력은 다른 진보파와 달리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진정성도 협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이의원은 정운찬 총리 청문회에서 남다른 정치적 역량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냥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한 사전준비에 기반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총리의 사과까지 받아냈습니다. 이 역시 청문회 스타 노무현의원을 연상케 하는 대목입니다.

 

이의원은 울음을 자주 터트립니다. 원래 여성이 남성보다 눈물이 많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눈물은 나경원의 눈물과는 다르지요. 서울시장에 떨어진 분함(?) 같은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울음을 터트리니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홍정욱 의원이 감동해 손수건을 건네기도 한 것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도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정치적 역량입니다. 민주당의 이해찬 전 총리는 후원금까지 보내겠다며 격찬한 바 있습니다.

 

고상한 진리를 외치거나 날카로운 공격을 퍼붓는다고 사람들이 감동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진보개혁파 중에는 자기가 진리를 터득했다는 자신감이 넘쳐 소통이 없는 독백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의원은 여기서 벗어나 소통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진보개혁파 중에는 분노와 증오가 가득찬 인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투쟁력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그런 분노와 증오가 무조건 나쁜 게 아닙니다. "분노하라"라는 책이 최근 인기를 끌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론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없습니다. 


분노와 더불어 사랑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옵니다. 노통에게는 이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MB 같은 정치인은 아예 비교대상도 아닙니다. ㅎㅎㅎ). 반면에 이의원의 울음에는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너무 지나친 찬사인가요 ㅎㅎㅎ). 이게 대성할 소지입니다. 

 

이의원의 눈빛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날카로운 구석이 있기는 합니다만, 서울대 입학 당시 여학생 전체수석까지 한 전형적 엘리트에게서 볼 수 있는 타인에 대한 우월감 또는 경멸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본인이 무슨 관상쟁이는 아니니까 이 말을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ㅎㅎㅎ)

 

많은 엘리트들은 자신이 너무 똑똑해 교만에 사로잡히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인간이란 게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라 우수한 업적을 내는 사람들에겐 필요악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천재적 예술가 중엔 교만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엊그제 등산길에서 국문학 교수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다산 정약용도 품성은 별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치인의 교만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옳은 이야기를 하고 논리에서 압도한다고 상대방이 설복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둔한 본인은 근래 들어서야 겨우 깨닫고 있습니다.(그렇다고 깨달음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본인 같은 사람들은 정치인이 되면 패가망신합니다.

 

그런데 이의원은 대단한 엘리트인데도 아직까지는 교만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강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비굴함도 없습니다. 가식없는 진정성에 의한 '당당한 이정희'입니다. 말하자면 ‘좋은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드문 정치인인 셈입니다.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기본자질을 갖춘 셈입니다.

 

우연히 오마이TV에서 이의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무슨 대단한 내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엘리트의 현란한 말이 아니라 대중적인 쉬운 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말을 하는 중에 갑자기 가슴이 메여 말을 잠깐 멈추는 장면도 놀라웠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1988년 의회청문회에서 정주영 회장을 심문할 때 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 흘렸던 상황이 연상됩니다. 이건 아주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게 아니라면 타고난 진정성 때문입니다.

 

제가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대중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TV에서 무상급식에 관한 말을 하는 순간에 눈칫밥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그 감정이 시청자에게 전달된다고 말입니다. 제가 TV연설 전문가는 아니지만 교수 중에선 TV토론에 많이 참여한 편이라 나름대로 깨달은 것입니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이걸 제대로 하기는 엄청나게 힘듭니다. 그런데 이의원은 이런 걸 훈련받지 않고도 자연스레 해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갖춘 것입니다.

 

이런 데 놀라서 이의원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려고 이의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바로쓰기>를 제시해 놓았습니다.

 

대학시절 이의원은 법률서적도 아니고 사회주의 책도 아닌 <우리말 바로쓰기>를 읽은 것입니다. 그런 책을 읽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감동 깊었던 책으로 제시했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지식인들이 대중과의 소통을 무시한다는 점을 이미 일찍부터 깨달았던 것입니다.

 

자, 이의원에 대한 찬사는 이 정도로 합시다. 혹시 오해가 없도록 사족을 또 달면, 본인 자신이 이의원에 붙어서 한 자리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렇게 자꾸 사족을 달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의원이 보완해야 할 약점은 없나요. 그냥 국회의원 한 명에 머물려면 지금 상태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나라를 이끌 지도자로 커가려면 이야기가 많이 다릅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번 여론조사 조작 사건에서 대응이 불완전했습니다. 처음부터 사퇴방침을 정하고 뒷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했어야 합니다.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내공이 아직 부족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이의원은 나라 전체에 대한 식견을 지금보다 훨씬 더 넓고 깊게 길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까 인삼추출물 사업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 사업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진정성과 더불어 그 제품의 효능이 반드시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이의원은 나라의 훌륭한 지도자가 될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진정성은 이미 갖춰져 있으니 거기에 역량만 보태면 됩니다. (물론 인간이란 변할 수 있으므로 자신을 늘 경계하지 않으면 이의원의 진정성도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냥 반대만 하는 지도자에 머물려면 특별히 공부할 게 없습니다. 용산참사 때 규탄하고, 미디어법 제정 때 반대하고,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반대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대안 없는 반대만으로는 나라를 이끌 수 없습니다. 몸으로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컨대 한진중공업 사태 때 희망버스를 타는 건 좋지만, 정말로 어찌해야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문제에 대해 전문가처럼 이의원이 세세한 내용까지 답을 갖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이의원이 천재라도 그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큰 비전을 갖고,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기본방향을 알고 있으면 됩니다.

 

이 역시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이의원은 진정성이 있고 머리가 좋으니 해내는 게 꼭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국회의원에서 떨어져 당분간 공부할 시간여유가 생겼습니다. 보궐선거에 나가거나 차기정권에서 입각한다 하더라도 그때까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DJ도 감옥에서 내공을 많이 쌓았습니다.

 

지금부터 실현가능한 대안을 찾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공부는 글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사람을 만나는 데서도 이루어집니다. 특히 진보개혁진영의 인사만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인사도 두루 만나면 좋겠습니다. 노동계만이 아니라 기업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보수인사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사고의 변증법적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의원은 그럴 역량이 있는 걸로 기대됩니다. 머리가 좋을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행보로 볼 때 유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라를 적극적으로 이끌려면 북한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이의원은 예전에 북한의 3대세습 문제에 대해 흐리멍텅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국민들이 크게 실망했습니다.

 

본인 생각엔 “북한정권의 3대 세습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민주주의 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된 데에는 남한, 미국, 일본과의 관계가 풀리지 않음에 따른 나름대로의 불가피성도 작용한다. 따라서 남한이 앞장서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정도로 처리하는 게 이의원이 말할 수 있는 정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북한 문제에 대해 이의원은 공부를 훨씬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사고가 발전하지 못하면 이의원은 소수정당의 대표자로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조중동이 언급한 경기동부 연합이니 어쩌니 하는 게 실체가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런 조직이 있다면 그 조직의 문제 있는 이념을 이의원이 바로잡든가,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로부터 이의원이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 전체의 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사태에서 이의원의 자유도는 향상되었습니다. 그런 자유도를 더욱 발전시키면 좋겠습니다. 이게 혁명처럼 어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런 ‘이정희혁명’을 기대합니다.

 

일본의 정치거물이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X도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의원은 국회의원에서 떨어졌지만 X도 아닌 게 아니라 국민적 지도자로 커갈 가능성을 획득했습니다.

 

노통도 국회에서 여러 번 떨어졌지만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의원도 노통처럼 큰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녀의 역량을 혁명적으로 격상(upgrade)시켜야 합니다. 또 그래야 노통처럼 기대에 크게 못 미치게 되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이 꽤 길어졌습니다. 읽는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원래 이번 글에서 같이 다루려고 했던 내용에는 다음 것들이 있습니다. 이정희의원 사태와 곽교육감 사태의 비교, 이정희 의원사태 해결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백낙청 선생님 등 한국의 원로와 문재인후보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그런 것들입니다. 또 박노자씨 비례대표 6번 선정과 진보신당의 전략 결핍 문제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들을 다룰 <총선 이모저모 (3)>은 이번 주 내에 올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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