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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모저모 (3) : 이정희의원 사태의 여파와 진보신당의 상상력

동숭동지킴이 2012. 3. 28. 15:39

 

총선 이모저모 (3): 이정희의원 사태의 여파와 진보신당의 상상력

 

김 기 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B. 이정희의원 사태와 곽교육감 사태

 

지난 글에서 여론조작 사건이 불거진 그날 밤 이정희 의원이 사퇴하는 게 최선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의원은 결국 최선을 실천하지는 못했으나 그나마 차선에는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의원이 자기 선거캠프의 여론조작 사실을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알았다면 어찌 했어야 할까요. 그래도 사퇴했어야 할까요. 특히 그런 여론조작이 정치권의 관행이고 경쟁자 김희철 쪽에서도 자행한 낌새가 있다면 어찌했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는 이의원은 아마도 사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어떤 정치인도 그렇게 극단적인(?) 도덕성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정치란 현실이고 성인군자들의 도덕경연장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 정도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극단적인 도덕성을 드러낸 인물이 있습니다. 2003년 가을 노무현대통령은 대선불법자금 수수를 스스로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일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노통이 그런 극단적인 조처를 취한 정확한 배경은 모릅니다. 검찰의 칼날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선제적으로 치고나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자기 진영의 10배 가까운 불법자금을 받은 한나라당을 공격하면서 어려운 정국을 돌파하려 한 술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대선불법자금을 받은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같은 게 없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기상천외의 수를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게 노통의 진정성입니다. 그런 진정성이 있었기에 노통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경호원이 자신을 구한답시고 같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멀리 심부름 보냈던 것입니다.

 

본인은 앞의 글에서 이의원을 진정성 면에서 여성 노무현 또는 제2의 노무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이의원이라면 만약에 자체적으로 여론조작을 알았을 때 어떻게 했어야 할지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합니다.

 

이는 불가(佛家)의 난해한 화두와 같지요. 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2장에 나오는 딜레마(난파선에서 다른 사람들이 살기 위해 병들어 곧 죽을 것 같은 동료를 살해해 나눠 먹은 사건의 경우)와도 비슷합니다.

 

도통하라고 이의원에게 이런 고민을 던지는 게 아닙니다. 이의원이 도통하려고 아예 속세를 떠나면 그건 또 큰일입니다. 여론조작 사건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 대처하는 내공을 기르기 위해 문제를 철저하게 파고드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radical이란 철저함입니다.)

 

그런데 여론조작을 자체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와 같은 가정법(假定法)적 성격을 갖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게 곽노현 서울교육감 사태입니다. 자기 캠프의 실무자가 선거법을 위반한 사실을 세상이 알기 전에 인지한 것입니다.

 

이의원 사태가 터지자 진중권교수 등은 곽교육감 사태와 비교하는 글을 쓴 바 있습니다. 마침 본인도 곽교육감 사태와 어떻게 비교해야 할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진교수 이야기부터 풀어가겠습니다.

 

진교수는 곽교육감 사태가 터졌을 때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곽교육감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도 주로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받은 점을 들면서 여전히 자신의 과거 주장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http://blog.ohmynews.com/litmus 에 가면 진교수 및 그와 논쟁한 다른 사람들의 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진교수가 법원판결을 그렇게 신뢰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위 글에서도 사소하지만 진교수는 틀린 사실을 아직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곽교육감은 5천만원이 아니라 3천만원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또 진교수는 곽교육감이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 사퇴했더라면 지금쯤 다른 진보교육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미 앞글에서 지적했습니다만, 이의원 사태에 대해 재경선으로 족하다고 함으로써 진교수의 정치적 판단력이 별로임은 드러났습니다.

 

한편, 진교수와 마찬가지로 당시에 사퇴를 주장했던 사람들 중에는 사퇴하지 않으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이긴다는 이유를 들었던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곽교육감이 사퇴하지 않았지만 서울시장에선 한나라당이 패했습니다. 정치 예측이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닙니다. 사퇴해서 시장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동시에 치러졌을 때 진보교육감이 당선된다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장에서 박원순 시민후보가 이겼으니까 새 진보교육감 후보도 당선되었을 거라는 진교수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논법입니다. 거꾸로 교육감 논란이 계속되면서 박원순 시장후보마저 떨어트렸을 수 있습니다.

 

사실은 곽교육감이 버티면서 진보개혁진영의 여론이 진교수 주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검찰이 흘린 사실들이 엉터리가 많다는 게 드러나면서, 곽교육감 사태가 서울시장 선거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제 해석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함부로 정치예측을 하지 말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진교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성인남성들은 정치에 대해 모두 일가견이 있는데, 이렇게 다 일가견을 가진 문제가 사실은 제일 어렵습니다. 교육문제도 그렇지요.

 

일본의 마르크스 경제학자 중에 우노코조(宇野弘藏)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경대학 교수를 지냈던 분으로 일본만이 아니라 서구에까지 이름을 떨친 학자입니다. 학자로서는 천재에 해당하지요.

 

본인이 예전에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할 때 (블로그의 예전 글에서 밝혔듯이 요즘은 이런 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만), 우노코조의 글을 읽은 바 있고 그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노 자신은 (2차대전 이전에) 정치활동에 뛰어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정치를 하려면 천재적인 직관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노 같은 천재가 정치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렇고 그런 정치인이야 될 수 있겠지만 의미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털어놓은 겸손한 표현인 셈입니다.

 

본인의 지인 중에 정치의 전략전술에서 정상급 고수가 있습니다.(노통도 다른 이유로 중용하지는 않았지만 알아줬고, 한나라당에서 MB를 대통령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한나라당 고수도 그렇게 평가했습니다.) 여론조사란 게 없었던 옛날 선거 때 후보를 따라가면서 사람들이 반응하는 모습만 보고도 그 동네에선 표가 어느 정도 나올지 거의 정확히 예측했던 실력자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수도 틀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게 정치입니다. 온갖 변수가 작동하는 게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정치는 구미나 일본과 달리 엄청나게 드라마틱하게 움직입니다.

 

진교수는 날카로운 언어구사 면에서 한국의 정상급 인재입니다. 특히 보수수구파를 공격할 때의 그의 날카로움은 추종을 불허합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즉각 즉각 급하게 반응하면서 신중하게 이것저것 따져보고 발언해야 할 사안까지 너무 가볍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데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예측은 단언을 피하면 좋겠지요. 이정희의원은 정치가로서, 그리고 진교수는 논객으로서 진보개혁진영의 보물입니다. 보물이 쉽게 망가지면 되겠습니까.

 

진교수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언젠가는 한번 짚어야 했던 문제였습니다. 다시 곽교육감 사건 자체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위해 먼저 사건을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서울 교육감 선거 당시 곽교육감측 실무자와 박명기후보측 실무자 사이에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었고 단일화 조건으로 박후보의 선거비용을 보전해주기로 합의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본인이 이전에 곽교육감 사태에 관해 이 블로그에서 쓴 글을 참고하십시오. http://blog.daum.net/kkkwkim/145 )

 

그런데 곽교육감은 이런 합의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이건 재판과정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다 박교수가 교육감을 선거 후에 찾아오면서 작년 가을에 교육감도 사태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던지는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서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입니다. 이정희의원이 여론조작을 자체적으로 알았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와 일맥상통하는 문제입니다.

 

본인이 아는 한, 곽교육감 사퇴를 주장한 모든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곽교육감이 2억원을 박교수에게 건넨 사실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이전 블로그 글에서 사태를 달리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곽교육감이나 돈을 건넨 곽교육감 친구는 독특한 성격의 인물들이고 따라서 건넨 2억원이 선의에 입각한 것일 수 있었습니다. 실제 1심 재판부도 2억원의 주된 성격을 선의로 인정했습니다.

(다만 받은 박후보측이 대가로서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하면서 재판부가 대가성을 인정해 유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좀 난해한데, 돈을 준 곽교육감은 선의로 주었지만, 받은 측은 대가로 받았다고 재판부가 해석했습니다.)

 

본인은 블로그에서 돈을 선의로 주었다면 좋은 일 했는데 굳이 물러날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라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사실 마음 한 가운데 찜찜한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곽교육감 사건이 터지면서 만약 본인이 그런 처지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바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번 이정희의원의 가정법적 사건과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당시는 사퇴 논란이 2억원 문제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곽교육감이 사태를 인지했을 당시의 올바른 처리방식과 관련해서는 본인도 굳이 다루지 않았습니다. 다만 본인 글에 대한 댓글에 답하는 데서 약간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게 찜찜하게 남아 있었던 부분입니다. 이제 그 부분을 좀더 본격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교육감 선거 실무자 사이에 돈을 주기로 약속하고 단일화한 것은 불법입니다. 다만 그게 불법으로 처리되는 시효는 작년 12월 2일까지였습니다. 곽교육감이 이런 불법을 알게 된 것은 법적 시효가 만료되기 조금 전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곽교육감은 어찌해야 했을까요. 곽교육감은 사건을 공개적으로 자백하고 자신이 한 일은 아니지만 연대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길을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론조사조작을 자체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 모든 정치인이 취했을 길과 같은 길입니다.

 

일단 그렇게 한 다음엔 2억 원을 주는 쪽으로 가는 게 거의 필연적이었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박교수를 아예 모른 체 하거나, 일단 무마한 다음에 오리발 내미는 건 곽교육감이나 강교수 성향에선 불가능합니다. 모른 체 하는 게 도덕적으로 옳다고 하기도 힘듭니다. 법조항을 제대로 살펴봤다면 곽교육감 돈이 아니라 차라리 강교수 돈을 건넨다든가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요.

 

그런데 교육감은 선거로 뽑혔다는 점에서 정치인이긴 하지만 동시에 교육자입니다. 만약에 정치인 측면이 아니라 교육자 측면을 강조한다면 그 시점에서 곽교육감은 사퇴하는 게 가장 양심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2월 2일 전에 사건을 공개적으로 터트리면 교육감 본인은 아니지만 실무자들이 감옥 가야 합니다. 따라서 그 시점이 지난 적절한 때에 양심선언하고 사퇴하면 되겠지요. 알게 되자마자 양심선언하고 실무자 옥바라지는 교육감이 책임지는 게 어쩌면 더 양심적이겠지요.

 

다만 이런 종류의 양심선언은 성직자 수준의 행동입니다. 게다가 진보교육감으로 펼쳐나가고 싶은 일이 많은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교육감직무를 포기하고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는 건 거의 예수 석가 수준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옳은 일입니다. 심각한 불법적인 행위에 의해 당선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곽교육감 사퇴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2억원 건넨 걸 가지고 사퇴 주장을 할 게 아니라 불법사실을 인지했을 때 사퇴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또한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도 성직자 수준(또는 예수 석가 수준)의 행동을 할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사퇴주장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C. 이정희의원 사퇴와 원로 및 문재인후보

 

이정희 의원이 사퇴에 이르는 과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백낙청선생님을 비롯한 원로들과 문재인변호사가 일정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원로들은 야권연대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했고, 이의원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고비마다 타개의 실마리를 만들어주신 것이지요.

 

우리 진보개혁진영이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하게 보수수구진영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원로분들이 계신다는 점입니다. 돈과 권력을 탐해 왔던 보수수구진영에 어디 제대로 된 원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진보개혁진영이나 보수수구진영이나 그놈이 그놈 같지만 이렇게 분명히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진보개혁진영의 복일 뿐더러 우리나라의 복입니다.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의원 사퇴촉구 성명을 내면서 원로분들은 이의원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결단을 내려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진보개혁진영에 가장 부족한 게 바로 국민과의 눈높이 맞추기입니다.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혀 대중이 모르는 현란한 말들을 쏟아내는 진보개혁인물이 어디 한둘입니까. 또 노통의 경제정책을 평하면서 본인은 노통정권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로 대중의 삶과 정서에 둔감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예컨대 실효도 없이 대중을 괴롭히는 성매매처벌법 따위를 강화했고, 신용불량자 문제에서 제대로 전선을 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일찍이 DJ는 정치인은 대중을 반걸음만 앞서가라고 한 바 있습니다. 본인 식으로 달리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대중의 어려움을 바르게 이해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자세를 가지는 게 정치인의 자세입니다. 반 걸음 이상 떨어지면 따뜻한 소통, skinship이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문재인후보도 이의원 사태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걸로 보입니다. 원로들이 두 번 해결사로 나섰듯이 문후보도 임종석씨 문제 때와 더불어 2번 해결사로 등장한 셈입니다. 똑같이 두 번이라 재미있습니다. (삼세번 하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ㅎㅎㅎ)

 

본인의 막연한 추측입니다만, 이번 과정에선 문변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 먹혀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역 정치인들 중에 진정성 수준에서 가장 높은 쪽에 있는 게 이의원과 문후보이고 진정성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통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문후보가 정치에 나가게 된 과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본인이 볼 때, 문후보는 자기가 한 자리 해보겠다는 권력욕심에서 정치의 길로 접어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게 그의 약점이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대중에게 그의 진정성은 통하는 것 같습니다. 단 한번 힐링캠프라는 TV프로에 출연한 데서 지지율이 급등한 것은 진정성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솔직담백함이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문후보나 이의원 같이 뛰어난 진정성을 가진 정치인들이 역량까지 제대로 갖추어 나라를 좋은 길로 이끌어 가면 좋겠습니다. 진정성은 타고나는 부분이 크지만, 역량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의 피나는 노력을 기대합니다.

 

D. 진보신당의 상상력

 

총선투표 시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칸, 즉 정당투표 칸에 민주당이 아닌 진보진영에 표를 몰아주자고 페이스북에서 호소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 투표에는 사표(死票)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비례대표 투표에도 사표가 있습니다. 정당지지율이 3%에 미달하면 그 정당에 대한 투표는 의미 없는 죽은 표입니다. 바로 현재의 지지율로 볼 때 여기에 해당될 가능성이 큰 게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입니다. 따라서 민주당 이외의 진보정당에게 투표한다 하더라도 그 표의 효과를 최대화하려면 정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이번 비례대표 선정에서 극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본인이 이 블로그의 이전 글 (http://blog.daum.net/kkkwkim/159)에서 주장한 대로 ‘비례대표 번갈아 하기’를 선택하기는 했습니다. (본인 블로그를 읽고 한 일인지 독자적으로 고안한 것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더 극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박노자 교수(러시아 이름: 티코노프 블라디미르)를 2번에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면 박교수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도 진보신당을 찍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입니다.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당연히 진보신당을 다 많이 다뤘을 것입니다. 경직된 두뇌 때문에 이런 상상력이 피어나지 않는 게 진보신당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박교수는 언어의 천재인 한국학 전공자로서 진보적인 책도 여러 권 펴냈습니다. 현재는 노르웨이의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진보적인 인사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근래 들어 공공연히 주장하는 사회주의에 본인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물 한명쯤 국회에 들어온다 해서 문제가 될 한국사회는 아닙니다. 그만큼 한국은 발전해 있습니다.

 

그리고 백인이 한국 국회에서 발언하고 활동하는 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점거하고 멱살잡이하는 국회에서, 한국으로 귀화하긴 했지만 그래도 얼굴이 하얀 외국인을 보는 건 색다른 재미거리입니다. 새누리당이 비례대표로 선정한 이자스민은 동양인이라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박교수는 눈에 확 들어올 것입니다.(이자스민은 귀환한 필리핀인으로 영화 ‘완득이’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정치인에겐 연예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둘다 대중을 즐겁게 해야 할 직업적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정치인 노릇을 하는 겁니다.(강용석처럼 나쁜 일만 하지 않으면.)

 

박교수가 국회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상상하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본인 대학의 동료도 본인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료는 본인보다 더 열성적이라 자기 주위사람 20명 정도에게 박교수를 찍어주자고 했답니다. 그 교수 역시 박교수의 이념에 동의해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진보신당이 발표한 비례대표 명단을 보고 그 교수와 본인 모두 허탈했습니다. 당선 가능성이 없는 6번에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에선 이자스민을 당선가능권인 비례대표 17번에 배치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박교수를 2번 또는 1번에 배치했으면 표가 몰려 4번까지 국회의원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2번까지만 당선되더라도 ‘2년씩 번갈아 하기’에 의해 4번까지 국회의원 노릇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합니다. 이렇게 한심하니 다른 야당과 제대로 연대도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작구 을’ 선거구의 김종철 후보처럼 새누리당을 도와주는 사실상의 새누리당 2중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별로 반성도 없는 것이겠지요.

 

진보파들의 이런 문제점에 대해선 일찍이 본인이 미국의 랄프 네이더를 비교하면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http://blog.daum.net/kkkwkim/90). 처음에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던 진보파들도 이제는 이정희의원처럼 차츰 달라지고 있는데, 아직도 진보신당은 한심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본인 생각엔 이번 총선 끝나고 나서 진보신당은 통합진보당과 합당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 몰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럼으로써 과거 민노당 당권파를 일정하게 견제도 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세력인 유시민파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상태를 극복해야 합니다. 독일처럼 비례대표 중심의 의원내각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진보신당은 독자적으로 존립하려고 하기보다는 통합진보당과 합치는 게 자신도 살고 나라도 발전하는 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본인이 무슨 대단한 정치적 통찰력이 있는 걸로 보입니다. 함부로 정치 예측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해놓고 본인 스스로 정치 이야기를 마구 한 셈입니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이고 자기 눈의 들보는 안 보이는 것이지요. ㅎㅎㅎ. 비판을 마구 해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무슨 돌발사태가 발발하지 않는 한 총선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