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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 공연과 삼성의 횡포

동숭동지킴이 2012. 2. 27. 17:17

 

베를린 필 공연과 삼성의 횡포

 

김 기 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오늘은 음악회에서 드러난 삼성의 횡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작년 11월 16일 사이먼 래틀이 지휘자로 있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베를린 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했을 때의 일입니다.

 

본인은 음악을 잘 모르기 때문에 45만원이나 하는 관람료를 지불하고 공연을 들을 형편은 아니었습니다.(당시 대부분 좌석의 관람료는 45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공짜로 초청받을 만한 VIP도 아니기 때문에 그 공연에 대해 아는 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연에 초대받고 갔던 분을 최근에 우연히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리하여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지배력에 대한 그 분의 심각한 우려를 전하려고 합니다.

 

삼성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 즉 정계, 관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를 멋대로 주무르고 오염시키고 있는 현실에 대해선 본인도 여러 번 글을 쓴 바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이 블로그에 실린 글 목록을 한번 뒤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도 참고가 될 것입니다.

 

삼성은 한편으로는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견인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반체제사범의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내용도 삼성의 횡포와 관련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합니다. 삼성의 횡포를 익히 알고 있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사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횡포를 당한 분에게는 참으로 걱정되는 사태였고, 따라서 다른 일반인들에게도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공연은 금호 아시아나 문화재단이 기획한 것이지만, 삼성이 비용의 많은 부분을 충당했습니다. 공연 티켓을 삼성이 많이 구입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삼성은 공연 광고에서 금호의 이름을 아예 빼려고까지 했답니다.

 

금호 재단이 다른 기업의 지원을 받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성과 금호재단 사이에 마찰이 있었고, 결국엔 공연 팜플렛 겉표지에는 삼성의 이름만 넣고 속 내용에 금호재단 이름도 넣어주는 형식을 취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당시 공연장 근처에 걸려 있는 대형 선전물에는 “삼성전자와 함께 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이라고 되어 있네요.

 

당시 공연에는 청와대의 김여사도 왔었고, 삼성회장의 자녀들도 왔었다고 합니다. 삼성 가족은 자신들의 가족 파티에 연예인을 오게 해서 두어 곡 뽑게 하고는 3천만 원을 주기도 했습니다. (다만 나훈아씨는 “나는 티켓 사고 입장한 관객 앞에서만 노래 부른다”고 하면서 이런 제의를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제가 예전에 한겨레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베를린 필을 집으로 부를 수는 없으니까 삼성 가족이 직접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것이겠지요. 여기서 문제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 발생했습니다.

 

저의 지인이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려고 하니까 앞의 차들이 도대체 움직이지 않아서 기다리다 못해 근처 찻집에 갔습니다. 그리하여 두 시간쯤 지나고 갔는데도 여전히 차가 정체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 알고 보니 삼성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청와대의 김여사 일행이라야 몇 명 안 되니까 그들 때문에 차를 못 뺀 것은 아닙니다. 삼성에선 회장 자녀들만이 아니라 삼성이 초청한 VIP들이 많았습니다.

 

삼성회장 가족과 삼성 VIP들의 차는 차를 제일 빼기 쉬운 주차장(아마도 지하 2층)을 미리 확보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들 차가 빠져 나올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차는 아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삼성 측에서 차들을 차단시켜 놓았습니다.

 

이것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2시간씩이나 차가 꼼짝 못했던 건 좀 이상합니다. 아무리 삼성 VIP가 많더라도 그들이 다들 곧바로 빠져 나왔으면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릴 리 없습니다. 공연장을 찾았던 지인의 판단으로는, 삼성 VIP들이 공연이 끝난 후 자기들끼리 또는 지휘자 등 연주자들과 함께 특별 다과회(또는 와인 파티) 같은 걸 하지 않았나 합니다. 저는 이런 데 문외한이지만 공연장 옆에는 그런 특별 장소가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삼성VIP들이 파티를 끝낼 때까지 다른 관람객들은 차를 빼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파티할 때는 차를 뺄 수 있게 하면 될 텐데, 파티 후에 곧바로 자기들 차를 뺄 수 있게 하려는 극도의 배려(?) 때문에 다른 관람객들은 2시간 가까이를 바보처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그 비싼 공연에 돈을 내고든 아니면 초청을 받아서든 어쨌든 공연장에 갖던 사람들은 삼성 VIP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참한(?) 수모를 당한 것이지요.

 

삼성의 안하무인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이 정도면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삼성 앞에서는 어떤 신세일까요. 삼성이 일반 국민들을 이렇게 능멸하니, 형제 재벌(CJ)의 총수를 미행하는 일까지 자행하는 것이지요.

 

예전에 삼성 회장이 외국 가서 스키 탈 때 스키장을 아예 통째로 임대해서 자기네들만 스키를 탔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차라리 삼성 VIP들로만 공연장을 독점했더라면 적어도 이런 불상사는 없었겠지요.

 

어쩌면 삼성 측에선 그럴 생각이 없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베를린 필도 나훈아씨 만큼의 자존심은 가진 집단이라서 성사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 공연 뒤에도 있었습니다. 이 불상사가 기자들에게도 알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 보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결국 어느 주요 신문에도 관련 보도는 없었습니다.

 

왜 언론이 보도를 하지 않았느냐고요. 삼성이 광고를 통해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삼성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보다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는 게 훨씬 더 힘들지요.

 

두어 달 전에 모 신문사에서 본인에게 칼럼을 연재해 달라는 청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물었습니다. 삼성 문제를 다루는 글도 실을 수 있겠느냐고요. 그랬더니 그건 참 곤란하다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그 신문의 칼럼 연재는 사양했습니다만,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본인이 얼마 전 재벌개혁의 첫 걸음으로 ‘특경가법의 강화’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더불어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손아귀에서 정계, 관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가 벗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다만 광고 문제가 걸린 언론계가 재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없습니다. 그러나 삼성을 비롯한 재벌에게서 떡값(뇌물) 안 받더라도 학계나 법조계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니 제 할 일 하는 데 큰 지장 없습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면 학계나 법조계부터 자정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 사회분위기가 퍼지면 관계나 정계도 점차 재벌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근래에는 SNS의 발달로 선거비용도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그리되면 마침내 언론도 재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도 모든 언론이 삼성을 비롯한 재벌에 대해 똑같은 정도로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 예속의 정도를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입니다. 재벌개혁이란 이런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주는 일이기도 하지요.

 

재벌개혁이 화두로 올라선 마당에 부디 이번에는 국민들이 힘을 모아 재벌의 장점은 살리되 재벌이 위와 같은 부당한 횡포는 부리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실은 재벌도 거듭나고 우리 경제도 바람직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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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 2012년 3월 20일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방해하다 4억원의 과태료르 부과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겨레가 3월 19일자에 사설을 썼고 보수수구언론의 우두머리인 조선일보마저 하루 지나 3월 20일자에 사설을 썼습니다. 아래에 첨부합니다.


(한겨레 사설, 3월 19일)


- 공정위 조사방해 삼성전자, 법 위에 서있나 -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활동을 방해했다가 4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당했다. 조사 활동 방해 과태료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늘 ‘세계 초일류’를 앞세우더니 불법행위에서조차 1등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공정위가 어제 과태료 부과와 함께 내놓은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의 조사 방해는 그야말로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삼성전자는 미리 짜 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지난해 3월24일 공정위 조사요원이 방문하자 정문에서 붙잡아 놓고 시간을 번 뒤 조사 대상 피시에 담긴 자료를 폐기하고 다른 피시로 교체했다. 조사 대상 임원은 출장중이라고 버젓이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 공정위가 조사 방해에 대한 경위조사를 벌이자 피시를 교체한 직원의 이름을 삭제한 허위 출입기록을 제출하기까지 했다. 범죄집단 뺨치는 치밀함과 조직력, 담대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더욱이 삼성전자의 조사 방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2005년과 2008년에도 조사 방해 행위로 각각 5000만원과 4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바 있다. 그런데도 조사 방해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거리낌없이 불법을 저질렀다. 공정위는 과태료 부과와는 별개로 조사 방해에 가담한 임직원의 형사적 책임을 묻는 등 단호한 조처를 해야 한다. 또 역대 최고라고는 하나 기업 처지에선 ‘푼돈’에 불과한 만큼 범칙금도 크게 높일 필요가 있다.

삼성그룹은 이번 일을 통절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삼성은 국제적 위상에 견줘 현저히 뒤떨어지는 사회적·도덕적 책임의식이 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지난해 탕정공장에서 노동자 김주현씨가 투신자살해 장시간 노동 논란을 낳았다. 반도체공장 등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들의 사망 원인과 책임 문제는 아직도 미해결 상태다. 노조 설립 방해 행위 역시 오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삼성이 이런 후진성에서 벗어나려면 총수 1인 지배 체제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모든 권한이 이건희 회장 한 사람에게 집중되다 보니 합리성과 공정성 등 시장질서의 기본 가치가 흔들린다. 총수의 이익에만 충실하라는 탈법적·천민적 논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얼마 전 드러난 삼성물산 직원의 씨제이그룹 이재현 회장 미행은 상징적 사례다. 삼성은 상식을 하루빨리 회복하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3월 20일)

 

- 삼성 눈엔 이 나라 법은 법같이 보이지 않는가 -


 어제(19일) 아침 조선일보(A10면)에 실린 공정거래위원회삼성전자 수원사업장 현장 조사에 관한 기사와 사진은 정부가 재벌 앞에서 얼마나 무력(無力)하고 초라하며, 이 나라에서 재벌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이 기사와 사진은 대한민국 법률은 재벌의 울타리 안에서 무용지물(無用之物)이고, 재벌은 더 이상 법의 지배 아래 있는 게 아니라 '법 위'나 '법 밖'에서 치외법권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작년 3월 24일 오후 2시 20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들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나타나 현장 조사를 위해 방문한 공정위 직원이란 신분을 밝히고 건물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삼성의 경비 직원들은 "사전 약속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며 조사관들의 건물 출입을 가로막았고, 잠시 후 안에서 뛰어나온 두 명의 삼성 직원이 경비 직원에 가세해 공정위 직원들의 출입을 50분 동안이나 지연시켰다. 공정위가 나중에 확보한 건물 내 CCTV에는 그 사이 삼성 측이 관련 자료를 통째로 폐기하고, 책상과 서랍장을 바꾸고, 조사 대상 직원의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꿔치기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조사관의 전화를 받은 임원은 바로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서울 출장 중"이라고 거짓말로 조사팀을 따돌렸고, 다른 직원들도 모두 자리를 피해버렸다. 결국 조사관들은 담당 부서를 찾아가고도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자료도 확보하지 못한 채 그냥 물러나야 했다. 한국 최대 재벌의 최대 회사이고, 세계 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전무가 대한민국 공권력을 정지(停止)시키는 이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삼성전자의 안하무인(眼下無人)하는 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사건 후 보안 규정을 더 강화해 사무실 건물 출입구가 아닌 정문에서부터 차량 진입을 막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주요 파일을 대외비(對外秘)로 지정하고 영구 삭제하는 등의 후속 대책을 마련했다. 공정위가 이렇게 망신을 당한 다음 공정위 조사관들의 출입을 막고 자료를 폐기, 바꿔치기한 혐의를 확인하려 건물 출입 기록을 요구하자 삼성은 해당 직원의 이름을 뺀 허위 자료를 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이 사건 후 내부 회의에서 경비업무를 맡은 용역업체와 그 경비 직원들에게 "대처를 잘했다"고 칭찬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삼성이 정문 앞에 바리케이드까지 설치해 정부 조사기관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은 이 나라에 대한민국 말고 삼성이란 또 다른 정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삼성전자가 이렇게 무모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성이 지난 수십년간 좌·우(左·右)를 막론한 정계와 행정부·입법부·사법부·학계 등 이 나라의 핵심에 심어놓은 '장학생' 인맥(人脈)과 한국 최고의 '법률 기술자'들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 법률이 삼성에 적용되는 것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삼성의 눈엔 대한민국 법률만 우습게 보이는가, 아니면 세계 어느 나라 법도 삼성 앞엔 무릎을 꿇는다는 뜻인가. 삼성은 제 힘센 것만 믿고 하늘 끝까지 다다른 용(龍)에겐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온다는 항룡유회(亢龍有悔)의 의미를 무겁게 되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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