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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과 진실 찾기

동숭동지킴이 2012. 1. 25. 16:39

 

<‘부러진 화살’과 진실 찾기>

 

본인이 이전 신정아씨 시리즈에서 다루었듯이 우리 사회에는 억울함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중 재판에 따른 억울함을 다룬 최근의 영화 '부러진 화살'이 관객을 끌고 있습니다. 본디 영화를 좋아하는 데다 곽교육감 사건 탓에 우리나라 재판제도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다룬 '석궁교수' 사건은 사건 당시에도 이런 저런 보도를 유심히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계기로 그와 관련된 각종 판결문 및 석궁교수 김명호씨의 블로그 글까지 두루 읽었습니다. 영화를 둘러싼 논란도 살펴보았습니다. 재판에 어느 정도 관여한 판사들과도 대화를 나누었고, 영화제작에 관여한 변호사쪽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영화를 본 일반인들의 반응과 사건의 진실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엔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글을 써볼까 어쩔까 고민도 했습니다만, 법학에 문외한인지라 그건 그쪽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냥 여기에 간단하게 본인 나름의 결론만 정리해봅니다.

 

1) 김명호 교수는 성균관대 동료 수학교수들의 입시문제 출제오류를 지적하면서 미운 털이 박혔고, 그게 근본원인이 되어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2) 성균관대 측은 공식적인 탈락 이유로 김교수의 연구자 및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연구자로서의 자격엔 문제가 없지만 교육자로서의 자질엔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3) 교육자로서의 자질로 시비삼은 것 중에는 교수인 본인의 판단으로는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동료교수 및 학생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해직시켜야 할 사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해직시킨 결정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4) 영화의 형사재판에서와는 달리 김교수는 재임용관련 민사재판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독학한 법학지식으로 자기 변론했습니다.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탓에 성균관대 측 증인에 대한 반대심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민사재판은 ‘변론주의’ 또는 ‘당사자주의’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변론하지 않은 당사자를 재판부가 잘 봐주기 힘듭니다.

 

5) 석궁 사건 이후의 형사재판에서 김교수 측 요구대로 혈흔을 검증했더라면 지금 같은 논란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형사재판부가 화살을 맞은 판사에게 그런 요구를 하기가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던 게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에겐 김교수가 '또라이'로 보였고, 너무나 뻔한 사건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6) 그런 점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법원의 ‘절차적 폐쇄성’이나 지나친 '권위주의'를 바로잡을 필요는 있습니다. 영화의 사회적 의의는 이런 데 있을 것입니다.

 

7) 다만 그렇다고 혈흔을 판사가 조작했다고 한다면 그건 억지주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부러진 화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도 법원의 잘못이 아니라 경찰의 엉성한 증거물 관리체계 때문입니다.

 

8) 그리고 재판의 선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에게 석궁을 들고 간 행위의 부당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낙제성적을 주거나 학위논문심사에서 떨어뜨리는 판정(일종의 선고임)을 했다고 학생이 교수에게 석궁을 들고 가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9) 법원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검찰이 훨씬 더 문제인데, 법원과 검찰을 도매금으로 처리하는 건 좀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김교수의 블로그에 가보면 판사들에 대해 육두문자를 써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억울한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는 설득력을 갖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10) 김교수의 재판과정을 통해 재판의 '효율성과 민주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건 경제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이 문제에 대한 재판 전문가의 본격적인 글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