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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변호사의 <운명>과 노무현정권의 정치력 문제 (5)

동숭동지킴이 2012. 1. 25. 09:38

 

                          문재인 변호사의 <운명>과 노무현정권의 정치력 문제 (5)

 

(3) 선거시기와 달리 통치시기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연재의 세 번째 글에서 밝혔듯이 집권세력은 시장과 다른 방식으로 자원배분에 관여할 힘을 갖게 됩니다.

 

아울러 국가란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이고, 대통령은 그 조직의 최고지도자입니다. 폭력이란 말이 너무 무시무시한 느낌을 줍니다만, 국가질서를 위반할 때 강제적으로 처벌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이런 권력을 대통령이 사실상 독점했던 군사독재시대와는 달리 민주화 이후엔 대통령도 다른 국가기관이나 세력과 권력을 분점(分占)합니다. 이게 권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입니다.

 

여기서 각 권력집단 사이에 서로 자신의 이해와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투쟁은 불가피합니다. 그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이며, 그 투쟁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비난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유럽선진국과는 달리 권력집단들이 시대착오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법원의 조정권고를 따랐다고 KBS사장을 기소한 검찰을 보십시오. 천안함 사건을 북한이 일으켰다고 김정남이 시인한 것처럼 얼마 전에 날조한 조선일보는 또 어떤가요. 삼성은 검찰에게까지 돈 봉투를 뿌린 바 있습니다.

 

따라서 집권한 진보개혁세력은 거대언론, 관료(검찰),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수구세력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과 상치되는 행동을 하는 각종 특수이익집단(special interests organizations)과 일전을 불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정권은 선거시기와 통치시기의 차이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이런 투쟁에서 갈팡질팡하고 말았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따져보겠습니다.

 

노정권은 통치시기에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줄 몰랐습니다. ‘집권(執權)’했다는 것은 권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인데 노정권은 주어진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지를 잘 몰랐던 것입니다. 스스로 무장해제해버린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고 무기 없이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신통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국가의 ‘합법적 물리력의 핵심인 검찰(<문재인, 김인회 …> 27쪽)’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납니다. 최근 검찰 관련 책들이 여러 권 나왔습니다.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검사님의 속사정>,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불멸의 신성가족> 등이 그 대표입니다. 이들을 참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노정권은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을 보장해 주었다고 합니다(<운명> 238쪽). 그 단적인 증거로 검찰과 청와대 민정수석 사이의 핫라인도 끊어져 있었습니다. 노정권 시절에도 인연과 청탁에 의한 검찰인사가 전혀 없었다고 하기는 곤란하지만(<검사님의 속사정>224-228쪽), 그 인사권을 빌미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변은 몇 달 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을 장악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개혁’을 위한 것이라 해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라고 종전의 입장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집단이라면 이런 독립성 보장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그렇지요. 문제는 우리 검찰의 역사와 현실을 볼 때 검찰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고 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검찰 공화국 …> 1부 등).

 

이런 상황에서 노정권이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검찰을 그냥 방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는 국가권력의 무분별한 시장개입 즉 개발독재체제에 폐해가 많다고 정반대로 시장을 그냥 방치하는 시장만능주의와 마찬가지 오류입니다.

 

사실 노정권은 역사상 최초로 검찰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상정하고 시도한 정권이긴 합니다(<문재인, 김인회…> 15쪽). 사법개혁위원회를 통해 검찰권을 약화시켰습니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완화하고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한 것입니다(<검사님의 속사정> 32-34쪽).

 

기소독점권의 완화란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법원에 판단을 요구(재정신청)할 수 있게 한 것이고, 공판중심주의란 검찰의 수사기록을 재판부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재판정에서 일일이 따져 보는 시스템입니다.

 

본인이 두 차례 방청한 곽교육감 재판이 바로 공판중심주의의 모범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문외한인 본인에게도 “아 이런 게 제대로 된 재판이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정권 하에서의 검찰 행태를 보면 노정권에서 검찰이 제대로 개혁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본질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검찰이 쉽게 과거로 회귀한 것입니다. 검찰개혁 실패란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요.

 

검찰의 본질적인 개혁이란 검찰이 한편으로 힘 있는 집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한 수사를 하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론 인권을 침해하는 무리한 수사를 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일일 것입니다. 아울러 비대해진 검찰권력을 축소하고 검찰자체의 비리에 대해서도 견제가 있어야 하겠지요.

 

앞에서 언급한 책들에선 이를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지방검찰청장을 미국식으로 선거로 뽑는다든가, 경찰의 수사권을 강화시킴으로써 검찰의 권한을 줄이되 경찰을 국가경찰과 지방경찰로 분리한다든가, 공직자비리조사처를 설치한다든가 하는 안들이 있습니다만 어느 게 한국현실에서 가장 바람직한지는 본인은 모릅니다.

 

노정권은 이런 검찰개혁에도 실패했지만 검찰이라는 권력을 무기로 활용할 줄도 몰랐습니다. 이게 검찰을 이용해 반대편을 탄압하고 자기편 비리는 은폐해왔던 이전의 모든 정권들과 다른 점입니다.

 

민주정권인 DJ정권은 이전 정권들만큼 검찰을 통해 반대편 정치가를 탄압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검찰과의 타협을 통해 자기편 비리는 덮으려 했고 또 몰아내고 싶은 공공기관 임직원 축출에 검찰을 동원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습니다.

 

노정권은 검찰에 의지하다보면 검찰에게 뭔가 특별한 권력을 주어야 하고 그 검찰은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되므로 검찰하고는 절대로 손잡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문재인, 김인회의 …> 177쪽).

 

검찰이 ‘사고를 묻어놨다가 말년에 와서 크게 터트리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정권 말기와 김대중정권 말기 모두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을 목도한 노정권으로선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노정권은 검찰을 다룰 역량이 없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검사장은 “노통이 검찰을 틀어쥐려는 의지가 없었는지 역량이 안됐는지 모를 일이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검사님의 속사정> 223쪽).

 

민정수석을 역임했던 문변, 이호철씨 등이나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던 강금실씨 등이 검찰에 무슨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시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검찰관계자도 있습니다(윗책 222쪽).

 

그러니까 김영삼정권이나 김대중정권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생각에다 틀어쥘 역량도 안 되었기 때문에 검찰을 방치한 걸로 판단됩니다. 이게 과연 올바른 전략이었을까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검찰과 같은 권력의 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보니 노통은 다른 무기로서 ‘말’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국민에게 호소하는 말도 중요한 무기입니다. 특히 선거 때는 결정적 무기이지요. 그러나 통치 시기엔 이것만으론 부족하고 말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노통은 말에 지나치게 의존했습니다. 그래서 ‘평검사와의 대화’ 같은 이벤트도 벌였지요. 그러나 그 효과는 별로였습니다. 게다가 선거 시기와는 달리 노통의 말도 통치 시기엔 감동을 준 경우가 없었습니다. 덜컥 실언으로 수구보수언론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말과 아울러 노통이 사용한 무기는 ‘권력과 목숨에 연연하지 않음’이라는 초인적 자세였습니다. 이건 선거 시기의 유세 때나 퇴임 이후 검찰과의 투쟁에선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통치시기엔 오히려 무책임함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비대해진 권력을 갖고 있고 기본성향도 적대적인 검찰은 노정권에 너무 벅찬 상대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때릴 테면 때려보라’와 ‘자진폭로’라는 전략을 택했던 셈입니다. 노정권 초기부터 안희정, 강금원 등 여러 노정권 인물들이 검찰에 의해 구속되어 갔고, 노통 자신은 불법대선자금을 자진 폭로해 버린 것이지요.

 

그러면 어찌해야 검찰개혁도 달성하면서 검찰을 적절한 무기로 활용할 수 있었을까요. 먼저 정권 자신의 약점이 없어야 합니다. 선거과정이나 통치과정에서의 불법비리가 있으면 제대로 된 검찰 개혁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에게 명분도 서지 않고 검찰의 반격에 버티기도 힘듭니다.

 

노정권도 대선과정에서 약점이 만들어졌습니다. 정치인이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노통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보다는 훨씬 적은 불법자금을 받았지만 그런 불법자금 없이는 선거를 치를 수 없었던 게 우리 현실입니다.

 

게다가 노통은 선거과정에서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민주당 후보인데도 상당 기간 민주당의 합법적 자금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돈을 쥐고 있는 민주당 세력이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돈을 제대로 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불법자금을 받았던 하나의 주요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들어설 민주정권은 어떨까요. 다행히 선거방식의 변화로 불법자금의 필요성이 대폭 줄어든 걸로 보입니다. 트위터와 같이 돈 안 드는 새로운 선거방식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서울시장 선거를 보면 적어도 당선된 박후보 진영에선 불법자금 운운하는 말 자체가 없었지요.

 

자신이 깨끗한 민주정권이라면 검찰개혁도 가능합니다. 아울러 검찰을 진보와 개혁의 무기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무기로 사용한다고 하니 무슨 나쁜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간단합니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에게 주어진 인사권을 통해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건 ‘검찰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검찰이 본분을 찾도록’ 하는 일입니다.

 

다만 검찰을 정적 탄압의 무기로 사용해서는 안 되겠지요. 반대편 정치인이 아니라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는 재벌총수, 재벌기업, 관료를 엄정 수사하게끔 하면 됩니다. 수사를 공정하고 엄정하게 하는 검사들에게 인사에서 혜택을 주면 되는 일입니다. 이는 정당한 권력행사입니다. 문변도 이런 정도의 무기 사용에는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검찰과 법원이 재벌총수와 재벌기업의 불법비리를 엄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과정에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에게 신세 진 바 있는 노정권에겐 검찰의 이런 수사를 촉구할 의지가 약했고, 따라서 검찰을 무기로 사용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론 그래선 안 되겠지요.

 

요컨대 스스로 깨끗한 정권만이 검찰을 개혁하면서 검찰을 진보와 개혁의 무기로 사용하는 이중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검찰 개혁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그 과정에서는 여러 권력기관을 상호 견제하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노정권은 검찰만이 아니라 국정원, 경찰, 국세청과 같은 권력기관도 거의 방치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관들도 개혁해야 함과 동시에 그들이 다른 권력집단을 견제토록 해야 했습니다.

 

이게 분할통치(divide and rule)라는 권력행사이고 권력투쟁입니다. 정권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이런 권력투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그렇다고 항상 살기등등해서는 물론 안 되겠지요. 하하하)

 

다만 그런 권력투쟁은 집권세력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대중을 위해서라는 게 전제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MB정권처럼 능란한 권모술수를 부리더라도 결국 국민들부터 버림받고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노정권에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으나 온 사방에서 전선이 펼쳐졌습니다. 초장부터 검찰과 맞장을 뜨고 수구거대언론과 원수가 되고 노조와도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강력한 수구보수집단에 둘러싸인 미약한 노정권이 이렇게 전선을 크게 펼치니 이길 턱이 없습니다.

 

개혁은 정권의 동력이 살아 있는 집권 1년 이내에 끝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집권 초기부터 모든 걸 다 하겠다고 덤비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혁명정권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식으로 성공한 경우가 없습니다. 자신의 힘이 약할 땐 자신의 힘은 집중하고 적의 힘은 분산시켜 각개격파하는 게 상식입니다. 원교근공(遠交近攻) 같은 말도 다 여기에 해당됩니다.

 

물론 노정권이 의도적으로 전면전을 벌인 건 아닙니다. 선거시기와는 달리 통치시기엔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건에 대응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전략전술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으면 사건에 끌려 다니면서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거기다 진보지식인이나 노조 등 이른바 진보개혁진영 역시 노정권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전략전술이 부재했던 것도 노정권을 갈팡질팡하게 만든 하나의 원인인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언급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했어야 할까요. 역시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신 없지만 문제제기 차원에서 막연한 원칙 같은 걸 말해 보겠습니다.

 

먼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싸움을 펼쳐서 약한 적을 물리치고 그 힘으로 더 강한 세력을 쳐 나가는 게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적과 싸울 때는 다른 적과의 싸움은 가급적 보류하는 겁니다.

 

이게 순서(sequencing)라는 문제입니다. 1990년대 이후 동유럽이나 1980년대 이후 중국의 체제이행 과정에서도 어떤 순서로 시장경제를 발전시켜야 하는가가 주요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급진적 접근(big bang)이냐 점진적 접근(gradualism)이냐, 가격자유화가 먼저냐 사유화가 먼저냐 따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체제이행국뿐만 아니라 이미 시장경제화된 나라에서도 진보와 개혁을 위해선 싸움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미국의 오바마는 지금까지는 별로 성공한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의료부문이나 금융부문의 개혁이 기득권세력(의료개혁에선 보험업계, 금융개혁에선 월가)의 저항에 부딪쳐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만약에 금융위기로 나락에 떨어진 계층 즉 실업자나 주택상실가계들을 위한 대대적인 구제책을 먼저 내세웠더라면 어땠을까요. 이에 대해선 딱 부러진 저항세력이 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식의 진보적 정책을 먼저 실시하고 그런 연후에 그 동력으로 금융위기를 일으킨 금융부문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고 그 다음에 의료개혁으로 나갔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집권 이후 빈곤층을 위한 Bolsa Familia라는 정책부터 실시했습니다. 아동들의 취학장려책입니다. 이를 통해 민심을 얻어 연속 집권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경기도 교육청 사례를 봅시다. 2009년에 취임한 김상곤 교육감은 먼저 ‘무상급식’이라는 이슈로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경기도 의회와 대결했습니다. 여기서 대중의 지지를 확대하고 그 힘으로 혁신학교와 인권조례라는 개혁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권조례를 가지고 먼저 부딪쳤더라면 싸움이 더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딱 부러진 조직된 반대세력이 없는 무상급식에서와는 달리 보수적 교사라는 나름의 조직된 저항세력이 존재하니까요.

 

요컨대 미약한 세력이 거대한 세력과 싸우는 권력투쟁의 순서에서는 약한 적과 먼저 싸우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쉬운 전선을 먼저 펼친다는 원칙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노정권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싸움의 순서를 잡았어야 할까요. 이건 따져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에 본인의 제한된 지식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다만 수구보수신문들과의 싸움에 대해선 한 마디 해볼까 합니다.

 

노정권은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수구보수신문의 총공세를 뚫고 집권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수구보수신문의 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듯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 무장을 해제했으니 말을 주요무기로 삼는데, 수구보수언론을 가볍게 여기니 그 무기인 말을 크게 조심하지 않고 쏟아낸 것입니다.

 

게다가 노정권에서 홍보를 담당한 인물들의 실력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언론을 다뤄본 ‘프로’에 따르면 한 마디로 ‘아마추어’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밤의 대통령’이라고 자칭하는 수구보수신문과의 싸움에서 이길 턱이 없었습니다.

 

본인도 아마추어지만 프로에게서 주어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수구보수언론과의 싸움을 어떻게 했어야 할지를 말해보겠습니다.

 

우선 정권초기부터 수구보수언론과 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구보수언론은 만만찮은 세력이고 싸울 수단도 마땅히 없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정부 때 탈세로 공격을 해보았습니다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방어가 곧 공격’이었습니다. 말을 조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의 무상급식처럼 대중의 지지를 얻는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그것을 공격하는 수구보수언론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스스로 갉아먹게 만드는 것이지요. 자충수를 두게 만드는 정책입니다.

 

또한 불필요하게 수구보수언론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자실 폐쇄 따위가 그런 불필요한 정책의 대표입니다. 그게 비록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언론개혁의 핵심사안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해찬 총리처럼 ‘조선일보는 독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본인도 그런 진술에 동의는 합니다만, 지식인이 아닌 정권담당자가 국민에게 그리 말해봐야 아무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저 일부 자기편만 좋아할 뿐입니다.

 

노정권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원래 청와대 출입기자는 각 언론사에서 요직에 해당되었다고 합니다. 청와대의 고급정보에 접할 뿐만 아니라 각 언론사의 민원(신문사 이익과 관련되는 각종 민원)을 청탁하는 창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노정권 시기엔 청와대 출입기자는 찬밥 신세였습니다. 청와대 인사들과 밥 한 끼 제대로 먹기도 힘들어 어떤 기자는 내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고 기껏 유인태 수석과 청와대 앞 허름한 중국집에서 점심 한 끼 같이 한 정도랍니다.

 

원수지간인 수구보수언론의 민원해결은 물론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이걸 노정권은 ‘권언유착(權言癒着)’을 해소한 일로 자랑했습니다. 과거의 나쁜 폐습에서 벗어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청와대 인사들이 외부 돈을 받지 않아 형편이 안 되면 구내식당에서라도 기자들과 가끔씩 얼굴을 대하는 건 기피할 성질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자들 상대론 말을 하려 하지 말고 주로 들으려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수를 하지 않고 그런 자리의 의미도 있습니다.

 

수구보수신문기자들에게 청와대인사들이 아무리 진심을 갖고 이야기해도 그 기자들이 납득할 리 없고 비록 그들이 납득한다 하더라도 신문사 간부들이 납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편 이야기에는 참고할 사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대항 논리를 개발하는 데도 그들의 이야기는 도움이 됩니다. 이게 이른바 변증법이지요. 그런데 노정권은 고립되어 있어서 자기확신이 더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듣는 자세가 부족했습니다.

 

물론 부당한 민원청탁을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그리고 수구보수언론에 휘둘려서도 안 됩니다. 수구보수언론이 쓴 기사에 각료인사가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노정권은 그런 보도에 상대적으로 덜 좌우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노통은 수구보수신문 보도에 열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참모들이 한때는 노통에게 수구보수신문을 보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인 이상 수구보수언론이 부당하게 정권을 공격하는 데 화를 내지 않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화를 내면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이게 수구보수신문이 노리는 바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은 맷집을 키워야 하고, 일일이 수구보수언론 기사를 읽지 말고 요점만 보고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상 이번 글에서는 선거시기와 통치시기의 다른 점 중 권력행사와 관련된 부분을 다루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노정권 당시 진보세력의 문제점에 대해서 짚어보면서 이 시리즈를 끝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