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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변호사의 <운명>과 노무현정권의 정치력 문제 (2)

동숭동지킴이 2011. 7. 25. 11:09

 

문재인 변호사의 <운명>과 노무현정권의 정치력 문제 (2)

 

김기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이번 글에선 노무현정권의 정치력을 구체적 정책과 관련해서 다루겠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정치란 뭘까요. 정치학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정의하겠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는 처지에선 정치란권력에 의한 자원배분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근대사회의 자원(인적 자원 및 물적 자원) 배분은 한편으론 시장에 의해 이루어지고 다른 한편으론 권력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오세훈시장 식으로차별급식을 할 거냐 진보교육감 식으로무상급식을 할 거냐는 서울시민의 투표라는 정치적 힘의 행사로 결정됩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굶주리는 인민을 도와줄 거냐 말 거냐 하는 일들도 모두 시장이 아니라 정치적 힘에 의거하는 것입니다. 시장에선 등가교환에 의해 자원이 배분되는 데 반해, 정치란 권력(힘)에 의거해 일방적으로 자원을 배분합니다.

 

권력에 의한 이러한 자원배분 방식을 둘러싸고 정치세력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게 여야 대립이고, 진보개혁파-보수수구파 사이의 대립입니다. 정치가가 뜻을 편다는 것도 권력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자원배분 방식을 실현하는 일인 셈입니다.

 

따라서 정치가는 항상 자기편을 묶어세우고(확대·강화), 반대편을 흩트리고(축소·약화), 중간편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려고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념에 호소하기도 하고 이른바 마키아벨리즘(권모술수)을 동원하기도 하는데, 그게 정치력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정권은 바로 이러한 정치력에서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노통의 성격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집권에 대한 준비부족도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노정권이집권 이전집권 이후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도 중요한 또 하나의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글에선같은 점에 대한 인식 부족을 논하고, 다음번 글에선다른 점에 대한 인식부족의 문제를 논해 보겠습니다.

 

같은 점에 대한 인식 부족이란 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을 말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과거의 정파적 행위로부터 벗어날 것을 사람들(언론)이 요구합니다. 예컨대 코드인사 운운하는 비판이 그에 해당됩니다. 대통령 자신도 초(超)당파적으로(bipartisan)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전 국민으로부터 지지받고 싶으니까요.

 

물론 초당파적 행동은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우선 인재를 폭넓게 충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편의 이해관계나 정서에 대해서까지 시야를 확대해야 합니다. 강을 건넌 후 뗏목을 지고 가려 하지 말라는 석가의 말씀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게 지나치면 탈납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집니다. 노통이 그랬습니다. 정치가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소홀히 하고 초당파적 행정가처럼 행동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집권 이전 즉 노통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선거과정은 정치적 고려가 전적으로 작동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당선 즉 집권 이후엔 정치적 고려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집권 이후’에도 정치적 고려가 필요할까요. 그것은 집권이라 할지라도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한 게 아니라 권력을 분점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지 않으면 정권은 헤매게 됩니다.

 

노정권은 청와대 권력을 장악했던 데 불과합니다. 취임 당시 의회권력을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었고, 언론, 관료(특히 검찰), 재벌이 또 다른 강한 권력집단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MB정권에서와 달리 이런 권력집단들은 기본적으로 노통에 적대적(기껏해야 중립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집권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들 적대적 권력과 치열한 정치투쟁을 벌여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를 소홀히 한 노통정권은 이런 권력투쟁에서 패배했습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엔 대통령이 권력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권력은 부분권력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정말로 형편없는 힘밖에 없습니다.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혁명정권이 들어서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단 집권한 혁명정권은 개혁정권보다 일 처리가 쉬울 수 있습니다. 혁명에 의해선 권력이 독점될 수 있지만 개혁은 권력이 분점된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듭 강조하지만 권력을 분점한 청와대권력은 다른 권력과의 투쟁이 불가피합니다. 이런 냉엄한 현실을 노통정권은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국민에게 좋은 정책만 제시하면 만사형통으로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노통을 비판하면 노통은 정치적으로 온통 잘못만 저지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상대적입니다. 기대에는 크게 못 미쳤지만 MB보다야 훨씬 낫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대선 불법자금까지 공개하면서 정경유착을 많이 약화시켰지요. 노통 정권 하에선 돈 달라 하지 않아 아주 편했다는 말은 노통을 싫어한 기업가들에게서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권위주의도 타파했습니다.

 

개성공단을 만들어 북한민중의 삶은 물론이고 한국중소기업에게도 도움을 줬습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복지지출의 비중도 꽤 늘렸습니다. 보수적인 사법부에도 새 바람을 불어 넣었습니다.

 

반면에 MB는 어떤가요. 도대체 뭘 잘 했는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인색한가요. 며칠 전 한나라당 대표조차 MB가 정치를 잘못한다고 공격의 화살을 날렸습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같이 죽지는 않으려고 차별화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다고 한나라당에 표가 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MB도 자기편에게조차 비난받고 있는 셈입니다.

 

노통에겐 이상이 있었습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 비전을 실현하는 정치력에선 문제가 많았으나, MB에겐 그런 진정성 있는 비전도 찾기 힘듭니다.

 

그저 747 따위의 장사치 수준의 헛공약만 내건 게 MB입니다. 선거 과정에서도 노무현 정신 같은 감동이 아니라 위장취업 같은 치사한 면모만 보여줬습니다. 집권 후에도 국민이 따르고 배워야 할 지도자상을 보여준 게 뭐 있나요.

 

실제 업적으로 보더라도 촛불에 놀라 노통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 (<운명> 392~396쪽) 말고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죽 내세울 게 없으면, G20 회의 개최를 큰 업적으로 생각해 KDI국제정책대학원의 이름을 G20 어쩌고 하는 걸로 바꾸자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4대강사업 벌여서 건설업자는 살찌게 했으되, 나랏돈 탕진과 환경 파괴의 우려를 낳았습니다. 4대강사업의 문제점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물류(대운하)→ 관광 → 4대강 정비로 추진목적이 졸속적으로 바뀌어가는 과정만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용주의 어쩌구 하더니 냉전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반실용적인 ‘비바람 정책’을 밀고나갔습니다. 그리해서 남북교류를 거의 막아버렷으며, 한국중소기업을 힘들게 했고, 마침내 전쟁의 위기를 불러오기까지 했습니다.

 

일부 극단적인 진보파는 MB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이나 민중에겐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MB정권 이후 북한민중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한 가지만 보더라도 그 차이는 분명합니다.

 

다만 MB는 조중동이든 재벌이든 기득권 세력들이 대개 자기편이었으므로 노통만큼 코너에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또 권모술수에는 더 능한 탓인지 잘못된 부분이 크게 부각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심은 많이 이반했습니다. 조중동이 아무리 조작·은폐하더라도 국민은 느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지자체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MB와 거리두기에 나선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이처럼 노통은 MB와는 차원이 다른 정치가였지만 정치력에서 많은 결점을 보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노통의 주요 정책들을 통해 노통이 정치를 얼마나 무시했는지 따져 보겠습니다.

 

첫째로, 노통 자신도 오류였음을 인정한 대연정 제안부터 보겠습니다. 노통이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본인도 물론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황당함은 어찌 한나라당과 손을 잡으려는가 하는 배신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선진국 특히 의원내각제 국가에선 다른 정당과 함께 정부를 꾸리는 일이 흔합니다. 독일에선 근래 반대편 정당과 대연정을 실천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 대연정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바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원리적으로는 대연정이라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의 현실에선 실현 불가능한 사안이었습니다. 코너에 몰린 노통정권과 책임을 공유하는 일을 한나라당이 할 턱이 만무했습니다.

 

게다가 이를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안했다는 건 더욱 황당했습니다. 이런 성격의 사안은 양측이 물밑에서 충분히 논의한 다음에 대중에게 던지는 게 상식입니다.

 

아무리 노통이 상식을 뒤엎은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이건 정치의 ABC를 모르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한 대로 파격에 의한 노통의 과거의 성공이 가져다준 과도한 자신감이 문제였습니다. 이게 이른바 ‘성공의 저주’ 즉 성공요인이 실패요인으로 전환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노통이 대중에게 직접 터트린 배경은 문변 책에서 밝혀졌습니다(<운명> 309~314쪽). 당정청 모임에서 노통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운을 떼 보았습니다.

 

그러다 반대에 부딪쳐 거둬들였는데도, 참석자 중 한 명이 비밀엄수 요구를 어기고 언론에 흘렸답니다. 그러자 노통이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정식으로 제기해보자고 나선 것입니다.

 

청와대 참모들은 언론에 나왔더라도 그냥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하면서 덮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노통은 참모들의 건의를 무시하고 공식적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그리해서 자기편을 흩트리고 반대편을 묶어세운 것입니다.

 

대통령은 참모들의 의견을 제대로 묻지 않고 일을 독단적으로 결행한 경우가 여러 건 있었고, 그런 경우 결과가 대체로 나빴다고 합니다(<운명> 279쪽). 대연정 제안도 거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 참모들은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첫 번째 독단행동이 나왔을 때 참모들이 대통령의 스타일을 바로잡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 했더라면 실수가 거듭되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했어야 바로잡을 수 있었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디 도사 없습니까. 하나의 방안으로 주요 참모들이 집단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요.

 

“우리의 건의를 무시하거나 건너뛴다는 것은 우리의 참모능력을 대통령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더 능력 있는 참모를 충원해서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특단의 조치를 동원했더라면 최소한 실수의 빈도는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아울러 노통이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판단력을 갖춘 인물들을 참모로 즉각 충원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인물 없었나요.

 

둘째로, 노통 자신이 어떻게 평가했는지 모르지만 문변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한 사안 중에 기자실을 개방형 브리핑 룸으로 확장한 일이 있습니다(<운명> 343~344쪽). 취지는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좋은 일이면 정치적 고려 없이 수행한다는 노통의 대표적인 反정치성을 드러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정말로 옳고 중요한 일이라면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라도 밀고 나가야 할 게 있습니다.

 

그런 사안은 시간이 흐르면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기자실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고 옳은 일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일반대중의 삶과 무관한 행정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이런 문제로 노통은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정치에선 자기편을 묶어세우고 반대편을 흩트리기 위해 戰線을 잘 쳐야 되는 데 엉뚱한 데다 전선을 친 것입니다. 전선을 친다는 말은 대립구도를 설정한다는 말입니다.

 

노통은 전선 치기에서 많은 오류를 범했습니다. 말투를 가지고 시비가 된 게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정책을 가지고 전선을 쳐야 되는 데 말투를 가지고 공격을 당하니 방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책에서도 전선 치기가 서툴렀습니다. 기자실 문제 따위를 가지고 전선을 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취임 초기부터 과도하게 여기저기 전선을 벌였습니다.

 

검찰, 수구신문, 노조 등등 온갖 세력과 한꺼번에 부딪친 것입니다. 얼마 안 되는 힘이라면 그 힘을 집중할 수 있는 곳에 전선을 쳐야 하는 데,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MB정권과 비교해 봅시다. MB정권은 4대강에서만 전선을 펼쳤을 뿐 별로 전선을 늘리지 않았습니다. 노통정권보다 훨씬 유리한 세력관계 속에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노조와도 한판 승부를 벌이지 않았습니다. 선거에서 한국노총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보수파들로부터 뭔가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MB정권은 촛불에 데자 노통정권과 전선을 쳤습니다. 노통정권 시대 인물에 대해 먼지털기 식으로 표적수사를 벌였습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듯했습니다만, 노통의 처절한 자기희생에 의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권모술수만 쓸 줄 알았지 진정으로 올바른 길을 가겠다는 자세가 없는 정권은 전선을 아무리 잘 치더라도 실패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올바른 뜻을 갖고 있더라도 전선을 잘 못 치면 역시 실패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원래는 이번 글에서 집권 이전과 집권 이후가 같아야 되는 부분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습니다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음 글에서 계속 논의하겠습니다.

 

다음 글에선 한미FTA,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을 다루고 전선을 어떻게 쳤어야 했는지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