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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사태와 공평한 고통분담

동숭동지킴이 2011. 6. 19. 13:23

 

한진중공업 사태와 공평한 고통분담

 

김기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한진중공업(이하 한진중) 사태가 어렵습니다. 2010년 말부터 시작된 파업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형편이고,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며 한진중 해고노동자인 김진숙씨는 금년 초부터 위태로운 크레인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몇몇 정치인들이 한진중을 방문했고, 국회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사 대표를 불러 진술을 듣기도 했으며, 노조나 시민단체가 여러 차례 규탄집회도 개최했습니다. 부산 사람에게 들어보니 노조원들이 거리에서 유인물도 많이 배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6월 12일에는 백기완선생, 문정현신부 등 백전노장들이 '희망 버스'를 몰고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씨를 지원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방문인원이 1천명 가까웠다고 하니 대단한 열성입니다. 특히 여기에는 김여진 여배우가 동참해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덕분인지 신임 노동부장관이 한진중을 찾았습니다. 국회환경노동위원회도 6월 22일에 노사대표를 출석시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획기적인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미 이런 종류의 정치적 요식행위는 그동안 여러 번 있었지요.

 

자 그렇다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희망버스에 모여든 '따뜻한 가슴'만으로 만사형통인 게 아니므로 거기다 '냉철한 두뇌'를 추가시켜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오늘의 사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한진중은 원래 노사문제가 원만치 못했던 사업장입니다. 1991년에는 박창수 노조위원장이 의문사했고, 2003년엔 김주익 노조지부장과 곽재규씨가 목숨을 끊은 바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와 다른 조선소에선 적어도 정규직노조와 관련해선 쟁의가 드물었던 것과 대조적이었습니다.

 

한진중의 총수인 조남호회장은 한진그룹 고 조중훈 회장의 차남으로 장남을 상대로 6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해서 패소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기는 뭣합니다만, 총수란 인물이 어째 대화와 타협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다 한진중의 전략변화가 오늘의 극단적 대립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필리핀의 조선소를 발전시키는 대신에 국내 조선소는 축소시킨다는 전략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2003~2007년 사이에 유래 없는 대호황을 맞이했습니다. 현대중공업 주가가 4천 원에서 140만 원까지 올라갈 정도였습니다. 중국의 고도성장으로 해운 물동량이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는 한진중에서도 별 분규가 없었고 한진중도 돈을 꽤 벌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때 한진중은 국내조선소(부산영도, 부산다대포, 인천율도, 울산) 규모가 지나치게 작아(도크 규모가 다른 조선소의 1/20 ~ 1/10) 장차 국제경쟁력에 문제가 있을 걸로 판단합니다.

 

또한 필리핀의 인건비는 한국의 1/10로 생산성 차이를 감안하면 필리핀 조선소가 국내조선소보다 제조원가가 10~15% 싸게 먹힌다고 합니다.(사측 발표라 100%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한진중이 비용 때문에 필리핀 조선소를 키운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해서 해외로 진출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2006년에 필리핀의 미군기지였던 수빅만에 영도조선소 10배 규모의 조선소를 짓기 시작해서 2007년 말에 1단계 공사가 끝납니다.

 

이런 판에 2008년부터는 세계 조선경기가 급랭합니다. 세계금융위기가 몰아치고 그동안 선박을 지나치게 많이 만든 데 대한 반작용이 일어난 것이지요. 게다가 중국이 조선업에서도 세계강자로 부상했습니다. 때문에 한국 조선소들의 수주(선박주문)량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2009년엔 전년에 비해 선박수주량이 약 90% 줄었다고 합니다.

 

한진중은 특히 타격이 커서 2008년 9월부터 3년간 일반 상선의 주문은 제로였습니다. (한국정부로부터 군함은 일부 수주한 것 같습니다.) 경기하강기에는 한진중의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설비로는 채산성 있는 주문을 따내기 힘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만 필리핀 조선소에선 선박을 여러 척 수주했습니다.

 

한진중의 형편 없는 수주실적은 국제수주를 담당한 조남호 총수의 아들 조원국상무의 능력이 뒤떨어진 탓도 있을 것입니다. 이게 바로 무능하더라도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재벌체제의 문제점이지요.

 

또 사측이 국내 조선소 규모를 줄이려고 고의로 수주를 기피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국내조선소를 완전히 문닫는 걸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므로 그런 자해행위의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예전에 주문받아 놓은 걸로 조선소가 돌아가기는 했지만, 이렇게 선박주문이 끊기면서 사측은 구조조정에 나서게 됩니다.

 

다른 국내조선소도 구조조정을 하기는 한 걸로 보입니다. 다만 한진중처럼 수주가 오래 끊어지진 않았으므로 일부 사내하청(조선소 내에서 작업하는 하청업체 노동자)을 줄이는 정도에 머물고 커다란 사회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은 듯싶습니다.

 

그리해서 한진중 사측은 우선 2009년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해고합니다. 영도, 다대포, 울산 조선소에서 1,200명 이상이 해고됩니다. 당시 해고된 노동자들은 시위를 벌이고 소송도 제기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한진중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들의 해고를 거의 방관했습니다. 원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엔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하는 데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방패막이였으니까요. 제 코가 석자인 정규직에게 그때는 왜 강력하게 투쟁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기는 힘듭니다. 그게 우리 노동현실이니까요.

 

다만 이런 노동현실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를 방관한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시민단체나 정치인들의 행보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숫자가 더 많았던 비정규직 해고 때는 그냥 있다가, 정규직 해고 문제와 관련해선 김진숙씨와 김여진씨로 인해 사회적 이슈가 되자 한몫 끼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물론 이제 와서라도 관심을 가진 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분위기에 붕 떠서, 또는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냉정한 해결책을 고민하지도 않은 채 덩달아 움직이는 경우가 없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왕 한진중 노동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상 정규직만이 아니라 이미 작년에 해고된 비정규직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따져 봤으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들은 지금 해고와 관련해서 다시 한번 쓰라린 차별감을 맞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언론에 한 줄도 나지 않고 해고된 수많은 중소조선업계 노동자도 마찬가지이지요.

 

각설하고, 비정규직 해고에 이어 해고의 물결은 곧 정규직에게도 닥치게 됩니다. 사측은 30% 감축을 목표로 세우고 비노조원인 사무직을 분사와 해고 형태로 약 800명 정리합니다.

 

생산직에 대해선 2010년 초 352명을 해고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가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면서 일단 물러섭니다. 그게 지자체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요구가 작용한 것인지 어떤지는 불분명합니다.

 

그 이후 다시 2010년 말에 사측은 생산직 1200명의 30%인 400명 정리계획을 추진합니다. 그래서 정년퇴직 28명과 희망퇴직 200명(희망퇴직자에 대해선 최대 22개월분의 급여를 지급) 이외에 172명에 대해 금년 초에 정리해고를 단행하게 됩니다.

 

덴마크처럼 사측이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나라에서도 정리해고가 필요한 상황에선 노사가 협의를 해서 해고규모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협의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사측이 일방적으로 해고규모를 결정한 것입니다.

 

이리해서 노조의 파업이 또다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노조원들은 파업 초기엔 대부분이 영도조선소 생활관에서 숙식하며 농성했습니다만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계난 등으로 농성장에서 이탈합니다.

 

현재는 해고노조원을 중심으로 200명 정도가 농성 중이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또 노조는 사측의 정리해고에 대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습니다만, 부산지방노동위원회가 6월2일 이를 기각해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입니다.

 

이상 사태의 경과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지 논의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구조조정 즉 해고의 철회가 가능한지부터 검토해보겠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1998년 현대차에선 IMF사태로 공장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사측은 정리해고를 추진했습니다. 당시도 노조는 격렬하게, 아니 한진중보다 더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파업현장에 들어가 중재도 하고 하면서 정리해고 규모를 줄이는 선에서 타협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엔 대우차, 2008년엔 쌍용차가 파산하면서 노조의 강경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가 단행되었습니다. 본인은 대우차 사태 때엔 신문에 글도 쓰고 인천의 공청회에 토론자로 여러 번 참가하기도 해서 내막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 사업장들에선 회사경영이 회복되면 해고자는 우선 복직하기도 합의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상의 전례들을 볼 때 한진중에서도 정리해고의 규모를 조정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노조의 저항이 아주 강력하다면 172명의 정리해고를 철회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정규직 합쳐서 이미 2,000명가량 정리한 상황이라 172명은 그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172명은 사측이 30%를 정리한다는 방침에 따른 결과인데 꼭 30%라야 되는지 정확한 근거가 있을 리 없습니다.

 

선박 수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의 적절한 고용규모를 정확히 추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30% 감축은 그냥 주먹구구식 계산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앞의 자동차공장 사례와는 사정이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한진중은 필리핀에 거대 조선소를 설립해 그걸 키워나가고, 그에 따라 국내조선소는 군함건조에 특화하는 식으로 규모를 축소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박경기가 아주 좋아져서 필리핀에서 주문을 소화하고도 넘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국내조선소 규모가 다시 확대될 전망은 희박한 것이지요.

 

국내의 많은 기업이 인건비 같은 요인으로 중국 등지에 공장을 옮겨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 중소기업에선 노동자들이 역시 많이 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노동자들은 힘도 없고 또 직장을 바꿔도 대우가 그다지 나빠지지는 않으므로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중국 등지에 진출했을 때는 현대차에서처럼 그 대기업이 대체로 커나가는 기업이라 국내공장은 축소시키지 않고 해외공장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큰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울산의 화섬업계에서처럼 해외이전에 따른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파업이 일어난 곳도 있었지만, 조선업계보다는 여공의 비중이 높은 탓인지 한진중에서만큼 쟁의가 격렬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여성의 경우엔 결혼하면 퇴직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싸고 여성들이 오래 싸운 사업장도 꽤 있지만 이 경우에도 싸움에 계속 동참한 여성노동자의 비중은 낮습니다.)

 

그러니까 해외이전에 따른 구조조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가 한진중 문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는 셈입니다.

 

조선경기의 일시적 악화가 문제라면 경기회복기에 복직시키기로 하고 일단 정리해고에 합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자동차사업장 등에서 보듯이 대단히 어렵습니다만 한진중에선 국내조선소의 영구적 축소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독일 등에선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맞아 노동시간 단축(Kurzarbeit)을 통해 정리해고를 최소화했습니다. 그리고 세계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들자 독일은 숙련인력을 해고하지 않은 탓에 늘어난 수요에 쉽게 대응할 수 있어 회복속도도 다른 선진국보다 빨랐습니다.

 

한진중에서 이런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방안을 생각하기 힘든 이유는 조선소의 해외이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국내조선소와는 달리 국내도크 규모가 작아 해외공장의 비중이 국내보다 훨씬 큰 편입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필리핀 조선소를 폐쇄하고 예전처럼 국내조선소만으로 운영할 것을 요구해야 하나요.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수주가 넘쳐나지 않는 한 고용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답답하지요.

 

2003년에 노사는 고용안정협약을 맺었고 2007년에 또다시“해외공장이 존재하는 한 정년퇴직을 보장한다”고 합의한 모양입니다. 2003~2007년 사이엔 조선업이 초호황이었던 데다, 사측은 일단 분란을 미루고 싶었을 것입니다.

 

노조측은 이 협약을 근거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고, 사측은 그 협약의 유효기간은 이미 끝났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비록 노조 측 주장이 옳더라도 일거리가 없으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회사가 적자행진을 계속하다가 결국 문을 닫을테니까요.

 

따라서 문제는 해고규모를 어떤 정도로 하고 그에 따른 고통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입니다.

 

먼저 적절한 해고규모 문제입니다. 이미 많은 인원을 줄인 판이라 172명을 더 줄이는 게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누구도 적절한 인원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사측은 조선경기가 크게 나아지지 않는 한 국내조선소 규모를 더 축소할 생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노조의 기를 꺾어놓아 앞으로의 구조조정이나 기타 노사관계를 자신의 뜻대로 끌고 갈 생각도 있는 듯싶습니다.

 

따라서 노조나 노조지원세력은 목표를 정리해고의 무조건 철회로 잡기보다는 정리해고 규모가 과연 적절한지 따지고 일단은 그 규모를 줄이는 노력을 하는 게 합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장차 만약 한진중이 고용을 다시 늘리는 상황이 오면 해고된 조합원을 우선 채용하는 건 당연히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요.

 

다음으로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분담 문제입니다. 사실 적절한 해고규모는 노조측도 제시하기 힘들 것이므로 오히려 고통분담 문제가 더 현실적일지 모르겠습니다.

 

고통분담의 원칙은 “(부실)책임과 (부담)능력에 따른 공평한 고통분담”입니다. 고용조정 상황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없음은 분명합니다. 3년간 수주를 못한 데는 기본적으로 세계경기 탓이 크긴 하지만 경영진의 무능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부담능력은 당연히 총수나 경영진이 훨씬 크고 노동자는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책임 면에서나 능력 면에서나 총수나 경영진이 훨씬 더 크게 부담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덴마크 같은 나라에선 이런 고통을 사회전체가 분담합니다. 해고되어도 실업수당이 기존 월급의 70% 정도로 2년간 지급되고 재취업지원도 발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둘러싼 파업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복지제도가 정비되어 노동시장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덴마크와는 달리 우리는 복지제도가 미비해 한진중에서와 같은 갈등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대기업 정규직에서 짤려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 만큼 대우가 너무 차이가 나는 것도 구조조정을 어렵게 합니다.

 

장차 우리 사회는 덴마크처럼 노동시장은 유연하되 삶의 안정성은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달성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선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분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 측은 총수와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 사장과 총수 아들(국제 수주담당 상무)의 해임을 요구합니다. 노동자 정리해고에 대한 일종의 맞불작전입니다. 사실 수주 면에서건 노사관계 면에서건 무능한 이들은 해임되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노조 측 요구대로 해임시켰다 하더라도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총수는 노조 요구를 수용해 일단 아들을 해임시킨다 하더라도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서 다시 얼마든지 복직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영진의 해고요구는 별로 실효성이 없습니다.

 

결국 총수·경영진의 고통분담은 금전적 고통분담밖에 의미가 없습니다. 노조 측에서는 수주도 안 되는 어려운 경영상황에서도 2011년 초에 174억 원의 주주배당을 실시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대주주인 총수를 포함한 주주에 대한 이 배당은 돈으로 나눠준 게 아니고 1주당 0.01주의 주식을 나눠준 것입니다. 그 늘어난 주식만큼에다 당시 주가(3만6천원)를 곱하면 174억원이라는 이야기인데 주식량이 늘어나면 다른 조건이 동일한 한 주가가 하락합니다. 실제 한진중의 주가는 하락해서 지금은 3만원 정도입니다.

 

그러니 이 주식배당을 가지고, 노동자를 해고에 몰아넣으면서 총수와 주주들은 이익을 챙겼다고 비난하기는 힘듭니다. 경영진이 월급을 많이 받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 실상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서 뭐라 말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그건 4명이 합쳐서 10억 원 정도이니 다른 대기업에 비해 큰돈은 아닙니다.

 

그러면 총수측은 어떻게 고통을 분담해야 하나요.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아이어코카는 회사를 갱생시키려 할 때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책정했습니다. 일본 대기업 경영자는 노동자를 해고할 처지가 되면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재벌체제가 자리 잡고 있어서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물러날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총수는 물러나지는 않더라도 구조조정에 대한 고통분담 차원에서 그동안 벌어들인 이익의 상당부분을 노동자에게 환원해야 마땅합니다.

 

노조(및 응원세력)는 바로 이런 총수 측의 고통분담액을 둘러싼 요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해고되는 노동자의 생활과 재취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60억 원 가지고 형제간에 소송을 벌인 한진중 총수가 자신의 개인 돈을 쉽게 내놓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파업이 지속되면 총수에게도 손해입니다. 또한 IMF사태 때도 부실해진 기업에선 총수가 사재를 털어놓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전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리해고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보다는 총수도 고통을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게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더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짤린 사람들이 자기들만이 아닌데 왜 자기들만 고용특권을 요구하는가 하는 반론에 대응하기도 쉽습니다.

 

노조 측에선 50억 원 부담(즉 임금삭감 수용) 등의 고통분담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일시적인 경기불황에 대한 대응책이라면 이런 정도로 의미가 있습니다. 나아가서 무급순환 휴직 등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국내조선소 축소, 필리핀조선소 발전>이라는 회사의 기본방침 하에서는 이런 방안들은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한진중의 국내조선소가 규모가 작고 물류비가 많이 들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중국조선업이 부상하는 상황에선, 경기가 초호황이 아니라면 국내조선소를 예전처럼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조, 김진숙 지도위원, 응원세력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한진중에서 해고되어 오랫동안 복직되지 못한 김진숙씨의 애달픈 사정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게다가 김진숙씨의 편지에 따르면 노조집행부는 김진숙씨의 돌출행동(?)을 다소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희망버스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잘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를 통해 얻어진 힘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법원은 6월13일 노조원들이 생활관에서 퇴거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MB정권은 노조가 불법행위를 저지르면 경찰을 투입해 강제진압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쌍용차에선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는 등 강경대응을 하다가 결국 강제진압 당하고 노조가 약화되면서 민주노총을 탈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조도 공장을 불법점거하지 않는 등 꽤 조심하고 있습니다.

 

노조와 응원세력은 이런 조심하는 자세를 살려서 일반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협상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총수측도 구조조정을 원만하게 진행하려면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라도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합니다.

 

요컨대 정리해고 규모와 공평한 고통분담에 대한 재협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김진숙씨를 비롯해 노사정 모두 극단적 행동을 피해야 합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이런 갈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덴마크처럼 유연안정성이 발달한 사회를 만드는 한편, 지역과 산업 차원에서 노사정 협의회가 제대로 작동해 지역과 산업의 구조조정을 바르게 중재하도록 해야 합니다.

 

글로벌화가 진전되고 거대 중국이 부상한 오늘날,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고 점점 더 강화될 수 있습니다. 이를 거부하면 옛 소련·동유럽 사회로 나아가자는 주장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구조조정이 삶의 안정성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제도가 갖춰져야 합니다.

 

대화와 타협에 익숙치 않은 우리 사회에서 한진중 사태가 원만하게 마무리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찾아보자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혹시 사실이 틀렸거나 의견이 다르시면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필요한 경우 글을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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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7월 2일)


* 한진중공업 사태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되는 기사를 소개합니다.


 -  6월 28일자 한겨레에 한진중공업 노조 사무장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링크는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484929.html 입니다.


 - 6월 21일자 부산일보에는 한진중공업 파업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진보신당 당원 30여명이 노조원들로부터 "이런 지원 집회가 노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박대를 받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ectionId=1010010000&subSectionId=1010010000&newsId=20110620000176


* 그리고 부산쪽 지인에게서 들은 내용인데, 회사쪽에서는 해고대상 노동자에게 필리핀 조선소에서의 일자리는 제안해 놓고 있다고 합니다. 월급 등의 조건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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