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고유의 글

'천지개벽' 상하이를 다녀와서

동숭동지킴이 2011. 6. 6. 19:45


‘천지개벽’ 상하이를 다녀와서

 

김기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달에 중국 상하이(上海)를 다녀왔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상하이를 18년 만에 다시 방문해 ‘천지개벽’했다고 감탄했는데, 저는 19년 만에 다시 방문한 것입니다. 물론 김위원장처럼 본인도 그 동안의 변화에 깜짝 놀랐습니다.

 

본인이 상하이에 간 것은 ‘성장을 위한 재분배’를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서 참가했고 본인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중국은 금년부터 시작된 12차 5개년계획에서 내수 중심의 경제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고도경제성장 과정에서 심각해진 분배문제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성장도 도외시하지는 않으려는 것이겠지요.

 

한국에서는 1987년 밑으로부터의 정치민주화가 경제민주화 즉 소득분배를 개선한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일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과연 어떻게 분배문제를 개선할지 흥미롭습니다. 중국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나 사회보장제도 정비가 얼마큼 효과가 있을지 두고 볼 대목입니다.

 

심포지엄 내용의 자세한 소개는 지루할 터이므로 우선 몇 가지 에피소드만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진보적 연구단체인 CEPR(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로부터의 참석자는 미국의 미래, 다시 말해 진보적 변화의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 진보단체 재정의 80% 가량은 포드재단의 기부금이라 합니다. 포드재단에서 돈을 대서 체념하게끔 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재단 운영이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이 점은 참 부럽습니다.)

 

미국 기득권세력의 힘이 워낙 강하다는 거지요. 영화 인사이드 잡(Inside Job)에 잘 나오지만 세계금융위기에 책임 있는 인사들이 오바마정권 하에서도 그대로 중용되는 판이니까요. 미국 진보파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미국의 미래가 어떨지 우리가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틀이 꽉 잡힌 사회일수록 변화가 힘들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한국도 재벌·관료·언론의 힘이 점점 탄탄해지고 있고, 따라서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변화가 어려워지리라는 불길한 생각은 듭니다.

 

미국과 반대의 경우가 브라질인 것 같습니다. 사회가 아직 덜 짜인 만큼 룰라의 집권기 동안 커다란 진보를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빈곤율이 2003년의 36%에서 2009년엔 21%로 떨어졌습니다.

 

본인은 브라질에 대해선 Bolsa Familia(포르투갈 발음은 '보우사 파밀리아'이고, 뜻은 '가족수당'입니다.)라는 말밖에 몰랐습니다. 이는 빈곤층에 대해 아동을 학교에 보내고 예방주사를 맞히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는지 궁금했는데, 이번에 알게 된 것입니다. Bolsa Familia를 비롯한 룰라의 정책으로 분배가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즉 2000년에서 2007년 사이에 하위 20%의 소득은 매년 6.3%씩 증가한 반면, 상위 20%에선 1.7%만 증가한 것입니다. 같은 기간 중국에선 그 수치가 각각 8.5%, 15%였으며 인도에선 각각 1%, 2.8%인 것과 크게 대비되지요.

(다만 브라질은 이렇게 분배가 개선되어도 2009년의 Gini 계수가 0.54로서 아직도 대단히 불평등한 나라입니다.)

 

----------

심포지엄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심포지움 내용에 관심이 있으면 上海社會科學院(Shanghai Academy of Social Sciences) 홈페이지를 찾아가 보십시오.

 

그러면 중국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상하이 방문 전후로 중국 관련 책을 10권정도 읽었습니다. 가기 전에 중국에서 20년 가까이 사업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가서는 거기서 1년 이상 지낸 분과 한나절 같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중국전문가가 아닙니다. 이랜드 사장은 중국파견 직원에게 미리 중국 관련 책을 100권 읽으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사실 제가 중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은 없을지 모릅니다.

 

다만 본인이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느낌을 그저 소개 차원에서 전할까 합니다. 그리고 중국 전반에 관한 게 아니라 중국과 한국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첫째로, 중국은 대국(大國)입니다. 무슨 뻔한 소리냐고 하겠지만, 한국인들 중엔 아직도 중국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도 오랫동안 중국을 하찮게 여겼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 1년 사이에 3번이나 중국을 방문한 걸 보면 생각이 바뀐 것 같습니다만.)

 

원(元)나라와 청(淸)나라가 대두할 때 조선의 집권층은 그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와 전통이 없는 오랑캐 따위가 뭐 대단한 존재이겠느냐는 것이었지요. 이런 인식 때문에 조선 인민이 크게 고생했습니다.

 

지금이 그때와 똑 같지는 않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커진들 미국을 몰아내거나 지배할 수야 없지요.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G2가 만들어진 데서 보여 지듯이 미국과 곧 맞먹을 판인 중국의 정치외교력을 우습게봐선 안 됩니다.

 

MB는 취임하자마자 부시에게 쪼르르 달려가 굴욕적인 쇠고기협상을 벌였습니다. 말하자면 숭미(崇美)노선인 거지요. 반면에 중국과는 돈벌이만 생각할 뿐 정치외교적 관계를 진전시키려 하지는 않습니다. 이러다 큰 코 다치는 거 아닐까요.

 

둘째로, 중국은 그냥 대국이 아니라 힘이 넘쳐나는 대국입니다. 이게 일본이나 미국과 다른 점입니다. 3조 달러가 넘는 세계최대의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세계자원을 싹쓸이하고 관광지를 휩쓸고 있습니다.

 

중국 변방지역만 여러 달 여행한 분은 넘쳐나는 중국의 힘을 바로 그 지역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미얀마와 라오스에 중국 물자와 사람이 벅적거리고 있답니다. 라오스에는 중국이 철도, 도로, 발전소까지 건설해 준다네요.

 

1980년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힘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로부터 1990년대 장쩌민의 대국외교를 거쳐 2000년대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屈起)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부상은 중국이 대국인지 제국인지 패권국인지 모르지만 세계경영의 꿈을 키우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중국 CCTV 국제방송을 보면 바로 이런 세계경영의식을 엿볼 수 있답니다. 한국의 아리랑TV가 영어공부용에 지나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미국에 종속적이었던 일본에서도 이런 세계경영의식은 당연히 없었고, 어쩌면 그게 일본 정체의 한 원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북한 문제를 안고 있어서 중국과의 정치외교 관계의 발전이 특히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MB정권은, 북한을 압박하는 데 중국이 훼방(?) 놓는 걸 그저 기분나빠할 따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전(上典)을 미국 대신에 중국으로 바꾸자는 말이 아닙니다. 광복 후 김일성통치에서 배울 게 그다지 없지만, 소위 주체외교 즉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북한이 처신한 방식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셋째로, 중국의 경제대국화가 한국에 기회냐 위협(위기)이냐의 문제입니다. 이때까지 이런 논의는 많이 있어왔습니다. 근래는 위기 쪽보다는 기회 쪽이 더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한국이 그런대로 큰 탈 없이 굴러간 것도 중국 덕분입니다. 중국이 대규모 내수 진작책을 쓰면서 한국의 대중 수출이 늘어난 것입니다. 2010년 한국의 수출지역 중 중국의 비중은 25%로서 미국과 일본을 합친 17%를 크게 상회합니다.

 

이제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이 폐렴 걸린다”가 아니라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이 폐렴 걸릴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니 중국이 위기에 봉착하면 큰일이지만, 중국이 잘 굴러가는 게 적어도 당분간은 한국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다만 나라가 아니라 산업 차원에서 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이미 섬유, 완구 등의 경공업은 중국 때문에 종쳤습니다. 중화학공업의 부품·소재는 대중국 수출이 늘고 있지만, 전자나 조선 등 최종재는 점차 세계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이 맞부딪치고 있습니다.

 

이리되면 혹시 중국이 장차 한국을 세계시장에서 몰아내지 않을까요. 한국은 중국인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김치, 막걸리, 드라마, 성형수술, 화장품이나 제공하는 처지가 되지는 않을까요. 또한 한국기업들이 중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나아가 중국시장을 획득하기 위해 그동안 대거 중국으로 몰려갔는데 그 결과 한국 내의 투자는 그다지 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대만이나 홍콩의 경우에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듯합니다. 중국 덕분에 그들이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계속 ‘산업공동화(産業空洞化)’ 운운하고 있으니까요. 또 한국이 일본을 밀어젖히는 관계가 중국-한국 사이에 나타날 수도 있겠지요.

 

세계경제를 역사적으로 보면 밀어젖히는 관계는 흔한 일입니다. 미국이 영국을 밀어젖히고, 독일과 일본이 미국제조업을 밀어젖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밀어젖힘을 당한 국가는 제조업 이외의 산업 예컨대 금융업으로 옮겨가든가 제조업 중에서도 고기술 부문으로 이전해갑니다.

 

우리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그리하면 되겠지요. 다만 그러려면 산업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진전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미비한 사회복지로썬 그런 구조조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금융업으로 옮겨가는 것보다는 고기술 제조업으로 옮겨가는 게 소득분배를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점도 인식해야 합니다.

 

유럽을 보면 산업대국 독일 옆에서 다른 조그만 나라들도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중국의 경제대국화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다만 원활한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조건이나 소득분배에 대한 영향은 고려해야지요.

 

이번에 상하이를 둘러보니 서울과 별로 다를 바 없었습니다. 고층빌딩은 정부가 개성적인 디자인을 강조한 탓에 밤이 되면 서울보다 더 화려했습니다. 상하이인의 구매력도 한국에 뒤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서유럽 각국들이 비슷한 생활수준과 산업구조에서 함께 살아가듯이 장차 중국과 한국과 일본도 서로 비슷하게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 비전문가가 가벼운 느낌을 적어보았습니다. 혹시 중국전문가가 이 글을 읽어보신다면 오류를 바로잡아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페이스북에 첨부한 사진은 상하이 금융 중심지인 푸둥 지역에 있는 유명한 둥팡밍주(東方明珠) TV탑과 주변 건물입니다.)


----

(추신) 어떤 분이 본인의 글을 읽고 중국에 오랜 만에 다녀온 게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상하이는 19년만이지만, 2006년에 중국 廣東省 지역을 다녀온 바 있고 그 후에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을 방문했댔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실태나 북한사정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 세계 속에서의 중국이라는 문제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그걸 한번 고민해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