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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청문회와 노무현 정신

동숭동지킴이 2011. 6. 30. 15:40

 

헌법재판관 청문회와 노무현 정신

 

김 기 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어제 민주당 쪽에서 추천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조후보에게 천안함 문제를 던졌습니다.“천안함 폭침이 누구 소행인가”라고 질문했고, 이에 대해 조후보는 “북한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의원들은 재차“북한 소행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몰아쳤고, 그러자 조후보는“정부발표를 신뢰하나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선진당 의원이 6.25는 남침인 것으로 확신하면서 천안함 폭침은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공격했습니다.

 

천암함 사건을 사상검증의 수단으로 이용한 셈입니다. 에도 시대 일본에선 기독교인을 탄압했고, 그래서 기독교인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려고 그리스도나 마리아 상 등을 새긴 널쪽을 밟게 했던 일이 있습니다(ふみえ (踏繪)).


 

차마 밟지 못하면 기독교인으로 단정해 처벌했던 것입니다. 이런 전근대적인 수법이 오늘날 한반도에서 버젓이 횡행하는 현실은 바로 분단의 비극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천암함에서 억울하게 죽은 국군장병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리고 별별 희한한 이유로 군대 안 가거나 자식을 군대 안 보낸 고위층이 제일 많은 게 어느 정권이고 어느 당일까요.

 

천암함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본인의 이전 블로그 글인 <북한은 홍길동인가요?>에서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에 관한 정부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사정을 소개했지요.

 

그런데 본인이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조후보자가 어떻게 답하는 게 좋았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후보자가 북한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답하니까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그럼 <확신하지 못하느냐>고 가드 밑을 뚫고 어퍼컷이 날아 왔습니다.

 

그리고 직접 보지 못해서 확신하지 못한다고 답하니, 그럼 보지 못한 것은 다 확신하지 못하느냐는 식으로 코너에 몰린 것이지요.

 

야비한 말꼬리 잡기이기는 하지만 조후보자도 대응이 다소 엉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 딴에는 공격-방어의 스파링을 했을 터인데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본인 생각엔 조후보자가 답변의 첫 번째 단추를 잘못 꿴 것 같습니다. <대단히 높다>고 말함으로써 물고 늘어질 실마리를 제공했으니까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십니까. 제 생각엔 그냥“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아니 그러면 정부 발표를 못 믿고 북한 주장을 더 신뢰한다는 이야기냐”는 따위의 공격이 이어지겠지요.

 

이에 대해“천안함 사건을 재판에 붙일 수 있다면 사실 본인이 한번 다뤄서 진실을 규명해 보고 싶다”고 받아쳤으면 어떨까요.“그래서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는 국민들이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첨언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국가 기밀 어쩌고 하면서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측면을 거꾸로 공격하는 것이지요. 국가관을 묻는 데 대해 재판관으로서의 지위도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세적 자세에서 대응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공세적 자세로 대응하는 게 훨씬 당당하고 논리에서도 궁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이게 더 솔직한 자세입니다. 아마도 조후보자의 처음 답변도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것일테니까요.

 

요컨대 <솔직하고 당당한 자세>가 정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더 좋은 대응방안이 있으면 댓글로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런데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작년 6월에 처음 당선된 진보교육감의 경우입니다. 그는 외국어고교에 대해 비판적인 공약을 제시했는데도 정작 자신의 아들을 외고에 보냈다는 이중성을 공격받았습니다.

 

그 당선자는“아들이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다들 누워서 잠만 자고 분위기가 엉망이라고 하더라. 일반고에 가면 마찬가지일테니 외고에 가겠다고 해서 보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외고 입학식에 갔더니 학력에 대해서만 말하고 인성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어서 속으로 ‘X'표를 그었지만, 이미 들어간 학교에 못 가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육감은 여기까지만 말했습니다. 그는 한 마디 더 보태고 그 보탠 부분을 강조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변명조로 들리고 이중적 행동을 한 것으로 비친 것입니다. 그게 뭘까요.

 

본인 생각엔 이렇습니다.“이렇게 제 아들을 통해서 일반학교와 외국어고교 둘 다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고, 그래서 현재 교육체제를 바로잡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고자 합니다. 교육감에 나선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랬다면 훨씬 멋있고 당당하지 않았을까요.

 

이건 단순한 말하기 테크닉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 자세의 문제입니다. 공격에 대해“솔직하고,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대등한다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바람직한 지도자나 고위층의 자세입니다.

제가 앞의 신정아씨 관련 글에서 지적한 '치사함'의 반대말이 '당당함' 아닙니까.

 

우리 사회의 수구보수층은 워낙 비리투성이므로 그런 지도자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입니다. 개혁진보층도 신이 아닌 탓에 여러 가지 흠결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흠결을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는 게 아니라, 솔직하고 당당하게 해명하는 건 수구보수층보다는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념이 보다 중요하고 타락의 기회가 상대적으론 적었으니까요.

 

바람직한 본보기가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장인의 빨치산 전력을 공격받자 구질구질하게 변명하지 않았습니다.“대통령 되려고 마누라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되받아친 것이지요.

 

이런 솔직함과 당당함이 바로 노무현 정신입니다. 이는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입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도 연연하지 않았고 목숨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삶의 자세가 당당함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물론 노대통령은 재임 기간엔 자신의 노무현 정신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집권진영 나아가 진보개혁진영의 준비와 실력이 부족해서 집권 중의 성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신만은 길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정신 때문에 그를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아니 그런 지도자는 깬 국민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 모두가 노무현 정신을 길러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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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오늘자(7월 2일) 한겨레와 경향에 조후보자 청문회를 다룬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겨레: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5466.html

경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020335485&code=910402


두 기사 모두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 등의 질문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고 법률가에게 '종교적 확신'을 요구한 저열한 색깔 논쟁임을 잘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다만 본인이 제기한 화두는 박의원 등의 치사함을 비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치사한 질문에 당당하게 대응하려면, 확신이냐 아니냐 하는 식의 논란에 빠지지 말고, 아예 질문의 틀(프레임)을 바꾸는 식으로 대답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답하는 데는 위험부담이 따릅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신이란 옳은 일을 위해선 위험부담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후보 식의 답변이 더 위험했는지도 모릅니다.

 

까짓것 헌법재판관 안 되면 어떻습니다. 그냥 변호사 하면 되잖습니까. '싸나이' 답게 "천안함 사건을 내가 한번 재판해 보고 싶다"고 하는 식의 멋 있는 모습을 기대해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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